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2009년 12월 27일 주일 가조제일교회 새벽기도회
『[1]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2]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3]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4] 그들이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5]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 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며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날 증거하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그가 증거하시나이다 [6]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며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시니 [7] 그런즉 가만히 섰으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하여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8]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너희 열조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그 두 사람으로 너희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이곳에 거하게 하셨으나 [9] 그들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장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붙이셨더니 그들이 치매 [10]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기므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11]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있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로 안전히 거하게 하셨거늘 [12]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의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실지라도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13] 이제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삼상 12:1-13, 개역)
12장에서 백성들에 의해 거의 반(半)강제적으로 퇴위당하는 지도자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왕을 구한 것이 어떤 점에서 배교 행위인지를 설명한 후에 왕정이 초래할 위험들을 경고하고 있다. 사무엘은 백성들 중 유력자들이 무리하게 요구하여 시작된 인간왕정이 하나님이나 자신의 주도적인 기획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도적 기획 산물이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자신의 퇴임강화를 시작한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라고 말한다(1절), "너희가 내게 한 말", 곧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한 말(삼상 8: 5-6) 때문에 왕을 세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무엘은 이제 바야흐로 이스라엘은 인간왕의 군사적 지도력이 이끄는 나라가 되었음을 강조하고 자신의 지도력이 종료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돌연스럽게 새롭게 등극하는 왕 앞에서 자신이 재임 중에 무슨 비리나 악행을 범했다면 그것을 새 왕 앞에서 말해 보라고 다그친다.
그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이스라엘 앞에 '출입하였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경력상의 무흠성을 부각시킨다 "이스라엘 앞에 출입한다"(왕상 3:7)라는 말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재판하며 언약의 백성으로 인도하였다는 것을 말씀한다. 후일에 솔로몬이 여호와 하나님께 구할 때 이렇게 기도했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7-9)
그것은 언약에 기초한 기도요, 솔로몬은 왕으로서 언약에 신실하게 그 백성을 세워가야할 왕이었기에 해야할 합당한 기도였다. 출입한다는 것은 성(城)을 출입한다는 말인데, 그것은 성 문 앞에서 장로들이 재판을 했었기 때문에 출입한다는 것은 재판을 의미한다. 그가 재판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의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뜻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그 삶이 의롭도록 돕는 차원으로써의 출입한다는 것이다. 그런 소임을 사무엘이 어렸을적부터 지금까지 언약에 신실한 지도자로서 감당해 왔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도 다 그런 차원에서 곧 언약에 신실한 자로 세워져 가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일에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3절의 "내가 여기 있나니"라는 말은 일종의 소환당한 피심문자의 자리에 자신을 놓는 말이다. 사무엘은 야웨와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사울) 앞에서 자신의 비리나 허물을 고발당하거나 지적받기를 공공연히 요청하고 있다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사무엘은 당시의 모든 단위의 지도자들이 범할 수 있는 비리나 악행의 항목들을 열거하며 자신의 결백을 증거한다. 지도자가 평민의 소나 나귀를 빼앗는 행위는 얼마든지 편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악행이었다. 속이거나 압제하는 행위,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는 행위는 모든 단위의 지도자가 범하는 대표적인 악행들이다.
이런 사무엘의 공세적인 요구를 들은 백성들의 대답은 간결하고 정확했다.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4절). 그들은 사무엘의 결백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단순히 나는 청렴결백했다는 것으로 끝나는 말이 아니다. 그의 결백함은 곧 언약에 신실해야할 백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증거로써 나타내는 말이다. 그것이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죄악된 짓을 안할 수 있었다 가 아니라, 언약의 백성이라면 다 이런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다. 마치 여호와께서 나는 이러 이러한 하나님이다 라고 하나님 자신의 인격성을 드러내시듯이, 사무엘이 지금 언약의 한 대상자로서의 삶을 그렇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왜 사무엘이 이런 것을 증언해야 하는가? 지금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간 왕의 세워서 자기 욕심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너희들이 지금 무슨 일에 실패하고 있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이렇게 언약에 신실하게 살아오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것을 너희 입으로 말하듯이 나는 청렴결백했다. 너희들도 다만 언약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일로만 하나님이 너희를 택하시고 이 자리에 있게 하셨지 그 이상의 일로 곧 세상에서 너희 욕심을 더 많이 부리고 그것을 채워가는 것으로 존재케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나의 생애에 이 언약에 신실하게 하심에 부족함이 없으셨듯이, 너희들도 그렇게 언약에 신실하게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에 있어서 그 한 가지 목표로 사는 일에 충성된다면 다른 일로 걱정할 일이 없다. 하나님 앞에 이 새언약 곧 성령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써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알고 그 말씀에 청종하는 자로 사는 일에 신실하게 사는 일로만 살아가야 한다. 그것 이외에 다른 삶의 목적과 마음을 두고 사는 일이 없도록 우리가 늘 깨어 경성해야 할 것이다.
