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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바르트의 길 vs 니버의 길

 김기현 바르트의 길 vs 니버의 길


바르트의 길 vs 니버의 길
희망을 꿈꾸고, 잘못된 길을 돌아서고자 힘써 분투하며
기자명 김기현  승인 2007.10.08 11:49

어떤 이는 현대 신학이 지적으로는 난해하고, 목회에는 별 달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실제 그런 면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들의 논의를 따라 잡기도 힘들거니와 ‘그래서 뭐?’라는 말이 곧잘 나올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이론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바로 옆 사람이 나와 가장 가깝기도 하지만 지구 반대편으로 돌면 가장 먼 사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저는 목회자이며 신학자가 되는 것이 비전입니다. 말과 글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꿈을 품고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한 경험이 있는 신학자를 좋아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는 지난 교회 역사에서 가장 걸출한 신학자입니다. 그는 지나치게 책을 많이 읽어서 눈에서 진물이 흘렀다고 합니다. 또 금식과 기도를 심하게 해서 몸이 약해졌지만 교회의 목회자요, 당대의 변증가로 사명을 다했습니다.  

칼 바르트의 사상

그와 어느 정도 견줄 수 있는 분이 바로 칼 바르트(Karl Barth)입니다. 그는 공부를 마친 후 집안 형편으로 스위스 자펜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신학교에서 배운 바대로 인간과 역사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봅니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인간의 죄악을 뼛속 깊이 경험합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이 제국주의 전쟁인데도 그것이 하나님나라와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양 호도하는 당대 최고의 신학자들의 선언서를 보며 절망합니다. 

더는 설교할 수 없는 신학, 전쟁을 지지하는 신학으로부터 결별하고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그는 다시 로마서를 연구합니다. 그래서 나온 ‘로마서 주석’은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신학적 변증이면서도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경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은총은 세상의 그 어떠한 혁명보다도 급진적이고 철저한 혁명을 유발합니다. 동시에 역사라는 거대한 광장 외에 인간의 내면도 깊이 응시하게 합니다.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인간의 탐욕과 죄성을 철저히 자각하도록 돕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초월적 은총만이 치료하고 구원합니다.

라인홀드 니버의 사상

그와 유사한 경험을 통해서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한 신학자가 바로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입니다. 그는 자동차 산업이 한창 번창하던 즈음의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바르트와 마찬가지로 가정 형편으로 목회를 시작합니다. 그도 바르트처럼 인간이 얼마나 깊이 죄에 물들었는가를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서 절감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전에 품었던 이상들을 포기합니다. 그가 보기에, 죄인된 인간은 구조적으로 선보다는 악에 가깝고,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만한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불가능한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하여 니버는 예수의 길을 곧이곧대로 따를 수 없으니 실천 가능한 중간 수준의 윤리를 제시합니다. 문제는 그 중간 수준이 어디서 그리고 무엇이냐는 겁니다. 

그는 인간의 죄성에 방점을 깊이 찍었지만, 죄인된 인간을 사랑하고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초월적 은혜는 간과했습니다. 현실에 너무 경도된 탓입니다. 바르트와 니버 두 사람은 현실 인식이 동일합니다. 인간은 완전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르트는 니버와 달리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자유 안에서 완전히 변화되었고, 변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니버는 바르트가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는 동안 계속 인간의 역사, 인간의 현실에 입각한 신학을 말합니다. 그래서 니버의 신학을 두고 로마서 7장에서 끝난 신학이라고 합니다. 교회론이나 성령론도 약하고요.  

같은 길을 걸었지만 결론이 달랐던 신학자

저도 그리 길지 않는 사역 속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자신의 모습에서 인간의 타락한 냄새나는 역겨운 모습을 많이 봅니다. 인간의 약함과 악함을 속속들이 파악했다고는 말할 경지까지 다다르지 못해도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간혹 두 사람을 생각하지요. 나는 누구의 길을 걸을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바르트와 니버 말입니다. 두 사람 모두 인간의 죄성을 보았지만 결론은 너무 다릅니다. 하나님의 현실과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 위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멀고도 멀답니다. 

하여 약하고 악한 나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끝내 하나님의 은총과 자유를 통한 교회의 갱신과 사회의 변혁을 꿈꿀 것인지, 그래서 그러한 하나님 나라의 전위요 시식으로서의 공동체를 일구어나가는데 더 가열 차게 헌신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그런 모습을 수긍하고 현실에 맞게 살 것인지 등을 여태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르트의 길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인간의 변화보다는 인간의 현실을 쫓는다면, 그래서 인간과 역사가 변혁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면, 왜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해야 하며 나는 왜 목사인가요? 내 편에서 보면 나는 앞으로도 그리 변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인간이고,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은 심히 약하여 당신이 창조한 세상 하나 고치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성서의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으나 다시 사신 예수님 말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예수 안에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의인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은혜 안에서 세상은 자신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새롭게 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관점으로 보면, 그 약함이 강함이 됩니다. 니버처럼 세상을 안경 삼아 예수를 보면 엠마오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바르트처럼 예수를 렌즈로 삼아 세계를 보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게 됩니다. 저도 바르트처럼 희망을 꿈꾸고,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 잘못된 길을 돌아서고자 힘써 분투하렵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 말입니다.

김기현 / 수정로침례교회 목사

[출처: 뉴스앤조이] 바르트의 길 vs 니버의 길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2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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