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무너진 기독교의 위험성-방동섭교수의 글
상식이 무너진 기독교의 위험성-방동섭교수의 글
아래 글을 읽고
기독교인으로 가져야 하는 삶의 원리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자료출처 http://www.facebook.com/dongsubbang/posts/489289881120450?comment_id=4920250¬if_t=feed_comment_reply)상식이 무너진 기독교의 위험성"종종 크리스쳔들이상식적인 판단을 해야하는 곳에신앙이라는 이름으로상식을 거절할 때가 많다.긴급히 수혈을 받아야하는 상황인데신앙의 이름으로수혈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외과적인 수술을 받으면해결할 수 있는 병을신앙의 이름으로거부하다가병을 더 키울 때도 있다.신앙이 좋은 사람들은상식을 무시하지 않는다.오히려 상식적인사람일 때가 많다."바울을 죄수의 몸으로 끌어가던 일행이 무라성(Myra)에서 로마로 가는 배를 바꾸어 탄 이후에 항해는 매우 어려워졌다. 그 배에 함께 승선했던 바울은 항해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을 보면서 침묵을 지킬 수 없었다.바울은 승선했던 자들에게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행 27:10).궁금한 것은 바울이 “무슨 근거로 이 런 말을 했는가?”하는 점이다. 주님이 직접 환상을 통해 그에게 앞으로 될 일을 직접 보여 주셨는가? 아니면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해 특별한 음성을 들었는가?이런 경우 우리는 종종 바울이 “뭔가 하나님으로부터 환상이나 특별한 음성을 듣고 말한 것”이라고 쉽게 단정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보다 우리가 앞서가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언하듯이, “내일은 반드시 태양이 뜰 거야”하면서 엄숙히 말한다면 얼마나 웃기겠는가?사도 바울이 항해가 위험할 것이라 말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어떤 특별한 환상에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바울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인가? 사도행전 27:9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거기 보면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 하기가 위태한지라”고 하였다.우리는 자연히 “금식하는 절기와 배를 항해하는 것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묻게 될 것이다. 사실 금식 과 항해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금식하는 절기’와 항해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여기 ‘금식하는 절기'는 10월 초순으로 당시 기록에 의하면 “조심성 있는 로마인들은 이 절기가 지나면, 항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10월에서 그 다음해 3월까지는 항해하기에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뱃사람의 상식이었다. 결국 바울의 주장은 지극히 평범한 일반 상식에 기초했던 것이다.이러한 바울의 상식적인 판단에 대해 그 배의 인솔자였던 백부장은 어떻게 했는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고 하였다(행 27:11). 선장과 선주의 주장은 “미항이라는 곳은 겨울을 나기에 어려우니 뵈닉스로 가서 겨울을 나자는 것이다”(행27:12). 즉 조금 더 가면 겨울을 나기가 유리한 곳이 있으니 항해를 계속하자는 것이다.그러나 문제는 겨울을 나는 것이 아니라, 이 배가 항해를 계속할 수 있는가였다. 선장과 선주는 항해의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상식적인 판단을 뛰어넘고 있었다.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전문가의 비상적인 판단 때문에 위기를 만나게 될 때가 많음을 본다. 전문성이 상식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의 붕괴, 지하철 공사장 붕괴, 고속 전철 부실공사 이 모든 것의 특징이 무엇인가? 한국형 대형 사고 뒤에는 전문가의 비상식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기독교인들은 당연히 하나님이 때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믿는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상식적인 판단을 무시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긴급히 수혈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있다면 기도도 해야 하지만, 그가 수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또한 수술이 필요할 때는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아야 한다. 교회를 건축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무리하게 공사 기간을 단축하거나 불법을 자행하면 안 된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신앙의 이름으로 지나치게 사업을 확장시키면 안 된다.우리 시대의 비극은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상식을 무시하는 것이다. 상식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 상식을 무시하고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다가 큰 위기를 만나는 것이다.인생은 그렇게 모순일 때가 있다. 당시 사도 바울의 아픔은 그 배가 분명히 광풍을 만나게 되고 생명이 위태로울 것을 알면서도 죄수의 몸으로 묶여있는 그에게는 다른 권한이나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는 강제로 배에 실렸고, 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예상되는 죽음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사도 바울이 탔던 배의 문제는 선장과 선주가 자신의 전문성을 내세우며 상식을 무시해 버리는데 있었다. 처음에는 선장이 제안했던 비상식적 결정이 효과를 보았다.바울의 일행이 승선했던 배는 남풍이 순하게 불어 "우리가 괜한 걱정을 했었구나” 하면서 모두가 기뻐하였다.그 배에 탔던 모든 사람들 역시 "항해는 전문가의 말을 따라야 해” 하면서 그들을 칭찬했을 것이다. 성경은 그 때의 상황을 “저희가 득의한 줄 알았다”(행 27:13)고 하였다.여기 "득의했다”는 말은 “뜻하고 바라는 대로 잘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말이다. 상식을 무시하고 잘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잘되는 것도 잠시 뿐, 그 배가 그레데 해변을 근접하여 항해할 때 갑자기 '유라굴로’ 광풍이 불어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유라굴로’는 ‘북동쪽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그 바람이 휩쓸고 간 지역은 아무것도 남지 않을 만큼 사납고 강한 태풍이다. 당시 이 광풍을 만나 살아남은 배는 없었다고 한다.이 사건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종종 크리스쳔들이 상식적인 판단을 해야하는 곳에 신앙이라는 이름으로상식을 거절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신앙이 좋은 사람들은 상식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식적인 사람일 때가 많다.그동안 한국 기독교의 문제의 배후에는 종종 신앙의 이름으로 상식을 무시하는데 있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몇몇 기독교 지도자들의 상식을 무시한 행동과 결정으로 인해 자신들도 고통 당하고, 결국 교회 공동체 전체에 큰 아픔과 피해를 주는 일이 많았다.상식적인 결정을 해야할 때 만일 우리가 소위 신앙의 이름으로 상식을 무시하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 교회안에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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