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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사의오늘

어떤 성직자들은 시국 선언도 하는데..., 분연히 일어나 목소리를 발하고???

어떤 성직자들은 시국 선언도 하는데..., 분연히 일어나 목소리를 발하고???

사랑의 교회 대형화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은 좀 재고해야 되지 않을 생각합니다.



어떤 성직자들은 시국 선언도 하는데, 주님의 이름이 인간의 거짓을 위장하는 데 악용되며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인간의 탐욕으로 심하게 일그러지는 참담한 현실 앞에 왜 다들 침묵하고 있는가. 의식이 있는 신학자, 목사, 교인들은 더 이상 잠잠하지 말고 분연히 일어나 목소리를 발하고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드는 데 동참해 주기를 촉구한다.

박영돈 /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




과연 하나님이 다 하셨을까?
사랑의교회 초호화 교회당 입당 예배, 인간의 탐욕으로 일그러진 한국교회의 현실
데스크 승인 2013.12.02  15:37:49 박영돈 (edit) 

사랑의교회가 새 예배당 입당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그 교회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고 신경 쓰기도 싫은데 이 표어를 보고는 그냥 참고 넘어갈 수 없었다.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역사하심으로 성취되었다는 뜻이며, 그러기에 하나님께 최상의 영광을 돌리는 표현이다. 그런데 왜 이 말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께 최악의 모독을 안겨 드리는 말로 들릴까. 어찌하여 가장 은혜로운 말이 하나님의 이름을 악용하며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가장 더럽고 구역질 나는 말로 들릴까.

정신이 제대로 박힌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수천 억을 들여 초호화 건물을 짓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며 하나님이 전적으로 이루셨다는 해괴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거룩한 명분으로 교묘히 위장된 인간의 탐욕을 돈의 위력으로 성취한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교인들이 피땀 흘려 하나님께 바친 헌금을 세상에 생명수를 흘려보내듯이 사회의 소외되고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기보다 자체 교회의 영광과 성공의 바벨탑을 쌓는 데 허비하는 것이, 구유에 오셨고 이 땅에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시다가 십자가에 참혹하게 죽으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며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발상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심히 의아할 뿐이다. 

구 건물에 유치할 수 없을 정도로 교인수가 많아지면 분립을 시도하여 건강한 교회들을 세워 가야 할 텐데 그렇게 큰 교회당을 지어 주위의 작은 교회들을 고사시키면서까지 무한 대형화를 추구하는 독한 이기주의적인 탐욕이 어찌 그리스도의 마음과 조화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사람들을 압도하는 대형 건물이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으신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과 영광을 반영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제국의 영광과 번영을 과시하는 것인가. 그런 거대하고 호화스러운 건물의 위세로 사람들을 끄는 것은, 영혼들을 십자가의 비천함 속에 감추인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헛된 영광에 대한 헛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기복 신앙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새 건물 입당을 축하하는 메시지에서 목사들이 한결같이 새 성전 입당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신약을 전공해서 박사 학위를 딴 목사까지 새 성전이라고 말했다. 그 목사는 신학박사 학위 공부를 헛되게 한 모양이다. 담임목사부터 새 예배당에 과거 솔로몬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이 가득했듯이 세키나 영광이 그곳에 가득하기를 기원했다.

그는 입당 후 첫 번째 주일예배 설교 서두에서 한 여자 교인의 간증을 소개했다. 그녀는 살 집이 없어 부모님 집에 들어가 살면서도 '성전 건축'을 위해 헌금했다는 것이다. 이같이 '성전 건축'이라는 명분으로 교인들의 눈물 어린 헌신을 유도하여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짓는 일은 주님이 십자가로 허무신 건물 성전을 다시 세우는 적그리스도적인 행위이다. 이는 주님의 고난을 헛되게 하며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시는 일을 마치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인 양 거기에 헌신하도록 교인들을 교묘히 유도하는 것은 거룩을 가장한 영적 사기 행각이다. 더욱이 의식이 있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교인들이 그렇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바른 목소리를 묵살해 버리고, 건축 과정에서도 많은 의혹과 편법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으면서까지 지어 놓은 인간 야욕의 기념탑을 하나님이 다 하신 것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신성모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찌 한국교회 지도자라는 자들이 이런 거짓과 자기기만의 극치를 보면서도 같이 축배를 들며 그 장단에 놀아나고 있는가. 오목사의 논문 표절 문제나 무리한 건축의 저변에 깔려 있는 근본 문제는 종교적인 탐욕인데, 이를 질타하는 고언을 해 주는 이는 왜 없다는 말인가. 모든 것을 은혜로만 덮고 넘어가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일까.

우리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그렇게 적당히 넘어가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정직함을 원하신다. 그 큰 교회당을 통해 세계적인 복음 사역을 하는 것보다 그분이 훨씬 더 중히 보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의 순결함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된 종교적인 야욕을 진실하게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그런 면에서 오목사는 아직 진실하게 회개하지 않은 셈이다. 탐욕을 회개하지 않은 그 심령에서 흘러나오는 메시지는 교인들의 영혼을 더럽히며 성령을 거스를 것이다. 그 화려한 예배당에 인간의 찬양과 흥분된 감정이 고양되어 마치 성령의 영광이라도 충만한 것처럼 착각하게 하나 실은 성령의 근심과 탄식 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왜 교회 지도자라는 자들이 영적으로 어둡고 둔해져서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었다는 말인가. 그토록 사랑하는 교회를 떠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신앙 양심 때문에 탐욕의 전당에 들어가 예배드릴 수도 없어 구 건물 앞마당에 모여 찬바람을 쐬며 눈물짓고 한숨짓는 교인들과 함께 예수와 성령도 그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왜 보지 못한단 말인가.

어떤 성직자들은 시국 선언도 하는데, 주님의 이름이 인간의 거짓을 위장하는 데 악용되며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인간의 탐욕으로 심하게 일그러지는 참담한 현실 앞에 왜 다들 침묵하고 있는가. 의식이 있는 신학자, 목사, 교인들은 더 이상 잠잠하지 말고 분연히 일어나 목소리를 발하고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드는 데 동참해 주기를 촉구한다.

박영돈 /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 저자
*이 글은 박영돈 교수의 페이스북에 실린 것입니다.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자료출처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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