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부흥 - 제22장 부흥을 위한 이사야의 기도
로이드 존스 부흥 - 제22장 부흥을 위한 이사야의 기도
자료출처 http://cafe.daum.net/theblessingchurch/2D3K/23
제22장 부흥을 위한 이사야의 기도
이사야 63:7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우리가 이사야 63장의 처음 여섯 구절을 상고하면서 이사야가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크게 용기를 얻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 이사야는 기도를 드립니다. ··· 그 기도는 63:7부터 64장 끝까지 계속됩니다. ··· 제 관심은 여러분 앞에 선지자의 기도를 제시하고 그것에 대하여 단순하게 논평하며, 그 기도의 주도적인 원리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 성경에 기록된 기도들은 언제나 체계와 조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분명한 질서와 순서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들이 그처럼 효과 있고 효력을 발생한 것이 드러나 있으니, 그 기도들을 연구하고 그 기도들을 본받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성품을 상기함
“지금 우리 앞에 침체기에 교회가 드려야 할 위대하고 전형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흥을 위한 위대한 기도요,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자기 백성들을 하감하사 다시 한 번 찾아와 달라고 간청하는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사야 선지자의 방식을 따라서 그가 했던 첫 번째 일은 스스로 하나님의 성품을 상기하는 것이었음을 주목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께도 상기시켜 드립니다. 그것이 바로 7절의 중요한 핵심입니다. ··· 그것이 바로 참된 기도의 비밀입니다.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과 그 성품을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그는 거듭해서 여러 자비하심들을 되풀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하나님 속에 이러한 성품들이 흘러넘치는 것을 상기합니다. ··· 이사야가 기도하고 있는 처지에서 특별히 그렇게 한 것은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처한 곤경은 절망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버림받은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이 투덜대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자기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에 관해서 완전히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 저와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가 개인적인 기도이든지 교회를 위해서 드리는 기도이든지 간에 이러한 방식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어떤 의심을 마음속에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기도하는 것이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 매우 괴로운 처지와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하여 대적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 선지자처럼 시작하십시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를 말하리라.’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 145:9).’ ··· 우리의 개인적인 조건이나 현재의 보편적인 교회 상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심이나 긍휼이나 인애하심 중 그 어느 것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를 관조함(교회사로 돌아가 연구함)
1) 성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관조함
“하나님의 성품을 스스로 상기한 다음에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를 관조하고 있습니다. 8절부터 14절까지 길게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모든 선지자들에게서 그 점을 발견할 것입니다. 시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기자들 스스로가 난관에 처하여 있거나, 당시의 교회에, 이스라엘 나라가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고통을 받고 싸움에 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한결같이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자신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 그때는 그랬는데 왜 우리가 지금 이러한 입자에 있는가? 어떻게 해서 우리가 이러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가? 그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의 진수임에 분명합니다.
··· 우리는 이 세상에 살던 최초의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들만 어려움에 빠진 것이 아님을 상기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과거 여러 세기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셨는지를 기록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 그것은 교회를 위해서 말로 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습니다.
··· 사도 바울이 그것을 행한 방식을 생각해 봅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를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11절)’고 말합니다.
2) 기독교 전체 역사로 돌아가 관조함
“우리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자기 백성들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원리를 살펴보기만 할 뿐 아니라, 기독교회 전체 역사로 돌아가 그것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 이 시점에서 교회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 오늘날의 교회가 과거의 하나님의 교회처럼 처한 조건이 같았을 때가 자주 있었다고 말하면 이상하겠지만 그것이 제게는 위안이 됩니다. 오늘 현재 가장 침체된 사람들은 바로 그 사실을 잊은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우리의 난제만 생각하는 사람들, 라디오나 텔레비전이나 공산주의에 대해서만 말하는 사람들을 저는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 마치 그전에는 하나의 난제라도 가진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안은 교회사로 되돌아가 보는 것입니다. 현재 상태에 새로운 것이 전혀 없습니다. ··· 교회가 깊은 시궁창 밑바닥에까지 떨어져 그리스도인들이 이제 곧 끝장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사로 돌아가 연구합시다.
