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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의 아들들 (삼상 8:1-3)

사무엘의 아들들 (삼상 8:1-3 설교)  설교  2010/07/05 14:56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jgbyun119/140110098920
2010. 5. 2. 어린이주일 오전. 필그림교회 (변종길 목사)
 
사무엘의 아들들 [본문] 사무엘상 8:1-3
  
서 론
오늘은 어린이 주일로 지킵니다. 5월 5일 어린이날은 원래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돌보자, 사랑하자, 잘 기르자 하는 의미에서 생겨났습니다. 왜냐하면 옛날에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무시당하고 홀대당했기 때문입니다. 유교 문화에서 어린이는 못한 자, 모자라는 자,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어른이 돼야 대접을 받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인사를 잘 해야 하고, 꼭 존댓말을 써야 하며, 어른이 말씀하는데 끼어들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제 시대에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 제정 운동을 벌여서 어린이날이 제정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문화가 바뀌어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 줍니다. 너도 나도 자녀들에게 잘 해주려고 경쟁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어린이들이 왕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줍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 주는 것이 잘 해 주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잘 해 주려고 하는 것이 도리어 어린이들을 잘못되게 하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키우는 것이 정말로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인가? 어떤 것이 정말로 자녀에게 유익이 되고 복이 되는가? 그래서 오늘은 어린이 주일을 맞아 자녀 교육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이스라엘의 사사 사무엘
오늘 읽은 본문에 보면, 사무엘의 아들들이 나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유명한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인 동시에 사사였습니다. 사사(士師)는 원래 재판하는 자를 말합니다. 주된 업무는 재판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재판했습니다.
 
여러분, 재판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 분쟁을 해결하는 최후 수단입니다. 대개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안 되면 상담을 하고 조정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최후로 법원에 가서 재판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사법부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부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판결이 마음에 안 들어도 존중해야 합니다. 사법부를 대놓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물론 사법부의 판결 중에도 문제 있는 것들이 있을 수 있고, 잘못된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 있는 판사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사법부를 존중해야 합니다. 판사 개개인을 존경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법부라는 기구와 사법제도 시스템을 우리가 인정하고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법제도를 부정하면 더 이상 이 사회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등과 분쟁 조정자가 없어지면 이 사회는 혼란스러워집니다. 존속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법부를 존중해야 합니다.
 
물론 문제 있는 것은 학자들과 전문가들, 국회의원들, 연구단체들이 연구해서 시스템을 고쳐야 합니다. 미국처럼 배심원 제도를 확대하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대법원 판사 임명권입니다. 기다렸다가 후임 판사 임명할 때 신중하게 잘 임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서서히 사법부의 문제를 개선해 나가야지, 지금처럼 국회의원들이 사법부를 무시하고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옳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하면 결국 사법부 판사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그래서 다음에 재판할 때 또 불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많아지게 됩니다.
 
어쨌든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재판하면서 잘 다스렸습니다. 사실상 왕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II. 사무엘의 성장과 결혼
이 사무엘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아내의 이름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누구의 딸인지도 나와 있지도 않습니다. 몇 명의 자녀를 두었는지, 딸이 있었는지도 기록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단지 두 아들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요엘인데,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아비야인데, “여호와는 아버지시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신앙적인 이름입니다. 아버지 사무엘이 믿음으로 이런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돌로 지은 성전은 아직 없었고 장막으로 지은 성막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한나가 기도해서 낳은 아들입니다. 한나는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하나님께 서원기도해서 아들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아들을 주시면 그를 평생동안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고 서원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그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떼자 성전에 데리고 와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대제사장 밑에서 수종 드는 일을 했습니다. 성전의 문을 열고 닫고, 저녁에 등불 켜고 아침에 등불 끄는 일을 했습니다. 또 성전을 청소하고 심부름 하는 일 등을 했습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늘 기도하는 생활이 몸에 배었습니다.
 
그런 사무엘도 나이가 드니까 결혼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늘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은 결혼도 안 할 거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무엘처럼 경건한 사람도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가톨릭의 신부들이 결혼하지 않는 것은 잘못임을 알 수 있지요. 오늘날 신부들보다 몇 배나 더 경건한 사무엘도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신부들이 뭐라고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냅니까? 이것은 잘못입니다.
 