이제 사무엘은 6-11절에서 자신이 등장하기까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사를 간략하게 회고하며 인간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한 것이 어떤 함의가 있는지를 말한다. 사무엘은 먼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출애굽의 하나님임을 강조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기 위해 출애굽 시켰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애굽으로부터의 물리적 탈출이 출애굽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들어가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는 것이다. 출애굽 구원은 이스라엘의 존립 토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적 통치 아래 복종하는 것이 출애굽 구원의 연장이며 이스라엘 자체의 존립을 위한 필수요건이라는 것이다(출 15:17-18).
사무엘은 결국 모세와 아론을 지도자로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강조한다(6절). 그는 여기서 이스라엘 역사의 구원자요 인도자는 모세와 아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것을 선포한다.
따라서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계속 존립하려면 하나님의 왕적 다스림을 받는 공동체로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간 지도자들은 아무리 위대하고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광활한 구원사의 맥락에서 보면 거대한 밤하늘의 유성처럼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모세와 아론도 역사 속에 기억된 인물일 뿐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바로의 채찍과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신 그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온전히 이해하는 지도자들이었다. 항상 하나님 앞에 엎드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중개하고 실천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이었다. 하나님과 독립적으로 민중을 제압하고 제왕의 자리를 차지한 패왕이 아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금 인간 왕을 세워가는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존재론적 의의와 가치를 다시금 깨우친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섬겨할 왕은 인간 왕이 아니라 너희를 존재케 하고 너희를 인도해 가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그 앞에 항복하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인간 왕을 세운다고 해서 그 왕이 곧 너희를 존재케 하고 다스려 나갈 진정한 왕이 아니라 단지 그 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 그 이상으로서는 설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왕의 한계를 미리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인간됨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진화론적인 인간론은 자기해체의 길로 가게 된다. 그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유의미하지 못한 인간은 자기절망에서 벗어나기 못하고 찾고 찾아도 끝이 없는 갈구 속에서 허덕이고 방황하다가 죽고 만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로 창조된 인간, 그 택한 자들은 진화론적 인간이 찾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무한한 의미를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게 되어 그 풍성함 속에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된다. 그러기에 이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세상에 묻혀 세상 것에 만족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언약에 신실하며 그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으로 참만족과 평안 속에서 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로 새언약 안에 거하게 하셨으며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적용시킴으로써 거룩한 새언약의 복을 누리게 하셨다. 이것을 알고 이 길로만 가는 것이 진정한 신자의 삶이다.
'치드코트 아도나이'(sideqoth yahweh)
사무엘은 더욱 강경한 어조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언약에 신실하셨던 하나님이신가를 강조함으로해서 지금 이스라엘이 가고 있는 일이 얼마나 배신과 패역의 길인지를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사무엘은 이어지는 말을 통해서 그 패역의 역사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스데반의 설교를 기억케 한다. 사무엘이나 스데반이나 지금 동일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너희들의 조상들이나 너희들이나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하고 불순종하는 목이 곧은 백성들이냐’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출애굽의 하나님이라는 대전제 아래, 사무엘은 자신이 앞으로 펼칠 구원사 회고 담화에 대해 회중들이 주의 깊게 경청해줄 것을 요구한다(7절). "그런즉 가만히 서 있으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여호와께서 행하신 모든 공의로운 일에 대해 여호와 앞과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논리적인 담론을 전개하려고 한다. "공의로운 일"은 히브리어로 '치드코트 아도나이'(sideqoth yahweh)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퇴어 주시기로 약속한 그 시내 산 언약의 하나님 편의 의무조항을 성취한 내력들을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 활동(saving deeds)을 말한다. 여기서 구원이라는 말은, 외부의 적들로부터의 구원도 포함되지만 이스라엘 내부로부터 이스라엘의 본질을 공격해 오는 불순종과 불신앙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구원 활동도 포함된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구원이 심판의 형태를 띤 때도 있었다는 말이다. 여호수아 7장의 아간의 범죄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이성 1차 정복 전쟁에서 실패하게 하셨다. 이것도 '치드코트 아도나이'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기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한순간도 스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시는 일에 나태하거나 그 언약을 위반하시지 않았다. 사무엘이 펼치려고 하는 '치드코트 아도나이'는 이스라엘의 양심을 세차게 두드리는 영적 경보음처럼 들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7절부터는 약간의 논쟁적 정조(情操)가 느껴진다.
