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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유혹(창 3:1-4)

뱀의 유혹 (창 3:1-4 설교)  설교  2010/07/05 15:02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jgbyun119/140110099265
2010. 6. 13. 주일 오전 필그림교회 설교 (변종길 목사)
 
뱀의 유혹 [본문] 창세기 3:1-4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참 이상합니다. 이상한 정도가 아니라 뭔가 세상이 뒤집혔다는 생각이 듭니다. 끔찍한 범죄들이 많이 일어나고, 그런 끔찍한 죄를 짓고서도 양심의 가책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세계가 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암스테르담 자유대학 교수(Ruard Ganzevoort)가 “아담과 에버르트(Adam en Evert))”라는 책을 펴내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동성애자에 대해 너무 비판하지 말고 서로 대화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동성애자라고 교회에서 쫓아내지 말고 함께 교회 생활 하면서 서로 이해하자고 했습니다. 왜 이런 글을 썼을까요? 이 책의 저자는 원래 목사였는데, 5년 전에 이혼하고서 웬 남자와 같이 살면서 동성애 하다가 들켜서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는 자유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요즈음 왜 이렇게 동성연애에 대한 말이 많고, 동성연애를 옹호하는 주장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책과 라디오, TV와 신문에서도 동성연애를 옹호하는 것이 많이 나옵니다. 교회 안에도 동성애자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네덜란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유럽 전체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어 가고 있습니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점점 그렇게 되어 갑니다. 세상이 뒤집혀 가고 있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세상의 역사 진행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가 배후에서 조종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고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대규모반역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창조를 하시고 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창 1:4, 10, 12, 18, 21, 25). 그리고 창세기 1장 끝에서는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31절).  

그런데 이것이 언제 깨어졌을까요?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나서 깨어졌습니다. 그러면 죄는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창세기 3장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고, 그래서 이 세상에 불행이 오고 사망이 오게 되었는가를 말해 줍니다.
 
먼저 성경은 ‘뱀’에 대해 말합니다. 1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고 말합니다. 뱀은 생각만 해도 징그럽지요? 기다란 고무호스 같은 것만 봐도 소름이 끼칩니다. 왠지 기분이 나쁘고 등골이 오싹합니다. 여러분, 제가 어릴 때에는 산에 뱀이 많았습니다. 소를 먹이러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산에 올라가다 보면, 길에 뱀이 쓰윽 지나갑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잽싸게 돌을 집어 들어 던집니다. 뱀은 보면 왠지 꼭 죽여야 속이 시원합니다. 용케 맞혀서 잡으면, 죽은 뱀을 나무 위에 걸어 놓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말라서 하얗게 됩니다. 하여튼 뱀은 징그럽고 보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뱀은 마귀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 12:9에 보면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합니다. 큰 용 곧 옛 뱀은 마귀 또는 사탄이라고 하는 존재로서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뱀은 상징이 아니라 진짜 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1절)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 나오는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 하나이며 실제 뱀입니다. 여기서 ‘들짐승’이란 말은 히브리어로는 ‘동물’ 또는 ‘생물’이란 뜻으로 넓은 의미의 동물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고 합니다. ‘간교하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좋은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고(잠 12:16, 23), 나쁜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욥 5:12, 15:5). 좋은 의미로는 ‘지혜롭다, 슬기롭다’는 뜻이고, 나쁜 의미로는 ‘간교하다, 간사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원래는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뱀을 지으셨을 때, 처음에는 좋게 지으셨습니다. 지혜롭게, 똑똑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를 나쁜 목적으로 쓰면  간사한 것이 됩니다. 여기의 뱀이 그렇습니다. 뱀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나쁜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사람을 꾀어서 죄 짓게 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보면, 여기의 이 뱀은 그냥 뱀이 아니라 그 안에 마귀가 들어가서 역사하고 있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뱀 안에 마귀가 들어가서 사람을 꾀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여자를 꾀었습니까? 뱀이 먼저 여자에게 접근해서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1절)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의 유혹은 먼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단은 꼭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당신은 666의 비밀을 아십니까?”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서 접근합니다. 이것이 곧 마귀의 수법입니다. 여기 에덴동산에 나타난 뱀도 여자 하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질문을 보면 참 교묘합니다. 간사한 질문입니다. 여자의 마음에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참으로’, ‘진짜로’ 이렇게 물으면, 그만 자신이 없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은 죽으면 참으로 천국에 갈 자신이 있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글쎄요 ...” 하면서 머뭇거립니다. 그러면 벌써 시험에 반쯤 든 것입니다.  

 또 마귀는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질문했습니다. ‘모든’이라고 물으면 정답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에서 시험 문제 받아 보면, 지문 가운데 ‘모든’ ‘항상’ ‘절대로’란 말이 들어 있는 지문은 틀린 경우 많습니다. 마귀는 이러한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러자 하와는 순진하게 대답했습니다. 유혹인 줄도 모르고 대답했습니다. 마귀가 유혹해 올 때는 아예 대답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사도 하지 말고 문을 닫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역에서 나오는데, 왠 사람이 다가와서 “기에 대해 아십니까?” “기 수련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아예 대답을 하지 말고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뭐라고 대답을 하면 말려들기 쉽습니다. 순진하게 “나 TV에서 봤는데 뭐 ... 아닙니까?”라고 대답하면, 유혹에 말려들기 쉽습니다.

