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하나님을 경험함 (부흥과 경험)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창35:7-10)
1. 하나님의 시각에서 자신과 교회의 영적 현실을 바라보고 그분을 뵙기를 갈망하는 각성은이미 부흥의 시작이다. 그러나 참된 부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깊이 경험하게 한다. 또한 특별한 느낌 없이 차갑게 읽혀지던 진리들 속에 깃든 “자유케 하는 능력”을 체험하게 만들어 준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삶의 핵심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 이것은 모두 체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이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된 지식은 반드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3.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사랑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한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살기를 갈망하는 마음을 주어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이어가도록 만들어 준다. 따라서 하나님을 하는 지식은 곧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에 대한 정확한 성경 지식과 그에 대한 인격적인 체험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런 지식은 은혜 안에서 성장을 거듭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성장이 없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난쟁이와 같은 삶을 면할 수 없다.
4. 하나님의 부흥이 우리에게 이르기 전에 이미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빛을 자기 시대의 교회에 구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부흥을 구하는 마음은 곧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긍휼을 구하는 자의 마음은 언제나 가난한 마음이다.
5. 사람들은 사역을 위한 시간 계획을 세우고 행사를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함으로써 “교회를 부흥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참된 부흥을 주실 때에는 먼저 가난한 마음을 준비시키신다. 죽은 세상 한가운데 잠든 교회를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애통하며 기도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준비시키신다.
6.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아무 소용도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죄의 용서를 구하며,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세우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은총을 회복시켜 달라고 열렬히 탄원하는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그러한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아니하면 살아갈 아무 희망이 없다고 믿는 마음이다.
7. 부흥은 교회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교회를 깨끗하게 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임재와 마주할 준비를 갖추게 하신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마음을 다하여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 그 마음은 가난한 마음이며 그런 가난함 속에서 그의 심령은 거룩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부흥을 위하여 열렬히 기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사람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부흥을 입증하는 것이다.
8. 우리의 마음은 왜 이리 부요한가. 우리의 속사람은 그분께서 한없는 은총을 주시고 위대한 능력을 드러내 보여 주시며 심지어 우리를 영광스러운 임재 속으로 부르시기 전까지는 도무지 완전한 행복을 느낄 수 없는데, 우리는 이러한 영혼의 부르짖음을 외면하기 일쑤이다. 이 영혼의 부르짖음이 우리의 가슴에 들리지 아니하는 것은 우리의 사랑이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세상에 있는 것들에 과도히 집착하고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지 못하고 있다.
9. 현재에 이루어지지 못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애통함이 없는 사람의 입술로 고백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진실일 수 있을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처절하게 자기와 싸우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를 힘쓸 수 있을까?
10.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부요하여서 조국교회와 자신의 가난한 영적인 형편을 보며 탄식할 줄 모른다. 오늘날 우리가 인위적으로 부흥을 조작하려는 시도가 만들어낸 작은 성취에 만족하고 진정으로 부흥을 갈망하지 않는 것도 바로 가난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부요한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다.
11. 아무리 우리가 복음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부흥을 바란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현재적으로 부흥이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흐느낌이 없다면, 부흥을 위한 우리의 기대는 호기심에 불과한 것이다. 기대한다는 것과 갈망한다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2. 부흥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깊은 체험이고, 사람들은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하게 된다. 성령의 강한 임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거의 같은 시기에 하나님을 새롭고 깊게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우리는 부흥이라 부른다.
13. 부흥의 시기에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말함에 있어서 보다 핵심적인 것은 하나님의 인격 체험이다. 그분과의 인격적인 경험 속에서 얻어지는 영광과 능력에 대한 체험은 신비한 경험을 수반할 수 있지만, 신비한 체험이 곧 하나님의 거룩한 인격에 대한 경험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우선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인격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14. 오늘날 신비 체험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약점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경험보다는 능력에 대한 경험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신비한 체험을 많이 했을지라도 거룩한 생활을 위해서 힘쓰지 아니하는 것은 그들 가운데 거룩의 갈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거룩의 갈망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인격을 경험함으로써만 이루어진다.
