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6)-토마스 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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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6)-토마스 머턴류기종 | rkchg@hanmail.net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입력 : 2010년 06월 06일 (일) 16:37:58최종편집 : 2010년 06월 06일 (일) 18:21:51 [조회수 : 4698]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6) -계속-(5) 토마스 머턴(Thomas Merton, 1916-1968)▲ 토머스 머튼20세기 중반 이후에 기독교와 불교 특히 기독교와 선불교와의 대화에 큰 관심을 보인 사람은 아마도 20세기의 “사막의 교부”(a Desert Father)라고 불리는 토마스 머턴일 것이다. 머턴은 1941년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자마자, 어렵게 얻은 뉴욕의 한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직을 포기하고, 켄터키 주에 있는 겟세마네 수도원에 한 수도사로 들어가 일생동안 명상수행에 전념했으며, 자신의 체험에 기초해서 “명상” 및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세계 평화의 문제와 빈곤과 폭력과 사회악 등 사회정의의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머턴은 오랜 동안의 자신의 명상수행의 과정에서 불교의 명상 의 방법 특히 선수행(Zen Practice)의 방법과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즉 머턴은 기독교 신비가들의 영적 체험의 방법과 선불교의 영적 체험의 방법이 본질적으로 깊이 통하는, 다시 말하면 인간의 심오한 영적 체험과 깨달음을 표현하는 형식들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1967년에 <신비가와 선의 대가들> (Mystics and Zen Masters>이란 저술을 발표하였다. 이 책에서 머턴은 6세기 이후에 중국에서 발전된 선의 역사와 내용 그리고 발전 과정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선(禪/Zen)불교는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인도에서 들어온 달마대사(Bodhidharma)에 의해 처음 중국에 소개되었고, 도교와 결합하여 발전된/꽃피운 대승불교의 한 지류이며, 그후 한국과 일본에 널리 소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선불교(Zen Buddhism)와 기독교 신비주의(Christian Mysticism): 달마대사에 의해서 소개된 선의 기본정신은 “교외별전 불입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란 4개의 한자성어로 된 내용이다. 이 시는 선불교(Zen)의 핵심을 집약적으로 들어내는 시이다. 즉 우리 인간이 진리를 깨닫는 득도에 이르는 길은 경전의 문자나 교리나 추상적인 개념들에 의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의 내면을 직시함으로써, 즉 마음(인간의 영혼 혹은 정신세계)의 신비(본질)를 깨달음으로써, 참 진리(실재)의 인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선종(선불교)은 선의 5대조 홍인(弘忍)의 두 제자 혜능(慧能)과 신수(信秀)에 의해서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6대조의 선발과정에서 5대조 홍인의 수제자 신수의 시가 혜능의 시에 뒤떨어짐으로서 혜능이 6대조로 선택 되게 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신수의 시: (신수는 최고령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홍인의 후계자로 보였었다)<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깨끗한 거울 같구나,항상 갈고 닦아서 한 올의 먼지도 묻지 않게 하려네>.혜능의 시: (혜능은 홍인의 절에서 계도 받지 못한 채 부엌에서 일만하던 시골뜨기 도반중 하나에 불과 했으나 선의 참뜻을 나타내는 탁월한 시를 썼다)<보리수 나무 원래 없고, 깨끗한 거울 또한 아무데도 없는데,어느 곳에 때가 끼고 먼지가 일까?>혜능은 바로 이 시 때문에 신수 대신 홍인을 이어 선의 6대조가 되었다. 머턴은 이러한 선의 방법들이 기독교의 여러 상이한 신비체험들과 어떻게 연관되고 교류될 수 있는 지를 말해주고 있다. 머턴(Merton)은 선불교와의 접촉에 있어서 선승이며 동시에 대학자인 다이세츠 스즈키와의 교제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두 사람 간의 서신교환은 1959년부터 시작하였는데, 머튼은 고대 사막교부들의 관상적 영성과 선불교의 선승들의 영성의 유사성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으며, 이로 인해서, 이점에 대해 큰 관심을 지녔던 스즈키와 깊은 교분을 나누게 되었다. 두 사람은 1964년에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 교정에서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 이후 깊은 교제를 나눴는데, 스즈키는 머턴을 가리켜서 선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한 서양인(기독교인)이라고 평한바 있다.스즈키와의 교제 이후, 머턴은 1965년에 <장자의 도>란 책을 출간했으며, 1967년에는 자신의 선불교 연구서로 볼 수 있는 앞에서 언급한 <(기독교)신비가와 선의 대가들>이란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머턴은 장자를 통해서, 언어와 개념을 넘어선 “실재”에 대한 체험적 인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머턴은 기독교의 문제점은 언제나 개념화와 교리화에 집착하는 약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머턴의 동양종교에의 깊은 관심은 1968년 태국 방콕(Bangkok)에 열린 종교회의에의 참석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는 이 기회를 불교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종교성과의 접촉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마턴은 이를 계기로 인도, 태국, 스리랑카를 방문하려 했고, 다라이 라마와의 만남과 일본의 선승들과도 만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머턴은 회의 도중 갑작스런 사망으로 그 뜻을 다 실현하지 못했다.머턴과 깊은 교제를 나눴던 틱낫한(Thich Naht Hahn)은 머턴에 대해 평하기를 대부분의 서구 신학자나 영성가들이 이원론적 사고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데 반해서 머턴은 그런 틀에서 벗어서 있다는 사실이라고 평했다. 데이비드 스타인들 라스트(D. S. Rast)가 머턴에게 묻기를, 불교와의 접촉 없이 기독교의 가르침들 을 잘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머턴이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하기를, “나는 불교의 빛으로 조명하지 않고는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머턴의 이 말은 불교의 진리들은 기독교의 깊은 영적인 진리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머턴은 <신비가와 선의 대가들>의 서문에서 “선은 추상적인 형이상학도 아니며, 신학도 아니며, 이론적인 명제도 아니고, 의식과 앎의 굴레(속박)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행위로서, “구체적인 살아있는 존재론”이라고 정의 내렸다. 머턴은 이 책에서 기독교 전통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교부시대, 초기 수도원제도(사막의 수도자들), 영국의 신비주의, 17세기 신비주의, 러시아 동방정교회 영성 그리고 개신교 수도원 공동체 등도 소개하고 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머턴은 선불교 즉 불교의 선(Zen)의 방법에 매혹된 기독교 명상수도자로서, 영성주의 혹은 신비주의의 측면에서, 기독교와 불교와의 깊은 대화의 길을 모색한 사람이란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겠다.자료출처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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