여기 에덴동산의 하와도 그렇습니다. 뱀의 질문에 순진하게 대답했습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2,3절) 

 여기에 보면,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없는 것을 추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지지도 말라.”,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2:17에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와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만지지도 말라”를 추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뭔가를 더 추가한 것은 문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와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 심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 곧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금지 명령에 대해 “왜 그럴까?” “왜 먹지 말하고 하신 걸까?” 뭔가 피해의식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지지도 말라.”는 말은 어떤 주석가에 의하면 “부드러운 분노”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묘해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습니다. “오토바이 타지 마!”라고 하면, 왠지 오토바이를 더 타고 싶습니다. “술 마시지 말라!”고 하면, “왜 마시면 안 돼?” “술이 뭐길래 마시면 안 돼?” “도대체 무엇이 들었길래 마시면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몰래 살짝 한 모금 마시고 싶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지금 하와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하와) 괜히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먹으면 안 된다는 거야?” 그렇지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셨으니 먹을 수는 없고 ... 뭔가 피해의식, 부드러운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하나 하와의 대답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많이 약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절 끝에 보면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어조가 상당히 약해졌습니다. (※ 히브리 원문에 의하면 “너희가 (혹) 죽지 않도록”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개역한글판의 번역은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히브리 원문의 의미를 어느 정도 살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창세기 2:17에 보면, 하나님이 원래 하신 말씀은 “정녕 죽으리라.”입니다. 원문에는 히브리어 강조법으로서 반드시 죽는다, 꼭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고 상당히 약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없이, 확실성이 없이 말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와는 뱀의 유혹, 마귀의 유혹에 이미 많이 넘어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이단들은 교묘하게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정말로 구원받았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그러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얼버무립니다. “글쎄요” “어쩌면 구원받은 것 같기도 하고 ... 모르죠. 죽어봐야 알죠.” 그러면 이단이 딱 낚아챕니다. “그래 가지고는 구원 못 받습니다. 제가 확실히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좋은 곳이 있는데 성경공부 하러 오세요.” 그래서 가면, 그만 이단에 빠지고 맙니다. 처음에는 반갑다고 환영합니다. 친절하게 사랑을 베풀고 따뜻하게 맞이합니다. 그래서 빠지면, 나중에는 영혼과 몸과 재산을 다 빼앗기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단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단이 말을 걸어오면 아예 대답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요이 10절). 에덴동산의 하와가 뱀과 대화를 한 게 잘못입니다. 뱀의 질문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 하시더냐?” 그러자 하와는 자신 없이, 엉거주춤하게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그러자 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잽싸게 받아서 말합니다. “뱀이 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4절) 단호하게 부정했습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뱀의 화법이 참 간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할 때는 아주 단호하게, 확실하게 말해야 사람이 속아 넘어갑니다. 뇌물죄로 구속된 사람이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는데, 판사가 묻습니다. “당신은 몇 월 몇 일 누구에게서 돈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피고는 “결코 안 받았습니다.” “하늘에 맹세코 안 받았습니다.” “내가 돈 받았으면 손에 장을 찌지겠습니다.” 또는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합니다.” 등등, 아주 강경하게 부정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지나고 나면, 돈 받았는데 거짓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거짓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자신만만하게 말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만 속아 넘어가고 맙니다.

여기 뱀이 말하는 게 그렇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뱀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정반대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이 뱀의 목표 곧 마귀의 목표입니다. 이단들도 보면, 말을 잘 하고 논리를 잘 펴는데,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합니다. 성경 말씀과는 정반대로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죄 사함의 비밀을 아십니까?”라고 질문합니다. 말을 아주 잘합니다.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아주 솔깃합니다. 그래서 교회 오래 다닌 사람들도 많이 넘어갑니다. 죄 사함, 거듭남 강조하니 처음에는 얼마나 은혜스러운지 ....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주기도를 부인하고 맙니다. “우리는 다 죄 사함 받았는데, 왜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기도문에서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주기도를 부인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정면 부인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마귀의 술법입니다. 

우리는 죄 용서 받았습니다. 이 말은 법적으로 형벌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천사가 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 받은 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용서받았지만,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실제로는 죄가 있기 때문에 죄 사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편으로 죄 용서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죄 사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오늘날도 교묘한 말과 이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희한하게 풉니다. 제가 볼 때는 말도 안 되는데 사람들이 성경을 워낙 모르니까, 특히 요한계시록은 통 모르니까 이단들이 푸는 이상한 해석에 말려듭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 이단의 교주 자신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자”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린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전체 성경을 다 풀어주는 새 목자”라고 주장합니다. “이 새 목자에게로 와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에게 와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교묘한 말과 성경 해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마귀의 유혹, 뱀의 유혹의 정체와 술법을 간파하고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한 번 말씀하셨으면 확실한 것이지 거기에 어떤 토를 달거나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됩니다.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으면 “정녕 죽는 것”이지, “죽을까 하노라”라든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 후로 하와와 아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한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와 아담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뱀의 말대로 안 죽었으면, 하와와 아담은 지금도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고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었습니다.

뱀의 말은 거짓말임이 드러났습니다.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를 죽게 만든 살인적 거짓말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죽게 만들었으니,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뱀은, 마귀는 그 후로 한 번도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의 양심도 없는 존재입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는커녕, 마귀는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거짓말로 사람을 미혹하고, 죄에 빠지게 만들고, 그래서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한 번 “죽는다”고 하셨으면 죽는 것입니다. 이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덤덤하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실제 사실로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달콤한 말이나 교묘한 이론이 우리를 유혹할지라도 그런 것에 흔들리지 말고, 그런 교묘한 말에는 대답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나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수수하지만,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2010. 6. 13. 필그림교회 주일 오전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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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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