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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부흥(2)

거룩한 부흥(2)
자료출처: http://www.ansanluther.co.kr

 

제2장 말씀하시는 하나님 (부흥과 회복)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창35:1)

1. 영적인 각성의 역사에 있어서 공통된 사실은, 그 위대한 영적 각성과 부흥은 항상 교회의 절망적인 부패와 그리스도인들의 타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 역사상 위대한 영적인 각성이 있기 직전에 교회는 반드시 절망적인 영적인 타락과 무지의 늪에 있었다. 이것은 교회의 역사뿐만 아니라, 성경의 역사에서도 그대로 성립한다.

2.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영적인 각성과 부흥의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부흥을 가져온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이 땅에 부흥을 주시는 하나님의 도구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들은 특별히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이었고, 대부분 특별히 경건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단지 부흥을 위하여 쓰임을 받았다는 역사적인 사실 때문에 그렇지 못한 다른 성경의 인물에 비해 우월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3.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각성과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게 하는 거룩한 부흥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조국교회와 우리 자신의 영적인 상태와 이 나라의 현실을 바르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과 교회가 누리고 있는 영적인 삶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생활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축복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4. 개인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어떤 것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성경과 성경 진리에 의하여 빛을 받고 해석된 결과로서의 경험이다. 이러한 원리를 교회적인 차원에 확대 적용시킬 때 성경과 성경의 진리에 의하여 조명을 받고 분석된 결과로서의 교회의 경험을 그러한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5. 우리가 우리의 교회가 처한 영적인 상태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즐거워하였고 영화롭게 하였는지를 살피고, 또 한편으로는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성경에 나오는 그러한 부흥의 경험들이 어떻게 반복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6. 우리가 진정으로 본받고 싶은 것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의 축복을 누리던 때의 영적인 수준과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지식의 부요함이다. 비록 교회의 역사에 드물게 나타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으로 충만해져서 타락한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여 거룩한 세상으로 만들기에 유능하던 그 특별한 때의 교회를 그리워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싶어하는 그의 자녀들의 신앙의 본성이 아닐까?

7. 하나님만을 사랑하기까지는 만족이 없고,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받기까지 헐떡임을 그치지 않는 영적인 갈망을 가진 신자들이라면 잠들어 있는 교회들과 비교하며 자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부흥은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체험한 사람들이 갈망한다.

8. 교회가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모습에 가까이 가 있었던 때에는 교회가 영광스러움을 누리던 시기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있게 전파되고, 복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힘차게 역사하던 시대였다.

9. 교회의 역사에 나타나는 부흥의 사건들을 읽어 보면 그것이 거의 선교 역사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특이한 축복으로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세상을 복음으로 효과적으로 정복하던 때의 교회의 모습은 특별히 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이상의 수준에 도달했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10. 교회의 역사가 선교를 통한 교회 확장의 역사라면 하나님은 이러한 선교의 폭발적인 힘을 부흥을 통해서 불어 넣으셨다. 교회의 역사가 세상을 변화시킨 역사라면, 교회는 거룩한 하나님 앞에 각성하는 위대한 영적 깨어남과 부흥을 통해서 세상을 향한 영향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교회의 부흥의 역사와 그리스도인의 영광스러운 각성의 역사를 연구해야 할 이유인 것이다.

11. 교회를 통해 위대한 복음의 능력있는 역사가 영광스럽게 나타나고, 죄인들이 집단적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급속히 확장되며, 그리스도인들이 각성함으로써 신약 성경의 성도들이 누렸던 영적인 축복들을 소유하며 거룩한 삶을 사는 것, 그리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되는, 사도행전의 맥을 잇는 교회로 나타나는 것이 결코 예외적인 경우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12.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상황을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조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우리가 처한 영적인 상황에 대한 안일한 종교적 위안이 아니라, 지금은 상실해 버린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들을 헤아리고, 그러한 약속으로부터 멀어진 교회의 현실과 선교 상황이 무엇 때문인지에 대한 통찰이다.

