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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 무지한 성경해석으로 성도들을 혼란케 하는 목회자들

황당 무지한 성경해석으로 성도들을 혼란케 하는 목회자들 
자료출처: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48 윤요셉 목사

목회자들의 만능열쇠인 무적의 축복권 (4)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聖徒)들에게는 가난의 저주가 끊겼기 때문에 이 육신의 삶 속에서 물질의 부자(富者)가 되고, 성공(成功)할 수 있는 축복권이 있다고 해석하며 황당하게 설교하는 잘못된 신앙관과 무지한 성경지식을 가진 그릇 된 거짓 목회자들에게 이 글을 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이 말씀은 오늘날 부(富)와 영향력을 갈망하는 수많은 성도들에 의하여 희망의 언어로 회자 되는 성경 구절이다. 그래서 다수(多數)의 잘못된 신앙관과 무지한 성경지식을 가진 그릇 된 목회자들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해 가난하게 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들은 이 육신의 삶 속에서 가난과 불행의 저주에서 해방이 되었음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왜곡된 설교들을 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꼭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러한 해석의 설교는 성경 해석의 기본조차도 망각한 황당한 무지에서 나온 거짓된 목사들의 오석 중에 오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이 말씀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맥적 해석 차원에서 고린도후서 8장 1절로 5절의 말씀을 먼저 상고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바울 신학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그 이유는 먼저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 1절로 5절의 말씀에서 핍절한 가운데서도 형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풍성한 연보를 하였던 마게도냐 교회 공동체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이와 같이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1~5)

이처럼 사도 바울의 말씀에 의하면 마게도냐 교회의 교인들은 핍절한 형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하여 환난 가운데 있는 자기들에게 처한 처지를 먼저 돌아보지 않고서 극심한 가난 가운데 있는 자신들의 삶 자체도 하나님께 맡기고, 먼저 형제 예루살렘 교회에게 아낌없이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받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도 형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마게도냐 교회와 같은 사랑의 선행을 실천하라고 권고를 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핍절한 형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마게도냐 교회 공동체의 풍성한 사랑의 헌신(고후 8:1~5)을 이야기 한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들로 하여금 부요하게 하려 하심(고후 8:9)이라고 말씀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8장 9절의 말씀을 문맥적 차원에서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게 되심과 마게도냐 교회 교인들의 가난하게 됨이 대비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들이 부요하게 됨과 마게도냐 교회 교인들이 가난하게 됨으로 핍절한 예루살렘 교회가 부요하게 됨이 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먼저 고린도후서 8장 9절 말씀의 의미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비참한 처지의 죄인들인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비참한 죄인들인 우리들을 하늘의 부요한 자들로 만들어 주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를 힘입어 의인이 되었음을 고린도후서 8장 9절의 말씀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육신의 땅에서 성육신(成肉身) 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당신의 비하(卑下), 즉 낮아지심(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인하여 죄인들인 우리들을 의롭게 만드셔서 우리들의 신분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승격(우리들이 부요하게 됨) 시켜 주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들은 죄인 구원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하여 하늘의 영광을 버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믿음의 부(富)한 자’들이 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때문에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이 놀라운 사랑의 사건을 설명하면서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들이 부요하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도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였던 것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찌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약 2:5)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예수 그리스도의 비하), 즉 성육신으로 우리들이 소유하게 된 부요는 물질적인 부요가 아니라 믿음의 부요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믿음의 부요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신령한 부자’들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 육신의 세상에서는 아무리 가난해도 수많은 사람들을 부요하게 만들 수 있는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 진정한 부자들이며, 이 육신의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해도 모든 것들을 가졌다고 기뻐하며(1),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며, 항상 주 안에서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2). 바로 이러한 축복이 진정으로 천국의 부요를 소유한 자들이 누리는 자족(自足)의 축복임으로 이 육신의 땅에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어도 족한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3).