사무엘은 단지 역사적 사실을 진술하거나 보고하려고 하기보다는 백성들을 책망하려는 기세를 보인다. 사무엘은 출애굽사건부터 자신의 당대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행동에 대한 이스라엘의 은혜 망각과 배반의 역사로 정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그 자손이 번성하여 그곳에서 애굽의 박해를 받게 되자 이스라엘 조상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살게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착사는 이내 하나님 망각과 배교의 절정으로 하나님 대신 인간 왕을 요구하는 사건으로 귀착되어 버렸다.
8절은 창세기부터 여호수아서까지의 구원사를 압축한다. 9-11절은 사사기를 압축적으로 요약한다.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은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자 그들을 출애굽 시켜 주신 야웨 하나님을 망각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군 사령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넘기셨다. 이방인들이 그들을 유린하고 공격하도록 내버려두셨다(9절). 그러자 백성이 여호와께 뉘우치며 부르짖었다.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 사사시대 내내 반복되는 구원 호소용 기도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그때 그때 구원해 주셨다. 대표적인 사사가 여룹바알(기드온)과 베단(칠십인역에는 바락), 입다. 사무엘이다(11절). 이 네 명의 사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어 안전하게 살게 하셨다. 이런 하나님의 강권적이고 주도적인 구원을 경험하고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너무나 손쉽게 배반했다는 책망이 곧 뒤따른다.
12절은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 유력자들이 왜 갑자기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약간의 배경을 말한다. 암몬자손의 왕 나하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러 와 위협하자 백성들은 전쟁 전문 지도자인 왕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암몬자손의 왕 나하스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 야웨가 이스라엘의 왕 되심을 불신하고 야웨 하나님을 배척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12절).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늙은 사무엘이 암몬족속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백성들의 인간 왕 요구의 바탕에는 하나님의 왕 되심에 대한 배척과 거부가 있음을 일깨운다. 왕정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배교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북이스라엘 예언자들 특히 호세아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다(호 13:9-11) "네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함으로 폐하였느니라"[11절])
이 현실의 답답함 앞에서 무너지는 언약 신앙을 봐야 한다. 여호와가 왕이시라면서 이런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한 무방비함에 대한 절망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철벽방어를 함으로해서 이런 불가항력적인 위기상황이 닥치는 일을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세력들로서는 안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안정성이란 물론 기득권만이 가질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절박함으로 따지자면 지배층과 부유층의 유동성을 지켜줄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는 이런 급작스런 상황에서는 엉거주춤 거리다가는 다 죽을 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왕을 세워서 병력을 증강하고 그래서 더욱 안정적인 부를 축적해 가고 권력을 강화해가야 할 필요성이 절실했다. 그것이 곧 인간 왕을 세움으로해서 탐심을 감출 수가 없는 저 악랄한 마음을 고발하고 있는 현장이다.
