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 가조제일교회 새벽기도회
『[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를 대하여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3] 야베스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유예를 주어 우리로 이스라엘 온 지경에 사자를 보내게 하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4] 이에 사자가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고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가로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로 고하니라 [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7]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 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같이 나온지라 [8]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을 계수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이더라 [9] 무리가 온 사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 라 사자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기뻐하 니라 [10] 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가로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소견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11] 이튿날에 사울이 백성을 삼대에 나누고 새벽에 적진 중에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12]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13] 사울이 가로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14]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삼상 11:1-15, 개역)
11장은 사울이 암몬사람(창 19:38; 삿 3:13)을 쳐서 승리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말씀하고 있다. 암몬사람 나하스가 요단강 동쪽지역 므낫세 반지파의 영토인 길르앗 야베스를 침략하자 모든 야베스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봉신 조약을 맺자고 제의했다(1절).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암몬족속 나하스는 이 제의를 거절하고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굴욕적인 제의를 던진다(2절).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이에 야베스 장로들이 나하스에게 이레 동안의 말미를 달라고 요청했다(3절). 이레 동안에 야베스 사람을 구할 구원자를 찾지 못한다면 그 굴욕적인 봉신 조약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이런 위기 상황을 알리는 전령들이 이스라엘 지파들의 성읍들로 빠르게 답지했다.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도 야베스 사람들이 처한 위기를 알리는 전령이 도착하여 백성에게 그 소식을 전하자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었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요단 동쪽 지파들의 위급한 형편에 마음 아파하며 울었다(4절). 그들은 절망적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절망을 깨닫지 않고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지금의 이 상황이 우연이 아님을 직시해야 했다. 그러나 아직도 저들은 이런 일들이 여호와께로부터 말미암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닥친 위기 가운데서 경악하며 부르짖었다. 그들 속에는 이 위기를 해결해 나갈 답이 없었다. 그들을 구원할 지도자가 없었다. 그러기에 처절한 부르짖음 외에는 나올 것이 없었다.
오늘날 세상과 현대교회는 이 처절한 부르짖음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자신들의 위기를 포장하여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자기 체면을 건다. 양심에 솔직한 지식인들은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나가는 사람들의 표징이 있다. 그 표징이라 무엇인가? 그들은 신비주의를 택했다. 그들은 순수사고를 포기했다. 지식과 사고의 절망을 고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들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명상을 통해 죽어가는 자아의 몸부림치는 비참함을 유희화 하려고 한다.
오늘날 교회가 관상기도와 명상을 심지어 요가를 도입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상실한채 세상을 따라가고 있다. 세상은 답이 없기 때문에 그렇지만 교회는 길을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가능한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심으로 만들어내는 은혜다. 그 생명수를 저버리고 세상의 도를 쫓아가는 것은 같이 죽자는 것 밖에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아픔과 위기와 절망 속에서도 택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시며 그 속에서 생명을 주시고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허락하신다. 그것이 은혜다.
그런 절망의 부르짖음 속에 있을 그 때에,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울부짖고 있는 백성들을 만났다. "무슨 일로 우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사울에게 야베스 사람의 위급한 상황을 알린 전령의 말을 전했다(5절), 사울이 이 말을 듣는 순간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6).
사울은 자신 안에 거룩한 분노가 크게 진작되는 것을 느꼈다. 이 현상은 사사 시대의 사사들에게 일어난 전형적 경험이었다. 사울이 "야웨의 전쟁"을 지도할 군사 지도자로 변형되는 경험이었다. 삼손이나 입다, 기드온 등에게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강림하자, 사울은 갑자기 엄청난 용기와 담력의 사람이 되었다.
사울은 즉시 일어나 자신이 몰고 가던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에 그것을 들려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스라엘 민병대를 소집하는 포고령을 발했다.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같이 하리라"(7절). 다소 원시적이고 잔혹스러운 방식이기는 했으나 사울은 처음으로 이스라엘 지파의 위기를 스스로 떠맡는 지도자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그가 각 뜬 소고기를 지파들에게 보내자 야웨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했고 백성들은 일제히 사울의 소집명령에 순종했다 사울이 베섹(Bezek)에서 회집한 백성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11지파에서 나온 백성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사람이 삼만 명이었다(8절). 모여 있던 무리가 야베스의 전령들에게 '내일 해가 더울 때에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 족속의 위협으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을 전하라고 말하며 돌려보냈다.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자 야베스 사람들이 기뻐했다(9절).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 족속에게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생각에 좋을 대로우리에게 다 행하라"고 말하며 그들을 안심시켜 두었다(10절).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세부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 가운데로 진격하여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사람들을 유린했다. 새벽의 급습이었다. 새벽의 기습 공격을 받은 암몬족속은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한 자가 없을 정도였다(11절). 사울의 첫 전쟁은 혁혁한 성과를 올리며 그의 지도자적인 성가를 드높였다. 사울은 실제적으로 왕위를 획득할 수 있는 치적을 보였다.
