이머징 컬쳐(Emrging Culture)와 이머징 처치(Emrging Church)
목회사회학연구소 ‘이머징 컬쳐 & 이머징 워십’ 세미나
2010년 05월 07일 (금) 07:43:34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김선일 교수 / 새세대교회 성장연구원, 웨스터민스터대학원대학교
영미권의 젊은 복음주의자들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역사적 예수의 삶을 구현하는 신앙공동체 1) 를 탐색했던 이머징 교회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한국에서도 드물지 않게 소개되어 왔다. 어떤 이는 이머징 교회 운동을 한국 교회 사역의 방향을 제시해줄 유력한 대안으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이머징 교회 리더들의 신학과 영성을 비판하며 매우 경계하기도 한다.
필자는 한편으로 서구권의 배경에서 비롯된 이머징 교회 운동의 외적 형태를 한국 교회에 도식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거리를 둔다. 또한 이머징 교회가 신비주의적 영성을 유포하고, 상대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진리관을 함의한다고 비판하는 것 또한 단편적인 이해라고 생각한다. 경험적으로 볼 때, 서로 다른 두 입장이 각을 세우고 있을 때, 양비론이나 양시론과 같은 절충형 대안을 선택하기는 다소 간편하고 안전한 길인 것 같다. 구태여 필자의 견해를 미리 밝히자면, 비판적 지지라는 각도에서 이 운동에 대한 긍정적 전망 쪽에 방점을 찍으며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필자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운동이 한국교회의 신학과 교회됨에 관해 논의에 신선한 활력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1. 이머징 교회의 문화적 배경
이머징 교회 운동에 대해서 필자가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이 운동이 미국의 특정 세대 문화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교회론적 고민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론적 주장이나 운동은 이전 시대의 패러다임과 비판적 대화를 하는 가운데 부상하기 시작한다. 이머징 교회 운동은 앞서 정의한 대로 서구의 포스트모던 시대를 기반으로 등장 했다. 2) 미국에서 포스트모던 시대로의 전환을 뚜렷이 의식하며 사회 전반에 진출한 첫 세대는 소위 ‘X세대’라고 말할 수 있다. 3) 이 X세대는 이전 세대의 사회, 문화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과 욕구를 표방하게 되는데, 이는 포스트모더니티라는 현상으로 설명되기도 하며, 이를 교회의 새로운 사역 방향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이머징 교회 운동이다. 그리고 X세대와 이머징 교회에 앞서 미국 문화를 주도했던 이들은 베이비부머 세대와 구도자 교회 운동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1) 베이비부머 문화와 구도자 교회
미국의 문화적 세대구분을 따질 때 베이비부머 세대는 2차 대전 이후인 1946년부터 1964년(피임약이 공식적으로 승인된 시기) 사이에 출생한 집단을 가리킨다. 어느 한 세대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세대의 주된 구성원들이 청소년, 청년기를 어떻게 경험했느냐가 중요한 지표가 된다. 이 베이비부머 세대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성 혁명과 인권, 히피 문화, 자유분방한 문화생활 등을 경험하고 자란 세대이며, 급속한 가정의 파괴를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은 전통적 기독교의 형식적 예배에 지루함을 느끼고, 정통 신앙의 교리주의와 도덕주의에 반감을 안고 교회를 떠났던 이들이다.
