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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에 관한 상식 - 김명도박사

십일조에 관한 상식 - 김명도박사

요즘 십일조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김명도 박사의 글입니다.

십일조에 관한 상식 - 김명도박사| ♡―··········· 자유게시판
holyofholies|조회 317|추천 0|2011.08.24. 23:37
십일조에 관한 상식
튤립 교육 선교회 김명도 교수
  
  오늘 기독교 교계는 미증유의 교리적 혼란을 겪고 있다. 사람들은 십일조 철폐론을 들고 나온다. 성도들은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십일조는 구약시대에만 해당하고 신약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철폐되었는가?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십일조는 율법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다(창14:20). 율법은 이미 존재하던 십일조 를 제도화 한 것 뿐이다. 모세와 율법이 있기 400년전에 아브라함이 멜키세덱에게 열의 하나를 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신약 로마인서 4:12에는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좇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아브람이 십일조를 바친 것이 잘 한 것이라면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따르는 우리에게도 십일조는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율법 때문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 처럼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다. 더욱
율법 이전에도 열에 하나를 드렸고, 율법 아래서도 열의 하나를 드렸다면 더 좋은 언약의 보증 안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는 더 바쳐야하지 않겠는가?(히브리 7:22). 신약 히브리서 7:8이 이 문제를 잘 설명해 준다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이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라고 말한다.
멜키세덱은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받았다. 히브리서 기자가 가르쳐 주는 것은 멜키세댁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멕키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처럼
우리는 산다고 증거하신 그리스도에게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히브리서 7:8 말씀의 결론 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십일조를 드린 것은 당연하다 이유는 그들이 과거 계속 십일조를 드려 습관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십일조를 사랑으로 교회의 장로들에게 드렸다. 기독교는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교회에 이방인들이 점점 많이 들어오고 따라서 교회에 유대의 색깔이 사라지자 이 문제를 다룰 필요성이 생겨났다 마태 23:23 에 이렇게 말한다. “화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3).
여기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자세히 보라. 예수님이 꾸짖은 것은 저들이 십일조 드린 것을 꾸짖은 것이 아니고 십일조를 믿음 없이 드린 것을 꾸짖으신 것이다. “이것도 행하고” 즉 의. 인, 신 을 가지고 십일조를 드렸어야 하고, 또한 “저것 (십일조) 도 드려야 한다는 것 을 가르쳐준다. 예수님이 ”십일조하는 일도 버리지 말라“ 고 했다면 성도로서 십일조를 버려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어떤 분들은 여기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근거는 에수님이 아직 십자가 지기 전이므로 아직도 율법아래 있고 율법 아래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다시 말하는 예수님은 율법아래 있던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니 신약시대의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예수를 하나의 “유대교의 선지자” 혹은 “율법 교사” 정도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이시다 (요 1:14), 그러므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모두 영원하며 진리이다. 주님이 말씀하는 것은 모두 영원하고 유대인에게나 우리에게 영적인 교훈을 주신다. 예수님은 영원부터 계신 말씀 그 분이시다. 십자가를 지고 안지고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님은 이 진리를 마태복음 5:18에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이루리라”라고 하셨다. 또 마태복음 24:35 에는“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들 십일조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없어지게 하는“ 사람들이니 예수님의 말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이들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마음대로 수용할 것과 수용하지 않을 부분을 자유로 선택해서 믿고 가르친다. 이런 사람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의 대부분을 수용하면서도 그들이 십일조를 싫어하기 때문에 주님이 분명하게 마태 23:23에서 가르치신 말씀을 배척하고 있다.
성도라면, 우리가 순종할 자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십일조에 관하여 분명히 교훈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에는 해당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을 순종해야 하나? 아니면 “십일조를 버리지 말고 믿음으로 하라” 라고 분명하게 교훈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할 것인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오늘날 어떤 목회자에게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예수님의 말씀에 거역할 자유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자.
 
 
마태 23:23 한절 말씀만 가지고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십일조에 대한 답이 나온다.
그러나 신약 성경 중에서 다른 구절들을 보도록 하자
바울은 고전9:13-14에서 말하기를, “성전의 일을 하는 자는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는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라고 말했다.
바울은 옛날 제사장들이 십일조로 생활한 것처럼, 오늘의 사역자들도 같은 방법으로 십일조로 생활한다고 가르친다. 이 말씀을 보면, 신약의 바울사도가 구약의 십일조 제도가 어떻게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적용되는가를 잘 가르쳐준다고 보아진다. 이런 가르침에 반박하는데 흔히 저들이 인용하는 증거구절은 고후 9:7 이다: 거기에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라고 말한다.
이 말은 성도 각자가 자기 생각대로 헌금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성경이나 목사의 가르침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앞서 언급한 고후 9장의 말씀이 교회에 내는 연보를 말함이 아니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헌금을 말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율법 아래서는 빈궁한 자를 돕는 것은 자유의지로 결정한 헌금 (낙헌예물) 이었다. 율법은 십일조와 낙헌예물을 둘 다 드리라고 가르친다. 신명기 12:5-6에 보면,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가?
“낙헌 예물” 는 인정하면서 “십일조” 는 배척하는 일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위 성경 구절에서 보듯, “십일조”와 “낙헌예물”이 모두 같은 비중으로 율법에 들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율법이 있기 전에도 있었으므로 한 가지를 행하려면 다른 한 가지도 동시에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어떤 것은 택하고 어떤 것은 버릴 수 없다. 십일조는 버리고 “낙헌예물”은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모순이다. 또한 만일 신약시대에 십일조가 없어졌다면 신약성경 어디에 “십일조는 폐지되었다” 고 명확히 기록하고 있는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십일조에 관해서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내용과 구약 말씀을 비교해보자.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기를,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갈 6:6).
이 말과 다음 구약 성경구절을 비교해 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 할지니라, 제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라고 가르친다.
갈라디아 6장은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드릴 예물을 말하면서 과거 례위인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던 십일조와 같은 의미로 “좋은 것” 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이것을 보면 분명 초대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생각된다.
십일조는 철폐된 것이 아니다. 신약 성경에 철폐되었다는 말씀이 없다. 의식법이 철폐되었다고 가르쳐주는 골로새 2:16-17에도 다른 의식법은 철페되었다고 가르쳐주면서도 십일조의 언급은 없다. 오히려 주님은 “십일조를 버리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다. 주님의 말씀이 지금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주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겠다” 고 하신 성경말씀에 위배된다. 신약에서의 십일조 개념은 율법에 얽매어 의무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감사 감격하여 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열의 하나 혹은 그 이상, 우리 몸 전부를 기쁨으로 드린다. 신약시대는 열의 하나가 문제가 이니라
로마인서 12장1절 말씀대로 우리 몸 전체가 주의 것이니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에게 드리며 살아 가야 한다. 십일조는 가장 기본이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하시는 말씀을 소멸하지 말자.
 
-십일조에 관한 상식, 끝-
(자료출처 http://cafe329.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kvSj&fldid=RkzJ&contentval=004s5zzzzzzzzzzzzzzzzzzzzzzzzz&nenc=&fenc=&q=%C7%D5%BD%C5&nil_profile=cafetop&nil_menu=sch_up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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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의견 1

  • mary · 2013-08-28 14:35
    저도 한국에 사는 동생으로 부터, 이제 십일조는 내지 않아도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그러나, 저는 아니다, 십일조를 해야한다고 알려주었는데,, 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변형해서 교회에서 가르치시는지,, 참으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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