··· 그는 자기 백성들,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의 역사를 재고하고 있습니다. 그가 다른 무엇보다도 백성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역사 속에서 그들을 불러내시고, ‘분명히 그들은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 선지자는 말합니다. ‘자, 우리가 포착해야 하는 근본적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족속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께 특별하고 고유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의 백성들이다. ··· 그들이 거짓을 행치 않았기 때문에서라기보다는-그들이 거짓을 행했음-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내셨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시려 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인식해야 하는 첫 번째 요점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인간의 제도가 아닙니다. ···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교회의 기원 전체는 하나님의 목적하심의 결과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관계를 떠나서는 어떠한 존재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는 자신과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백성을 다루시는 처사를 생각하도록 합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다(9절).’ ···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우리들,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라. 갈대아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도성을 함락시켰고 파멸시켰고 우리를 포로로 잡아갔다. 좋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 ··· 우리는 그들을 찾아와서 도왔던 언약의 사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읽어야 합니다. 그 천사는 ‘하나님 앞의 천사’이며 의심할 여지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존재입니다.
··· 자, 그런 다음에 가장 자애어린 진술이 있습니다. ‘···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것은 문자 그대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우리 스스로 상기하는 것이 가치 있음을 아시겠습니까? 선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와 같은 입장에 있다. 그러나 나는 여러 시대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이끄시던 때로 돌아가 본다.’ 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나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들어 나르셨고 광야와 사막지대를 거쳐, 바다와 강을 건너 그들을 나르셨습니다. 바로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방식으로 백성들을 다루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그 선하심이여!
기독교회가 자기의 기원으로 되돌아가 살펴보면 정확히 같은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을 다시 읽어보고 아무런 자랑거리를 갖지 않던 소수의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 그들을 택하신 이가 주님이십니다. ··· 그러나 그들을 살펴보십시오. 온 세상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는 그 소수의 무리들을 유대인들이 대적합니다. 지도자들과 당국자들과 이방인들이 그들을 대적합니다. 온 세상이 그들을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복 주셨는가를 살펴보십시오. 그들을 어떻게 돌보셨는지를 보십시오. ··· 그들이 승리하며 이기며 앞으로 진행해 나가되, 그들을 사랑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도하시며 그들에게 능한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나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여러 세기에 걸친 기독교회 역사를 보십시오. 그러면 정확히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초기 역사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 않습니까? ··· 자기들을 거스르고 서서 대적하는 그 권세 많은 반대자들에 대하여 이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나 할 법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나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알았던 모든 위대한 부흥의 시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옛적 모든 날에’ 드시며 안으셨습니다.
··· 그러나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는 언제나 복락의 역사요, 하나님의 선하심이 따르는 역사였습니까? 선지자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10절).’
자, 여기서 여러분은 구약의 기록 가운데서 거의 끝없는 주제로 거듭 나타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 그들은 잘 출발했지만 넘어져 거의 멸절될 지경이 됩니다. 무엇이 문제가 되었습니까? 언제나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그처럼 부르심을 받고 그처럼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배역했고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켰기 때문입니다. ··· 풍성한 복락들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른 족속들을 시기하고 다른 신들을 부러워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 그들은 말했습니다. ‘십계명,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먹지 못하게 하고 있어. 우리가 좋아하는 자들과 결혼할 수도 없어. 우리는 좋아하는 대로 주간의 일곱 날들을 살 수 없단 말야.’ ··· 그래서 그들은 다른 신들에게로 돌아섰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거스르고 범죄했습니다. ··· 그것이 바로 그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서 가지신 모든 태도와 그들을 위해서 행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배역하였고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켰고 괴롭혔습니다.