우리도 이 싸움에서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처지와 형편이 달라도 무엇을 붙들려고 하는지 바로 알아서 우리가 정작 붙들어야 할 것이 세상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요 그 언약인 것을 끝까지 지켜나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여호와의 신실하심과 그 자비하심을 바라보며 우리의 약한 신앙의 주소를 알기에 더욱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13절에서 사무엘은 다시금 황정이 철저하게 이스라엘 백성이 주도하여 도입한 제도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13절) 사울 왕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백성이("너희가") 구한 왕이며, 이스라엘 백성("너희가")이 택한 왕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10장의 제비뽑기와 10장에서 사무엘이 사울을 은밀하게 기름부은 사건을 보면 사울의 선택에 여호와의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왕정의 등장은 “너희가”택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이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내몰라라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계획하심에 대한 다른 뜻이 있음을 보여준다. 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렸을까? 우리는 또 우리의 눈 앞에 닥친 다급한 일로 인해서 얼마나 내어놓으라고 했으며, 그 일로 인하여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을까? 신자된 우리 생애에 우리의 만족과 기쁨과 평안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바르게 알아야할 것이요,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사는 일에 실패치 않도록 우리의 눈을 들어 위에 것을 찾는 신앙으로 살아가자.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1]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2]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3]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라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4] 그들이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 [5]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 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며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날 증거하느니라 그들이 가로되 그가 증거하시나이다 [6]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며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시니 [7] 그런즉 가만히 섰으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하여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8]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너희 열조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그 두 사람으로 너희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이곳에 거하게 하셨으나 [9] 그들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장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붙이셨더니 그들이 치매 [10]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기므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11]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있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로 안전히 거하게 하셨거늘 [12]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의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실지라도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13] 이제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삼상 12:1-13, 개역)
12장에서 백성들에 의해 거의 반(半)강제적으로 퇴위당하는 지도자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왕을 구한 것이 어떤 점에서 배교 행위인지를 설명한 후에 왕정이 초래할 위험들을 경고하고 있다. 사무엘은 백성들 중 유력자들이 무리하게 요구하여 시작된 인간왕정이 하나님이나 자신의 주도적인 기획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도적 기획 산물이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자신의 퇴임강화를 시작한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라고 말한다(1절), "너희가 내게 한 말", 곧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한 말(삼상 8: 5-6) 때문에 왕을 세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무엘은 이제 바야흐로 이스라엘은 인간왕의 군사적 지도력이 이끄는 나라가 되었음을 강조하고 자신의 지도력이 종료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돌연스럽게 새롭게 등극하는 왕 앞에서 자신이 재임 중에 무슨 비리나 악행을 범했다면 그것을 새 왕 앞에서 말해 보라고 다그친다.
그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이스라엘 앞에 '출입하였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경력상의 무흠성을 부각시킨다 "이스라엘 앞에 출입한다"(왕상 3:7)라는 말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재판하며 언약의 백성으로 인도하였다는 것을 말씀한다. 후일에 솔로몬이 여호와 하나님께 구할 때 이렇게 기도했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7-9)
그것은 언약에 기초한 기도요, 솔로몬은 왕으로서 언약에 신실하게 그 백성을 세워가야할 왕이었기에 해야할 합당한 기도였다. 출입한다는 것은 성(城)을 출입한다는 말인데, 그것은 성 문 앞에서 장로들이 재판을 했었기 때문에 출입한다는 것은 재판을 의미한다. 그가 재판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의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뜻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그 삶이 의롭도록 돕는 차원으로써의 출입한다는 것이다. 그런 소임을 사무엘이 어렸을적부터 지금까지 언약에 신실한 지도자로서 감당해 왔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도 다 그런 차원에서 곧 언약에 신실한 자로 세워져 가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일에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3절의 "내가 여기 있나니"라는 말은 일종의 소환당한 피심문자의 자리에 자신을 놓는 말이다. 사무엘은 야웨와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사울) 앞에서 자신의 비리나 허물을 고발당하거나 지적받기를 공공연히 요청하고 있다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사무엘은 당시의 모든 단위의 지도자들이 범할 수 있는 비리나 악행의 항목들을 열거하며 자신의 결백을 증거한다. 지도자가 평민의 소나 나귀를 빼앗는 행위는 얼마든지 편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악행이었다. 속이거나 압제하는 행위,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는 행위는 모든 단위의 지도자가 범하는 대표적인 악행들이다.
이런 사무엘의 공세적인 요구를 들은 백성들의 대답은 간결하고 정확했다.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4절). 그들은 사무엘의 결백을 증명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단순히 나는 청렴결백했다는 것으로 끝나는 말이 아니다. 그의 결백함은 곧 언약에 신실해야할 백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증거로써 나타내는 말이다. 그것이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죄악된 짓을 안할 수 있었다 가 아니라, 언약의 백성이라면 다 이런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다. 마치 여호와께서 나는 이러 이러한 하나님이다 라고 하나님 자신의 인격성을 드러내시듯이, 사무엘이 지금 언약의 한 대상자로서의 삶을 그렇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왜 사무엘이 이런 것을 증언해야 하는가? 지금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간 왕의 세워서 자기 욕심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너희들이 지금 무슨 일에 실패하고 있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이렇게 언약에 신실하게 살아오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것을 너희 입으로 말하듯이 나는 청렴결백했다. 너희들도 다만 언약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일로만 하나님이 너희를 택하시고 이 자리에 있게 하셨지 그 이상의 일로 곧 세상에서 너희 욕심을 더 많이 부리고 그것을 채워가는 것으로 존재케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나의 생애에 이 언약에 신실하게 하심에 부족함이 없으셨듯이, 너희들도 그렇게 언약에 신실하게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에 있어서 그 한 가지 목표로 사는 일에 충성된다면 다른 일로 걱정할 일이 없다. 하나님 앞에 이 새언약 곧 성령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써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알고 그 말씀에 청종하는 자로 사는 일에 신실하게 사는 일로만 살아가야 한다. 그것 이외에 다른 삶의 목적과 마음을 두고 사는 일이 없도록 우리가 늘 깨어 경성해야 할 것이다.
