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새벽강단&말씀모음

***목사의잘못된성경해석_부자와나사로

***목사의 잘못된 성경해석 (부자와 나사로)|잘못된 성경해석 1 
자료출처: http://cafe.daum.net/heretical/Knya/3 

눅 16:27-31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변승우목사는 그의 책 지옥에 가는 크리스쳔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자가 마치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죄를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부자는 왜 지옥에 떨어졌을까요? 여러분은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 말씀에 암시되어 있듯이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옥에 던져진 이유는 앞으로 지옥에 오게 될 그의 다섯형제들이 지옥에 오는 이유와 같습니다, 바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을 예수를 믿기 때문에 틀림없이 천국에 가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분들에게 “당신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습니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회개없는 믿음은 가짜 믿음이며 그런 믿음은 사람을 지옥에서 건져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 그러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회개할 때에 어떤 죄들을 회개해야 할까요? 회개할 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지옥에 가는, 24쪽)
변승우목사의 신학적인 무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변승우목사는 “회개”라는 것이 죄를 끊는 것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부자가 죄를 회개를 하지 않아서 지옥에 온 것처럼 변승우목사가 성경을 편집하고 있다.
마치 부자가 믿음이 있었는데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지옥에 온 것처럼, 변승우목사는 믿는 자도 회개하여야만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살펴 보아야만 한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모세와 선지자”는 곧 성경을 말한다. 동일한 누가복음의 24:27과 24:44을 보면 그 용례를 알 수 있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자신의 다섯 형제에게 보내달라고 요구하였다. 물론 지옥에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성경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죽은 자가 살아나서 가면 다섯 형제들에게 좀 더 자극이 될 것이라고 부자는 요청을 하지만, 아브라함은 성경을 듣고 믿지 아니하면 죽은 사람이 가서 권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은 성경을 통한 자발적인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부자가 말한 “회개”는 “죄를 끊는 회개”가 아니라, “불신으로부터의 돌이킴”을 말하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의 말은 평소부터 성경을 듣고 믿음을 가지라는 내용인 것이다. 변승우목사의 책과 설교를 들으면 평소부터 "회개"라는 의미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전에도 회개에 대한 설명을 한 적이 있었는데, 변승우목사의 신학적인 무지가 그 원인이다,
회개란 신약에서 “메타노에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그 단어는 “메타”(...후에)와 “누스”(마음)의 합성어이다. 즉 돌이킨 이후의 전향된 마음을 말하며 “방향수정”이라는 용어가 적합한 의미가 된다.
즉 불신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을 믿는 방향수정이 곧 회개이다.
그래서 성경은 회개와 믿음을 동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막 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행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위의 글에서 “회개”란 믿음을 의미한다. 즉 불신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방향수정을 뜻한다.
부자가 말한 “회개”는 죄를 끊는 것이 아니라, 다섯 형제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나사로를 집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으며,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로 일컬어지는 성경이 있으므로 그것으로 충분히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 회개와 믿음을 포함하는 신학적인 용어로서 “회심”(conversion)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성경은 회개와 믿음을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한 행동의 다른 두가지 측면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 두가지는 물론 엄격하면 보면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불신으로부터 돌아오면 곧 그것이 믿음이 된다.
그렇다면 죄에 대한 회개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구원을 받은 자가 성화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죄를 끊은 것을 말한다. 이것은 믿음의 회개와는 달리 성화라는 과정에서의 반복적인 것이다.
변목사 자신이 웨슬레와 신학사상이 동일하다고 주장하였으니 웨슬레의 주장을 먼저 살펴보자.
 - 이 회개(중생후의 반복적인 회개)는 칭의에 선행하는 회개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는 죄책이라든가 정죄라든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의식이라든가 하는 것들과 연관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깨달음이니 곧 우리 마음 속에 아직 남아있는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곧 육에 속한 마음입니다. 중생한 사람들 속에서도 그것이 남아있으나 지배하지는 못합니다.(웨슬레 조직신학 199-200쪽)
웨슬레는 중생 후의 반복적인 회개와 칭의에 선행하는 믿음의 회개를 각각 구별하였다.
그리고 웨슬레는 이 중생 후의 회개, 즉 성화에서의 회개에 대해서는 죄책과 정죄, 하나님의 진노와 연관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미 구원을 받은 자의 회개이기 때문이다.
루이스 벌콥도 반복될 수 없는 회심과 반복되어지는 회심을 구별하고 있다.
- 새 생명을 심어주는 것으로 해석되는 중생은 결코 반복될 수 없다.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의 회심도 또한 반복될 수 없다. 이것은 중생의 변화가 인간의 의식생활에서 처음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반복되는 회심에 대하여도 말할 수 있다.(루이스 벌콥, 기독교 신학개론 256쪽)
웨인그루뎀도 마찬가지이다. 믿음과 회개는 한번이며, 성화과정에서의 믿음과 화개는 지속적이라고 말한다.
- 따라서 최초의 믿음과 회개는 생애 중 단 한번 있는 일이고, 그 일이 일어날 때 참된 회심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믿음과 회개의 마음의 자세는 회심때 단지 시작될 뿐이다. 그 때의 그 자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지속되어야 한다.(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345쪽)
물론 평신도들이 굳이 이런 신학적인 내용을 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변승우목사는 신학적인 뿌리가 전혀 없는 사람으로서 “회개”라는 단어가 오직 죄에 대한 돌이킴에서만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을 살펴보려고 한 것이다.
더욱이 부자가 믿는 사람이었는데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지옥에 왔다고 해석을 하고 있다.
누가복음 본문을 다시 보자. 과연 부자가 말한 회개란 죄를 끊는 것인가, 아니면 불신으로부터의 돌이킴을 말하는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변승우목사는 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부자가 지옥에 온 것을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라면 이러한 용어를 몰라도 되겠지만, 목사가 회개라는 기본적인 신학적인 용어의 지식이 없다면 참으로 문제이다. 결국 신학적인 용어조차 모르므로 엉뚱한 성경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자신이 성경해석의 다림줄을 갖고 있고, 유일한 성경해석의 은사를 갖고 있다고 하니.....
부자와 나사로는 과연 어떠한 경우인가?
그 비유의 멧세지는 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말한다.
(1) 나사로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라자로스”로서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의미이다. 즉 나사로가 평소에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는 "믿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이 등장하며,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다고 성경은 말함으로서 나사로가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3)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라는 성경이 있다”는 말은 “성경말씀으로 인한 믿음”을 의미한다.
(4) 부자의 경우와 같은 내용이 구약에 이미 기록되어 있으며, 부자는 단순히 연회만을 베풀던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의 행하심에 관심치 않았으며, 하나님의 하신 일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 즉 믿음이 없었던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음부로 빠졌던 것이다.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음부(쉐올)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 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사5:11-14)

이 글 공유하기

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https://www.esesang91.com/b/preach/63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