그런데 이런 베이비부머들이 가정을 이루고, 중년의 시기에 접어든 무렵 인간의 ‘영적발달 주기’상 자연스럽게 인생에 대한 의문과 삶의 의미에 대한 관심이 찾아오는 것이다. 노화의 진행으로 인해 인생의 운명을 고민해야 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진행되는 자녀들의 문제, 사회적 성취 뒤에 남는 더 깊은 인생의 의미를 탐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중년으로 접어드는 1980년대 미국 사회에 영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는 현상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들에게 제도권의 기성 교회는 영적 대안이 아니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동양사상이나 뉴에이지 등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베이비부머 세대들 가운데서도, 좀 더 서구 중심의 보수적 문화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뉴에이지나 동양종교에 귀의하기란 불편하고 어색한 과정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이들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던 신앙 운동이 바로 윌로우크릭과 새들백으로 대표되는 나타난 구도자 중심의 예배였다. 교회의 전통적인 의식과 교리중심적인 설교 보다는,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찬양과 간결한 예배 형식, 그리고 삶의 문제들과 직결된 메시지는 이들의 영적 여정에 대안으로 기독교를 제시하게끔 만든 것이다. 젊을 때의 진보적 가치관과 자유주의적 생활양식에 대한 신화에서 벗어나, 자녀들의 문제를 걱정하게 되고 인생의 후반기를 정리하고자 했던 이들에게 좀 더 개방적이고 생동감 있는 영성운동이 필요했고, 그 욕구를 새로운 복음주의 교회들이 충족해준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구도자 교회의 사역 모델은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예배와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소그룹 운동으로 대변되어, 미국 전역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는 한국 교회에도 열린 예배, 혹은 현대적 예배라는 이름으로 앞 다투어 적용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문제는 구도자 교회는 한 특정 세대의 문화에 집중했던 사역 형태였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와 그 뒤로 이어지는 X세대 사이에 포스트모더니티 4) 가 사회적으로 정착되는 거대한 조류가 밀려들어왔다고 볼 수도 있다. 5)
2) 이머징 문화와 이머징 교회
X세대, 또는 포스트모던 세대는 이전 베이비부머와는 전혀 다른 사회적 경험, 문화적 감각을 갖춘 이들이었다. 이들은(1965년 이후 출생) 미국의 경제적 팽창이 서서히 흔들리는 시기에 성장했으며, 냉전기를 겪었다. 또한 그들 중 상당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부모들이 성혁명의 풍토 소에서 자유롭게 결혼과 이혼을 넘나드는 동안, 외롭고 표류하는 어린 시절을 통과하면서 이러한 현실에 대한 반감을 안고 자라게 된다. 이러한 공통 경험은 수많은 X세대에게 ‘불안’이라는 공통 코드를 각인시켜 주었고, 이는 그들의 삶을 위한 보다 견고한 준거 틀이 될 수 있는 공동체와 전통을 열망하게 만들었다. 이들이 보기에, 구도자 교회의 예배는 기독교의 더욱 심오한 영적 유산이 상실된 문화적 취향으로서의 종교일 뿐이고, 개인적 관심사에 부응하는 메시지와 필요에 따른 소그룹은 진정성 있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었다.
또한 백인들의 경우 미국 역사에서 최초로 초등학교에서부터 유색인종과 더불어 동등하게 교육을 받아온 이들에게 유독 피부색깔에 따라 확연하게 구분되는 교회 모임은 인종적 어울림을 자연스럽게 경험해 온 이들에게는 모순되어 보였다. 이런 차원에서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X세대들에게는 자신들의 고유한 인생 탐구 여정을 담을 수 있는 교회의 구조와 영적 경험이 필요했다. 하지만 단순히 세대의 문화적 욕구에 부응하기만 하는 교회를 구상한 것은 아니다. 사실 대형 복음주의 교회들에서는 이미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가장 최근의 문화적 트렌드와 엔터테인먼트를 그대로 반영하는 형태의 예배들이 시도되었고,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는 종교성은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베이비부머 세대 문화의 종교적 버전이 구도자 교회라면 일부 X세대 교회들은 젊은이들의 하위문화(자유방임적 개인주의, 치료주의, 자기도취와 엔터테인먼트 문화) 등을 신학적, 철학적 성찰 없이 전략적 효율성 측면에서만 활용하려고 했다. 이머징 교회 운동은 이러한 세대적 문화 욕구에 동화되어, 교회와 영성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잃고 있는 영미권 기독교에 대한 젊은복음주의자들의 반성적 대안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2. 이머징 동산으로 흐르는 4개의 지류
이머징 교회의 양상과 특징에 대한 기술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비판적인 진영에서 D. A. 카슨과 존 맥아더는 이머징 교회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가운데, 진리의 절대성과 객관성을 상실하고 있음을 크게 우려한다. 카슨은 이머징 교회 리더들에게서 근본주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저항성이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지적하며, 맥아더는 이머징 교회가 정통 개신교와 어울리지 않는 신비주의적 영성을 혼합시키고 있다고 일갈한다. 필자는 이러한 비판적 시선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공감을 느낄 수 있다. 이머징 교회 리더들에게서 종교 다원주의로 오해받을 수 있는 관용성 내지 다소 키취적인 차원의 신비주의 성향도 보인다.
그러나 두 비판자의 문제점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이머징 교회들의 일차 자료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일부 대표적 인물들의 글에 국한하여 종합적 평가를 내렸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제 겨우 싹을 피우기 시작하는 신앙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대화하지 않는 전형적인 모던 시대의 패권적 논리로만 대응했다. 한 사람이나 집단의 주장을 비평하는 일보다 그들의 진의를 파악하는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이 요청된다는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에디 깁스와 라이언 볼저의 <이머징 교회>는 이 운동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이 된다. 이 책은 이머징 교회 리더들의 고백을 가급적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머징 교회의 특징을 9가지 핵심적 실천 사항인, ① 예수의 삶을 따르고 ② 세속의 영역을 변화시키며 ③ 고도의 공동체적 삶을 살아야 한다. ④ 낯선 이들을 영접하고 ⑤ 관용적으로 섬기며 ⑥ 생산자로 참여하고 ⑦ 창조된 존재로서 창조해 나가며 ⑧ 하나의 몸으로서 인도하고 ⑨ 영성 활동에 참여함으로 정의한다.
