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디 있느냐? (창 3:6-10)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6-10 설교) 설교 2010/07/05 10:55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jgbyun119/140110085373
2010. 7. 4. 주일 오전 필그림교회 설교 (변종길 목사)
네가 어디 있느냐?[본문] 창세기 3:6-10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참 신기한 과일입니다. 먹으면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되지만 생명을 잃게 되는 과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것은 실제 과일이 아니고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입니다. 이것은 실제 과일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에서 열리는 실과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각종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선악과는 실과의 한 종류입니다.
하와가 그 실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다”고 했습니다(6절). “먹음직하다”는 것은 맛있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보암직하다”는 것은 보기에 매력적이다, 유혹적이라는 뜻입니다. 보면 볼수록 사람을 유혹하는 실과입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것은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줄 만큼 탐스러워 보였다는 뜻입니다. 뱀이 말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뱀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그만 그 선악과를 따서 먹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걸 나 혼자 먹을 수 있나? 당신도 먹어 보시오. 참 맛있고 좋아요.” 그래서 아담은 그 선악과를 받아서 먹었습니다. 아내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른 것입니다. 아내가 주는 대로 먹었습니다. 아내 말을 너무 잘 들은 게 문제였습니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첫 번째 변화는 그들의 눈이 밝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7절) 여기서 “눈이 밝았다”는 것은 시력이 좋아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는 전에는 시력이 나빴다가 시력이 좋아진 게 아닙니다. “눈이 밝았다”는 것은, 원문에 의하면 “눈이 열렸다”, “눈이 떠졌다”는 뜻입니다. 곧, 못 보던 것을 보게 되었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기 전에도 벗었습니다. 알몸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자연스러웠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는 자기들이 벗었다는 사실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옷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옷’이란 단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원래 지은 상태는 벗은 상태였습니다. 이 말도 사실은 맞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한 번도 입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자연 상태(naked)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합니다(창 1:31). 그래서 동물들을 보면 다 벗은 상태입니다. 소나 양, 염소, 돼지를 보면, 다 벗은 상태입니다. 자연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들은 벗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뭔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 아담과 하와가 서로를 쳐다보니 “벗었다”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가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선악과를 먹은 것 자체가 죄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이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으니,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를 짓고 나니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탐욕이 생겼습니다. 죄의 욕구가 일어났습니다. 상대방을 바라볼 때 전과는 달랐습니다. 전에는 순수하게, 자연스럽게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바라보니 마음속에 죄의 욕구가 일어났습니다. 나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안 되겠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을 따서 엮어서 치마를 하였습니다. 인류 최초의 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보면, 처음에는 남자도 치마를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지가 아니라 치마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남자도 치마를 입으면 안 되나? 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스코틀랜드 근위대 병사들은 치마를 입고 악기를 연주합니다. 그러나 아담이 처음에 치마를 해 입은 것은 좀 다릅니다. 처음에는 바지란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저 급한 김에 나뭇잎을 엮어서 앞을 좀 가린 것입니다. ‘앞치마(apron)’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뱀의 말은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뱀의 말은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눈이 밝은 것은 사실인데,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죄의 욕구가 일어났습니다. 죄의식과 수치심만 생겼습니다. 하와와 아담은 그제서야 속았다 하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8절에 보면,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날이 서늘할 때”라는 것은 의역입니다. 영어 성경들이 대개 이렇게 번역합니다만(KJV, NKJV, RSV, NIV, ESV 등), 히브리어 원문에는 “낮의 바람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낮에 바람이 불 때”라는 뜻입니다. 1637년에 나온 화란 국역(Statenvertaling)이 정확하게 이렇게 번역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개역개정판이 비슷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침이나 저녁에 바람이 불 때를 의미합니다.
아침이나 저녁에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동산에 거니신다”는 것은 인간적인 표현입니다. 곧 우리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실제로 동산에 거니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습이 없습니다. 형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는 ‘천사(天使)’를 통해 나타나시거나, 아니면 ‘사자(使者)’를 통해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그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저녁에 바람이 불 때, 그 바람에 하나님의 음성이 실려 왔을 것입니다.
