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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부흥(3)

거룩한 부흥(3)
자료출처: http://www.ansanluther.co.kr

제3장 하나님 앞에 서라 (부흥과 영광)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35:1)

1. 환란과 두려움과 고통은 종종 인간들을 각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데 이는 하나님을 만날 가장 중요한 준비가 마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 인간의 본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신 더 완고하다. 절망하기 전까지는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에 마음이 끌리지 아니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 앞에 티끌과 같은 약한 존재임을 아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강함을 경험하게 된다.

3. 하나님에 의한 커다란 각성이 필요하던 시기에 야곱과 그의 가정의 불신앙과 도덕적인 황폐함은 어느 부분을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지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가지 기초에 닿아 있었다. 야곱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서는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의 집안의 잘못 한두 가지를 꾸직어 지적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4. 부흥의 역사에서는 구체적으로 삶을 돌이키는 개혁이 영적인 부흥을 알리는 예고편이 되기도 하고, 커다란 부흥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이 구체적으로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악함을 고치는 일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개혁을 위한 활동들이 항상 부흥을 불러오는 것도 아니고, 교회와 세상을 고치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열망이 항상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사랑과 경외심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5. 야곱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지적받아야 할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곧, “네가 이제는 내 앞에 서라”는 말씀이었다.

6. 부흥의 본질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는 교리적으로 하나님의 전지하심 때문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결국은 모두 하나님 앞에 알려질 수밖에 없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느 한 순간에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던 하나님을 아주 가까이 계신 분으로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의 시각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7. 이와 유사한 일은 우리의 반복되는 회개의 경험에서도 일어난다. 늘 해오던 일이고 늘 보아 오던 상황인데도 어느 순간에 자기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슬퍼하게 된다.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전수되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각성이고, 지금 야곱에게 “너는 내 앞에 서라”는 하나님의 요구가 의미하는 바이다.

8. 위대한 영적 각성과 하나님의 부흥이 있었던 시대를 돌아보면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아주 탁월한 경건 속에서 살았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그처럼 힘에 넘치는 수고와 자기의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헌신 속에서 살면서도 구별된 경건의 삶을 이어갔던 것은 항상 하나님의 면전에서 사는 신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9. 오늘날 우리의 건조하고 척박한 신앙생활의 원인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 대한 신령한 경험들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진리는 우리의 신앙 세계에서 경험될 때 비로소 그 진술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드러낸다.

10.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각성하고, 부흥이 일어나는 때에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삶이 노출된 것 같은 신전 의식을 가져다준다.

11. 그리스도인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은 마치 커다란 빛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되며, 큰 권세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부흥 가운데 일어나는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행복감이나 환희가 아니다. 거기서 먼저 느끼는 것은 깊은 두려움과 영적인 권세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깊은 관계가 있다.

12. 우리가 그분 앞에 서게 될 때 느끼는 처음 감정은 두려움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죄인들에게 주는 자연스러운 영향이다.  

13. 부흥이 일어나는 그 장소에서 사람들은 먼저 두려움을 느끼고, 이어서 그 두려움은 변하여 찬양이 된다. 사람들은 세속적인 일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일에 자신을 모두 드리고 싶어한다. 그들은 광대한 하나님의 진리의 선포를 듣는 일에 기쁨을 느끼며, 이것이 예배의 중심에 선다. 왜냐하면 이 말씀의 선포 속에서 그들은 전에 없이 큰 권세를 느끼며 그 설교를 통해서 자신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참된 부흥은 항상 말씀과 함께 다가온다.

14.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축복을 약속하는 설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보다 더 많이 알기를 원하지, 자기들의 죄로 지친 삶을 위로해 주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사는 것이다. 진리를 통해 자신을 거룩하게 함으로 안으로는 하나님과 더욱 하나된 영적인 유대를 공고히 하고 밖으로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15. 한 시대의 교회의 잘못이 고쳐지는 것은 결코 세상이 “교회는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제시는 요구 앞에 섬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다.

16. 하나님께서는 부흥을 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신다. 그러고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의 영적인 상황을 보게 하신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영적인 회복에 대한 갈망을 갖게 하신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마음 아파하게 하시고 자신들을 통해 가리워진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서 업신여김을 받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 하신다.

17. 따라서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떠난 교회를 가슴으로 쓸어안고 흐느끼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헌신적인 기도로 한 시대의 영적 각성과 부흥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 것은 전혀 기이한 일이 아니다.

18. 한 나라의 영적인 각성과 교회의 부흥은 대체로 한 사람의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각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러한 각성의 기폭제가 되던 사람들의 헌신적인 기도는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섬으로써 얻어진 것이었다.

19. 교회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할 때 우리는 크게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을 위해서이고, 둘째는 교회 안의 신자들을 위해서이고, 셋째는 세상을 위해서이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세상은 교회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구원을 얻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20. 세상은 교회가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고 투쟁하여야 할 대상인 동시에,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장적인 탄원으로 중보하여야 할 대상이다.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세상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도록 부름을 입은 곳이 바로 교회이다.

