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으로 드러나는 성도의 죄악 - 호라티우스 보나르
시험으로 드러나는 성도의 죄악 - 호라티우스 보나르 책속에서 본 글들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juwana/110011158681
시험으로 드러나는 성도의 죄악
옛 성도들이 시험받았던 경우를 살펴보면, 그들 가운데에서 그냥 보통 죄악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 우리로서는 도저히 예상하기 어려운 죄악까지 드러났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노아는 절제심과 자기 억제력을 죽을 때까지 잃지 않았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많이들 알고 있다. 그는 방탕하고 음란하며 죄악으로 숨이 막히는 세상 가운데 홀로 서서 사람들의 방탕과 음란을 꾸짖으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혹적인 환경에 처하자 그도 넘어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노아가 곤드레 만드레 술 취하고 만 것이다.
또 아브라함은 어떤가? 그는 믿음과 용기에 있어서 걸출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집트와 그랄 지방에 갔을 때, 겁이 난 나머지 믿음은 내팽개쳐 버리고 그만 거짓말을 내뱉고 말았다. 롯은 소돔의 음란과 더러움에 대항해 싸운 인물이었고 의로운 혼을 간직하고 있어 사람들의 가증스러움을 한탄했다. 하지만 그러한 그도 소돔의 멸망으로부터 구해냄을 받자마자 멸망당한 사람들과 똑같이 술 취함과 정욕에 넘어지고 말았다.
또 욥은 그 인내심에 있어 특출한 사람이었지만, 시련의 날이 계속되는 동안 그 인내심을 끝내는 저버리고 말았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온유했던 모세도 노기를 드러내며 그 입술로 범죄하고 말았다.
돌맹이 한 개와 돌팔매 끈 하나만 들고 골리앗을 무찌르러 나아갔을 정도로 용맹했던 다윗마저도 사울왕을 피해 도망하여 가드왕 아키스에게로 갔을 때, 적이 너무 무서워서 미친 사람 행세를 하고야 말았는데, 이 때에 그의 용감성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엘리야는 왕들 앞에서 전혀 떨지 않고 판결문을 큰 소리로 읽었고, 하늘 문을 닫았으며, 수 천 수만의 사람들 가운데서 혼자 하나님의 복수의 칼을 휘둘렀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도 한 여인의 협박에 겁먹고 도망하더니, 생명을 건지려고 모든 것을 팽개치고 말았다.
에스겔 또한 그 거룩함과 순종함에 있어 빛나는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보내심을 받았을 때, 불순종함으로써 자신의 기록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 영이 나를 들어올려 멀리 데리고 가시기에 내가 괴롭고 내 영이 화가 났었으나 주의 손이 내 위에 강하게 임하시더라”(겔 3:14 한글킹제임스성경)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
베드로는 열성적인 제자였지만 주님을 부인했다. 요한은 주님께 가장 사랑받은 제자였지만, 사마리아에 하늘로부터 불이 떨어지기를 원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참으로 인간이란 이 정도밖에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시험을 당하여 그 속이 속속들이 드러날 때 인간의 마음은 - 성도의 마음마저도 - 겨우 이런 정도인 것이다. 존 베릿지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 너, 마음아! 너는 도대체 어떤 존재냐? 바로 천치 덩어리가 아니더냐? 만물 가운데 가장 거짓되고, 간사하고, 악하고, 어리석은 자로다! 몰래 숨어 있던 죄악아! 이기심과 자존심아! 거칠은 성깔, 세속적인 욕망아! 하나님의 매가 영혼 깊은 곳을 치신다고 해서, 어쩌면 그렇게 순식간에 고개를 쳐들고 나온단 말이냐?”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정직성을 굳게 잡고 욥은 얼마나 오랫동안 참고 견뎌냈던가! 얻어맞고 또 얻어맞는 고난 가운데 처참하게 땅바닥에 나가떨어져 뻗었어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내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자아”에는 아직 하나님의 매가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역겨운 질병이 엄습하여 그를 더러운 거름 무더기로 처박았을 때, 그리고 친구들이 덤벼들어 하나님의 정죄를 받은 자로 그를 낙인찍었을 때, 그도 별 수 없이 자신의 믿음과 인내심을 저버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매가 그의 중심을 시험하자, 그는 안달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불신의 물줄기가 마음속으로부터 터져 나오고 만 것이다. 그를 시험하기 위해서는 활을 힘껏 당겨서 마음의 심연까지 깊이깊이 꿰뚫고 들어갈 아주 날카로운 화살이 필요했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의 질병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음속 깊이까지 찌르고 들어가자 그의 진짜 본성이 마침내 드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들의 마음속으로부터 고개를 들고 나오는 모든 죄악들 가운데 가장 악하면서도 공통적인 것은 바로 하나님을 불의하신 분으로 여기는 생각이다. 과거에 우리가 불신자였을 때에나 가졌던 생각이다. 