그들의 지나온 이야기가 우리에게 거울이 되도록 기록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배경하지 않았거나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았다면, 그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속해서 축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넘어지는 것을 보면 언제나 그 이유는 같습니다. 그들이 믿음과 행실에 있어서 하나님을 배역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현재 입장의 가장 중추적인 요점에 이르게 됩니다. 어째서 오늘날 교회가 이 모양입니까? 오늘날 이 나라에서 10퍼센트의 사람들만이 기독교와 공식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도 그 중 절반만이 정규적으로 출석하며 꾸준함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어쩐 일입니까? ··· 백여 년 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당시 새로운 교회들이 지어져가는 광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교회가 비좁아 이전에 있던 건물들을 개조해야만 했습니다. ··· 런던에 있는 모든 예배 처소가 가득 찼습니다. ···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 교회는 흥왕하고, 하나님의 복락을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째서 상황이 달라졌습니까? 바로 우리 앞에 당면한 문제가 그것입니다. 어째서 우리가 지금은 침체되어 있습니까? 어째서 바벨론에 끌려가야 했습니까? ··· 원리적으로 그 선지자가 당면한 문제도 그러했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대답은 여전히 같습니다. 이스라엘과 교회가 고통에 빠지고 황폐해지고 버림을 받았을 때, 언제나 교회가 배역하고 하나님의 성령을 거역하기 때문입니다. ···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 선지자가 이스라엘에게 원수들이 그들을 공격한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함을 주목하십시오. … 물론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 다른 선지자들의 기록들과 시편들을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언제나 이것만을 말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낮아지고 패배당할 때마다 원수의 세력과 힘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었다면 그 원수가 아무리 강력해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이스라엘이 패배당하고 언제나 낮아짐을 당할 때는, 필연적으로 그 자신이 배역하고 어리석고 하나님의 성령을 괴롭히고 근심시켰기 때문입니다.
안
타깝습니다. 성도들이여, 오늘날의 상태에 대한 진단이 바로 그것입니다. … 교회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이 새로운 원수들 때문이 아닙니다. … 하나님의 백성들을 반대하는 것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습니다. … 일어난 일은, 교회 자체가 너무나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게 되어 하나님을 배역하고 성령을 근심시킨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믿음과 행실에 있어서 행했던 것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 그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한쪽으로 밀어 제치고 자기 자신의 신을 만들었습니다. 교회가 지난 백여 년 동안에 한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국의 상태와 교회의 상태를 바르게 설명하는 길은, 지난 19세기에 교회가 하나님의 계시를 거부하였고 하나님의 계시의 자리에 철학을 놓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 책, 성경을 비평하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권위자들로 세워서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의 어떤 국면들을 부인하기 시작했습니다. … 교회가 이런 상태에 처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교회는 교리와 믿음에 있어서 반역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 대시 사람의 지혜를 세웠습니다. 교회는 학식을 자랑하게 되었고 … 인간은 자신의 개념과 상념을 하나님의 계시와 교훈의 자리에 대신 놓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행했던 일을 정확하게 반복한 것입니다.
물론 더 나아가서 그것은 믿음과 교훈에 있어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 행실과 품행에서도 나타났습니다. ··· 그들은 보다 더 광범한 사고방식과 보다 더 넓은 종류의 삶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믿음과 행실에 있어서 하나님께 등을 돌렸고 자기들의 꾀를 따라 살았습니다. 물론 원수가 들어왔습니다. 교회는 단순한 하나님의 조직체만 가지고는 세상과 맞서 싸워 이길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패퇴당합니다. ··· 이것저것을 다 도입해 보았지만 그것이 일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 교회는 다만 한 가지 힘의 원천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입니다. 교회가 그것에 대해 등을 돌리고 그것을 반역할 때 필연적으로 넘어지고 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징벌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반역하였고 근심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의 원수가 되어 그들을 대항하여 맞서 싸우셨습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사실입니다. ··· 그는 축복의 산 그리심산에서 ‘만일 너희가 나를 복종하면 내가 너희에게 축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주의 산 에발산에서는 ‘너희가 나를 복종치 않으면 내가 너희를 저주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11:26-28). ··· 구약 역사에서 그 점에 대한 끊임없는 실례들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갈대아 군대를 일으켜 예루살렘을 멸망하도록 하신 분이 누굽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
·· 저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기독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여러 번 그와 같은 일을 행하셨다고 말씀드립니다. ··· 하나님께서 원수를 일으키셔서 공격하시고 하나님께서 원수가 되시고 응징하시고 교회를 낮추실 것입니다.
