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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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강단&말씀모음

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2009년 12월 3일 목요일 가조제일교회 새벽기도회 『[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더라 [3]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7]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1) 하나님께서 택하여 이끌어오신 이 가나안에서 그의 백성들의 삶과 그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신다. 저들의 삶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있더라는 것이고, 그 하나님께 항복하며 엎드리게 하시어 여호와의 뜻을 이루어가게 하시더라는 말씀이다. 무엇보다 본문에서 강조되어 나타나는 것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3절, 5절, 6절, 9절, 10절, 11절에서 여러 번이나 언급되어지는 것은 이 일이 지금 언약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한다. 우리는 대개 이 언약이라는 말에 익숙치 않아서 말씀을 이해하는데 너무 현실적인 면에서 접근할려고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향하여 가지시는 언약을 그 크신 열심과 사랑과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이루어 가시고 계심을 말씀한다. 1, 2절에서 장소와 사람들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그것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며 역사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다. 거기에 반응하는 그 택한 백성의 자세는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은혜를 구하는 기도의 자세다. 한나는 “여호와께” 기도했다. 이것은 그녀가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 언약을 알고 그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했다. 이런 일들은 종종 오해를 낳고 있는데, 무작정 떼를 쓰고 기도를 하면 된다거나, 서원기도가 응답이 빠르더라 라는 엉터리를 양산하게 되는 수가 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향하여 가지시는 열심과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이 본문이 말하는 시대가 여전히 사사시대이다. 저들이 각자의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던 시대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말씀에만 복종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저들은 이미 우상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들은 3절에 나오는대로 매년 실로에 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아니었다. 그 증거가 본문에 나오는대로 첫 번째로 두 아내를 두었다는데 있다. 두 번째는 브닌나로 대표되는 가진 자가 힘쓰는 세상이었다. 종이 주인을 학대하는 상황이다. 율법이 헤이해지고 죄악이 만연된 가정이요 공동체가 되었음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본문의 말씀이다. 창세기 아브라함으로 돌아가보면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유익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 약속에 대해 신실하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이스라엘을 낳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사라는 그 종 하갈로부터 멸시를 받았다.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니, 하갈이 임신하였다. 하갈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자기의 여주인을 깔보았다.』(창 16:4, 새번역) 하갈과 사라의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그 언약대로 이루어 주실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약속을 이루어갈려고 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하신대로 이루어 주셨다. 그 말씀 그대로 언약의 자손인 이삭을 허락하시고 그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펼쳐 가셨다. 이것을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한다.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23]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25]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갈 4:21-31, 개역) 이것이 비유라는 말씀이다. 두 언약을 말한다. 약속을 따라 난 자요, 성령을 따라 난 자다. 우리의 구원이 율법을 따라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언약을 따라 성령을 따라 났다는 말씀이다. 율법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이 비유를 들어서 말씀한다. 그것이 그들의 삶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났는가? 엘가나는 육체를 따라 갔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따라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 나갈려고 했다. 그 방법이 아브라함이 하는 소위와 비슷했다. 한나는 언약에 기초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해 주실 것을 기도했다.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로 기도했다. 남편의 신실치 못한 모습 때문에 브닌나로부터 괴로움을 당하고 살아가는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도 끝까지 여호와를 신뢰하는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 있더라는 것을 증거한다. 이것은 단지 아들을 낳고 못낳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사사시대를 살아가는 저들의 모습이 언약의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기들이 생각하는대로 행하고 사는 언약을 저버린 삶을 여실히 드러내는 말씀이다. 입으로는 여호와를 말하며 제사를 드린다고 하나, 실제로 저들의 삶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언약에서 떠난 삶이었다. 그러나 한나는 그 속에서 언약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언약의 백성으로 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신자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 가며 그것을 자랑하며 그들이 신실한 언약의 백성들을 괴롭게 하며 세상에서 힘을 쓰는 모습으로 살아갈지라도, 주의 택한 자들은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며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며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한 자로 살아가겠다는 신앙의 고백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은 새언약의 백성들은 세상 가운데 환란을 당할지라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 신자된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바램과 자랑은 이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구한 도성을 바라보고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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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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