1)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2)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3)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

결국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 즉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이 죄인인 우리들을 의롭게 만들어 하나님 나라의 부요를 소유하게 하시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게 하셨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 1:3)

그러므로 우리들이 받은 부요의 축복은 이 육신의 땅에 속한 물질과 복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믿음의 복이고 의와 생명의 복인 것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 즉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믿음의 부요를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믿음의 부요를 통하여 이 육신에 속한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속한 모든 복을 소유하게 된 것을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당신의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들을 부요하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고린도후서 8장 9절의 의미와 관련해서 고린도후서 8장 1절로 5절을 살펴보면, 마게도냐 교회 교인들은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핍절한 형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풍성한 연보를 드렸기 때문에 자신들은 사실 물질적으로는 더욱 가난해졌지만, 오히려 그들은 가난하게 됨으로서 오히려 핍절한 예루살렘 형제 교회를 부요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마게도냐 교회 교인들의 이 같은 삶이야말로 우리들로 하여금 하늘의 유업을 잇는 부요한 자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가난하게 되심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사랑의 삶을 본받아 형제 된 예루살렘 교회를 부요하게 하기 위하여 스스로 가난해진 헌신적인 사랑의 삶을 살아왔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8장 1절로 5절과 고린도후서 8장 9절의 말씀을 도식화 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됨을 알 수가 있다. 

극한 가난과 환란 가운데 있는 마게도냐 교회

힘에 지나도록 풍성한 사랑의 연보

가난한 자들은 더욱 가난하게 됨

핍절한 예루살렘 교회는 목숨을 연명

예루샬렘 교회는 부요하게 됨 (고후 8:1~5)


 

하늘 보좌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자기비하(성육신과 십자가에 죽으심)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게 되심

죄인인 우리들을 의롭게 만드심

우리들이 부요하게 됨(고후 8:9)



그러므로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형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풍성한 연보를 드린 마게도냐 교회의 형제 사랑(═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죄인 사랑)과 마게도냐 교회가 가난 속에서도 형제 구제를 위해 풍성한 연보를 드림으로 더욱 가난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는 마게도냐 교회의 구제 헌금으로 부요하게 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오히려 죄인인 우리들은 믿음의 의를 소유하고 되고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을 받아(엡 1:3) 부요하게 됨)이 대비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부요하게 하기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사실과 마게도냐 교회가 형제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하기 위해 더욱 가난하게 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 버리신 사랑을 교훈 삼아 핍절한 예루살렘 형제 교회 교인들을 도와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내용의 사실을 사도 요한도 말씀하고 있는 사랑의 대 계명(誡命)의 원리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6~18)

이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우리들에게 교훈하는 바는 바울의 경우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죄인 사랑을 본받아 우리들도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형제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리신 사랑은 부요하신 자로서 죄인인 우리들을 위하여 스스로 가난하게 되심으로 죄인인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의 부요에 참여하게 만든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랑의 원리를 본받아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고 하지 말고, 가난한 형제들을 위해 나눔으로서 우리들이 나눈 만큼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해지지만 그 대신 가난한 형제들을 부요하게 만드는 사랑의 대 계명을 실천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8장 9절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가난의 저주를 끊으셨기 때문에 목사들은 이 육신의 땅에서 부자가 될 수 있는 축복권이 있다고 해석하며, 이를 사실인양 설교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때문에 성도들은 그렇게 설교하는 잘못된 신앙관과 무지한 성경지식을 가진 그릇 된 목회자들의 입담(立談)의 내용을 그렇게 이해해서도 안 되며, 그렇게 들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난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온전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만 한다. 핍절한 형제 교회를 돕기 위해서는 더 많은 물질과 더욱더 큰 영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하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우리들로 하여금 더 많은 물질과 더 큰 영향력을 소유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것은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과부의 두 렙돈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헌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액수가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았던 온전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명령하시는 사랑이란? 많은 물질과 더 큰 영향력에서 나오는 외형적 액수가 아니라, 내 것을 내 것이라고 하지 않는 온전한 믿음을 동반한 베푸는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서 바울 신학의 본질은 재물에 대한 철저한 자기 자신의 단절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8)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7~10)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그러므로 근접 문맥적 차원에서나, 원접 문맥적 차원에서 살펴보았을 때, 본문 고린도후서 8장 9절을 잘못된 신앙관과 무지한 성경지식을 가진 그릇 된 목회자들이 물질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성도들은 당연히 부자가 될 수 있고, 또한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경제비법으로 설교를 하는 것은 황당하고 어리석은 설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설교 방식은 단언하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인 복음의 생수가 아니라, 오히려 오염된 거짓 복음, 냄새나는 시궁창 같은 썩은 물을 공급하는 위험천만한 저질스럽고 거짓된 목회자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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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 새벽강단&말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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