저는 서슴없이 오늘날도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역설합니다. 교회가 아직도 겸비한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 1세기 전의 고등비평 운동에 대해서 회개하는 조짐이 있습니까? ··· 아니 여전히 그 결과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대적하는 원수들을 일으키십니다. 언제나 그렇게 하셨고 계속해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 (11-13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고 그들을 대적하는 원수를 일으켜 그들을 낮추시고 복종시켜 철저하게 패배당하고 절망과 낙담에 처하도록 하셨을 때, 백성들은 갑자기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모세와 엣적에 그들의 존재의 기원을 기억했다는 그런 뜻입니다.
신약성경에도 우리에게 전체적인 안목을 주는 구약의 이야기에 대한 완벽한 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 그는 걸레와 같은 옷을 입고 지갑은 비고 배는 고파 죽어갈 즈음에 자기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는 기억하고 일어나 자기 아버지에게로 갔습니다.
··· 나의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교회가 부흥을 체험하기 전에 언제나 그러한 일이 교회에 일어났습니다. ··· 교회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교회는 회개하고 말하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 자, ‘그가 어디 계시뇨?’라는 대목을 보십시오. ··· 모세의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엘리야의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 우리가 이러한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그 분이 어디 계십니까? 그것이 바로 그들의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돌아서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 (11-14절) ··· 하나님께서 일어나시면 모든 현대의 원수들을 흩어버릴 수 있는데 그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교회의 기도요 구원의 유일한 길입니다. ··· 그래서 그는 15절에서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그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찾읍시다. 다른 모든 것은 다 떼어 놓읍시다. 오직 그 분을 찾고 그 분의 얼굴을 구하는 데 온 힘을 기울입시다. 우리는 급박하게 그 일을 합시다.
··· 그 분이 어디 계십니까?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마음의 울부짖음입니까? 교회의 사람들이 이러한 울부짖음으로 충만해지기까지 교회에 그 어떤 소망도 없습니다.” ***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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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http://cafe.daum.net/theblessingchurch/2D3K/23
제22장 부흥을 위한 이사야의 기도
이사야 63:7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우리가 이사야 63장의 처음 여섯 구절을 상고하면서 이사야가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크게 용기를 얻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 이사야는 기도를 드립니다. ··· 그 기도는 63:7부터 64장 끝까지 계속됩니다. ··· 제 관심은 여러분 앞에 선지자의 기도를 제시하고 그것에 대하여 단순하게 논평하며, 그 기도의 주도적인 원리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 성경에 기록된 기도들은 언제나 체계와 조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분명한 질서와 순서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들이 그처럼 효과 있고 효력을 발생한 것이 드러나 있으니, 그 기도들을 연구하고 그 기도들을 본받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성품을 상기함
“지금 우리 앞에 침체기에 교회가 드려야 할 위대하고 전형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흥을 위한 위대한 기도요,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자기 백성들을 하감하사 다시 한 번 찾아와 달라고 간청하는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사야 선지자의 방식을 따라서 그가 했던 첫 번째 일은 스스로 하나님의 성품을 상기하는 것이었음을 주목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께도 상기시켜 드립니다. 그것이 바로 7절의 중요한 핵심입니다. ··· 그것이 바로 참된 기도의 비밀입니다.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과 그 성품을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그는 거듭해서 여러 자비하심들을 되풀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하나님 속에 이러한 성품들이 흘러넘치는 것을 상기합니다. ··· 이사야가 기도하고 있는 처지에서 특별히 그렇게 한 것은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처한 곤경은 절망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버림받은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이 투덜대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자기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에 관해서 완전히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 저와 여러분이 드리는 기도가 개인적인 기도이든지 교회를 위해서 드리는 기도이든지 간에 이러한 방식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어떤 의심을 마음속에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기도하는 것이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 매우 괴로운 처지와 모든 것이 우리를 향하여 대적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 선지자처럼 시작하십시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를 말하리라.’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 145:9).’ ··· 우리의 개인적인 조건이나 현재의 보편적인 교회 상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심이나 긍휼이나 인애하심 중 그 어느 것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2.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를 관조함(교회사로 돌아가 연구함)
1) 성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관조함
“하나님의 성품을 스스로 상기한 다음에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를 관조하고 있습니다. 8절부터 14절까지 길게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모든 선지자들에게서 그 점을 발견할 것입니다. 시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기자들 스스로가 난관에 처하여 있거나, 당시의 교회에, 이스라엘 나라가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고통을 받고 싸움에 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한결같이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자신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 그때는 그랬는데 왜 우리가 지금 이러한 입자에 있는가? 어떻게 해서 우리가 이러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가? 그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의 진수임에 분명합니다.