그 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숨었다니 이상하지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면, 반가워하고 기뻐해야 정상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오신다.”고 해야 정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면, “네,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전에는 없던 행동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죄를 지어서 그렇습니다. 먹지 말라 한 선악과를 따 먹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죄를 짓고 나면 두려워집니다. 죄를 짓고 나면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사람을 피하게 되고 숨게 됩니다. 엄마가 잠깐 집을 비우고 시장에 갔다 오는데, 집에 아들이나 딸이 혼자 있는 경우 있습니다. 엄마가 시장에 갔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안에서 후다닥 숨는 소리가 들립니다. 왜 그럴까요? 엄마 없는 사이에 몰래 컴퓨터를 켜서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아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두려워서 숨습니다. 잠언 28:1에 보면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고 했습니다. 악인 곧 죄 지은 사람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사자(獅子) 같이 담대합니다. 엄마 아빠가 없어도 스스로 숙제하고 공부한 학생은 부모님이 오시면 반갑게 맞이합니다. 담대합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 몰래 게임하거나 텔레비전 본 사람은 문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움찔합니다.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리고는 후다닥 자기 방에 뛰어 들어갑니다. 죄를 지어서 그렇습니다. 이처럼 죄를 지은 사람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나니, 하나님이 찾아오시니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동산의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숨바꼭질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의 나무들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래도 모르는 척 물으셨습니다. 아담 앞에 가서 태연하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10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왜 두려워했습니까?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때 나뭇잎으로 치마를 했는데도 여전히 “벗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벗었다’, ‘알몸이다’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옷을 입었지만 벗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막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지은 결과 하나님의 보호가 없어졌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죄가 들어오니 치마를 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여전히 죄는 남아서 그들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으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마음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속에 불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피하여 숨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사람들은 어디에 숨을까요? 어떤 사람은 텔레비전에 숨습니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켜놓고 지냅니다.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온갖 드라마와 코메디를 보면서 시간을 떼웁니다. 주일이 되어 하나님이 부르셔도 오지 않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이에 숨습니다.
어떤 사람은 산이나 바다에 숨습니다. 주말이 되면 차를 타고 놀러 갑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지하게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을 피하고 노는 것으로 시간을 떼웁니다. 네덜란드에서는 회사 퇴직하고 나면 하루 종일 낚시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시간을 보냅니다. 이런 것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스포츠도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 것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월드컵’ 한다고 온 세계가 난리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찍 떨어져버려서 열기가 좀 식었습니다만, 그저께 저녁에는 네덜란드와 브라질 경기가 있었습니다. 전반전을 보니 브라질이 너무 잘 해서 보나마다 브라질이 승리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졸려서 잤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웬걸 네덜란드가 2대 1로 역전승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네덜란드 신문을 찾아보니 온통 축구 이야기였습니다. “역사적 승리(historische zege)”라고 말했습니다.
스포츠라는 게 물론 재미있고 국제 친선 도모도 되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 되는 등 좋은 점도 있지만, 오늘날 시대는 너무 지나칩니다. 거기에 너무 자기 자신을 몰입하고 열광하고 있습니다. 기뻐 날뛰고 또 울고불고 야단입니다. 이게 다 무엇일까요? 따지고 보면, 결국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피해 숨는 것입니다. ‘스포츠’라는 나무 속에 숨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피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불러도 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인터넷도 그렇고, 게임도 그렇고, 오락과 세상 쾌락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것들을 가지고 그 속에 숨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으십니다. 찾아와서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야, 네가 어디 있느냐?”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기쁨으로 응답하고, 하나님께 나와서 그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착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고 사랑하시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고 하나님을 피하여 숨지 말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2010. 7. 4. 주일 오전예배 필그림교회 설교)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자료출처 http://blog.naver.com/jgbyun119/140110085373
2010. 7. 4. 주일 오전 필그림교회 설교 (변종길 목사)
네가 어디 있느냐?[본문] 창세기 3:6-10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참 신기한 과일입니다. 먹으면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되지만 생명을 잃게 되는 과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것은 실제 과일이 아니고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입니다. 이것은 실제 과일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에서 열리는 실과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각종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선악과는 실과의 한 종류입니다.