☞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과정을 겪게 하시는가? 이왕 사울을 세울 것이라면 더 기적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셔서 사울을 지도자로 세우시면 안되는가? 굳이 나하스가 쳐들어와야 하고 그래서 백성들이 죽음을 앞두고 부르짖어야 하고 끝내 싸워야 하는가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치적을 세움으로써 왕으로써의 자격을 갖추게 하시기 위함이었을까?
이런 일련의 일들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여전히 주가 되신다는 것, 여호와와 이스라엘은 언약의 관계이며 그 속에서 풍성함을 누려야 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것을 모르는 저들의 죄악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저들의 죄악이라는 것은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상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보호자가 되시는 여호와가 계시는 것을 잊어 버렸다는 것이다. 저들이 인간의 왕을 구할 때 이미 그런 자리로 깊이 빠져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위기 가운데서도 여전히 저들의 보호자가 되시어 지키시는 진정한 왕이심을 선포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개입 곧 성령의 역사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사울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 낸 승리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에게 가르치려는 것은 너희들의 힘으로 이 전쟁을 이기고 이 나라를 지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희들에게는 이방인들과 비교될 수 없는 존재다. 이방인들의 왕과 비교할 수 없는 이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너희의 왕이 되어 지켜나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키신다.
신자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서 우리가 고백하고 기억해야 할 일은 우리가 그의 백성이라는 사실이며 이 위기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억시키려고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여호와 외에 우리가 의지할 자가 없으며 끝까지 주를 신뢰하며 살아가야할 분이라는 것을 더욱 기억해야 한다. 언제라도 우리가 돌아봐서 알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신 적이 없으시며 우리 편을 드시고 책임져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감사하면서 주를 더욱 신뢰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12-15절은 사울이 길갈에서 왕으로 옹립되는 과정을 말씀한다. 백성들 일부는 사무엘에게 사울의 왕위 등극을 반대한 자들을 색출해 달라고 압박하며 달려들었다. 이 장면은 사무엘 주변에 사울의 왕위 획득을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들은 사울의 왕 됨을 반대하는 자들을 죽여 버리겠다는 극단적 적의를 드러내었다(12절).
오히려 사울이 그들을 만류하고 반대하고 나선다. 이제 점점 더 사울의 목소리가 커져 간다. '이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하며 그들을 말린다(13절). 사울은 이때 처음으로 야웨 하나님을 주어로 삼는 문장을 사용한다. 자신의 암몬에 대한 승리가 야웨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임을 고백한 것이다.
사무엘과의 접촉을 통해 그리고 자신을 강습한 하나님의 신을 통해 사울은 이제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해석할 줄 알게 되었다(13절).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숙고한 사무엘은 백성들을 길갈로 데리고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제의한다(14절).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길갈은 이스라엘 12지파의 통일성과 일치를 증거하는 요단 강에서 취득하여 세워 둔 증거의 돌들이 서 있는 성지였으며, 이스라엘 초기 가나안 정복 전쟁의 사령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출애굽한 이스라엘 지파들의 계승자로서 세우면서, 나라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언약 갱신하려고 했다. 사무엘의 전격적인 제안에 따라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야웨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거기서 야웨 앞에 화목제를 드렸다.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했다(15절).
저들이 화목제를 드렸다는 것은 단순히 제사가 아니라 여호와와 맺은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그 언약의 당사자로서 여호와께 돌아가겠다는 여호와만이 우리의 주가 되시고 왕이 되십니다 하는 것을 다시 고백케 하는 것이다.
"나라를 새롭게 하자"는 사무엘의 제의는 단지 왕정을 새롭게 도입하자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더 확인케 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나라"라고 번역된 단어 ‘함머루카’는 "그 왕국"이다. 출애굽기 15:17-18에 언급되는 여호와의 통치, 다스림을 지칭한다. 출애굽 구원 이래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왕국이 아닌 적은 한시도 없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야웨 이머로크 러올람 와에드, ]"(출 15:17-18).