··· 우리는 이 세상에 살던 최초의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들만 어려움에 빠진 것이 아님을 상기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과거 여러 세기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셨는지를 기록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 그것은 교회를 위해서 말로 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습니다.
··· 사도 바울이 그것을 행한 방식을 생각해 봅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를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11절)’고 말합니다.
2) 기독교 전체 역사로 돌아가 관조함
“우리는 성경에 나타나 있는 자기 백성들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원리를 살펴보기만 할 뿐 아니라, 기독교회 전체 역사로 돌아가 그것을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 이 시점에서 교회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 오늘날의 교회가 과거의 하나님의 교회처럼 처한 조건이 같았을 때가 자주 있었다고 말하면 이상하겠지만 그것이 제게는 위안이 됩니다. 오늘 현재 가장 침체된 사람들은 바로 그 사실을 잊은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우리의 난제만 생각하는 사람들, 라디오나 텔레비전이나 공산주의에 대해서만 말하는 사람들을 저는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 마치 그전에는 하나의 난제라도 가진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안은 교회사로 되돌아가 보는 것입니다. 현재 상태에 새로운 것이 전혀 없습니다. ··· 교회가 깊은 시궁창 밑바닥에까지 떨어져 그리스도인들이 이제 곧 끝장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사로 돌아가 연구합시다.
··· 그는 자기 백성들,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의 역사를 재고하고 있습니다. 그가 다른 무엇보다도 백성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역사 속에서 그들을 불러내시고, ‘분명히 그들은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셨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 선지자는 말합니다. ‘자, 우리가 포착해야 하는 근본적인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족속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께 특별하고 고유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의 백성들이다. ··· 그들이 거짓을 행치 않았기 때문에서라기보다는-그들이 거짓을 행했음-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내셨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시려 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인식해야 하는 첫 번째 요점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인간의 제도가 아닙니다. ···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교회의 기원 전체는 하나님의 목적하심의 결과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관계를 떠나서는 어떠한 존재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는 자신과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백성을 다루시는 처사를 생각하도록 합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다(9절).’ ···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우리들,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라. 갈대아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도성을 함락시켰고 파멸시켰고 우리를 포로로 잡아갔다. 좋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 ··· 우리는 그들을 찾아와서 도왔던 언약의 사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읽어야 합니다. 그 천사는 ‘하나님 앞의 천사’이며 의심할 여지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존재입니다.
··· 자, 그런 다음에 가장 자애어린 진술이 있습니다. ‘···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것은 문자 그대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우리 스스로 상기하는 것이 가치 있음을 아시겠습니까? 선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와 같은 입장에 있다. 그러나 나는 여러 시대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이끄시던 때로 돌아가 본다.’ 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나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들어 나르셨고 광야와 사막지대를 거쳐, 바다와 강을 건너 그들을 나르셨습니다. 바로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방식으로 백성들을 다루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그 선하심이여!
기독교회가 자기의 기원으로 되돌아가 살펴보면 정확히 같은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을 다시 읽어보고 아무런 자랑거리를 갖지 않던 소수의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 그들을 택하신 이가 주님이십니다. ··· 그러나 그들을 살펴보십시오. 온 세상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는 그 소수의 무리들을 유대인들이 대적합니다. 지도자들과 당국자들과 이방인들이 그들을 대적합니다. 온 세상이 그들을 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복 주셨는가를 살펴보십시오. 그들을 어떻게 돌보셨는지를 보십시오. ··· 그들이 승리하며 이기며 앞으로 진행해 나가되, 그들을 사랑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인도하시며 그들에게 능한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나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여러 세기에 걸친 기독교회 역사를 보십시오. 그러면 정확히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초기 역사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 않습니까? ··· 자기들을 거스르고 서서 대적하는 그 권세 많은 반대자들에 대하여 이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나 할 법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나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알았던 모든 위대한 부흥의 시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옛적 모든 날에’ 드시며 안으셨습니다.