그때는 하나님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데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하셨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좋으시고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결코 홀대 받으실 만한 분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라는 사실을 알려 주셨다.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헤아릴 수 없이 크신 놀라운 사랑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우리의 과거의 불신에 대해 부끄럽게 여겼다. 우리는 그 때, 이제부터는 결단코 하나님을 나쁘게 생각지 않으리라며, “그분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 분을 신뢰하리라”고 마음먹기도 했다. 고난을 당하면 오히려 더 그분께 매달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자마자 예전의 생각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렇게 대하신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된다. 주님의 은혜를 꼭 붙잡고 있던 손이 느슨해지면서 급기야는 그 은혜가 모두 다 달아나 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들은 시들어 버린 박넝쿨 아래에 있었던 요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회가 날 때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다.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 그분의 사랑을 맛보았지만, 이제는 그 사랑의 하나님이 전과 같지 않다고 여기고 만다. 마침내 우리 마음 가운데 숨어 있던 배교가 반역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조건 하나님을 섬기리라”던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사실도 무참히 드러난다.
하나님이 우리를 훈계하시며 이렇게 물으신다. “네가 성내는 것이 잘하는 것이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우리 입에 그 무슨 말이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불법을 용서해 주시고 말끔이 도말해 주셨거늘, 우리가 화를 내거나 낙담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겠는가?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고,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셨으며, 우리의 친구 되신 예수님이신 그 큰 바위에 우리를 숨겨 주셨거늘, 그래도 우리가 성을 내는 것이 잘하는 일이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소유하고 있고, 그 아들의 왕국을 영원한 유업으로 받았거늘, 우리가 성을 내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제 밤이 다 지나갔고 낮이 가까워져, 저 멀리 동쪽 하늘의 구름자락이 붉게 물들고 태양이 곧 떠오를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우리가 성이나 내고 있는 것이 정말 잘하는 일이란 말인가? p.85-88
하나님의 자녀가 고난당할 때 - 호라티우스 보나르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juwana/110011158681
시험으로 드러나는 성도의 죄악
옛 성도들이 시험받았던 경우를 살펴보면, 그들 가운데에서 그냥 보통 죄악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 우리로서는 도저히 예상하기 어려운 죄악까지 드러났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노아는 절제심과 자기 억제력을 죽을 때까지 잃지 않았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많이들 알고 있다. 그는 방탕하고 음란하며 죄악으로 숨이 막히는 세상 가운데 홀로 서서 사람들의 방탕과 음란을 꾸짖으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혹적인 환경에 처하자 그도 넘어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노아가 곤드레 만드레 술 취하고 만 것이다.
또 아브라함은 어떤가? 그는 믿음과 용기에 있어서 걸출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집트와 그랄 지방에 갔을 때, 겁이 난 나머지 믿음은 내팽개쳐 버리고 그만 거짓말을 내뱉고 말았다. 롯은 소돔의 음란과 더러움에 대항해 싸운 인물이었고 의로운 혼을 간직하고 있어 사람들의 가증스러움을 한탄했다. 하지만 그러한 그도 소돔의 멸망으로부터 구해냄을 받자마자 멸망당한 사람들과 똑같이 술 취함과 정욕에 넘어지고 말았다.
또 욥은 그 인내심에 있어 특출한 사람이었지만, 시련의 날이 계속되는 동안 그 인내심을 끝내는 저버리고 말았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온유했던 모세도 노기를 드러내며 그 입술로 범죄하고 말았다.
돌맹이 한 개와 돌팔매 끈 하나만 들고 골리앗을 무찌르러 나아갔을 정도로 용맹했던 다윗마저도 사울왕을 피해 도망하여 가드왕 아키스에게로 갔을 때, 적이 너무 무서워서 미친 사람 행세를 하고야 말았는데, 이 때에 그의 용감성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엘리야는 왕들 앞에서 전혀 떨지 않고 판결문을 큰 소리로 읽었고, 하늘 문을 닫았으며, 수 천 수만의 사람들 가운데서 혼자 하나님의 복수의 칼을 휘둘렀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도 한 여인의 협박에 겁먹고 도망하더니, 생명을 건지려고 모든 것을 팽개치고 말았다.
