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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_김재성 교수, 능동수동 신학자들이 만든 용어 만고불변 진리아냐




김재성 교수, 능동수동 신학자들이 만든 용어 만고불변 진리아냐
정이철승인 2019.02.25  08:39:57

(국제신학대학원 부총장 김재성 교수의 논문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에서 능동적, 수동적 순종 부분을 몇 회에 걸쳐서 연재한다. 기존 신학의 능동적, 수동적 순종의 의미는 수용하지만, 십자가의 죽으심과 분리되는 율법준수의 의의 전가에 대한 강조는 김 교수에게서 발견되지 않는다.) 

   
 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 부총장/조직신학)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대변하는 가장 결정적인 개념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이다. 첫 사람 아담의 실패 뒤에 오신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한 사람이었고, 우리와 같은 인간 본성을 가졌다. 그리스도는 참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자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였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께 대항하여, 순종하는 사람이 견뎌내야 할 인내와 신의를 배반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순종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고통을 참고 이겨내면서 항상 성령과 함께 하셨고, 죽기까지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순종하였다. 빌립보서 2장에 담긴 기독론에서 핵심사항이자, 신약성경 전체에서 둘째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온전한 순종이다. 첫 사람 아담과 대조되는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의 특징은 순종에 달려 있었다. 첫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실패한 것을 마지막 아담이 성취했다 (고전 15:45).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게 되었다 (롬 5:19).


대속적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

둘째 아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결정적으로 설명하는 용어가 순종이다. 특히 로마서 5장 11절에서 19절까지, 가장 선명하게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이 대조를 이룬다. 예수님의 순종은 그 특징이 인류를 “대리하는 순종”을 (vicarious obedience)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고 오셔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 (히 5:7-9).

둘째 아담으로서 오신 분으로 죄가 없는 분이시며, 대리자로서 순종을 감당하였다. 물론 엄청난 희생과 인내가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일반 사람들로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당하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은 대속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속죄제물을 대속의 제물로 바쳐온 유대인들의 제사가 마지막 날에는 단 한분 중보자가 스스로 결단하여서 단번에 성취하셨다(히 7:27, 요 10:17-18).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시다. 창세기 2장 17절에, 죄에 대한 보응은 죽음이라고 선언되었으며, 죄의 삯은 사망이다 (롬 6:23).

따라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우리를 위해서 죄인과 같이 되셨다 (고후 5:21). 사도 바울이 여기서 함축하는 바는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스도께서 죄인처럼 취급을 당했다는 의미이다. 우리들의 죄악이 그분에게 전가되어졌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고전 15:3).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5번과 16번에서 낮아지셔서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저주받으심을 요약한 바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우리들의 빚을 갚아주셔야만 했다. 그것은 우리들 자신들이 죽음에 이르더라도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빚이다.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고자 그리스도는 가장 잔인하고 처참한 방법으로 죽음의 형벌을 감당하였다. 돌트 신경 2장 3항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죄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도 유일한 희생이며 만족이요, 무한대한 가치와 존귀함이 있으며, 모든 세상의 죄악들을 대속하기에 넘치도록 충분한 것이다”고 고백하였다.

'죽기까지 순종하심'은 엄청난 사태가 닥쳐옴을 의미한다. 죽음이 지배하는 세계, 사망이 다스리는 곳에서 삼일동안이나 그리스도께서 남겨진 것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가장 깊은 처절함과 비통함과 치욕을 당하시고자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신 것이다. 죽음과 지옥의 모욕, 수난의 가장 비참함을 다 경험하시고, 부활과 승천으로 승리하신 구세주가 되셨다 (벧전 3:19,22).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거절을 당하고 짓밟히는 모욕을 참아야만 했고, 마침내 목숨을 잃어야만 하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버려졌으며, 죽임을 당했다 (행 2:23, 5:30).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하고 의로운 분'(행 3:14)이지만, 장차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 계셨다 (막 10:33-34).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전혀 죄가 없는 분이다 (히 4:15).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이러한 일을 마치기까지 전 생애 동안에 그리스도는 왕이 아니라 순종하는 종으로 성취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과 죽음을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선포했다 (요 10:17-18). 그분은 순교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중보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은 중보자의 피와 눈물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다”(막 10:45).

