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진의 “WEA와 교류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박 #WEA #오정현목사 #사랑의교회
이국진의 “WEA와 교류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박
- 고경태 논설위원
- 입력 2021.06.13 09:41
- 수정 2021.06.13 09:43
※ 아래 ’초록색 굵은고딕 글씨‘는 이국진 박사의 논문 목차이며, ’군청색 Th.(Theses)’은 논자의 주장을, ‘붉은 색 Arg(Argument)’은 논박자의 비판/주장이다.
1. 방법론
Th1. 오직 연구는 오로지 사실에만 근거해야 한다. 색깔론이 아닌 비교적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사실에 근거하여 판단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전체 그림을 통해서 평가한다.
Arg. 이 박사의 WEA의 평가는 편향되어 있고, 지협적이다. 전체 그림이 아니라 WEA와 소속한 신학자 글의 일부분만 인용하여 되레 지엽적이다. 더욱이 곳곳에 사용한 ‘성경 인용’도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다소 동떨어져 있다.
2. ”다종교 세계에서의 기독교 증거: 실행을 위한 제안“ 평가
Th1. WEA가 공격을 받는 가장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2011년에 <다종교 세계에서의 기독교 증거: 실행을 위한 제안(Christian Witness in a Multi-Religious World: Recommendations for Conduct)>에 공동으로 서명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공동성명서’는 단지 전도를 위한 문서라고 한다.
Arg. ‘공동합의서’에 언급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나눔’, ‘충실하게 그리스도를 증언’, ‘궁극적인 회심은 하나님이 하는 일’ 등을 말한다. 지금 언급한 개념들은 문장 자체로는 복음적이나, RCC(로마가톨릭)나 WCC는 개혁주의와 전혀 다른 개념으로 사용한다. 만일 WEA가 1864년 ‘믿음의 진술’을 가치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당연히 개혁주의적 선교 혹은 전도에 대한 본질적인 진술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런 것이 빠진 것은 문병호 교수의 지적대로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 양시론(兩是論)이다.
Th2. 김영한 교수 “WEA가 WCC와 상당한 공통분모를 가지면서도 차별성이 있는 것은 WCC가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데 반하여 WEA는 종교다원주의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제시하면서 명료하게 결별하는 태도를 취하는 점이다.”라는 주장을 인용한다.
Arg. 김영한 교수의 글을 인용해서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려고 하나, <공동합의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해 어디에도 언급하지 않는다. 김영한 교수는 개혁신학과 복음주의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다.
3. WEA는 종교 혼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가?
Th1. “광주・전남협의회”의 <WEA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서, “WEA는 WCC나 RCC가 동일하게 종교 혼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라고 발표했다. 사실과 다르다는 논리를 토마스 쉬르마허의 해명과 WCC 부산 총회의 인사말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세계 종교통합” 또는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한다는 표현은 한 마디도 없다고 한다.
Arg. 첫째, 이 박사의 제시는 너무 안일한 인식이든지 연구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① 토마스 쉬르마허는 “WEA는 “세계적 기독교 포럼”(Global Christian Forum, 이하 약칭, GCF)으로 전 세계의 크리스천들이 하나가 되게 하는 방편이 되고 있다“라고 했다. GCF는 WCC, RCC, WEA, 오순절 교회의 연합이다. 2020년 플러 신학교 제2차 모임에는 아프리카 교단, 메노나이트, 감리교, 모라비안, 구 가톨릭, 정교회, 오순절, 개혁파, 로마 가톨릭, 구세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가 모였다.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 다양한 교파와 교단들의 모임이 어떻게 ‘하나’가 되는 것이 가능한가? 교리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소상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둘째, WEA 내의 비판에 대해 WEA 저널에 토마스 쉬르마허, 토마스 존스, 롤프 힐레의 글 세 편이 연재되었다. 롤프 힐레는 “에큐메니컬 대화(ecumenical dialogue)”를 함에 있어서, 제2차 바티칸회의 이후 미래를 향하여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성경 공부를 강조하고 있으므로, 서로 “더 깊은 일치(deeper unity)를 발전시켜 가야 한다”라고 결론짓는다. 토마스 쉬르마허나 토마스 존슨도 같은 논조이다. “이제 많은 로마 가톨릭주의자들이 오직 믿음에 의한 칭의를 확정하고 있다는 것 등이 로마 가톨릭과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할 명분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RCC가 자신들의 교리를 포기한 일이 결코 없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회의의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공헌자는 Karl Rahner이다. 그에 의해 정초 된 로마교회 교리들이 반성경적이라는 사실은 조금이라도 신학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모를리 없을 것이다.
셋째, 1992년 WEA 마닐라 총회에서 풀 슈로덴부어(Paul G. Schrotenboer)는 성경과 전통에 대해 “성경은 기독교 전통의 일부이며 동시에 성경은 전통의 전체 역사에 있어서 고유한 역할을 감당하며 존재한다. 성경은 전통이 된 구원의 역사를 말하는데, 이에 상응하여 그 전통은 정경의 글들 가운데서 규범적인 양식을 취하였다. 전통은 성경에 앞섰으며 또한 성경을 뒤따른다”라고 했다.
넷째, 이러한 명백한 진술들 앞에서 토마스 쉬르마허의 일부 발언만 발췌해서 논리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것은 매우 빈약한 논증일 뿐이다.
다섯째, WEA 지도자들의 이런 주장 때문에, 문병호 교수는 GCF가 ”교회의 일치를 넘어서 인류의 일치를 지향하는 WCC와 제2차 바티칸회의 이후의 RCC의 에큐메니컬 신학과 궤를 같이한다고 진단한고 하는 주장은 논리의 비약인가? 그렇지 않다. 근거 있는 평가이다.
4. WEA는 WCC, RCC와 상호 협력하고 있는가?
Th1. 논자는 “광주・전남협의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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