III. 아버지와 같지 않은 두 아들
그런데 이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와 같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나이 들어 늙자 자기의 두 아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삼았습니다. 자기 혼자서 재판과 국정을 다 돌보기가 힘드니까 두 아들을 사사로, 즉 재판자로 세워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했던 것입니다. 2절에 보니까 그들을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게 했다고 합니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남쪽에 있습니다. 브엘세바 남쪽은 광야입니다. 물이 없고 황량한 들판뿐입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몹시 뜨겁습니다. 사무엘은 두 아들에게 브엘세바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재판하고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남쪽 사람들은 브엘세바로 가서 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들이 재판을 하는데,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 뇌물을 가져오면 그 사람을 옳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래서 판결이 굽어졌습니다. 잘못된 판결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백성의 원성이 높아졌습니다. “도대체 이런 판결이 어디 있나?” “돈 받아먹고 엉뚱한 판결 내리네.” “사무엘의 아들들은 돈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야. 아버지는 정직하고 의로운데, 그 아들들은 왜 이 모양이냐?  아버지와는 너무 달라.” 이처럼 백성의 원성이 날로 날로 높아갔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늙은 사무엘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늙었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을 따르지 않고 판결을 굽게 하니, 우리에게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서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5절) “왕을 세워 달라.”는 이 말은 사무엘이 들을 때 매우 불쾌했습니다. 결국 자기 사무엘을 부정하고, 자기 아들들을 부정하는 말입니다. “아니, 내가 시퍼렇게 살아 있고, 내 아들들이 있는데 왕을 세워 달라니 나와 내 아들들을 쫓아내겠다는 건가? 여태까지 내가 정직과 공의로 너희를 다스리고 블레셋의 침략에서 막아내고, 위기에서 건져 주고 하루도 쉬지 않고 여태까지 기도해 주었건만, 늙었다고 나를 버리는 건가? 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 고작 이거란 말인가?” 사무엘은 몹시 불쾌하고 서운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으나 하나님이 달래었습니다. “백성의 말을 들어 주라. 이 백성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림이니라.” 그래서 사무엘은 왕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IV. 왜 두 아들은 아버지와 달랐을까?
그러면 왜 사무엘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따르지 않고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을까요? 왜 그래서 결국 사사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을까요?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사무엘)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시종으로서 성전에서 등불을 켜고 끄고, 청소하고 심부름하고 자랐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밖에 모릅니다. 제사드리는 일을 돕고,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고, 그것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삼상 12:23). 참 대단합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않겠다. 그리고 사무엘은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러자 백성들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 것도 취한 것이 없나이다.”(삼상 12:3,4) 사무엘은 참으로 청렴결백하게 살았습니다. 부정부패가 일절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 이런 아버지의 신앙을 물려받지 않았습니다. 신앙이란 유전인자를 통해 유전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후천적으로, 자기 스스로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나면서부터 성전에서 나서 자랐습니다. 그러니 성전에서 늘 제사 드리고 기도하는 게 이력이 나고 싫증이 났을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바깥에서 뛰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너무 청렴하게, 가난하게 사니까 싫었을 것입니다. “역시 사람은 재물이 좀 있어야 돼. 다른 사람들처럼 좋은 집에서 살고 소와 양떼도 많이 거느리고 밭도 많고 종들도 많이 거느리고” 등등, 물질에 대한 욕심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어려서부터 “나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살 거야. 부모와는 달리 물질도 많고, 풍족하게 살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란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사가 되자 엄청난 유혹이 찾아왔습니다. 재판하는데 사람들이 몰래 찾아와서 잘 봐달라면서 금덩어리를 주고 갑니다. 은을 자루에 담아서 갖다 줍니다. 처음에는 “이런 걸 받으면 안 되지, 안 받아야지” 하는데, 자꾸만 사람들이 가져오고, 금덩어리를 몰래 두고 가고, 자기 없을 때 부인에게 주고 가고 등등 ... 결국 금과 은을 한 번 받고, 두 번 받고 하다가,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빨리 안 가지고 오나!” 기다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까짓것 뭐, 금 은이 많이 있으니 좋네.” 그래서 그들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했습니다.
  
V. 자녀 교육의 실패?
그러면, 사무엘은 자녀 교육에 실패한 것일까요?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가적으로는 큰 일을 개인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았지만, 자녀 교육에는 실패한 것일까요? 사무엘의 기도는 응답 되지 않은 것일까요? 평생 동안 날마다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었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만 읽어보면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 이릅니다. 

역대상 6장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하는 자들을 세웠는데, 그 명단이 죽 나와 있습니다(33절 이하). 일종의 찬양대원들입니다. 성전 찬양대입니다. 그 우두머리는 헤만이었습니다. 오른편에는 아삽이 있고, 왼편에는 에단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부찬양대장들입니다. 헤만은 찬양대장이었던 거지요. 