하와가 그 실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다”고 했습니다(6절). “먹음직하다”는 것은 맛있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보암직하다”는 것은 보기에 매력적이다, 유혹적이라는 뜻입니다. 보면 볼수록 사람을 유혹하는 실과입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것은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줄 만큼 탐스러워 보였다는 뜻입니다. 뱀이 말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뱀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그만 그 선악과를 따서 먹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걸 나 혼자 먹을 수 있나? 당신도 먹어 보시오. 참 맛있고 좋아요.” 그래서 아담은 그 선악과를 받아서 먹었습니다. 아내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른 것입니다. 아내가 주는 대로 먹었습니다. 아내 말을 너무 잘 들은 게 문제였습니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첫 번째 변화는 그들의 눈이 밝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7절) 여기서 “눈이 밝았다”는 것은 시력이 좋아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는 전에는 시력이 나빴다가 시력이 좋아진 게 아닙니다. “눈이 밝았다”는 것은, 원문에 의하면 “눈이 열렸다”, “눈이 떠졌다”는 뜻입니다. 곧, 못 보던 것을 보게 되었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기 전에도 벗었습니다. 알몸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자연스러웠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는 자기들이 벗었다는 사실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옷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옷’이란 단어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원래 지은 상태는 벗은 상태였습니다. 이 말도 사실은 맞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한 번도 입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자연 상태(naked)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합니다(창 1:31). 그래서 동물들을 보면 다 벗은 상태입니다. 소나 양, 염소, 돼지를 보면, 다 벗은 상태입니다. 자연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들은 벗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뭔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 아담과 하와가 서로를 쳐다보니 “벗었다”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가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선악과를 먹은 것 자체가 죄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이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으니,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를 짓고 나니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탐욕이 생겼습니다. 죄의 욕구가 일어났습니다. 상대방을 바라볼 때 전과는 달랐습니다. 전에는 순수하게, 자연스럽게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바라보니 마음속에 죄의 욕구가 일어났습니다. 나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안 되겠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을 따서 엮어서 치마를 하였습니다. 인류 최초의 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보면, 처음에는 남자도 치마를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지가 아니라 치마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남자도 치마를 입으면 안 되나? 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스코틀랜드 근위대 병사들은 치마를 입고 악기를 연주합니다. 그러나 아담이 처음에 치마를 해 입은 것은 좀 다릅니다. 처음에는 바지란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저 급한 김에 나뭇잎을 엮어서 앞을 좀 가린 것입니다. ‘앞치마(apron)’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뱀의 말은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뱀의 말은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눈이 밝은 것은 사실인데,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죄의 욕구가 일어났습니다. 죄의식과 수치심만 생겼습니다. 하와와 아담은 그제서야 속았다 하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8절에 보면,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날이 서늘할 때”라는 것은 의역입니다. 영어 성경들이 대개 이렇게 번역합니다만(KJV, NKJV, RSV, NIV, ESV 등), 히브리어 원문에는 “낮의 바람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낮에 바람이 불 때”라는 뜻입니다. 1637년에 나온 화란 국역(Statenvertaling)이 정확하게 이렇게 번역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개역개정판이 비슷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침이나 저녁에 바람이 불 때를 의미합니다.
아침이나 저녁에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동산에 거니신다”는 것은 인간적인 표현입니다. 곧 우리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실제로 동산에 거니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습이 없습니다. 형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는 ‘천사(天使)’를 통해 나타나시거나, 아니면 ‘사자(使者)’를 통해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그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저녁에 바람이 불 때, 그 바람에 하나님의 음성이 실려 왔을 것입니다.
