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이단으로 규정했다는 노승수 목사의 항변에 대해
정이철 승인 2019.02.12 02:08:07
노승수 목사가 <바른믿음>에서 자신에 대해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반박과 해명의 글을 발표하였다. 독자들이 판단하기 쉽게 간략하게 두 번에 걸쳐서 설명하고자 한다.
1. 사진과 실명에 대해
인천의 어떤 경찰서의 한 형사님이 미국으로 전화를 했다. 노 목사가 와서 고소하려고 하니,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노 목사가 옆에 있는데 통화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으나,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형사님께서 실명을 쓰는 것은 형사법에, 사진을 쓰는 것은 민사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하여 실명을 노 목사로 고치고, 사진도 노 목사과 무관한 사진으로 바꾸는 과정의 혼선이 있었다. 그래서 <바른믿음>의 노승수 목사 기사 공간의 명칭이 달라지고, 사진이 무관한 그림으로 바뀌는 등의 혼선이 있었다.
노 목사의 반박의 글을 보니, 자신도 정이철 목사의 사진과 실명을 사용하였다. 노 목사는 <바른믿음>이 자신의 사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민사배상하겠다고 했었는데, 지금 자신도 남의 사진을 허락받지 않고 사용했다. 더 이상 실명이나, 사진 사용 문제로 고소하겠다고 말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바른믿음>도 실명과 사진을 사용할 것이다. 더 이상 고소, 고발, 민사배상 등의 말을 하지 않을 것으로 믿겠다.
2. 부정확한 제보로 말미암은 기사에 대해
<바른믿음>이 이미 부정확한 제보 때문에 실었던 노승수 목사 관련 기사의 내용을 지우고, 대신 그 자리에 사과의 글을 가득 채웠음에도 여전히 노승수 목사는 그 일을 언급한다. 형사님께서 잘못된 제보로 말미암은 기사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을 담은 글을 아예 내리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내렸다. 그 일로 인해 이 논란이 시작되기는 했으나, 더 중요한 것은 노 목사의 예수께서 능동순종(율법순종)으로 의를 얻어 전가하시었다는 사상과 <바른믿음>으로부터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지적받은 자신의 심각한 내용들이다.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3. 노 목사의 댓글을 중시하는 자세에 대해
노승수 목사는 기사에 딸린 사소한 댓글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3년 전의 정이철 목사가 어디에 남긴 댓글들을 보관하고 있다가 써 먹기도 한다. 정식으로 작성한 글의 내용이 아닌 댓글을 이용하여 말꼬리를 잡는 것은 부적절하다. 댓글은 누가 쓴 글인지도 알 수 없고, 실명으로 썼다고 해도 정성과 주의가 부족하여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표현이 많다. 이후로는 댓글을 통해 의견을 밝히거나 비판하지 않기를 바란다.
4. 정 목사가 자신을 이단으로 규정했단 항변에 대해
“누가 정이철 목사에게 이단을 판단할 권한을 주었는지? 입니다. 또한 이단 규정이 정이철 목사 개인의 몫인가? 하는 것입니다. 각 교단의 신학부와 이단대책위원회 그리고 교수님들의 신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한 공교회적인 판단이어야 합니다.”(노 목사)
노 목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마치 정이철 목사가 자신을 이단으로 규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독자들에게 그릇된 이미지를 심고 있다. 언제 정이철 목사가 노 목사를 이단이라고 했는가? 정이철 목사는 항상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 목사 싸이트에서 그 분들이 뒷담화한 내용이 사실은 노 목사에게 곧 바로 해당되는 치명적인 이단사상이라는 것을 지적했을 뿐입니다.”(노 목사, 설 지나서 고소 및 민사배상 청구할 것이라 밝혀/2019.2.1)
5. <바른믿음>이 문제 삼은 노 목사의 심각한 이단적인 주장들
1)그리스도가 능동순종으로 자신을 구원받게 했다는 주장
“첫째 칭의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의 전가이며, 둘째 칭의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입니다. 이것은 행위언약의 교리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로서 그가 이루신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 곧 행위언약에 대한 성취인 것이죠.”(노 목사, 강남성도교회 싸이트, 2017.12.15. 노 목사의 페이스 북(2017년 12월 14일)
노 목사는 그리스도가 능동순종으로 자신을 구원받게 했다는 이 주장이 이단적이라고 지적받자 다음과 같은 글을 또 페이스 북에 올렸다.
“이 문답에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순종하셨듯이 마치 내가 완전하게 순종했던 것처럼’(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60항)이란 표현이 제가 표현한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로서’라는 표현의 의미입니다.”(노 목사의 페이스북, 2월 4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60항이 정말 노 목사의 그리스도 자신 역시 구원되어야 하는 존재임을 의미하는 표현인가? 노 목사는 역사적 신앙문서도 왜곡하면서 자신의 그릇된 사상을 옹호하였다.