15. 우리가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고 할 때, 그 거룩은 두 가지 신학적인 개념을 내포한다. 하나는 하나님이 만물 위에 초월해 계신 분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도덕적으로 완전하시다는 것이다. 따라서 거룩의 경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인식을 가져다 주는데, 첫째는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인간은 단지 가치 없고 티끌 같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고, 둘째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도덕적으로 불결한 죄인일 따름이다는 인식이다.
16. 우리는 위대한 영적인 인물들, 성경을 기록한 선지자들이나 시인들, 신약 시대의 사도들이나 거룩한 교부들, 종교개혁자들이나 청교도들, 그리고 이후 시대의 걸출한 영적인 인물들의 글들에서 공통된 특징들을 발견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완전하심에 대한 마르지 않는 찬사와 인간에 대한 철저한 비하의 표현이다.
17. 그것은 오직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이 무엇인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거룩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시며, 그분의 도덕적인 성품이 얼마나 눈부시도록 완전하고 아름다운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18.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교만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감히 자신들을 하나님의 파트너쯤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 앞에 개인적으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고 한없는 더러운 죄인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반복되지 않으면서도 익숙해지는 섬김에 있어서 하나님만을 인정하고 높이는 것은 쉽지 않다.
19. 부흥은 우리의 현실 속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시적인 증거를 보이시면서 개입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경험하게 한다. 부흥은 우리 가운데 있는 죄악을 불사르며, 대적하는 원수들 위에 교회가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그분이 친히 세우신 신적인 기관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20.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감정 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법이 없다. 일반적으로 부흥이 오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새롭게 깨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하심으로써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게 된다. 이전에 자기의 행복밖에는 모르던 사람들이 자기의 죄악과 더러움에 대하여 깊이 회개하게 되는 것은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21. 나아가서 이전에 자기가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하게 된다. 이전에 도저히 기도 제목이 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하여 기도하게 된다. 자기의 성결함은 물론 교회의 거룩한 변화를 위하여,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영적으로 각성된 사람들은 자기만 하나님을 발 믿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고 교회와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들, 나아가서 온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섬기게 되기를 처절하도록 열망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바라는 열망이기도 하다.
22.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시각에 서서 교회를 보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전수되고, 이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열정, 혹은 정염을 동반하여 전해진다.
23. 우리는 오늘날 너무나 차갑고 냉담한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대하여 냉담해지고, 세상은 죄에 대하여 더욱 담대해져 가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조국교회에는 두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즉 쓸데없이 뜨겁거나, 너무나 냉담하다는 것이다.
24. 매주일 회심하는 예배자들이나 영적 회복의 감격에 빠지는 이들이 아무도 없는 예배에 익숙해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차가운 신앙생활을 보라. 그들의 가슴이 무너지는 것은 산이 무너지는 것보다 힘들고, 그들의 눈에 눈물이 흐르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차라리 석고상에서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을 정도로 냉담해져 있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을 보라.
25. 하나님의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는 열정은 기질적인 흥분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부어질 때 우리는 기질에 상관없이 열정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마음을 경험하고 그것을 전수받을 때, 그것을 결코 인간적인 기질 같은 것으로 가두어 둘 수 없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 사람들이 냉담하게 살가는 것은 그가 다시 타락하지 않은 한 불가능한 것이다.
26. 조국교회는, 주일날 예배에는 나오지만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대다수이고,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회심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 사람들이 결국 교회가 하나님을 추구하고 참된 부흥을 기대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만나 영혼의 근복적인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면 결국 그 부담은 교회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교훈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7. 참된 부흥에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소위 주일 아침 예배에만 참석하는 기독교 신앙이다.(반스 헤브너)
28. 부흥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당신의 성품을 깊이 경험하게 하시는 은총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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