21.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교회의 특징은 세속에 대한 사랑이다. 교회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2. 하나님의 교회가 내적인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깊은 침체에 떨어지게 되면, 세상에 신령한 영향을 끼치는 대신 세상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는다. 한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얼마나 영향을 주느냐 하는 것은 곧 그들이 얼마나 풍성한 영적인 삶을 누리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23. 하나님께서 야곱을 벧엘로 올려 보내시는 것은 단지 한번 그곳에 들러서 의식적인 제사를 지내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창35장) 그들에게는 상당 기간 동안 “거기 거하며” 세겜 사람으로부터 받은 불신앙의 찌꺼기들과 도덕적으로 불결한 습속들을 털어 내버리는 일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24. 이 시대의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세속화의 문제라고 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버리도록 도전을 받았던 세상의 기준과 가치들이 교회에 의하여 다시 모아지고, 자신은 변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교회는 거듭난 가치 기준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데 실패하고 있다.

25. 영적인 각성과 부흥은 자기의 존재 속에 내재하면서, 일상적으로 계속되어 온 습속에 들어 붙은 세속주의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으려는 갈망들을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속에 심어 준다. 위대한 각성과 부흥이 일어나던 시기의 그리스도인들이 탁월하게 높은 수준의 경건을 실천하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영적 변화 때문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훈련에 의해 체득하고 실천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26. 하나님과의 온전한 만남을 위하여 세겜을 떠났던 야곱처럼 우리에게도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시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기에 합당하도록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너무나 시급하다는 것이다.

27. 살아있는 교회의 역사는 결코 사람이 주도하는 커다란 개혁운동이나 대규모의 집회를 통해서 이어 오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각성된 소수의 사람들의 헌신적인 기도와 갈망을 통해서 부흥을 주심으로써 선교의 역사를 이어 오셨고 살아 있는 교회의 역사를 이어오셨다.

28. 하나님은 먼저 이들에게 하나님 앞에 서도록 명하신다. 그러고는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남들이 갖지 못한 시각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현실을 보게 한다. 그 특별한 시각을 통하여 그들은 교회와 자신들의 영적인 현실을 보게 되며, 이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떤 심정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시는지를 헤어리게 된다. 이 때 그들은 진정으로, 침체된 교회의 회복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자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9.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사람, 그가 곧 다수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30. 사람들은 방법을 찾아다니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신다.(막 3:13)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사람들은 모임을 결성하고 후원자를 찾아다니지만, 하나님은 한 사람을 당신 앞에 세우시는 것으로써 위대한 부흥의 새벽을 여신다. 이 일은 언제나, 하나님의 심정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형편과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과 참담하도록 가난한 그들의 영적인 현실과 무력함 사이에서 애통해하는 사람, 혹은 소수의 무리들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31.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우리의 사역의 목표나 교회의 선교의 비전도 아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일차적인 관심은 잃어버린 세상의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과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우리의 모든 추구는 이것과 관련 있으며 이것을 위한 것일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이다.

32. 우리가 가장 시급히 되찾아야 할 열정은 하나님의 자신의 이름이 홀로 영광받으시기를 바라는 불 같은 열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에 대한 열정은 궁극적으로 다른 모든 것들을 위한 열심보다 뛰어나게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합 2:12-14)

33. 부흥의 특징인 영적 각성은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들의 영혼에 대한 사랑의 회복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거룩한 부르심 앞에 드린다.

34. 그들의 소원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기뻐하며, 십자가에 나타난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하나님과 화목을 통해 이 땅이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사모하는 열망이다. 이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지 아니한다면, 자신들의 비전과 교회의 모든 목표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너무나 강해서, 그 시대를 향해 선지자처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때로는 불 같은 언어로 하나님을 떠나 버린 그 시대를 책망하지만, 돌아서서는 제사장적인 탄원으로 가슴을 찢으며 재 위에 앉아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회복을, 영혼들의 구원을 간구하는 자이다.

35. 진정한 부흥은 이처럼 하나님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헌신의 동기를 정화시켜 준다. 살아있는 이유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순수하고 열렬한 열망을 지닌 존재가 되게 만들어준다.

36.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섬으로써 복음의 진리들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지속적인 인식의 확장 없이 단지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순수한 섬김의 동기를 유지한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헌신의 순수함은 얼마나 훈련받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였는가에 달린 것이라는 사실이다.

37. 교회의 역사를 움직였던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애를 생각해 보시라. 그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이상의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은 잘 훈련된 사람으로서 산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었다. 특이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인격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야 할 삶과 섬김의 동기가 정화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38. 물론 부흥에 대한 경험이 일평생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보증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죄인들이고 부패한 성품의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 바울 사도도 매일 매일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베드로 사도 역시 육체의 정욕을 피하고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한 거룩한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권고하여야 했다.(벧전 2:11, 4:2) 그러나 개인적으로 부흥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 일에 있어서 훌륭한 분지를 갖춘 사람들이다.

39.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이상의 신앙 생활에 대하여 거의 기대하지 않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부흥을 경험함으로써 자신과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으로 정화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 사람들은 그렇게 되기까지는 양심의 자유를 얻지 못할 것이며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대하여 만족을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40. 이처럼 부흥은 수많은 하나님의 일꾼들을 거룩한 소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고, 그들의 섬김의 동기를 정화시켜 주어서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게 한다.

41. 오늘날 조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개교회주의와, 복음주의적인 교회들간에서도 파벌주의와, 동지적인 사랑을 경험하기 힘든 사역의 현장은 대부분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심에서 발로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모르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경험의 부족에 기인한다. 오늘날 조국교회의 상황은 영적인 각성을 통하여 하나님 한 분의 영광과 존귀함에 집중하는 마음이 회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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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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