또한 스콧 맥나잇은 이머징 교회라는 호수로 흐르는 4개의 강이라는 표현으로 이 운동의 특징을 기술하는데, 이는 ① 포스트모더니티 ② 프락시스(실천)의 강조 ③ 포스트 에반젤리칼 ④ 정치적 관심(하나님 나라의 윤리)이라고 한다. 필자는 맥나잇의 이머징 호수로 흐르는 4개의 강이라는 구도를 약간 변형시켜 이머징 동산으로 흐르는 4개의 지류로 표현하고자 한다. 6) 그것은 ① 해체적 복음주의 ② 역사적 예수에 대한 헌신 ③ 선교적 교회론 ④ 고전적 영성 이다.
1) 해체적 복음주의
맥나잇은 포스트모던한 특징을 중요하게 봤지만, 사실상 복음주의적 배경을 안고 있는 이머징 교회 리더들은 기존 교회의 위계적 질서, 문화적 동질주의, 교리적 진영주의, 성경 공부적 영성을 극복하려고 했다. 상대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 친화적인 성향을 보였다기보다는, 전통적인 복음주의 교회들을 둘러싼 모던적 갑옷을 해체하려고 한것이다.
파편화된 개인주의를 전제로 하는 취향 중심의 소그룹 보다는 다름을 관용하며 공유하는 공동체, 또한 한 몸 된 공동체를 지향하며, 몇 가지 핵심교리로 진영을 나누는 전투적 복음주의와는 달리 신앙의 정체성을 최대한의 공통분모에서 찾으려는 복음주의적 관용성을 더욱 앞세운다. 또한 신앙의 지평을 사회, 문화적 영역으로 계속 확대하기 보다는 기존의 통념적 신앙을 강화하는 지식과 정보 전달 위주의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지양한 것이다. 예를 들어, 미네소타에 위치한 Solomon's Porch(솔로몬의 행각)는 요일별 영성 주제를 제시하며 삶의 형성을 추구하는 훈련을 하는데, 회중이 나눈 신앙의 도전과 문제는 지도목사(lead pastor)의 설교 주제로 다시 논의된다.
2) 역사적 예수에 대한 헌신
이머징 교회 리더들과의 인터뷰를 보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의 대상으로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모본으로 삼고자 한다. 이들은 예수께서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이라는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가르치고 행하신 일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라고 본다. 제국의 권력과 종교적 경직성에 대항하며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삶을 보여주셨던 예수의 모습은 자본주의, 소비주의, 경제적 불공평이 만연한 오늘날의 현실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길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사회 윤리와 정치적 관점에서 더욱 급진적인 제자도를 실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이머징 교회 운동의 정신적 리더로 불리는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그의 연속되는 저술에서 현대 생태계의 위기, 신자유주의의 확산 등에 대응하여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서 대안적 원칙들을 탐색한다.
3) 선교적 교회론
최근 선교학계의 큰 화두 가운데 하나는 선교적(missional) 교회론이다. 즉, 사람들을 유인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으로 보냄 받음이 교회의 본질적 정체성임을 재발견한 것이다. 사람들이 교회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이 선교적 교회론의 주된 관심은 이웃과 지역사회에 대한 환대적 관심으로 나타난다. 교회 내부의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유도하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동선이 중요한 교회의 선교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러한 이해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깊은 고민과 거룩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진정한 교회의 사명인 선교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세속의 영역은 하나님의 임재를 새롭게 경험하는 중요한 공간이 된다. 한 교회에서는 주일 저녁 예배를 없애고 대신 교인들에게 그 시간에 이웃을 위한 선교적 실천을 행하도록 지도하기도 한다. 이머징 교회들의 진정한 고민은 교회 됨(being the church)과 교회 함(doing the church)의 문제였다.
4) 고전적 영성의 회복
수도원적 영성의 상징과 의식, 또한 교회의 전통적인 예전은 이머징 교회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적, 체험적 예배 양식과 영성 표현이라는 창구로 이머징 교회의 이해가 독점되어서는 곤란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고전적 영성을 현대적 차원에서 회복하려는 것은 더욱 견고한 기독교적 유산에 신앙의 기반을 두려는 욕구와 전인적 영성경험에 대한 갈망에 기초한다. 이들의 예배에서는 침묵과고요함, 느린 음악, 촛불 등이 자주 등장하며,심지어구도자교회들이용도폐기했던스테인드글라스나교독문,고대의 성가 등을 복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미래적 복원이다. 실제 건물 창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빔 프로젝터로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을 투사하며, 성경을 현대적 생활 영어로 재 번역한 ‘Message’로 교독문을 구성한다. 또한 일렉트릭 기타나 드럼과 같은 최첨단 악기들로 고전성가들을 리메이크하기도 한다.
