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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을 이단 성경으로 정죄하는 정동수 목사의 대사기극 4

개역을 이단 성경으로 정죄하는 정동수 목사의 대사기극 4


개역을 이단 성경으로 정죄하는 정동수 목사의 대사기극 4

800년 전의 사본이 800년 후의 사본의 내용을 삭제했다는 황당한 궤변

개역과 영어 현대역의 헬라어 본문인 UBS 성경은 눅 2:33에서 요셉과 마리아를 각각 파테르(πατήρ-아버지)와 메테르(μήτηρ-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NIV는 이 구절을 “그 아이의 아버지(the child’s father)”라고 번역하고, 개역은 “그의 부모”라고 번역했다. UBS 헬라어 성경은, TR 헬라어 성경 (영어 킹제임스 성경의 헬라어 본문 성경)과 달리, 대다수의 학자들이 신뢰하는 초기 사본인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에 기초해서 요셉을 아버지(파테르-πατήρ)라고 부른 것이다. 따라서 요셉과 마리아를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부모”로 부르는 것은 100% 성경적인 것으로서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부정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정동수는 개역과 NIV의 번역을 기형적인 논리로 왜곡해서 그 번역들이 예수님의 처녀 탄생과 신성을 부정한다는 괴이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정동수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백해무익한 비성경적인 궤변이다.
 

정동수는 또 개역과 NIV가 신약의 여섯 구절(마 8:2; 9:18; 15:25; 18:26; 20:20; 막 5:6)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를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판단하기 위해 정동수가 지적한 여섯 구절 중 하나인 마 8:2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KJV(흠정역)는 이 구절을 “한 나병 환자가 와서 그분께 경배하며”라고 번역한다. 반면 개역과 NIV는 한 나병 환자가 와서 무릎을 꿇고”라고 번역한다. 그러면 이 두 번역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번역인가?
 

여기 경배하다와 무릎을 꿇다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프로스쿠네오(προσκυνέω)에서 온다. 이 단어는 무릎을 꿇다, 절하다, 예배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개역의 “절하다” 혹은 NIV의 “무릎을 꿇다” 혹은 KJV의 “예배하다” 등은 사전적인 의미로 볼 때 모두 타당하다. 그러나 헬라어 같이 한 단어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을 때는 문맥과 가장 조화를 잘 이루는 뜻을 선별적으로 취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8장 1절과 2절을 함께 보면 그 단어와 문맥의 관계가 드러난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여기 문맥을 보면 나병 환자가 참된 예배를 드리는 신자인지 혹은 단지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는 불신자인지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예배를 드렸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NIV는 이런 불확실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나병 환자가 무릎을 꿇었다”라고 번역을 한 것이다. NIV는 이 구절을 신중하게 잘 번역했다. 이런 맥락에서 개역과 NIV가 마 8:2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경배를 부정했다는 정동수의 주장은 억지 주장이요 독단적 주장이요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개역과 NIV가 그리스도께 대한 경배를 부정하기를 원했다면 이보다 훨씬 더 확실한 구절들에서 분명하고도 광범위하게 그렇게 했을 것이다. 정동수의 부당한 주장과는 반대로 개역과 NIV는 그리스도를 향한 예배의 가르침으로 충만하다.
 

그리고 정동수는 개역과 NIV가 엡 3:9에서 그리스도가 창조자이심을 삭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 먼저 성경 구절을 보도록 하자. KJV는 이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번역했고, 개역과 NIV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번역했다. 이 두 번역을 비교해 보면 개역과 NIV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라는 말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동수는 이것을 보고 개역과 NIV가 그리스도가 창조자이심을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말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몰상식하고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과거의 기록은 미래의 기록을 삭제하거나 첨가하거나 변개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세기에 필사된 사본이 12세기에 만들어진 사본의 기록을 삭제하거나 첨가하거나 변개시킬 수는 없다. 물론 반대로 12세기의 사본이 4세기의 사본의 기록을 삭제하거나 첨가하거나 변개시킬 수는 있다.
 

