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2010년 1월 4일 가조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삼상 15:10-23) 『[10]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12]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났더니 혹이 사무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 갔다 하는지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컨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14] 사무엘이 가로되 그러면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 [15] 사울이 가로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가로되 말씀하소서 [17]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 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중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 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무엘상 15장에 하나님께서 사울을 지도자로 세운 그 위치를 얼마나 이해하지 못했는가를 보여주면서 그를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본문이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아말렉을 진멸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그 명령에 불순종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명령을 지켰느냐 안지켰느냐의 차원을 떠나서 그가 지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서 있는 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선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언약적 차원에서 순종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순종이라는 것은 단지 로봇처럼 버튼을 누르면 움직여지는 조작물이 아니라 그의 인격과 관계를 통하여 항복된 자세로서 해야하는 일이다. 그가 지은 이 이스라엘 곧 언약의 백성들을 언약 안에 세워가며 거룩한 백성으로 서가야 하는 자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야할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중함과 이 백성을 향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중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자기 백성을 죄의 종된 자리에서 구원하여 이 약속의 땅에서 누리는 택한 백성으로서의 자유와 기쁨과 평안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자발적인 순종이 일어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순종이란 그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하심에는 모순이 없으며 그가 행하시는 모든 일이 우리를 위하시는 일이라는 전적인 항복이 있고서 나오는 일이 순종이다.
특별히 여기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는 것은 지금 이 백성들이 새로운 왕정시대를 돌입하기 이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아말렉은 누구인가?
출애굽기 17장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와 이제 가나안으로 가기 위하여 광야 길에 들어섰을 때 맨 처음 이스라엘 앞을 가로막고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인 적이 아말렉 족속이다. 한 민족과 한 민족이 어떤 정치 경제적인 문제로 다툰 것이 아니다. 아말렉이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꺼내어 가나안에 들이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가로막은 민족들이다.
그러기에, 출애굽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겠다 고 맹세하셨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대적했기 때문이다. 감히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진멸하라고 한다. 진멸하라는 것은 말 그대로 남녀 노소 가축까지 모두 없애라는 명령인데, 헤렘전쟁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대항하는 사단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냥 두지 아니하신다.
지금 이 순간이 사사시대를 마감하면서 새로운 왕정시대로 들어갈 서막에 와 있다. 왜 하필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헤렘전쟁을 명령하시는가? 이 새로운 왕정시대로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태어난 백성이요 그 일은 그냥 아무 일 없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에 대항한 악의 세력, 사탄의 세력이 반기를 들고 일어났고 그 싸움을 싸워 이겨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 더 이상 끼어들거나 시비를 걸거나 대항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그 뿌리를 없애야만 했다. 공존해야할 하나의 민족이 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언약의 백성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펼쳐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없애야 하는 악의 뿌리였다. 그러기에 그것은 적당히 봐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 차원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무모한 전쟁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런 차원에서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 뛰어들 그 역사를 바라보면서 일해야 했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해야만 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신자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는 반드시 사단의 세력과의 영적인 싸움이 늘 있다. 그 싸움에는 우리가 받은 구원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유혹들과 미혹들이 있다. 사단은 세상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의 것들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일상의 일들과 나라 안팎의 여러 가지 일들로 분주하게 만든다. 현대 사회는 특별히 미디어에 마음을 뺏긴다. 직장과 사업의 일은 우리의 우선 순위를 흐트려 놓는다. 우리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듣고 싶어하는 설교는 위로의 설교를 듣고 싶어한다. 그만큼 삶에 지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위로의 설교를 듣는다고 해서 우리가 힘이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잠시 마음에 위안을 줄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 주지 못하고 힘을 나게 하지도 못한다.
성경은 항상 우리의 실체에 대하여 바르게 말씀한다. 우리는 죄의 종노릇 하는데서 벗어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써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완전한 자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고 영적 싸움 속에 있으므로 깨어 있으라고 하신다. 우리 자신을 신뢰할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말씀만으로만 무기를 삼으라고 한다.
우리는 지쳐 있을 때가 많고, 실제로 허~한 마음의 상태가 심한 현대인들이 되기 쉽기 때문에, 말씀의 깊이로 가는 것보다는 체험과 느낌 위주의 신앙으로 가기가 쉽다. 혹은 그 반대로 명상의 세계 운운하면서 틀어박히는 은둔의 삶을 즐기려고 하는 성향도 발견된다.
현대 기독교는 그런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서 교활하게 판세를 새로 짜가고 있다. 분별력이 떨어지는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추종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가벼이 하지 말자. 우리는 원수 마귀를 대적하는 자들이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신자가 싸워야할 현실이다.
'마귀'의 헬라어 '디아볼로'는 '비방하는 자'라는 의미로 '악한 세상의 영역'이나 '외적인 능력'을 가리킨다(마 13:19; 25:41; 엡 4:27; 6:11; 딤전 3:7). 이러한 '디아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주된 세력이다.
오늘날 이 악한 영의 세력들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일찍이 에베소교회에 말했다.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를 치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 20:27-31)
‘흉악한 이리’라고 했다. 이 ‘흉악한 이리’는 거짓된 교의를 가지고 기독교를 전적으로 부인하면서 믿는 자들을 넘어 뜨리는 거짓 교사들을 지칭한다. 이것은 배교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겪게 될 시대의 성격을 말한다.
2010년도는 더 뉴에이지적인 요소들이 한국교회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신비적인 요소들이 교회 안에으로 들어와서 점점 배교의 길을 가게 될 것이 훤히 보인다. 교회는 온전히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붙들고 오직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워가야만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싸워 가야할 아말렉이다. 그것은 헤렘전쟁이 되어야만 한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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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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