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교회에 목사를 권위자로 세우심(2)
주님께서 교회에 목사를 권위자로 세우심(2)
2011.10.30 19:35
http://cafe.naver.com/solideogloriafaith/3572
다음 글은
김홍전 <주님께서 교회에 목사를 권위자로 세우심> (1)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즉 김홍전 [교회에 대하여 제1권]<제1강 교회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함> 소제목인
‘바른교회의 세 가지 외적 징표’ 나머지 부분과
‘교회는 신앙고백의 터 위에 세워짐.’ 서두 부분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성례에 관한 말씀을 보지요. 27절에서 30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라.”
성례의 집행을 함부로 해서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약하게도 되고 병도 나고 죽기도 했으니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례의 집행은 아주 신중하게 주의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례를 신중하게 할 뿐 아니라 그 의미를 곡해하거나 딴 것으로 생각하고 잘못 행해서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성례의 의미를 삭감하지 않고 바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한 훈련도 필요하고 또 그 뜻을 잘 깨달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개혁교회는 목사 아닌 사람은 성례를 집행하지 못하게 제도로 만들었습니다. 가톨릭과 같이 누가 당장에 죽는 상황이라면 아무라도 임시로 세례를 후딱 줄 수 있게 개혁교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례는 교회의 권위 아래 시행되는 것인 까닭에 교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자리가 아니면 사석에서는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려면 교회의 권위를 상징하고 그것을 나타내고 또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있는 사람,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위에서 바로 받고 바로 전수할 수 있는 이,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권징을 행할 경우라도 교인들끼리 앉아서 “당신은 잘못했으니 수찬 정지 받아야 하겠다.”, “당신은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말아야 하겠다.”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최후에 하나님께서 판결을 하시는 그 판결을 바로 전달할 수 있는 말씀의 풍요성과 깨달음 가운데서 그것을 바로 지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권위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런고로 교회는 그 권위를 대표하는 법적인 체제가 필요하고 그 제도 가운데 권위를 입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이처럼 권위자가 있어야 하고, 권위의 체계가 서야 하고, 틀림이 없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전통을 이어받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신앙고백의 터 위에 세워짐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전통을 바로 이어받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거룩한 도리에 부합하는 교회 신앙의 개조個條가 필요합니다. 즉 교리와 그 교리를 요약해서 바로 선포하는 신조라는 것이 확호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아무 신조도 없는 경우라면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이 교파, 저 교파에서 어떤 도시를 이민 와서 우우 하니 몇 명이 모여 며칠 예배하고, 우리는 교회이다 한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적인 조건이 해당한가의 여부는 미루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껍데기로도 교회가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권위로써 교회로 인정하는 사실들이 구비돼야 합니다. 결국 교회가 교회로서 확호하게 서려고 할 것 같으면 거기에는 신조, 즉 교리라는 것이 명확하게 서 있고, 그에 따른 신앙고백이 교인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신앙고백이 있는 데서 비로소 교회의 회중이라는 단위가 정식으로 성립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다른 어떤 교단에서 신앙고백을 한 사람이 그와 전연 다른 신앙고백을 한 사람과 합쳐 가지고 교회라고 하면 신앙고백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알미니언에 대해 정죄한 도르트 종교회의의 결정(1619년)을 신앙고백으로 하는 사람들이 가령 메쏘디스트(Methodist)나 홀리니스(Holiness) 사람들하고 합쳐서 교회라고 하면 시낭고백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얘기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아,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 같이 모인다.” 한다면, 그것은 예수 믿는 집단은 되겠지만, 교회로서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모여서 목사만 청빙해 오면 교회가 되겠느냐 할 때,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략}···
김홍전 [교회에 대하여 제1권](서울:성약출판사, 2000) 22쪽~24쪽
2011.10.30 19:35
http://cafe.naver.com/solideogloriafaith/3572
다음 글은
김홍전 <주님께서 교회에 목사를 권위자로 세우심> (1)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즉 김홍전 [교회에 대하여 제1권]<제1강 교회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함> 소제목인
‘바른교회의 세 가지 외적 징표’ 나머지 부분과
‘교회는 신앙고백의 터 위에 세워짐.’ 서두 부분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1장에 성례에 관한 말씀을 보지요. 27절에서 30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라.”
성례의 집행을 함부로 해서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약하게도 되고 병도 나고 죽기도 했으니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례의 집행은 아주 신중하게 주의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례를 신중하게 할 뿐 아니라 그 의미를 곡해하거나 딴 것으로 생각하고 잘못 행해서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성례의 의미를 삭감하지 않고 바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대한 훈련도 필요하고 또 그 뜻을 잘 깨달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개혁교회는 목사 아닌 사람은 성례를 집행하지 못하게 제도로 만들었습니다. 가톨릭과 같이 누가 당장에 죽는 상황이라면 아무라도 임시로 세례를 후딱 줄 수 있게 개혁교회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례는 교회의 권위 아래 시행되는 것인 까닭에 교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자리가 아니면 사석에서는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려면 교회의 권위를 상징하고 그것을 나타내고 또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있는 사람,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위에서 바로 받고 바로 전수할 수 있는 이,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권징을 행할 경우라도 교인들끼리 앉아서 “당신은 잘못했으니 수찬 정지 받아야 하겠다.”, “당신은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말아야 하겠다.”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최후에 하나님께서 판결을 하시는 그 판결을 바로 전달할 수 있는 말씀의 풍요성과 깨달음 가운데서 그것을 바로 지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권위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런고로 교회는 그 권위를 대표하는 법적인 체제가 필요하고 그 제도 가운데 권위를 입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이처럼 권위자가 있어야 하고, 권위의 체계가 서야 하고, 틀림이 없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전통을 이어받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신앙고백의 터 위에 세워짐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전통을 바로 이어받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거룩한 도리에 부합하는 교회 신앙의 개조個條가 필요합니다. 즉 교리와 그 교리를 요약해서 바로 선포하는 신조라는 것이 확호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아무 신조도 없는 경우라면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이 교파, 저 교파에서 어떤 도시를 이민 와서 우우 하니 몇 명이 모여 며칠 예배하고, 우리는 교회이다 한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적인 조건이 해당한가의 여부는 미루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껍데기로도 교회가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권위로써 교회로 인정하는 사실들이 구비돼야 합니다. 결국 교회가 교회로서 확호하게 서려고 할 것 같으면 거기에는 신조, 즉 교리라는 것이 명확하게 서 있고, 그에 따른 신앙고백이 교인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신앙고백이 있는 데서 비로소 교회의 회중이라는 단위가 정식으로 성립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다른 어떤 교단에서 신앙고백을 한 사람이 그와 전연 다른 신앙고백을 한 사람과 합쳐 가지고 교회라고 하면 신앙고백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알미니언에 대해 정죄한 도르트 종교회의의 결정(1619년)을 신앙고백으로 하는 사람들이 가령 메쏘디스트(Methodist)나 홀리니스(Holiness) 사람들하고 합쳐서 교회라고 하면 시낭고백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얘기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아,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 같이 모인다.” 한다면, 그것은 예수 믿는 집단은 되겠지만, 교회로서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모여서 목사만 청빙해 오면 교회가 되겠느냐 할 때,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략}···
김홍전 [교회에 대하여 제1권](서울:성약출판사, 2000) 22쪽~24쪽
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https://www.esesang91.com/b/preach/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