··· 그러나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는 언제나 복락의 역사요, 하나님의 선하심이 따르는 역사였습니까? 선지자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10절).’
자, 여기서 여러분은 구약의 기록 가운데서 거의 끝없는 주제로 거듭 나타나는 것을 발견합니다. ··· 그들은 잘 출발했지만 넘어져 거의 멸절될 지경이 됩니다. 무엇이 문제가 되었습니까? 언제나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그처럼 부르심을 받고 그처럼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배역했고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켰기 때문입니다. ··· 풍성한 복락들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른 족속들을 시기하고 다른 신들을 부러워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 그들은 말했습니다. ‘십계명,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먹지 못하게 하고 있어. 우리가 좋아하는 자들과 결혼할 수도 없어. 우리는 좋아하는 대로 주간의 일곱 날들을 살 수 없단 말야.’ ··· 그래서 그들은 다른 신들에게로 돌아섰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거스르고 범죄했습니다. ··· 그것이 바로 그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서 가지신 모든 태도와 그들을 위해서 행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배역하였고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켰고 괴롭혔습니다.
그들의 지나온 이야기가 우리에게 거울이 되도록 기록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배경하지 않았거나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았다면, 그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속해서 축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들이 넘어지는 것을 보면 언제나 그 이유는 같습니다. 그들이 믿음과 행실에 있어서 하나님을 배역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현재 입장의 가장 중추적인 요점에 이르게 됩니다. 어째서 오늘날 교회가 이 모양입니까? 오늘날 이 나라에서 10퍼센트의 사람들만이 기독교와 공식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도 그 중 절반만이 정규적으로 출석하며 꾸준함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어쩐 일입니까? ··· 백여 년 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당시 새로운 교회들이 지어져가는 광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교회가 비좁아 이전에 있던 건물들을 개조해야만 했습니다. ··· 런던에 있는 모든 예배 처소가 가득 찼습니다. ···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 교회는 흥왕하고, 하나님의 복락을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째서 상황이 달라졌습니까? 바로 우리 앞에 당면한 문제가 그것입니다. 어째서 우리가 지금은 침체되어 있습니까? 어째서 바벨론에 끌려가야 했습니까? ··· 원리적으로 그 선지자가 당면한 문제도 그러했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대답은 여전히 같습니다. 이스라엘과 교회가 고통에 빠지고 황폐해지고 버림을 받았을 때, 언제나 교회가 배역하고 하나님의 성령을 거역하기 때문입니다. ···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 선지자가 이스라엘에게 원수들이 그들을 공격한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함을 주목하십시오. … 물론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 다른 선지자들의 기록들과 시편들을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언제나 이것만을 말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낮아지고 패배당할 때마다 원수의 세력과 힘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었다면 그 원수가 아무리 강력해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이스라엘이 패배당하고 언제나 낮아짐을 당할 때는, 필연적으로 그 자신이 배역하고 어리석고 하나님의 성령을 괴롭히고 근심시켰기 때문입니다.
안
타깝습니다. 성도들이여, 오늘날의 상태에 대한 진단이 바로 그것입니다. … 교회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이 새로운 원수들 때문이 아닙니다. … 하나님의 백성들을 반대하는 것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습니다. … 일어난 일은, 교회 자체가 너무나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게 되어 하나님을 배역하고 성령을 근심시킨 일입니다. 이스라엘이 믿음과 행실에 있어서 행했던 것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 그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한쪽으로 밀어 제치고 자기 자신의 신을 만들었습니다. 교회가 지난 백여 년 동안에 한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국의 상태와 교회의 상태를 바르게 설명하는 길은, 지난 19세기에 교회가 하나님의 계시를 거부하였고 하나님의 계시의 자리에 철학을 놓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 책, 성경을 비평하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권위자들로 세워서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의 어떤 국면들을 부인하기 시작했습니다. … 교회가 이런 상태에 처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교회는 교리와 믿음에 있어서 반역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 대시 사람의 지혜를 세웠습니다. 교회는 학식을 자랑하게 되었고 … 인간은 자신의 개념과 상념을 하나님의 계시와 교훈의 자리에 대신 놓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행했던 일을 정확하게 반복한 것입니다.