13. 복스러운 영적 각성이 이르기 전에는 언제나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먼저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약속과 교회 역사의 축복된 경험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깊은 곤경에 처해 있고, 이대로는 하나님의 교회를 이 땅에 세우는 선교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기 힘들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14. 역사적으로 보면, 한 시대의 교회가 완전히 피폐하여 참된 교회의 표지를 거의 잃어버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 같이 되어버린 상황 속에서도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한 시대의 교회가 복음에 대한 경험을 잃어버리고 나면 신앙에 대한 진지함과 심각함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교회 역사의 공통된 경험이다.

15. 우리는 오늘날 살아가는 현실에 너무나 골몰해 있는 나머지, 이전에 우리를 향해 베푸신 은총과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움을 누렸던 지난 시대의 교회의 복스러움에 대한 기억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16. 오늘날 조국교회는 이 민족의 갈 길을 제시해 줄 안내자로서의 신뢰를 잃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정직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이냐고 묻는 질문은 그 자체가 브끄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고, 교회를 떠난 젊은이들에게 가장 커다란 위험은 이전에는 이단들이었지만, 이제는 향락이다.

17. 우리에게 교육은 있지만,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길러내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어떠한가? 과연 교회는 이 어려운 시대 속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임을 드러내는가? 조국교회는 과연 이 민족의 장래를 책임질 수 있는가? 갈 길을 잃어버린 백성들이 조국의 장래를 이 교회에 맡겨도 되겠는가? 과연 이런 곤경에 빠진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하게 된 교회가 마음을 다해서 자기의 정체성을 회복하기를 추구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 겨레가 고민하고 아파하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조국교회가 가지고 있는가? 비록 접근 방법은 다르더라도 교회가 이 시대의 조국의 상황과 겨레를 자신에게 맡겨주신 기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여 섬기고 있는가?

18. 오늘날 우리는 이처럼 가난하고 무기력한 교회의 시대를 살면서도 이러한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 않는 영적인 불감증에 걸려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나 현실 상황에 대하여 대안들을 강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국교회의 초라하고 무기력한 상황은 별로 나아지는 것이 없다.

19. 교회를 변혁하고 선교 상황을 열어 가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주최측이 되고 하나님이 후원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구하지만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의 노력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절박함은 없는 것 같다.

20. 무엇에 의해서도 신령한 자극을 받기를 마다한 다수의 무력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진정으로 교회 되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 애매모호하거나 세속적인 가르침을 가진 복음사역자들이 절박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리가 없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그분께서 친히 강림하사 교회를 그렇게 만든 대적들을 무찌르시고, 그 시체들 위에 여호와의 깃발을 나부끼게 하실 필요를 절박하게 느끼지 않는다.

21. 우리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위대한 역사를 통해서 무기력한 교회가 영적 위기를 타개하고 이 땅을 속히 복음으로 정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일이 필요하고, 또 그것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 너무나 부족하다. 오히려 그런 기대를 신앙적인 미성숙이나 영적인 불안정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안타까운 상황에서 우리가 부흥을 기대하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인가?

22.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신앙적인 미성숙의 탓인가? 혹은 믿음이 없기 때문인가? 하나님께서 수시로 일으키신 부흥의 역사가 우리 눈앞에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한데, 우리가 어찌하여 부흥에 대한 열렬한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인가? 부흥을 기대하지 않는 소시민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묻습니다. 부흥을 기대하지 아니하면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최선의 상황은 어떤 것인가? 여러분들은 착실하게 조금씩 하나님을 섬기다가 세상은 변화시키지 못한 채 감동적인 일화만을 몇 토막 남기고 죽고, 교회는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의 앙상한 가르침을 붙들고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세속화되어 복음의 진정한 의미도 경함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로 가득 찬 곳이 되기를 원하는가?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선교적인 사명에 대한 책임 있는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조국교회가 이렇게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부흥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이다. 분명한 약속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직무유기이다.

23. 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아주 천천히 조금씩 자신들의 힘으로 벽돌을 놓듯이 이루어 가는 작은 성취들이 조국교회의 미래에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요행주의이거나 신비주의적인 발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적인 각성과 부흥과 같은 초자연적 역사로 개입하심으로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세상을 변혁시키신다고 하는 사실은 교회 역사에서 너무나 자주 입증왔지만, 하나님의 이러한 부흥의 간섭 없이도 교회가 영광스러움을 회복하고 세상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편만히 경배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역사 속에서 입증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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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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