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전_바른 교회의 세 가지 외적 징표 (1)
바른 교회의 세 가지 외적 징표 (1)
그러면 먼저 형식상 문제에서부터 얘기하십시다. 성경이 가르친 바른 교회관은 어떤 것인가? 역사적으로 흘러온 신학의 대류大流로 볼 때 우리가 받았을 뿐 아니라 전하려는 바의 내용을 개혁신앙, 개혁신학이라고 부릅니다. 이 신학은 개혁자들로 말미암아 명확하게 수립되고 천명됐습니다. 하지만 그 후 프로테스탄트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다 개혁자들이 개척해 놓은 이후 역사적으로 차츰차츰 형성된 중용한 사실들에 밀착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 자기 생각 나름대로 이리 찢고 저리 찢고 해서 그룹들을 만들어 가지고 움직이는 일이 계속해서 있어 왔습니다. 옛날에 절대주의 체제 아래 통제될 때는 모든 카톨릭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움직였지만 프로테스탄트 수립 이래로는 각각 제 이름을 가지고서 무슨 그룹이네 무슨 그룹이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확실히 신봉하면서 그 말씀이 가르친 거룩한 내용에 의해서 인간 만반에 때한 거룩한 하나님의 판단을 가급적 잘 알고 깨닫고 나가려고 하는 구심적인 노력이 현저한 그룹을 개혁교회라, 개혁신앙이라, 또 개혁신학이라 부릅니다. 거기에는 몇 유표한 교단들, 가령 개혁교회, 장로교회 등이 있습니다. 개혁교회는 언제든지 교회와 교회 아닌 종교 단체를 구분하는 표준을 세웠는데, 그 내용에서만이 아니라 외면에서도 명확하게 표준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신학상 교회의 징표(the marks of the church)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교회가 교회 아닌 것으로부터 명확하게 구별되는 징표입니까? 요컨대 개혁교회에서는 사람의 감각에 호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깨달아 알 수 있을 만큼 명확한 표준을 둬 교회를 교회 아닌 단체와 구분하도록 했습니다.
개혁신학에서는 그 징표의 내용을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결하게 공급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말씀을 보이는 형태로 공급하는 예식으로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가장 신성한 예식인 성례를 집행하는 사실입니다. 셋째는 교회의 불순이라는 것을 언제든지 막기 위해 엄격하게 권징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권징勸懲이라고 번역했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것을 계명이라는 계戒자와 규칙이라는 규規자를 붙여서 계규 戒規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경계하도록 규칙을 딱 세워서 그 규례 안에서 살도록 하는 규범을 세워 준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규범 안에서 잘못할 때 책벌도 하고 징계도 해서 불순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개혁교회가 특별히 이것을 강조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연히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교회 아닌 것과 구별할 때 이 권징이라는 것이 거기 중요한 사실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권징이란, 여러 가지 형태로 교회에서 공고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교회라는 바른 원칙(principle) 위에서 볼 때 무엇이 잘못되면 먼저,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 된다 하고 권하는 것도 권징의 한 형태입니다.
어쨌든지 지금 말한 이 세 가지가 교회의 징표로서 중요한 것들인데 이 세 가지가 어떤 형식을 꾸며내려면, 즉 그 세 가지가 바르게 집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통으로 있어야만 할 어떤 중요한 요소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공통으로 있는 중요한 사실이란 무엇입니까? 우선 하나님의 말씀이 순결하게 공급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만 할 뿐 아니라 거룩히 해석을 해서 깨달아 알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떠한 것을 가르쳐야 하느냐? 성경 한 구절을 읽고 얘기하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서 2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소님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해 주 안에서 성전이 돼 가고, 너희도 성신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중략}···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사도들이 가르치고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해 놓은 그 터 위에 서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바로 가르친 것을 받아서 전해야 할 중요한 기관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가르친 바를 바로 받아서 바로 전수를 해야지 그릇되게 제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부탁해서 세우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부탁해서 세운 사람은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가르친 전통 아래 확호하게 조직해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권위자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그냥 교회라고 예배만 보면 다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확실한 터 위에서 전달된 말씀을 전승한 사람과 그것을 전수해 주는 임무를 하는 기관으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강단(pulpit)이 없는 교회라는 것은 생각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은혜의 방도로 반드시 교중敎衆에게 임해야 하는데, 은혜의 방도로 임하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본질적인 것, 말씀 그대로를 가장 잘 나타내는 곳이 강단이지, 신학교 교단校壇이 아닙니다. 이것을 프로테스트나 개혁교회에서는 아주 강조했던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김홍전 [교회에 대하여 제1권] (서울: 성약출판사, 2000) 19쪽~22쪽.