물론 더 나아가서 그것은 믿음과 교훈에 있어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 행실과 품행에서도 나타났습니다. ··· 그들은 보다 더 광범한 사고방식과 보다 더 넓은 종류의 삶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믿음과 행실에 있어서 하나님께 등을 돌렸고 자기들의 꾀를 따라 살았습니다. 물론 원수가 들어왔습니다. 교회는 단순한 하나님의 조직체만 가지고는 세상과 맞서 싸워 이길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패퇴당합니다. ··· 이것저것을 다 도입해 보았지만 그것이 일을 해내지 못했습니다. ··· 교회는 다만 한 가지 힘의 원천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입니다. 교회가 그것에 대해 등을 돌리고 그것을 반역할 때 필연적으로 넘어지고 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징벌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반역하였고 근심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의 원수가 되어 그들을 대항하여 맞서 싸우셨습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사실입니다. ··· 그는 축복의 산 그리심산에서 ‘만일 너희가 나를 복종하면 내가 너희에게 축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주의 산 에발산에서는 ‘너희가 나를 복종치 않으면 내가 너희를 저주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11:26-28). ··· 구약 역사에서 그 점에 대한 끊임없는 실례들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갈대아 군대를 일으켜 예루살렘을 멸망하도록 하신 분이 누굽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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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기독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여러 번 그와 같은 일을 행하셨다고 말씀드립니다. ··· 하나님께서 원수를 일으키셔서 공격하시고 하나님께서 원수가 되시고 응징하시고 교회를 낮추실 것입니다.
저는 서슴없이 오늘날도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역설합니다. 교회가 아직도 겸비한 상태에 있지 않습니다. ··· 1세기 전의 고등비평 운동에 대해서 회개하는 조짐이 있습니까? ··· 아니 여전히 그 결과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대적하는 원수들을 일으키십니다. 언제나 그렇게 하셨고 계속해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 (11-13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고 그들을 대적하는 원수를 일으켜 그들을 낮추시고 복종시켜 철저하게 패배당하고 절망과 낙담에 처하도록 하셨을 때, 백성들은 갑자기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모세와 엣적에 그들의 존재의 기원을 기억했다는 그런 뜻입니다.
신약성경에도 우리에게 전체적인 안목을 주는 구약의 이야기에 대한 완벽한 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 그는 걸레와 같은 옷을 입고 지갑은 비고 배는 고파 죽어갈 즈음에 자기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는 기억하고 일어나 자기 아버지에게로 갔습니다.
··· 나의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교회가 부흥을 체험하기 전에 언제나 그러한 일이 교회에 일어났습니다. ··· 교회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교회는 회개하고 말하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 자, ‘그가 어디 계시뇨?’라는 대목을 보십시오. ··· 모세의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엘리야의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 우리가 이러한 모양을 취하고 있는데 그 분이 어디 계십니까? 그것이 바로 그들의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돌아서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 (11-14절) ··· 하나님께서 일어나시면 모든 현대의 원수들을 흩어버릴 수 있는데 그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교회의 기도요 구원의 유일한 길입니다. ··· 그래서 그는 15절에서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그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찾읍시다. 다른 모든 것은 다 떼어 놓읍시다. 오직 그 분을 찾고 그 분의 얼굴을 구하는 데 온 힘을 기울입시다. 우리는 급박하게 그 일을 합시다.
··· 그 분이 어디 계십니까?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마음의 울부짖음입니까? 교회의 사람들이 이러한 울부짖음으로 충만해지기까지 교회에 그 어떤 소망도 없습니다.” ***
RPTministries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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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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