에스겔 또한 그 거룩함과 순종함에 있어 빛나는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보내심을 받았을 때, 불순종함으로써 자신의 기록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 영이 나를 들어올려 멀리 데리고 가시기에 내가 괴롭고 내 영이 화가 났었으나 주의 손이 내 위에 강하게 임하시더라”(겔 3:14 한글킹제임스성경)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
베드로는 열성적인 제자였지만 주님을 부인했다. 요한은 주님께 가장 사랑받은 제자였지만, 사마리아에 하늘로부터 불이 떨어지기를 원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참으로 인간이란 이 정도밖에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시험을 당하여 그 속이 속속들이 드러날 때 인간의 마음은 - 성도의 마음마저도 - 겨우 이런 정도인 것이다. 존 베릿지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 너, 마음아! 너는 도대체 어떤 존재냐? 바로 천치 덩어리가 아니더냐? 만물 가운데 가장 거짓되고, 간사하고, 악하고, 어리석은 자로다! 몰래 숨어 있던 죄악아! 이기심과 자존심아! 거칠은 성깔, 세속적인 욕망아! 하나님의 매가 영혼 깊은 곳을 치신다고 해서, 어쩌면 그렇게 순식간에 고개를 쳐들고 나온단 말이냐?”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정직성을 굳게 잡고 욥은 얼마나 오랫동안 참고 견뎌냈던가! 얻어맞고 또 얻어맞는 고난 가운데 처참하게 땅바닥에 나가떨어져 뻗었어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내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자아”에는 아직 하나님의 매가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역겨운 질병이 엄습하여 그를 더러운 거름 무더기로 처박았을 때, 그리고 친구들이 덤벼들어 하나님의 정죄를 받은 자로 그를 낙인찍었을 때, 그도 별 수 없이 자신의 믿음과 인내심을 저버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매가 그의 중심을 시험하자, 그는 안달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불신의 물줄기가 마음속으로부터 터져 나오고 만 것이다. 그를 시험하기 위해서는 활을 힘껏 당겨서 마음의 심연까지 깊이깊이 꿰뚫고 들어갈 아주 날카로운 화살이 필요했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의 질병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음속 깊이까지 찌르고 들어가자 그의 진짜 본성이 마침내 드러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들의 마음속으로부터 고개를 들고 나오는 모든 죄악들 가운데 가장 악하면서도 공통적인 것은 바로 하나님을 불의하신 분으로 여기는 생각이다. 과거에 우리가 불신자였을 때에나 가졌던 생각이다. 그때는 하나님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데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하셨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좋으시고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결코 홀대 받으실 만한 분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라는 사실을 알려 주셨다.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헤아릴 수 없이 크신 놀라운 사랑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우리의 과거의 불신에 대해 부끄럽게 여겼다. 우리는 그 때, 이제부터는 결단코 하나님을 나쁘게 생각지 않으리라며, “그분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 분을 신뢰하리라”고 마음먹기도 했다. 고난을 당하면 오히려 더 그분께 매달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자마자 예전의 생각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렇게 대하신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된다. 주님의 은혜를 꼭 붙잡고 있던 손이 느슨해지면서 급기야는 그 은혜가 모두 다 달아나 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들은 시들어 버린 박넝쿨 아래에 있었던 요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회가 날 때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다. 처음 하나님을 믿었을 때, 그분의 사랑을 맛보았지만, 이제는 그 사랑의 하나님이 전과 같지 않다고 여기고 만다. 마침내 우리 마음 가운데 숨어 있던 배교가 반역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조건 하나님을 섬기리라”던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사실도 무참히 드러난다.
하나님이 우리를 훈계하시며 이렇게 물으신다. “네가 성내는 것이 잘하는 것이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우리 입에 그 무슨 말이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불법을 용서해 주시고 말끔이 도말해 주셨거늘, 우리가 화를 내거나 낙담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겠는가?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고,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셨으며, 우리의 친구 되신 예수님이신 그 큰 바위에 우리를 숨겨 주셨거늘, 그래도 우리가 성을 내는 것이 잘하는 일이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소유하고 있고, 그 아들의 왕국을 영원한 유업으로 받았거늘, 우리가 성을 내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제 밤이 다 지나갔고 낮이 가까워져, 저 멀리 동쪽 하늘의 구름자락이 붉게 물들고 태양이 곧 떠오를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우리가 성이나 내고 있는 것이 정말 잘하는 일이란 말인가? p.85-88
하나님의 자녀가 고난당할 때 - 호라티우스 보나르
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https://www.esesang91.com/b/preach/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