자료출처 http://cafe.naver.com/solideogloriafaith
그러면 먼저 형식상 문제에서부터 얘기하십시다. 성경이 가르친 바른 교회관은 어떤 것인가? 역사적으로 흘러온 신학의 대류大流로 볼 때 우리가 받았을 뿐 아니라 전하려는 바의 내용을 개혁신앙, 개혁신학이라고 부릅니다. 이 신학은 개혁자들로 말미암아 명확하게 수립되고 천명됐습니다. 하지만 그 후 프로테스탄트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다 개혁자들이 개척해 놓은 이후 역사적으로 차츰차츰 형성된 중용한 사실들에 밀착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 자기 생각 나름대로 이리 찢고 저리 찢고 해서 그룹들을 만들어 가지고 움직이는 일이 계속해서 있어 왔습니다. 옛날에 절대주의 체제 아래 통제될 때는 모든 카톨릭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움직였지만 프로테스탄트 수립 이래로는 각각 제 이름을 가지고서 무슨 그룹이네 무슨 그룹이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확실히 신봉하면서 그 말씀이 가르친 거룩한 내용에 의해서 인간 만반에 때한 거룩한 하나님의 판단을 가급적 잘 알고 깨닫고 나가려고 하는 구심적인 노력이 현저한 그룹을 개혁교회라, 개혁신앙이라, 또 개혁신학이라 부릅니다. 거기에는 몇 유표한 교단들, 가령 개혁교회, 장로교회 등이 있습니다. 개혁교회는 언제든지 교회와 교회 아닌 종교 단체를 구분하는 표준을 세웠는데, 그 내용에서만이 아니라 외면에서도 명확하게 표준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신학상 교회의 징표(the marks of the church)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교회가 교회 아닌 것으로부터 명확하게 구별되는 징표입니까? 요컨대 개혁교회에서는 사람의 감각에 호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깨달아 알 수 있을 만큼 명확한 표준을 둬 교회를 교회 아닌 단체와 구분하도록 했습니다.
개혁신학에서는 그 징표의 내용을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결하게 공급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말씀을 보이는 형태로 공급하는 예식으로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가장 신성한 예식인 성례를 집행하는 사실입니다. 셋째는 교회의 불순이라는 것을 언제든지 막기 위해 엄격하게 권징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권징勸懲이라고 번역했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것을 계명이라는 계戒자와 규칙이라는 규規자를 붙여서 계규 戒規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경계하도록 규칙을 딱 세워서 그 규례 안에서 살도록 하는 규범을 세워 준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규범 안에서 잘못할 때 책벌도 하고 징계도 해서 불순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개혁교회가 특별히 이것을 강조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연히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교회 아닌 것과 구별할 때 이 권징이라는 것이 거기 중요한 사실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권징이란, 여러 가지 형태로 교회에서 공고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교회라는 바른 원칙(principle) 위에서 볼 때 무엇이 잘못되면 먼저, 그렇게 생각을 하면 안 된다 하고 권하는 것도 권징의 한 형태입니다.
어쨌든지 지금 말한 이 세 가지가 교회의 징표로서 중요한 것들인데 이 세 가지가 어떤 형식을 꾸며내려면, 즉 그 세 가지가 바르게 집행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통으로 있어야만 할 어떤 중요한 요소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공통으로 있는 중요한 사실이란 무엇입니까? 우선 하나님의 말씀이 순결하게 공급돼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만 할 뿐 아니라 거룩히 해석을 해서 깨달아 알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떠한 것을 가르쳐야 하느냐? 성경 한 구절을 읽고 얘기하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서 2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소님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해 주 안에서 성전이 돼 가고, 너희도 성신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중략}···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사도들이 가르치고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해 놓은 그 터 위에 서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바로 가르친 것을 받아서 전해야 할 중요한 기관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가르친 바를 바로 받아서 바로 전수를 해야지 그릇되게 제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부탁해서 세우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부탁해서 세운 사람은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가르친 전통 아래 확호하게 조직해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권위자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 몇몇이 모여서 그냥 교회라고 예배만 보면 다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확실한 터 위에서 전달된 말씀을 전승한 사람과 그것을 전수해 주는 임무를 하는 기관으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강단(pulpit)이 없는 교회라는 것은 생각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은혜의 방도로 반드시 교중敎衆에게 임해야 하는데, 은혜의 방도로 임하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본질적인 것, 말씀 그대로를 가장 잘 나타내는 곳이 강단이지, 신학교 교단校壇이 아닙니다. 이것을 프로테스트나 개혁교회에서는 아주 강조했던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김홍전 [교회에 대하여 제1권] (서울: 성약출판사, 2000) 19쪽~22쪽.
자료출처 http://cafe.naver.com/solideogloriafaith
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https://www.esesang91.com/b/preach/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