이것이 신약에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그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라도 통치 안하신 적이 없으시다. 그의 통치를 구하라는 말은 그의 통치에 순종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면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말이다. 그 일로는 나아가지 않고 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면서 자기 욕심을 채울려고 하니 언약으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지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인간 왕을 구하면서 자기 욕심을 채울려고 하는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상기시키며, 여전히 여호와가 저들의 왕이시며, 나라와 인생에 닥치는 모든 일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기를 말씀하신다. 이것만이 우리의 신앙임을 기억하고 언약에 신실한 백성으로 살아가자.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를 대하여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3] 야베스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유예를 주어 우리로 이스라엘 온 지경에 사자를 보내게 하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4] 이에 사자가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고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가로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로 고하니라 [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7]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 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같이 나온지라 [8]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을 계수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이더라 [9] 무리가 온 사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 라 사자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기뻐하 니라 [10] 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가로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소견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11] 이튿날에 사울이 백성을 삼대에 나누고 새벽에 적진 중에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12]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13] 사울이 가로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14]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 사울로 왕을 삼고 거기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삼상 11:1-15, 개역)
11장은 사울이 암몬사람(창 19:38; 삿 3:13)을 쳐서 승리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말씀하고 있다. 암몬사람 나하스가 요단강 동쪽지역 므낫세 반지파의 영토인 길르앗 야베스를 침략하자 모든 야베스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봉신 조약을 맺자고 제의했다(1절).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암몬족속 나하스는 이 제의를 거절하고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굴욕적인 제의를 던진다(2절).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이에 야베스 장로들이 나하스에게 이레 동안의 말미를 달라고 요청했다(3절). 이레 동안에 야베스 사람을 구할 구원자를 찾지 못한다면 그 굴욕적인 봉신 조약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이런 위기 상황을 알리는 전령들이 이스라엘 지파들의 성읍들로 빠르게 답지했다.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도 야베스 사람들이 처한 위기를 알리는 전령이 도착하여 백성에게 그 소식을 전하자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었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요단 동쪽 지파들의 위급한 형편에 마음 아파하며 울었다(4절). 그들은 절망적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절망을 깨닫지 않고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지금의 이 상황이 우연이 아님을 직시해야 했다. 그러나 아직도 저들은 이런 일들이 여호와께로부터 말미암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닥친 위기 가운데서 경악하며 부르짖었다. 그들 속에는 이 위기를 해결해 나갈 답이 없었다. 그들을 구원할 지도자가 없었다. 그러기에 처절한 부르짖음 외에는 나올 것이 없었다.
오늘날 세상과 현대교회는 이 처절한 부르짖음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자신들의 위기를 포장하여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자기 체면을 건다. 양심에 솔직한 지식인들은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나가는 사람들의 표징이 있다. 그 표징이라 무엇인가? 그들은 신비주의를 택했다. 그들은 순수사고를 포기했다. 지식과 사고의 절망을 고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들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명상을 통해 죽어가는 자아의 몸부림치는 비참함을 유희화 하려고 한다.
오늘날 교회가 관상기도와 명상을 심지어 요가를 도입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상실한채 세상을 따라가고 있다. 세상은 답이 없기 때문에 그렇지만 교회는 길을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가능한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심으로 만들어내는 은혜다. 그 생명수를 저버리고 세상의 도를 쫓아가는 것은 같이 죽자는 것 밖에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아픔과 위기와 절망 속에서도 택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시며 그 속에서 생명을 주시고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허락하신다. 그것이 은혜다.
그런 절망의 부르짖음 속에 있을 그 때에,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울부짖고 있는 백성들을 만났다. "무슨 일로 우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사울에게 야베스 사람의 위급한 상황을 알린 전령의 말을 전했다(5절), 사울이 이 말을 듣는 순간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6).
사울은 자신 안에 거룩한 분노가 크게 진작되는 것을 느꼈다. 이 현상은 사사 시대의 사사들에게 일어난 전형적 경험이었다. 사울이 "야웨의 전쟁"을 지도할 군사 지도자로 변형되는 경험이었다. 삼손이나 입다, 기드온 등에게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강림하자, 사울은 갑자기 엄청난 용기와 담력의 사람이 되었다.
사울은 즉시 일어나 자신이 몰고 가던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에 그것을 들려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스라엘 민병대를 소집하는 포고령을 발했다.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같이 하리라"(7절). 다소 원시적이고 잔혹스러운 방식이기는 했으나 사울은 처음으로 이스라엘 지파의 위기를 스스로 떠맡는 지도자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그가 각 뜬 소고기를 지파들에게 보내자 야웨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했고 백성들은 일제히 사울의 소집명령에 순종했다 사울이 베섹(Bezek)에서 회집한 백성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11지파에서 나온 백성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사람이 삼만 명이었다(8절). 모여 있던 무리가 야베스의 전령들에게 '내일 해가 더울 때에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 족속의 위협으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을 전하라고 말하며 돌려보냈다.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자 야베스 사람들이 기뻐했다(9절). 야베스 사람들이 암몬 족속에게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생각에 좋을 대로우리에게 다 행하라"고 말하며 그들을 안심시켜 두었다(10절).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세부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 가운데로 진격하여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사람들을 유린했다. 새벽의 급습이었다. 새벽의 기습 공격을 받은 암몬족속은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한 자가 없을 정도였다(11절). 사울의 첫 전쟁은 혁혁한 성과를 올리며 그의 지도자적인 성가를 드높였다. 사울은 실제적으로 왕위를 획득할 수 있는 치적을 보였다.