메첸 박사는 “그리스도의 전 생애 동안 벌어진 일은 죄의 값을 지불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생애의 모든 순간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영광스럽게 준수하는 일부분들로 구성되어졌고, 그로 인해서 자기 백성들에게 영생을 선물로 가져다 줄 수 있었다”고 풀이했다. 그리스도 자신이 만물의 주님이시므로 전혀 그렇게 순종할 것을 요구할 수 없다.

앞에서 설명한 그리스도의 순종적인 생애를 분석해 보자면,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다소 신학용어상의 오해가 있으므로, 어떻게 해서 이런 개념이 쓰이게 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현대 신학에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해'라는 개념이 훨씬 더 비중 있게 사용되고 있지만, 그 내용은 그리스도의 희생, 즉 순종하심으로 이뤄낸 대속제물 되심에 근거한다.

개혁신학자들이 성경을 깊이 연구하게 되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전 생애 동안에 모든 율법을 지켜낸 것은 순종의 내용들이 두 가지로 구별해 보고자 했다. 하나는 '능동적 순종'(active obedience)이요, 다른 하나는 '수동적 순종' (passive obedience, 혹은 '교훈적 순종'(preceptive obedience)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칭의론에 근거하여, 워필드 박사는 이런 '능동적 순종' 통해서 성취된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믿는 성도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생애를 '능동적 순종'이라고 불렀다. 고난당하시고 마지막에 죽임을 당하는 것은 '수동적 순종'이라고 구별했다. 헬라어와 라틴어에서 고난 당하다는 단어를 영어로는 수동적이라고 표현하게 된 것이다. '수동적'이라는 형용사는 라틴어에서 '파티오르'(patior)에서 파생되었다. 원래 이 단어는 ‘고난을 당하다’라는 동사형에서 나왔다.

아직 이런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두 가지 순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해를 돕고자 한다. 개혁신학자들이 사용한 '능동적 순종'은 인간의 몸을 입고 살아가신 전 생애 기간 동안에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켜냈음을 의미한다. '수동적 순종'이란 그리스도의 생애가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면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최종적인 복종이다.

이처럼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옮겨주시옵소서”라고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피가 되도록 진통을 겪으셨기에, '수동적 순종'(passive obedience)라고 규정했다.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이라 함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끌려가듯이 해서 결국에는 마지못해서 복종한다는 뜻이 아니라, '고난과 수난을 당하면서도' 처참한 처지에 던져지기까지 복종하다는 뜻이다. 혹자는 '희생당하는' 순종이라는 점을 구별해서 표현하고자 사용된 단어다.

특히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전가받는다는 것은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의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행위언약이라는 신학용어 역시 논쟁을 낳고 있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정확하게 규정해 놓았으므로,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능동적 순종에 대해서 열성적으로 강조한 메첸 박사는 “그리스도가 단지 우리를 위해서 죄의 형벌을 대신해서 지불하였을 뿐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특히 아담이 행위언약 아래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고 지켜야만 할 것을 하지 않았듯이 그러한 상태에서 우리가 해야만 할 사항들을 전혀 성취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완벽한 순종에 근거하여 얻는 영생을 우리가 얻을 수 없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는 죄 값을 지불함에서 있어서나, 율법을 지키는 면에서 있어서나 우리의 대표자이며, 자신을 통해서 구원을 얻은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완벽한 순종을 함으로써 보상을 받게 해 주셨다. 메이첸은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없다면, 그 어떤 희망도 없다"고 토로했다.

신학자들이 개발해 낸 신학 용어들은 시대적인 정황이 반영되어 있어서,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 개혁신학자 레이몬드 교수는 조금이라도 '수동적'이라는 용어가 빚어낼 오해를 염려했다. 현대인들은 종교개혁자들이 사용한 신학적 표현에 대해서 즉흥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레이몬드 교수는 그리스도가 결코 하기 싫어하거나 억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 즉 수동적으로 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원하고 전적으로 염원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교훈적 순종' 혹은 '명령적 순종'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기를 제안하였다. 
김재성 교수 / 국제신학대학원 부총장, 조직신학

자료출처 http://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1398


 







RBD Counseling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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