이제 사무엘은 6-11절에서 자신이 등장하기까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사를 간략하게 회고하며 인간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한 것이 어떤 함의가 있는지를 말한다. 사무엘은 먼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출애굽의 하나님임을 강조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기 위해 출애굽 시켰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애굽으로부터의 물리적 탈출이 출애굽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들어가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는 것이다. 출애굽 구원은 이스라엘의 존립 토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적 통치 아래 복종하는 것이 출애굽 구원의 연장이며 이스라엘 자체의 존립을 위한 필수요건이라는 것이다(출 15:17-18).
사무엘은 결국 모세와 아론을 지도자로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강조한다(6절). 그는 여기서 이스라엘 역사의 구원자요 인도자는 모세와 아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것을 선포한다.
따라서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계속 존립하려면 하나님의 왕적 다스림을 받는 공동체로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인간 지도자들은 아무리 위대하고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광활한 구원사의 맥락에서 보면 거대한 밤하늘의 유성처럼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모세와 아론도 역사 속에 기억된 인물일 뿐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바로의 채찍과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신 그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온전히 이해하는 지도자들이었다. 항상 하나님 앞에 엎드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중개하고 실천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이었다. 하나님과 독립적으로 민중을 제압하고 제왕의 자리를 차지한 패왕이 아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금 인간 왕을 세워가는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존재론적 의의와 가치를 다시금 깨우친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섬겨할 왕은 인간 왕이 아니라 너희를 존재케 하고 너희를 인도해 가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그 앞에 항복하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인간 왕을 세운다고 해서 그 왕이 곧 너희를 존재케 하고 다스려 나갈 진정한 왕이 아니라 단지 그 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 그 이상으로서는 설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왕의 한계를 미리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인간됨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진화론적인 인간론은 자기해체의 길로 가게 된다. 그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유의미하지 못한 인간은 자기절망에서 벗어나기 못하고 찾고 찾아도 끝이 없는 갈구 속에서 허덕이고 방황하다가 죽고 만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로 창조된 인간, 그 택한 자들은 진화론적 인간이 찾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무한한 의미를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게 되어 그 풍성함 속에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된다. 그러기에 이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세상에 묻혀 세상 것에 만족을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언약에 신실하며 그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으로 참만족과 평안 속에서 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로 새언약 안에 거하게 하셨으며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적용시킴으로써 거룩한 새언약의 복을 누리게 하셨다. 이것을 알고 이 길로만 가는 것이 진정한 신자의 삶이다.
'치드코트 아도나이'(sideqoth yahweh)
사무엘은 더욱 강경한 어조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언약에 신실하셨던 하나님이신가를 강조함으로해서 지금 이스라엘이 가고 있는 일이 얼마나 배신과 패역의 길인지를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사무엘은 이어지는 말을 통해서 그 패역의 역사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스데반의 설교를 기억케 한다. 사무엘이나 스데반이나 지금 동일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너희들의 조상들이나 너희들이나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하고 불순종하는 목이 곧은 백성들이냐’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출애굽의 하나님이라는 대전제 아래, 사무엘은 자신이 앞으로 펼칠 구원사 회고 담화에 대해 회중들이 주의 깊게 경청해줄 것을 요구한다(7절). "그런즉 가만히 서 있으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여호와께서 행하신 모든 공의로운 일에 대해 여호와 앞과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논리적인 담론을 전개하려고 한다. "공의로운 일"은 히브리어로 '치드코트 아도나이'(sideqoth yahweh)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퇴어 주시기로 약속한 그 시내 산 언약의 하나님 편의 의무조항을 성취한 내력들을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 활동(saving deeds)을 말한다. 여기서 구원이라는 말은, 외부의 적들로부터의 구원도 포함되지만 이스라엘 내부로부터 이스라엘의 본질을 공격해 오는 불순종과 불신앙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구원 활동도 포함된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구원이 심판의 형태를 띤 때도 있었다는 말이다. 여호수아 7장의 아간의 범죄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이성 1차 정복 전쟁에서 실패하게 하셨다. 이것도 '치드코트 아도나이'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기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한순간도 스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시는 일에 나태하거나 그 언약을 위반하시지 않았다. 사무엘이 펼치려고 하는 '치드코트 아도나이'는 이스라엘의 양심을 세차게 두드리는 영적 경보음처럼 들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7절부터는 약간의 논쟁적 정조(情操)가 느껴진다.
