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를 죽여가는 유진피터슨-진정한 영성과 힐링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
한국교회를 죽여가는 유진피터슨-진정한 영성과 힐링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 ‘거룩한 그루터기’?
유진피터슨은 한국교회를 비성경적인 영성으로 오염시키고 죽여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런 유진피터슨과 같은 사람이 하는 말이 얼마나 비성경적인지 분별하지 못합니다.이런 책을 읽도록 조장하는 사람들이나, 지도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순전한 성도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영성과 힐링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 ‘거룩한 그루터기’Subversive Spirituality2013.02.12 17:03
거룩한 그루터기/유진 피터슨 지음/포이에마“나는 당신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더 많이 읽으라고 말할 때, 나는 더 적게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더 많은 일을 하라고 말할 때, 나는 더 적게 하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은 당신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필요하다. 당신의 친구들은 당신이 더 필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필요하다.”목사이자, 작가, 교수의 삶을 살았던 이 시대의 영적 거성인 유진 피터슨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에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있다.”이 책은 피터슨이 교수와 목사, 작가로 살아오면서 느끼고 체험하며 바라본 내용을 모두 묶은 것이다. 뛰어난 상상력과 통찰력이 돋보인 그의 초기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는 영성’(좋은씨앗)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것이 이번에 다시 출판사와 옷을 바꿔 새롭게 나왔다. 미국 기독 잡지와의 인터뷰 글도 들어 있다. 피터슨의 글은 언제나 우리에게 본질로 돌아가게 한다. 본질이 가장 큰 명제가 된 이 시대 한국 교회에 ‘유진 피터슨 읽기’가 필요한 이유다.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우리가 가진 능력이나 지식, 미덕이나 에너지가 커진다고 해서 진보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전문적인 기술을 터득한다고 해서 신앙생활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원점은 본질이다. 피터슨에 따르면 원점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기본적인 사실에서 시작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원점,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언제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늘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 어린아이는 항상 새롭게 출발한다. 모래를 갖고 하루 종일 무언가를 만들다가도 엄마의 소리가 들리면 손을 툭툭 치고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원점으로 돌아가 경배하고 경청해야 한다. 거기서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책에는 영성에 대한 피터슨의 견해가 자세하게 나와 있다. 영성이란 무엇인가? 피터슨에게 영성은 ‘하나님을 향해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역작인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IVP)에도 자세히 나와 있듯이 하나님에 대한 평생에 걸친 믿음의 헌신이 영성의 본질이다. ‘믿고’ ‘따르고’ ‘인내하라’는 하나님이 명령이 모든 영성의 핵심이다.그는 어느 특정한 시대의 문화적 유행이 되는 신앙을 경계한다. 북미 기독교계를 휩쓴 ‘소비주의 종교와 영성’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보인다. 그에게 영성은 오래전 성경에서 왔으며, 교회의 역사 속에 던져진 ‘가장 오래된 진리’다. 이 책의 주요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전복적 영성(subversive spirituality)’이다. 요즘 흔히 쓰이는 래디컬(Radical·급진적)과 맥을 같이한다. 신앙은 본질적으로 전복적이며 급진적이다! 전복적 영성은 공동체 속에서 반복되거나 습관적인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일어난다고 피터슨은 강조한다.이 시대 한국 기독교에 필요한 것은 전복적인 영성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소리들이 도처에서 들린다. 문화적 유행 속에서 한국 기독교는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아성과 같았던 목회자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또한 목회자들과 성도 모두 바쁘다. ‘영성’과 ‘힐링’이 만연되고 있지만 진정한 영성, 참된 안식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지금 원점에서 벗어났고, 목표지점을 상실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필요한 개념이 전복적이며 급진적인 그 무엇이다. 이 책은 우리의 원점을 찾게 만들어준다. 다시 피터슨의 말이다.“원점은 가만히 둘러앉아 다음에 할 일을 의논하는 곳이 아니다. 열심히 순례길을 걷다가 쉬어가는 오아시스가 아니다. 너무 많은 활동을 하다가 무위로 돌아가는 장소도 아니다. 원점은 하나님을 향한 주도적인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가 정한 제자도를 갖추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순종하기 위해 되돌아가는 장소다.”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
(자료출처 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view.asp?gCode=0000&sCode=0000&arcid=0006893447&code=23111312)
게리 길리 목사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 이라는 책에서 유진 피터슨 목사에 대해 정확히 비평하고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와 같이 말한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영적 연습'은 우리를 경청하는 길로 인도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안내서들 중 하나다. 그레고리 보이드는 한술 더 떠서 말한다. "나와 많은 사람들은 이그나티우스의 '영적 연습'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성장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명한 복음주의 대변인들이 이처럼 강력히 추천하고 있다.이그나티우스는 16세기 반종교개혁 시기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도승이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예수 사회 또는 예수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고 "영적 연습"으로 유명하다. "영적 연습"은 관상적인 명상의 한 방법이다.영적 연습은 기본적으로 고전적 신비주의에 대한 경험을 촉진시키는 수단이다. 동양종교 형식, 카발라, 뉴에이지 또는 로마 가톨릭 신앙에서도 발견되듯이 신비주의는 모두 똑같은 형태를 따른다. 그 형태는 정화, 조명, 합일이다. 정화는 우리 자신을 비우는 것이며 그래서 이그나티우스 운동의 첫 번째 목적은 "우리 안에 하나님이 채우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조명의 단계에서는 하나님의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지게 되는데, "네 개의 복음서에 등장하는 장면들을 곰곰이 상상하는 것을 통한 관찰" 연습으로 성취된다.위와 같은 연습을 통해서 아마도 하나님과 직접적인 합일을 이룰 것인데, 이 합일이 신비주의적인 영적 연습의 목표가 된다. 제임스 웨이크필드의 "거룩한 귀 기울임"과 같은 책들을 통해서 개신교에서도 지금 이그나티우스의 연습을 적용해 사용하고 있고, 리처드 포스터에서 유진 피터슨에게 이르는 사람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크게 장려하고 있다.(자료출처 게리 길리, 다른복음을 전하는 교회들, 김세민 역, 부흥과개혁사, 2011, pp. 76-78)
레이 윤겐은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라는 책에서 유진 피터슨 목사가 비성경적 영성의 주자들 중에 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제러마이어는 자신의 책에서 관상 운동가들, 뉴에이지 신봉자들, 이머징 운동 주자들 그리고 신비가들의 이름을 열거한다. 그 명단은 이렇다. 수 멍크 키드, 피터 센지, 로렌스 형제, 유진 피터슨, 어윈 맥매너스, 그리고 케빈 밀러.
(자료출처 레이 윤겐, 신비주의와 손잡은 기독교, 김성웅 역, 부흥과개혁사, 2009, p.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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