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성경해석 오류_열매
***목사의 성경해석 오류_열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heretical/Knya/9
큰믿음교회의 변승우목사가 다음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회개의 열매가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해석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일견 보면 그런 뜻으로 해석이 되기도 한다.
마 3:5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마 3: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많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으려고 오는데 왜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욕설을 하며, “누가 너희로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는 잔인한 말을 했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많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세례를 받으려고 왔다는 언급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몇권의 주석을 찾아보니, 역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요한의 세례를 관찰하려고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해석하면 세례요한의 비난이 이해가 충분히 갈 수 있는 장면이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세례가 목적격 명사로 되어있으며 앞에는 “에피”라고 하는 방향 전치사가 기록되어 있다.
즉 본문은 “come to the baptism”(세례를 향하여 오다)로서, 세례를 받으러 온 것이라고 해석이 되지 않는다.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come to his baptism (요한의 세례로 왔다)으로 번역했고, NIV 영어성경도 coming to where he was baptizing(요한이 세례를 주는 곳으로 왔다)으로 번역하였다.
다시 말하여 세례요한은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으려고 오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세례주는 것을 보려고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비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아브라함을 조상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이제는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의 구원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이방인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즉 도끼로 나무를 찍는다는 뜻은 나무에서부터 제거한다는 뜻으로 선민으로서의 구원의 연결을 자른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성경적인 예를 마21:19과 막11:13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던 예수님의 경우인데, 그 의미도 역시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와 단절을 상징적으로 비유하는 내용이 분명하다.
어떻게 성경을 해석하여도, 위 본문은 변승우목사의 해석과 같이 이미 믿고 거듭난 자가 회개의 행함적인 열매가 없다면 지옥에 간다고 해석될 수가 없다.
그러한 해석은 명백한 오역이다.
또 그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마7장이다.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 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이 성경본문의 찍혀 불에 던져지는 나무는 믿고 거듭난 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선지자를 말하는 것이다. 즉 거짓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지만, 그 열매를 보면 분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위 본문도 믿고 거듭난 자가 회개의 행함적인 열매가 없으면 지옥에 간다는 뜻이 분명히 아니다. 변목사는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경을 엉터리로 인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해석은 주로 이단들의 공통된 수법이다.
나는 성경에서 열매라는 의미를 가진 구절을 살펴 보았다.
물론 성경은 인간적인 측면을 열매라고 표현한 내용도 있다. 그러나 그 열매가 구원을 뜻하는 경우로 사용되었을 경우에, 거의 대부분의 성경구절은 그 “열매”가 인간적인 의지나 노력, 행함으로 얻는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예수와 유기체적인 연합을 하는 결과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우리가 우리의 노력과 의지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로 열매를 맺도록 하여 주시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골 1: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약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고후 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위 본문들은 그 열매가 우리의 의지와 노력의 결과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으로 인하여 열매를 맺도록 하여 주심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명한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살펴보자
요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요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스스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15장2절만을 보면 열매를 맺지 못하면 가지를 제하여 버린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이 구절만을 강조하면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수고로서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여야만 한다고 생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을 보면 그 열매를 맺는 조건이 설명되어 있다.
즉 우리가 예수 안에 있으면, 예수도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즉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며, 가지는 포도나무를 떠나면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뜻이며, 곧 예수를 떠나면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즉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안에 거하며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3:17)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 (고후13:5)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3:26)
우리가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수고가 아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뿌리와 연결되어야만 하며, 뿌리가 우리를 보전하는 것이다.
오히려 성경본문은 예수를 떠나면 인간 스스로는 과실을 맺지 못한다는 뜻이다.
롬 11: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자료출처: http://cafe.daum.net/heretical/Knya/9
큰믿음교회의 변승우목사가 다음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회개의 열매가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해석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일견 보면 그런 뜻으로 해석이 되기도 한다.
마 3:5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마 3: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많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으려고 오는데 왜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욕설을 하며, “누가 너희로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는 잔인한 말을 했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많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세례를 받으려고 왔다는 언급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몇권의 주석을 찾아보니, 역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요한의 세례를 관찰하려고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해석하면 세례요한의 비난이 이해가 충분히 갈 수 있는 장면이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세례가 목적격 명사로 되어있으며 앞에는 “에피”라고 하는 방향 전치사가 기록되어 있다.
즉 본문은 “come to the baptism”(세례를 향하여 오다)로서, 세례를 받으러 온 것이라고 해석이 되지 않는다.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come to his baptism (요한의 세례로 왔다)으로 번역했고, NIV 영어성경도 coming to where he was baptizing(요한이 세례를 주는 곳으로 왔다)으로 번역하였다.
다시 말하여 세례요한은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으려고 오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세례주는 것을 보려고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비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아브라함을 조상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이제는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의 구원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이방인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즉 도끼로 나무를 찍는다는 뜻은 나무에서부터 제거한다는 뜻으로 선민으로서의 구원의 연결을 자른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성경적인 예를 마21:19과 막11:13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던 예수님의 경우인데, 그 의미도 역시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와 단절을 상징적으로 비유하는 내용이 분명하다.
어떻게 성경을 해석하여도, 위 본문은 변승우목사의 해석과 같이 이미 믿고 거듭난 자가 회개의 행함적인 열매가 없다면 지옥에 간다고 해석될 수가 없다.
그러한 해석은 명백한 오역이다.
또 그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마7장이다.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 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이 성경본문의 찍혀 불에 던져지는 나무는 믿고 거듭난 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선지자를 말하는 것이다. 즉 거짓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지만, 그 열매를 보면 분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위 본문도 믿고 거듭난 자가 회개의 행함적인 열매가 없으면 지옥에 간다는 뜻이 분명히 아니다. 변목사는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경을 엉터리로 인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해석은 주로 이단들의 공통된 수법이다.
나는 성경에서 열매라는 의미를 가진 구절을 살펴 보았다.
물론 성경은 인간적인 측면을 열매라고 표현한 내용도 있다. 그러나 그 열매가 구원을 뜻하는 경우로 사용되었을 경우에, 거의 대부분의 성경구절은 그 “열매”가 인간적인 의지나 노력, 행함으로 얻는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예수와 유기체적인 연합을 하는 결과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우리가 우리의 노력과 의지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로 열매를 맺도록 하여 주시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골 1: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약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고후 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위 본문들은 그 열매가 우리의 의지와 노력의 결과라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으로 인하여 열매를 맺도록 하여 주심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명한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살펴보자
요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요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스스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15장2절만을 보면 열매를 맺지 못하면 가지를 제하여 버린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이 구절만을 강조하면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수고로서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여야만 한다고 생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을 보면 그 열매를 맺는 조건이 설명되어 있다.
즉 우리가 예수 안에 있으면, 예수도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즉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며, 가지는 포도나무를 떠나면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뜻이며, 곧 예수를 떠나면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즉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안에 거하며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게 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3:17)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 (고후13:5)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3:26)
우리가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수고가 아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뿌리와 연결되어야만 하며, 뿌리가 우리를 보전하는 것이다.
오히려 성경본문은 예수를 떠나면 인간 스스로는 과실을 맺지 못한다는 뜻이다.
롬 11: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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