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을 이단 성경으로 정죄하는 정동수 목사의 대사기극 2
개역을 이단 성경으로 정죄하는 정동수 목사의 대사기극 2
자료출처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871개역이 예수님이 범죄하셨다고 가르친다는 기상천외한 궤변정동수의 교리적 사기극을 폭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다루는 성경 구절들과 이와 관련된 그의 주장들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보는 것이다. 정동수는 마 5:22과 관련해서 개역과 NIV가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하셨다고 가르치도록 마 5:22을 변개했다”고 주장한다. 여기 “변개했다”는 주장은 성경 원본과 동일한 KJV와 번역이 다르다는 뜻이다. 개역과 NIV는 마 5:22에서 KJV와 번역이 다르므로 그리스도가 죄를 범하셨다고 가르치는 것이며, 따라서 개역과 NIV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 성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동수의 주장은 개역과 NIV뿐 아니라 NASB와 ESV에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이 성경들은 마 5:22에 대해 모두 동일한 의미로 번역했기 때문이다.그러면 KJV와 개역 및 영어 현대역(NIV, NASB, ESV)은 번역이 어떻게 다른가? KJV는 마 5:22을 이렇게 번역한다. “누구든지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킹제임스 흠정역). 반면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이런 뜻으로 번역한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정동수는 이 둘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KJV는 형제에게 까닭 없이 화를 내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한 반면,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화를 내면 무조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두 가지 다른 번역들을 예수님이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을 엄중히 책망하신 사건에 다음과 같이 적용한다. KJV는 까닭이 있어 화를 내신 예수님의 행위는 범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반면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화내면 무조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번역함으로 예수님이 성전에서 화내심으로 범죄하셨다고 말한다.정동수의 위와 같은 주장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가! 예수님이 마 5:22에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라고 말씀했을 때, 그 분노는 예수님이 성전에서 보여주신 의로운 분노를 포함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존 맥아더 목사는 마 5:22의 분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르기조(화를 내다)는 키우고 죽도록 허용하지 않는 음울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원한을 품는 것과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억울한 마음에서 보여진다.”[8] 즉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말하는 마 5:22의 분노는 성경이 인정하는 의로운 분노를 포함하지 않는, 죄가 되는 분노만을 가리키는 것이다.그러므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까닭 없이”라는 말을 포함하지 않음으로 형제를 향한 모든 분노를 죄로 정죄했고, 이로 말미암아 성전에서 분노하신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들었다는 정동수의 주장은 허튼소리에 불과하다. 이것은 형제를 향한 분노가 의미하는 바를 보아도 그렇고 마 5:22이 위치한 문맥을 보아서도 그렇다.마 5:22의 직전 구절은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21)라고 말한다. 이 구절의 번역에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은 KJV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런데 정동수의 주장대로 하면 이 구절이 “까닭 없이”라는 말을 포함하지 않고 있음으로 성경은 모든 살인을 죄로 정죄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에 발생하는 살인을 죄로 정죄하지 않는다. 즉 전쟁 중의 살인(수 8:1-2; 삼상 15:3)과 정당방위에서의 살인(눅 22;36) 사형에서의 살인(출 21:12)이 여기에 해당된다.그러면 KJV가 마 5:21을 번역함에 있어서 “까닭 없이”라는 말을 포함하지 않음으로 KJV는 모든 살인을 죄로 정죄하고 있다고 말하면 정당한 주장이 되겠는가? 정동수의 주장대로 한다면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KJV가 성경의 다른 구절들이 말하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정당화된 살인을 부정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즉 정동수의 주장대로 하면 KJV는 서로 상충하는 주장을 가진 잘못된 성경이 된다.그러므로 “살인하지 말라”(마 5:21)는 말씀이 정당화된 살인을 포함하지 않는 것처럼,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 5:22)도 정당한 분노(예: 예수님의 의로우신 분노)를 포함하지 않는다. 문맥상 여기의 살인과 분노는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여기서 살인과 분노는 정당한 경우를 포함하지 않는다.이처럼 성경의 한 구절을 이용해서 성경 전체의 교리를 수립하면 정동수의 사기극과 같은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의 교리를 결코 한 구절이 아닌 성경 전체의 관점 위에서 종합적으로, 체계적으로 세워야 한다. 마 5:22에 대한 개역과 영어 현대역의 번역은 그 한 구절이 아닌 성경 전체의 관점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이해되어야 한다. 만약 정동수처럼 한 구절을 가지고 성경을 판단한다면 개역과 영어 현대역 같은 정통 성경들을 이단 성경으로 정죄하는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며, 동일한 이유로 KJV를 잘못된 성경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마 5:22에서 “까닭 없이”라는 표현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그것들의 헬라어 성경, 즉 헬라어 사본이 그 표현을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수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카톨릭 이단 사본(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이 이단 개역성경과 이단 영어 성경들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비록 개역과 영어 현대역을 ‘이단 성경’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다른 복음,”“다른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말은 개역과 영어 현대역(NIV, NASB, ESV)은 ‘이단 복음,’ ‘이단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건하고 보수적인 학자들은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까닭 없이”를 삭제하여 성경을 변개시킨 것이 아니라, KJV가 “까닭 없이”라는 말을 임의로 첨가하여 성경을 변캐시킨 것으로 본다.
마태복음 5장 22절은 다음과 같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
정동수 목사는
정동수는 마 5:22과 관련해서 개역과 NIV가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하셨다고 가르치도록 마 5:22을 변개했다”고 주장하나,
존 맥아더에 의하면,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말하는 마 5:22의 분노는 성경이 인정하는 의로운 분노를 포함하지 않는, 죄가 되는 분노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김홍기 목사는,
“살인하지 말라”(마 5:21)는 말씀이 정당화된 살인을 포함하지 않는 것처럼, '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 5:22)도 정당한 분노(예: 예수님의 의로우신 분노)를 포함하지 않는다.
개역과 영어 현대역이 마 5:22에서 “까닭 없이”라는 표현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그것들의 헬라어 성경, 즉 헬라어 사본이 그 표현을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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