☞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과정을 겪게 하시는가? 이왕 사울을 세울 것이라면 더 기적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셔서 사울을 지도자로 세우시면 안되는가? 굳이 나하스가 쳐들어와야 하고 그래서 백성들이 죽음을 앞두고 부르짖어야 하고 끝내 싸워야 하는가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치적을 세움으로써 왕으로써의 자격을 갖추게 하시기 위함이었을까?
이런 일련의 일들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여전히 주가 되신다는 것, 여호와와 이스라엘은 언약의 관계이며 그 속에서 풍성함을 누려야 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것을 모르는 저들의 죄악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저들의 죄악이라는 것은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상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보호자가 되시는 여호와가 계시는 것을 잊어 버렸다는 것이다. 저들이 인간의 왕을 구할 때 이미 그런 자리로 깊이 빠져 있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위기 가운데서도 여전히 저들의 보호자가 되시어 지키시는 진정한 왕이심을 선포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개입 곧 성령의 역사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사울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 낸 승리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에게 가르치려는 것은 너희들의 힘으로 이 전쟁을 이기고 이 나라를 지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희들에게는 이방인들과 비교될 수 없는 존재다. 이방인들의 왕과 비교할 수 없는 이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너희의 왕이 되어 지켜나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키신다.
신자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서 우리가 고백하고 기억해야 할 일은 우리가 그의 백성이라는 사실이며 이 위기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억시키려고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여호와 외에 우리가 의지할 자가 없으며 끝까지 주를 신뢰하며 살아가야할 분이라는 것을 더욱 기억해야 한다. 언제라도 우리가 돌아봐서 알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외면하신 적이 없으시며 우리 편을 드시고 책임져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감사하면서 주를 더욱 신뢰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12-15절은 사울이 길갈에서 왕으로 옹립되는 과정을 말씀한다. 백성들 일부는 사무엘에게 사울의 왕위 등극을 반대한 자들을 색출해 달라고 압박하며 달려들었다. 이 장면은 사무엘 주변에 사울의 왕위 획득을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들은 사울의 왕 됨을 반대하는 자들을 죽여 버리겠다는 극단적 적의를 드러내었다(12절).
오히려 사울이 그들을 만류하고 반대하고 나선다. 이제 점점 더 사울의 목소리가 커져 간다. '이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하며 그들을 말린다(13절). 사울은 이때 처음으로 야웨 하나님을 주어로 삼는 문장을 사용한다. 자신의 암몬에 대한 승리가 야웨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임을 고백한 것이다.
사무엘과의 접촉을 통해 그리고 자신을 강습한 하나님의 신을 통해 사울은 이제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해석할 줄 알게 되었다(13절).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숙고한 사무엘은 백성들을 길갈로 데리고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제의한다(14절).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길갈은 이스라엘 12지파의 통일성과 일치를 증거하는 요단 강에서 취득하여 세워 둔 증거의 돌들이 서 있는 성지였으며, 이스라엘 초기 가나안 정복 전쟁의 사령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출애굽한 이스라엘 지파들의 계승자로서 세우면서, 나라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언약 갱신하려고 했다. 사무엘의 전격적인 제안에 따라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야웨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거기서 야웨 앞에 화목제를 드렸다.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했다(15절).
저들이 화목제를 드렸다는 것은 단순히 제사가 아니라 여호와와 맺은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그 언약의 당사자로서 여호와께 돌아가겠다는 여호와만이 우리의 주가 되시고 왕이 되십니다 하는 것을 다시 고백케 하는 것이다.
"나라를 새롭게 하자"는 사무엘의 제의는 단지 왕정을 새롭게 도입하자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더 확인케 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나라"라고 번역된 단어 ‘함머루카’는 "그 왕국"이다. 출애굽기 15:17-18에 언급되는 여호와의 통치, 다스림을 지칭한다. 출애굽 구원 이래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왕국이 아닌 적은 한시도 없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야웨 이머로크 러올람 와에드, ]"(출 15:17-18).
이것이 신약에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그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라도 통치 안하신 적이 없으시다. 그의 통치를 구하라는 말은 그의 통치에 순종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면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말이다. 그 일로는 나아가지 않고 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면서 자기 욕심을 채울려고 하니 언약으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지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인간 왕을 구하면서 자기 욕심을 채울려고 하는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상기시키며, 여전히 여호와가 저들의 왕이시며, 나라와 인생에 닥치는 모든 일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기를 말씀하신다. 이것만이 우리의 신앙임을 기억하고 언약에 신실한 백성으로 살아가자.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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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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