사무엘은 단지 역사적 사실을 진술하거나 보고하려고 하기보다는 백성들을 책망하려는 기세를 보인다. 사무엘은 출애굽사건부터 자신의 당대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행동에 대한 이스라엘의 은혜 망각과 배반의 역사로 정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그 자손이 번성하여 그곳에서 애굽의 박해를 받게 되자 이스라엘 조상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살게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착사는 이내 하나님 망각과 배교의 절정으로 하나님 대신 인간 왕을 요구하는 사건으로 귀착되어 버렸다.
8절은 창세기부터 여호수아서까지의 구원사를 압축한다. 9-11절은 사사기를 압축적으로 요약한다.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은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자 그들을 출애굽 시켜 주신 야웨 하나님을 망각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군 사령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넘기셨다. 이방인들이 그들을 유린하고 공격하도록 내버려두셨다(9절). 그러자 백성이 여호와께 뉘우치며 부르짖었다.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 사사시대 내내 반복되는 구원 호소용 기도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그때 그때 구원해 주셨다. 대표적인 사사가 여룹바알(기드온)과 베단(칠십인역에는 바락), 입다. 사무엘이다(11절). 이 네 명의 사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 내어 안전하게 살게 하셨다. 이런 하나님의 강권적이고 주도적인 구원을 경험하고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너무나 손쉽게 배반했다는 책망이 곧 뒤따른다.
12절은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 유력자들이 왜 갑자기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약간의 배경을 말한다. 암몬자손의 왕 나하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러 와 위협하자 백성들은 전쟁 전문 지도자인 왕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암몬자손의 왕 나하스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 야웨가 이스라엘의 왕 되심을 불신하고 야웨 하나님을 배척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12절).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늙은 사무엘이 암몬족속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백성들의 인간 왕 요구의 바탕에는 하나님의 왕 되심에 대한 배척과 거부가 있음을 일깨운다. 왕정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배교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사상은 북이스라엘 예언자들 특히 호세아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다(호 13:9-11) "네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함으로 폐하였느니라"[11절])
이 현실의 답답함 앞에서 무너지는 언약 신앙을 봐야 한다. 여호와가 왕이시라면서 이런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한 무방비함에 대한 절망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철벽방어를 함으로해서 이런 불가항력적인 위기상황이 닥치는 일을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세력들로서는 안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안정성이란 물론 기득권만이 가질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절박함으로 따지자면 지배층과 부유층의 유동성을 지켜줄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는 이런 급작스런 상황에서는 엉거주춤 거리다가는 다 죽을 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왕을 세워서 병력을 증강하고 그래서 더욱 안정적인 부를 축적해 가고 권력을 강화해가야 할 필요성이 절실했다. 그것이 곧 인간 왕을 세움으로해서 탐심을 감출 수가 없는 저 악랄한 마음을 고발하고 있는 현장이다.
우리도 이 싸움에서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처지와 형편이 달라도 무엇을 붙들려고 하는지 바로 알아서 우리가 정작 붙들어야 할 것이 세상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요 그 언약인 것을 끝까지 지켜나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닌 여호와의 신실하심과 그 자비하심을 바라보며 우리의 약한 신앙의 주소를 알기에 더욱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13절에서 사무엘은 다시금 황정이 철저하게 이스라엘 백성이 주도하여 도입한 제도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13절) 사울 왕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백성이("너희가") 구한 왕이며, 이스라엘 백성("너희가")이 택한 왕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10장의 제비뽑기와 10장에서 사무엘이 사울을 은밀하게 기름부은 사건을 보면 사울의 선택에 여호와의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왕정의 등장은 “너희가”택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이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내몰라라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계획하심에 대한 다른 뜻이 있음을 보여준다. 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렸을까? 우리는 또 우리의 눈 앞에 닥친 다급한 일로 인해서 얼마나 내어놓으라고 했으며, 그 일로 인하여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을까? 신자된 우리 생애에 우리의 만족과 기쁨과 평안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바르게 알아야할 것이요,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사는 일에 실패치 않도록 우리의 눈을 들어 위에 것을 찾는 신앙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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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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