 이 헤만이 누구냐? 역대상 6:33은 헤만은 요엘의 아들이고,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입니다. 곧 사무엘의 손자입니다. 사무엘의 장남 요엘의 아들인데, 성전에서 날마다 찬송하는 일을 했습니다. 역대상 15:17 이하에도 나오는데, 헤만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라고 합니다. 놋제금은 놋으로 만든 제금 곧 심벌즈(cymbals)를 의미합니다. 역대상 16:41,42, 역대하 5:12에도 헤만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처럼 사무엘의 손자, 요엘의 아들 헤만은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았습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자로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다 하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의 아들들은 비록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장남 요엘 같은 경우는 확실히는 모르지만, 아마 나중에 회개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이것은 알 수 없음). 그래서 그의 아들 헤만은 믿음이 좋고 신실한 자, 찬양을 잘하는 자, 또 악기를 잘 다루는 자였으며, 또 리더십이 있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에 의해 발탁되어 평생 동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도의 자녀들은 망하지 않습니다. 자식 때가 아니면, 손자 때에 가서 빛을 보게 된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VI. 모세의 아들들
그러면 여러분, 그러나 모세의 아들들은 어떠했을까요? 모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첫째 아들은 ‘게르솜’인데, “거기서(광야에서) 나그네 되었다”는 뜻입니다. 둘째 아들은 ‘엘리에셀’인데, “나의 하나님은 도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은 특별한 게 없었다고 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태어나서 베두인 족들 사이에서 양이나 치고 자랐습니다. 주위는 온통 광야입니다. 황량한 들판과 산들뿐입니다. 나귀와 양들을 치면서 유목생활을 하니 발전된 문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학교도 없고 도시도 없고 그냥 야생마처럼 자랐습니다. 

모세가 이 두 아들을 좀 가르치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장막 안에서 아들들에게 글자도 가르치고 수학도 좀 가르치고, 공부를 좀 시키지 왜 내버려 두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공부해 봐야 뭐 합니까? 수학을 가르치고 기하학을 가르쳐 봐야 쓸데가 없습니다. 양을 키우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두 아들은 그냥 광야에서 들나귀처럼 자랐습니다. 그저 양이나 키우고 젖이나 짜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면, 모세는 자녀교육에 실패했을까요? 모세는 개인적으로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고 이스라엘 국가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지도자이지만, 자녀 교육은 실패했을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대상 23장에 보면 모세의 두 아들의 자손들이 나옵니다. 장남 게르솜의 아들들 중에서 스브엘은 족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도자가 된 거지요. 차남 엘리에셀의 아들은 하나뿐인데, 르하뱌이며 족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르하뱌의 아들은 심히 많았다고 합니다(대상 23:15-17). 이것을 이걸 보면 모세의 자손들은 다 잘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아들은 특별한 게 없었지만, 손자들 세대에 가서 족장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엘리에셀에게서 난 아들은 하나였지만, 그 밑에 난 아들들은 엄청 많았다고 합니다. 즉, 모세의 증손들은 엄청 많았습니다. 복 받았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이란 당장 나타날 수도 있지만, 손자들 세대에 가서, 아니면 증손들 세대에 가서 크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당장 하나님의 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들, 기도로 자식을 키운 사람들은 결국 그 자손들이 잘 되고 복 받는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에 계신 제 지도교수님은 현재 74세이신데, 자녀가 일곱입니다. 이제 다 자라서 결혼을  다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손자들이 몇 명이냐? 스무 명이 넘습니다. 지금쯤은 아마 서른 명을 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십여년 전에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시는데, 무슨 한 학급 같았습니다. 졸업여행 사진 찍은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 받는 복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근시안적으로 당장 눈에 보이는 복만 쫓아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학교 성적 올리는 데 급급해서, 거기에 너무 매달리는 부모 많습니다. 주일도 안 지키고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공부에만 신경 쓰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자녀들의 신앙교육은 소홀히 하고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길게 보면 신앙교육이 자녀들의 장래를 결정합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너희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합니다(엡 6:4). “주의 교양과 훈계”, 이것은 “주의 교육과 훈계”를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라는 뜻입니다. 잠언 1:7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고 신앙으로 교육하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세상 교육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자녀를 잘 되게 하고 복되게 하는 것은 그들을 신앙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믿음으로 살도록 지도하면, 그 인생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잘 되고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이 번창하게 두각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하여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또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는 자녀들이 되도록 기도하고 힘쓰는 부모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2010. 5. 2. 어린이주일 오전예배 필그림교회 설교)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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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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