3. 결론: 이머징 동산은 이 땅에서도 열매를 맺을 것인가?
필자는 이머징 교회의 외형적 특징들이 현대 기독교계에서 유독한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이머징 예배라는 화두는 사실 복음주의 권에서 새롭게 제기된 사안이며, 더욱 본질적 논지는 교회 됨(선교적 교회론)과 신앙의 준거점(역사적 예수)에 대한 고민이다. 비록 영미권의 복음주의에서 불거진 교회 논쟁이지만, 한국 교회의 지배적인 복음주의적 신앙 정서를 고려할 때 이머징 교회에 관한 논의는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또한 미국의 X세대가 처했던 사회, 문화적 배경과 현재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직면한 정황도 유사성이 적지 않다.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존재론적 불안과 전통적 가치관의 와해는 이 땅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더욱 근본적이며 영적인 실체를 갈망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지형에서 이머징 동산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를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일부 이머징 교회 리더들이 표방하는 제도적 전통 교회에 대한 전면적 저항감은 순화될 필요가 있다. 7) 이는 한편으로 이해 할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기 모순적인 발언에 불과하다. 칼빈대학교의 기독교철학자인 제임스 스미스는 이러한 구호를 일컬어 소위 ‘원시주의’(primitivism)의 출현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은 1세기 기독교 신앙에 대한 과도한 숭배적 집착이자, 성경과 전통, 예수와 교회를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 모더니즘에서 범했던 기독교 신앙에 대한 몰역사적 접근과 동일시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음을 경고한다. 8)
교회는 역사적인 신앙고백의 계승 가운데 존재하며, 그리스도인은 그 어느 누구도 이 교회의 역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의식은 역사적인 과정 가운데 형성된 것이지, 지난 2000년의 교회 역사를 건너 뛰어서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와 조우한다는 것은 무모할 따름이다.
두 번째로, 고전적 영성에 대한 이머징 교회의 강조는 서구 역사의 기독교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수도원적 영성은 서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유서 깊은 공통적 뿌리가 될 수 있지만, 한국의 개신교인들에게 그와 같은 영성적 상징들은 문화적으로 계승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징과 의식들은 상당 부분 가톨릭적, 또는 불교적인 영성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한국 개신교의 초기 역사를 볼 때, 유교의 경전 읽기와 삶의 질서를 확인시켜 주는 강력한 예법이라는 전승 속에서 성경 묵상과 경건한 예배라는 전통이 세워졌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머징 교회에 대한 관심이 단순히 새로운 교회 성장 테크닉이나 사대주의적 모방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위한 교회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대화의 장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미주>
1)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 실린 이머징 교회에 대한 정의다.
2) 영국에서는 ‘포스트 에반젤리칼’이라는 이름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미국에서는 2000년대부터 이머징 교회 운동, 또는 이머징 교회의 대화가 등장하는데, 현재는 영미권 모두 합쳐 이머징 교회 현상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3) 그러나 이머징 교회 운동은 X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사적으로 더 큰 흐름인 포스트모던 문화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으며, 다만 이머징 교회 리더들 대부분이 세대 구분상 X세대에 가까울 뿐이다. X세대 이후로 이어지는 밀레니얼 세대도 이머징 교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4) 포스트모더니티는 사상적, 철학적 이념으로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른 개념으로, 사회에 나타나는 비정형, 비권위성, 감성, 고전으로의 복귀 등의 현상을 기술하는 개념이다.
5) 모든 세대가 동일한 사회, 문화적 경험과 가치관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동일 세대 안에도 이전 세대의 취향을 더욱 선호하는 인구가 1/3은 될 수 있을 것으로 간주된다.
6) 필자가 이해하는 수준으로, 맥나잇의 구분에서 네 가지가 차별적인 대표성을 띠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프락시스와 정치성은 별개의 구분이 되기에는 중복되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
7) 댄 킴벌은 그의 책 <그들이 꿈꾸는 교회>(미션월드라이브러리, 2008)에서 “현대의 젊은이들은 예수님은 좋아하지만 교회는 싫어한다”는 논지를 펴며, 또한 더그 패짓은 <여전히 믿을 만한 기독교>(포이에마, 2009)에서 자신은 지난 1500년 동안 성행해온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8) James Smith, Who's Afraid of Postmodernism (Zondervan, 2006),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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