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진 목사는 왜 이러나??? 바알이 오늘날 다른 종교에 해당하는가? 타 종교 포용하는 것이 우상숭배는 아니다?
박창진 목사는 왜 이러나??? 바알이 오늘날 다른 종교에 해당하는가? 타 종교 포용하는 것이 우상숭배는 아니다?
(자료출처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4114)바알이 오늘날 다른 종교에 해당하는가종교 다원성과 종교다원주의는 다른 것...타 종교 포용하는 것이 우상숭배는 아니다데스크 승인 2013.05.08 12:05:40 박창진 (pcj5016) 기자에게 메일보내기진보, 보수신학자들이 WCC 신학 찬반 공방을 했다고 한다(출처 : 참조). 그 내용 중에 종교 다원성과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것이 있다.발제자인 이형기 교수는 "WCC 신학이 모든 종교들 안에 구원이 있다고 하는 '다원주의'가 아니라 타 종교들의 특수성과 고유성과 정체성과 온전성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객관성과 보편성을 인정하는 '다원성'이다"고 했다. 종교 간의 평화와 이해와 공존을 위해 그리고 사회와 인류를 위한 '공동의 선(善)'을 추구하기 위해, 종교 간 대화는 요청되며 이를 위해 각 종교의 독특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논찬자인 장훈태 교수는 "적어도 기독교인은 종교 현상은 인정하되 복음의 유일성을 주장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반론했다. 이어서 "구약은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다원적 현상을 지적하고 비판, 특히 선지자들은 종교적 다원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면서 "타 종교들이 자신들의 특수성과 보편성에 대한 주장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복음 진리에 대한 확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종교 다원성과 종교 다원주의는 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이전에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있는가?'라는 기사를 올렸다. (관련 기사 :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있는가?) 요지는 다른 종교에서 자신들의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독교에서 이야기되는 구원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WCC 신학의 다원주의에 깔린 바탕을 수용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런 입장을 개진했을 때에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인본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었다. 그 비난의 근거는 장훈태 교수가 언급한 바와 같이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한 바이다. 대표적으로 바알 숭배를 들 수 있다. 바알을 포함한 여러 우상숭배에 대한 구약의 진술은 아주 많다. 만약에 바알 숭배가 오늘날의 다른 종교라고 보아야 한다면 장훈태 교수의 주장과 같이 다원성이라고 하더라도 복음 진리에 대한 확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과연 바알 숭배가 오늘날의 다른 종교를 가리키는가?성경 시대는 오늘날이 아니다. 그때는 지금이 아니다. 성경의 진술은 언제나 오늘날의 입장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 결과 성경의 문자와 일치할 수도 있고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일치한다면 그대로 오늘날 사용하면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때에나 지금이나 이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일치하지 않다면 오늘날 그대로 사용하면 안 된다.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써서 가려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 당시의 정황에는 부합되지만 오늘날은 아니다. 그 표현에 담긴 원리를 파악하고 오늘날 적용하여야 한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양자는 모두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바알 숭배도 역시나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 결과 오늘날의 다른 종교를 가리킨다면 장훈태 교수의 주장을 따라야 한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생각을 달리하여야 할 것이라고 여겨진다.바알은 그 당대의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남신이다. 농경 대지를 윤택하게 하는 겨울비 또는 폭풍의 신이다. 바알 숭배는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에게도 옮겨졌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신랄하게 책망하셨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책망은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언약 관계인 이스라엘이 언약의 주이신 하나님이 아닌 바알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에 대하여 강력하게 책망하신 것이다.오늘날의 다른 종교는 어떤가? 그들이 어떤 신을 만들고 그 신에 의해 자신들의 삶에 풍요가 뒤따른다고 생각하며 섬기는가? 불교나 유교는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구약의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 바알과 같은 성격이라고 볼 수가 없다.다원성을 수용하는 것이 과거에 바알을 숭배한 이스라엘과 같이 다른 종교에서 이야기되는 절대적 존재를 숭배하자는 것인가? 전혀 아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자는 것은 그 종교를 교회나 신자가 수용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종교로서 인정하자는 것일 뿐이다.사회와 인류를 위한 '공동의 선(善)'을 추구하기 위해, 종교 간 대화는 요청되며 이를 위해 각 종교의 독특성을 인정하는 것은 잘못인가? 예를 들어 이스라엘이 그 당시의 이방인 사회의 바알 숭배자와 사회와 인류를 위한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인가? 바알 숭배자이기에 아예 접촉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그들에게 야웨 숭배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의 바알 숭배에 대해 듣는 것이 잘못인가? 이스라엘의 종교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종교로서 독특성을 인정하면 그것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되는가? 우상숭배가 되는가?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다. 바울 사도는 그 당시에 우상숭배와 제물인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가지고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구약성경에서 바알 숭배를 포함하여 우상숭배를 강력하게 막고 있는 것이 오늘날 종교의 다원성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다른 사안이다. 바울 사도의 논점을 따른다면 다른 종교는 우리에게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관점이지 우리의 관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들과의 대화나 교제 자체를 막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바울 사도의 논점에 따르면 그것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되기에 옳지 않다. 사실 우리와 같은 신앙을 따르는 종교인이 아닌 모든 사람은 다 그들 나름대로 종교를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다. 무신론도 하나의 종교라고 볼 수 있다. 우리와 다른 종교와의 다원성을 거부한다는 것은 곧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바울 사도는 신자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논점으로 교회에게 교훈했다.오늘날에 종교 다원주의가 아닌 종교 다원성은 구약의 바알 숭배와 같은 우상숭배라고 볼 수 없다.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우월성을 알리고 복음을 소유한 신자들이 사회와 인류를 위한 선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이는 좋은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의 원리, 복음의 정신을 바르게 파악하고 말하며 실천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복음의 정신을 바르게 드러내지 못할 때에 문제가 발생한다. 혼합주의가 될 여지가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 영광을 가리고 우리의 종교를 부끄럽게 만든다.바알 숭배와 같은 우상숭배를 앞세워 종교 다원성을 거부하는 것은 본문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잘못이라고 여겨진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종교 다원성을 추구하며 철저한 복음의 정신을 실현하여 복음의 풍성함과 능력을 보이는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그때는 오늘이 아니다. 성경의 진술은 그 문맥과 그 당대의 정황에서 정확하게 파악되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되는지 바르게 살펴야 한다. 그 결과를 원리화하고 그 원리를 오늘날의 교회(신자)가 따라야 한다. 종교 다원주의가 아닌 종교 다원성은 오늘날의 교회가 추구하여야 할 원리에 부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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