그 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숨었다니 이상하지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면, 반가워하고 기뻐해야 정상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오신다.”고 해야 정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면, “네,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전에는 없던 행동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죄를 지어서 그렇습니다. 먹지 말라 한 선악과를 따 먹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죄를 짓고 나면 두려워집니다. 죄를 짓고 나면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사람을 피하게 되고 숨게 됩니다. 엄마가 잠깐 집을 비우고 시장에 갔다 오는데, 집에 아들이나 딸이 혼자 있는 경우 있습니다. 엄마가 시장에 갔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안에서 후다닥 숨는 소리가 들립니다. 왜 그럴까요? 엄마 없는 사이에 몰래 컴퓨터를 켜서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아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두려워서 숨습니다. 잠언 28:1에 보면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고 했습니다. 악인 곧 죄 지은 사람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사자(獅子) 같이 담대합니다. 엄마 아빠가 없어도 스스로 숙제하고 공부한 학생은 부모님이 오시면 반갑게 맞이합니다. 담대합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 몰래 게임하거나 텔레비전 본 사람은 문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움찔합니다.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리고는 후다닥 자기 방에 뛰어 들어갑니다. 죄를 지어서 그렇습니다. 이처럼 죄를 지은 사람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나니, 하나님이 찾아오시니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동산의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숨바꼭질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의 나무들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래도 모르는 척 물으셨습니다. 아담 앞에 가서 태연하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10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왜 두려워했습니까?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때 나뭇잎으로 치마를 했는데도 여전히 “벗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벗었다’, ‘알몸이다’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옷을 입었지만 벗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막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지은 결과 하나님의 보호가 없어졌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죄가 들어오니 치마를 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여전히 죄는 남아서 그들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으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마음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속에 불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피하여 숨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사람들은 어디에 숨을까요? 어떤 사람은 텔레비전에 숨습니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켜놓고 지냅니다.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온갖 드라마와 코메디를 보면서 시간을 떼웁니다. 주일이 되어 하나님이 부르셔도 오지 않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이에 숨습니다.
어떤 사람은 산이나 바다에 숨습니다. 주말이 되면 차를 타고 놀러 갑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지하게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을 피하고 노는 것으로 시간을 떼웁니다. 네덜란드에서는 회사 퇴직하고 나면 하루 종일 낚시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시간을 보냅니다. 이런 것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스포츠도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 것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월드컵’ 한다고 온 세계가 난리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찍 떨어져버려서 열기가 좀 식었습니다만, 그저께 저녁에는 네덜란드와 브라질 경기가 있었습니다. 전반전을 보니 브라질이 너무 잘 해서 보나마다 브라질이 승리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졸려서 잤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웬걸 네덜란드가 2대 1로 역전승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네덜란드 신문을 찾아보니 온통 축구 이야기였습니다. “역사적 승리(historische zege)”라고 말했습니다.
스포츠라는 게 물론 재미있고 국제 친선 도모도 되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 되는 등 좋은 점도 있지만, 오늘날 시대는 너무 지나칩니다. 거기에 너무 자기 자신을 몰입하고 열광하고 있습니다. 기뻐 날뛰고 또 울고불고 야단입니다. 이게 다 무엇일까요? 따지고 보면, 결국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피해 숨는 것입니다. ‘스포츠’라는 나무 속에 숨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피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불러도 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인터넷도 그렇고, 게임도 그렇고, 오락과 세상 쾌락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것들을 가지고 그 속에 숨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으십니다. 찾아와서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야, 네가 어디 있느냐?”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기쁨으로 응답하고, 하나님께 나와서 그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착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고 사랑하시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고 하나님을 피하여 숨지 말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2010. 7. 4. 주일 오전예배 필그림교회 설교)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http://www.esesang91.com
http://twtkr.com/rptministries
http://www.facebook.com/RPTministries
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https://www.esesang91.com/b/preach/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