에라스무스는 헬라어 성경을 만들 때 12세기 이후의 비잔틴 사본들을 참고해서 만들었다.[14] 그의 헬라어 성경은 나중에 텍스투스 레켑투스(Textus Receptus, 줄여서 TR)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1611년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TR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개역과 NIV는 UBS 헬라어 성경을 기초로 만들었다. 그리고 UBS 성경이 주로 참고한 것은 4세기의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이다. 그러니까 개역과 영어 현대역의 사본은 킹제임스 성경의 사본보다 무려 800년이나 앞선다. 그러면 800년이나 앞선 개역과 NIV가 어떻게 800년이나 늦은 킹제임스 성경의 내용을 삭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정동수는 800년이나 앞선 4세기의 사본을 번역한 개역과 NIV가 이보다 800년이나 늦은 12세기의 사본을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의 내용을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몰상식하고 황당무계한 주장이 세상에 또 어디 있는가? 정확한 사실을 말하면, 킹제임스 성경의 기초인 12세기의 사본이 개역과 NIV의 기초인 4세기 사본에 “그리스도에 의해”라는 말을 임의로 끼워넣었을 것이다. 과거의 사본이 미래의 사본의 내용을 삭제했다는 정동수의 주장은 몰상식과 황당무계함과 후안무치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동수의 주장은 명백한 교리 사기에 해당된다. 이런 맥락에서 정동수는 교리 왕사기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개역과 NIV가 4세기의 사본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라는 말을 포함하지 않고 있지만, 성경의 전반을 통해 그리스도가 창조자이심을 분명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사실상 KJV와 개역과 NIV는 그리스도가 창조자이심을 선포함에 있어서 100% 일치한다. 번역이 다소 다른 한 구절을 왜곡해서 개역과 NIV를 마귀가 부패시킨 마귀의 작품으로 만들려는 정동수의 노력은 심히 개탄스러운 것이다.
 

정동수는 개역과 영어 현대역(NIV, NASB, ESV 등)의 구절이 KJV와 다르면 무조건 (성경 원본과 동일한) KJV의 내용을 삭제, 첨가, 변개시켰거나 성경 진리를 격하, 부정, 손상시켰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나 TR이 영감을 받은 오류가 없는 성경이라는 이단 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여러 가지 오류가 들어 있는 성경을 완전한 성경이라고 속여 말하는 교리 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KJV와 다른 헬라어 성경과 다른 고대 사본을 참고해서 번역한 성경들이지 KJV를 개역한 성경들이 아니다. 따라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KJV의 내용을 삭제, 첨가, 변개시켰다는 주장은 전혀 가당치 않은 말이다.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KJV와 기본적 교리와 가르침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표현과 내용에 있어서는 몇 군데에서 사소한 차이가 있다. 정동수와 같은 KJV 유일론자들은 그 사소한 차이를 엄청나게 부풀려서 마치 근본 교리가 크게 다른 것처럼 과장을 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사소한 차이를 정통 교리와 이단 교리의 차이로 둔갑시킨다.
 

예를 들어 정동수는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갈 4:7에서는 성도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을 부정하고 있고, 마 18:11에서는 그리스도가 잃어버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부인하고 있으며, 요 16:16에서는 예수님의 승천을 부정하고 있고, 고전 15:47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으며, 요 3:13에서는 예수님의 편재성을 부정함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고, 엡 5:30에서는 예수님의 몸의 부활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통해 정동수는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정통 교리를 부정하는 이단 성경, 한 걸음 더 나아가 마귀가 변개시킨 성경으로 매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갈라디어 4:7에서 성도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KJV처럼 “그리스도를 통한” 이라는 표현이 없는 사본을 그대로 번역한 것일 뿐이다. 오히려 KJV의 갈 4:7에 있는 “그리스도를 통한”이라는 표현은 후에 필경사들이 그 구절을 강화하기 위해 첨가했을 가능성이 다분히 크다. 왜냐하면 사본학자들은 성경의 원본을 복원하는 작업을 함에 있어서 사본의 수많은 변종들 중 ‘더 짧은 읽기 자료’를 원본에 더 가까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필경사는 본문에서 자료를 삭제하기 보다는 설명을 위해 첨가할 가능성이 많다”[15]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정동수가 제시한 여러 구절들에 그대로 적용된다. 개역과 영어 현대역의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KJV의 비잔틴 사본에 있는 표현들을 포함하지 않고 있는 것은 성경의 진리를 부정하려 함이 아니다. 오히려 KJV의 비잔틴 사본 필경사들이 더 명확한 설명을 위해 첨가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해석은 대다수의 사본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입장과 일치한다.

자료출처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71



 김홍기 목사에 의하면,
정동수 목사는 
개역과 NIV가 신약의 여섯 구절(마 8:2; 9:18; 15:25; 18:26; 20:20; 막 5:6)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를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

김홍기 목사에 의하면, 
문맥을 보면 나병 환자가 참된 예배를 드리는 신자인지 혹은 단지 경외하는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는 불신자인지 분명하지 않다.
또한,
김홍기 목사는,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예배를 드렸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기 때문에,. 
NIV는 이런 불확실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나병 환자가 무릎을 꿇었다”라고 번역했다고 말했다

그런 까닭에,
김홍기 목사는,
이런 맥락에서 개역과 NIV가 마 8:2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경배를 부정했다는 정동수의 주장은 억지 주장이요 독단적 주장이요 비성경적인 주장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김홍기 목사에 의하면,
정동수는 800년이나 앞선 4세기의 사본을 번역한 개역과 NIV가 이보다 800년이나 늦은 12세기의 사본을 번역한 킹제임스 성경의 내용을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깅홍기 목사는,
개역과 NIV가 4세기의 사본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라는 말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킹제임스 성경의 기초는 12세기의 사본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정태홍목사의 유튜브채널 https://www.youtube.com/user/rptmini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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