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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부흥(6)

거룩한 부흥(6)
자료출처: http://www.ansanluther.co.kr

제6장 하나님의 두려움 (부흥과 권세)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창35:4-5)

1. 일반적으로 부흥은 다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특별하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거룩한 영적 임재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다.

2. 부흥의 시기에 특이한 영적 현상들과 특징들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오히려 부흥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부흥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성품이고, 또 하나는 깊은 회심의 역사이다.

3. 참된 부흥의 숨길 수 없는 특징은 거룩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하게 하고 그들을 경건한 예배자로 만들며 진리를 아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는 것이 부흥의 핵심이다. 죄에 대한 깊은 회개가 없는 부흥이 참된 부흥일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4. 부흥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적인 역사가 반드시 성령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부흥의 현장은 우리들에게 악령의 역사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동시에 보여 준다.

5. 사탄의 역사는 성령에 대한 무지와 부흥의 상황을 다루는 성경적인 원리에 대한 무지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다.

6. 교회가 부흥을 맞을 때는 특이한 영적 경험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무지와 연약함 때문에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악한 영들은 우리의 이러한 약점을 충분히 활용하려고 한다.
        
7. 교회가 부흥을 맞기 전에, 혹은 먼저 부흥을 경험하면서 얻게 된 신령한 지식은 이러한 사단의 교묘한 책략을 퇴치하는 데 매우 유효하다.  

8.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수단으로서 부흥을 대망하는 것은 단순히 간절한 소망으로써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먼저 부흥의 본질과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기여하는 성경적인 원리들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9. 부흥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과 방불한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믿음을 갖게 하고, 나태하고 생명력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을 말씀으로 새롭게 만들며, 사람들로 하여금 거룩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성령의 역사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임을 심각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고, 거룩한 삶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며, 신령한 기쁨을 가져다 준다. 냉담하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잃어버린 세상의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타오르게 하여 복음 사역에 헌신하게 하고 텅 비었던 교회를 사람으로 가득 차게 하며 교회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만든다. 이들의 거룩한 삶을 통하여 세상이 영향을 받고 사회의 도덕적인 수준이 고양된다.

10. 교회에 부흥이 올 때 세상은 교회로부터 어떤 권위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교회가 부흥의 결정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뚜렷한 하나님의 임재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11. 교회에 성령의 능력이 부어질 때 세상은 그 교회를 보며 자기들에게는 없는 어떤 권세를 의식한다. 교회가 세상을 근본적으로 고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독교의 필요성에 대하여 세상의 동의를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죄를 책망하고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는 영적 권세이다.

12. 오늘날 조국교회는 어떤가? 우리가 드리는 예배 속에서 죄인의 교만한 심령을 압도하는 영적 권세가 있는가? 조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그곳이 하나님의 현존이 있는 장소임을 경험하고 있는가? 사람들의 자연적인 성품이 예의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경건이 있는가?

13. 부흥은 하나님을 등진 채 살아가는 죄인들의 마음에 경건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오게 만들어 준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만들어 준다.

14. 인류가 아무리 평화를 원해도 세상이 추구하는 평화는 이런 것이다. 즉 나라간에 무력이 균형을 이루어 서로를 해칠 생각을 못하게 하며, 그러다가 서로 군비를 축소하여 마침내는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려 해도 그럴 능력이 없기에 전쟁을 포기해야 하는 세상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을 알림으로써 인명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양심에 호소하여 고통받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펴게 하며, 사회 윤리 의식을 재무장하여 도덕적으로 건강한 사회가 되게 하자는 것이다. 이것들이 지향하고 있는 바는 바로 인도주의이다.

15. 그러나 교회가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고 말할 때 인도주의가  지향하는 평화의 추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두신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본질적으로 변화받게 만들어서 인간의 궁극적인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는 하나님과의 망가진 관계를 고치게 하는 것이다.

16. 세상을 향한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등진 채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십자가를 어리석은 것으로 여기는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하여 하나님과의 샬롬을 가져오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들이 되는 것이다.

17. 교회는 육체와 보이는 세상에의 섬김을 위한 차원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터로 부르심을 받은 소명 앞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치열한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서 교회가 어떻게 이러한 소명에 충실할 수 있을까? 그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소유함으로 가능하다.

18. 교회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하여 구별되이 세워진 기관임을 보여준다. 모세는 이 점에 있어서 예리한 통찰을 보여 주고 있다.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출 33:16)

19. 교회는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때, 그것은 단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미담을 남기는 일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육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고(사 40:5), 온 세상이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는 세상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20. 하나님을 거스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교회가 이러한 소명을 다하기 위하여 해야 할 가장 필수적인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교회와 친히 동행해 주시는 일 외에 무엇이 더 필수적이겠는가?

21. 오늘날 조국교회는 능력있는 복음의 역사보다는 사람의 지혜를 더 의지하는 선교방식에 승부를 거는 것 같다. 교회가 진리를 지닌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서의 영적인 권위를 잃어버릴 때 성령의 인도하심보다는 인간의 제도나 전통을 더 많이 의지하고, 죄를 책망하고 인간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거룩한 성령의 역사보다는 사람의 계획을 더 많이 의지하게 되는 것은 특별히 우리 시대의 교회만이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22. 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던 시대에는 언제나 성경 진리를 파수하는 것이 편협한 종파주의자들의 종교적 독선으로 이해되었다.

23.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로 성경이 말하던 인간의 전적인 타락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꼬이기 시작하였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의지는 망가졌으나 지성은 아직 건재하다는 그의 주장은 인간 지성의 자율 시대로 가는 길을 열어놓았다. 인간의 지성이 자율적이 되었으므로 인간은 이제 이 한 영역에서만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 자율의 원리를 근거로 철학도 자유를 얻어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벗어났다. 그리하여 철학은 성경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의 계시의 통제를 벗어난 인간의 이성과 자율이 최종적인 권위를 갖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제 이 세상에는 인간 이외에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대 정신을 불러왔다. 인간은 개인의 자유를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유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자유로 본다. 이것이 개인을 우주의 중심으로 삼으려는 자율적 자유의 추구가 가져온 결과이다.

24. 교회가 가진 진리의 권위를 옹호하는 방식은 역사적으로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났다. 첫째는 변증을 통하여 진리의 권위를 옹호하는 일이었고,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진리의 권위를 입증하는 일이었다.

25. 우리는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마땅히 끼쳐야 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교회가 부흥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회복하고 진정으로 인간의 구원을 위한 대안을 가진 기관임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있다.

26. 교회가 가진 진리의 권위는 변증에 의하여 파수되거나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런 일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교회가 가진 진리의 거룩한 권위는 그렇게 함으로써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의 권위는 훌륭한 지성인들의 변증으로써가 아니라 부흥을 통해 권세있게 된 교회의 선포를 통하여 다시 세워질 수 있었다.

27. 도무지 권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모든 진리에 대해 회의주의적인 태도가 만연한 이런 시대 속에서, 교회가 세상으로 하여금 자신은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기관이며, 교회가 전하는 복음이 참된 진리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조국교회는 마치 불신앙의 세력과 회의주의 물결에 포위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세상 풍조의 물결이 드높게 느껴질수록 조국교회는 점점 초라하고 왜소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8. 우리를 대적하는 원수들의 공격이 사소할 때는 우리가 교회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엄습함이 노도와 같은 전황에서는 승리의 깃발을 세우실 분이 오직 하나님 자신이다. 주님이 우리를 각성시키심으로써 진리를 위한 우리의 진군을 확신있게 하시며, 부흥을 주심으로써 교회를 권세있는 공동체로 세상에 드러내시는 일이 너무나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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