또한 노목사는 자신의 최근의 반박의 글 “노승수, 정이철 서철원을 안셈과 피스카토에 비유한 적 없다”(울리/2019.2.11)에서 또 다시 루터와 바빙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같은 주장을 반복하였다.
“그분은 우리의 죄와 형벌을 짊어지셨고, 우리를 위해 그것들을 정복하면서도 마치 자신을 위해 그것들을 정복하는 것처럼 행하셨습니다.”(노 목사가 인용한 루터의 말)
노 목사는 예수께서 죄와 형벌을 정복하였다는 루터의 말이 자신의 예수가 능동순종으로 예수 자신을 구원받게 만들었다는 주장과 같은 내용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의 성육신과 그가 사람이 된 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노 목사가 인용한 바빙크의 말, 개혁교의학 3권, 464)
노 목사는 위 바빙크의 말 속에 성육신의 이유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구원의 목적도 있었다고 바빙크가 말했다는 은근한 주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이 실수를 고친 사람의 태도인가?
“그런데 어쩌면 좋습니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도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벌코프의 표현을 토시하나 안 빼고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은혜 언약을 소개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능동적이고 동시에 수동적인 순종을 통하여, 행위언약이 규정한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했고 실제로 충족시키셨다."(노 목사, 벌코프, 조직신학, 504).
같은 글에서 노 목사는 벌코프이 이 내용을 제시하면서 벌코프도 그리스도가 자기를 능동순종으로 구원받게 가르쳤다고 암시하며 "벌코프도 이단인가?" 라며 억지를 부렸다. 이것이 실수한 사람이 실수를 고치는 자세인가?
2) 그리스도가 자신의 속죄를 스스로 이루셨다는 주장
“이 때 칭의란 바로 그리스도 속죄를 그리스도가 이루신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노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2일)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한 속죄를 자신이 (농동순종으로) 이루셨다는 이전의 주장에 대한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지에 대해 밝히기 바란다. 만일 변하였다면 변명이 아닌 사과를 해야만 한다. 명시적인 문장에 대해서는 분명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
3)종교개혁의 핵심이 능동적 순종 사상이라는 주장
노 목사는 지난 2월 2일 페이스 북에서 다음과 같이 종교개혁의 핵심 정신이 능동순종 사상수립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은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적 구조다”(노 목사)
“이 지점을 생각하면 종교개혁 신학이 그 출발선상에서부터 능동적 순종의 전가가 얼마나 중요한 개념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정할 경우, 결국 이 자리를 무엇이 대신하게 되냐면 우리의 행위가 대신하게 됩니다.”(노 목사)
“결국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특이하게 능동순종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신학적 위치가 바로 종교개혁 이전의 세미-펠라기안들의 위치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 인정하든 안하든 행위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밖에 없습니다.”(노 목사)
종교개혁의 핵심이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이신칭의’인지, 예수의 율법순종의 공로를 전가받는 능동적 순종 사상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 바란다.
4)예수 믿음으로 얻는 칭의가 부족하다는 주장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부인할 경우, 개혁파 신학 체계에 발생하는 결정적 하자는 바로 범책이 칭의에 의해서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제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구멍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노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3일)
“정통 개혁파 교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가 은혜의 수단을 신자가 능동적으로 사용할 때만 죄의 세력과 그 제거되기 때문에 성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위가 참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행위와 공로를 모두 그리스도께 돌리고 그럼에도 남은 범책과 부패는 신자가 성실하게 은혜의 수단을 교회로부터 받아 사용함으로만 일어나는 것입니다.”(노 목사의 페이스 북, 2019년 2월 3일)
노 목사는 예수 믿음으로 얻는 칭의로는 죄에 대한 책임이 다 제거되지 못하므로, 구원받은 신자가 은혜의 수단을 능동적으로 사용하여 성화를 이루어야 죄에 대한 책임에서 면제된다고 했다. 노 목사에게 묻고 싶다. 대체 얼마나 성화되면 죄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가?
5)죄에 대한 책임이 부모의 생식활동(임신, 출산)에 의해 전달된다는 주장
“셋째, 범책은 부모로부터 전달(propagation)받는 방식, 벌책은 행위언약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매개 없이 전가(imputation)되는 방식입니다.”(노 목사, 2월 3일 페이스 북)
노 목사는 죄에 대한 책임이 인류의 보편적 생육법을 통해 출생하는 아담의 모든 후손에게 전달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부모로부터 전달되는 방식으로 죄에 대한 책임이 전달된다고, 즉 부모의 성적인 행위와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propagation)로 설명하였다. 지금도 이 주장에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바른믿음>은 노 목사를 이단이라고 규정하지 않았고, 그런 일을 하지도 못한다. 단지 이러한 노 목사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그 내용이 이단적이라고 했을 뿐이다. 얼마 후에 노 목사의 반박문 나머지 부분에 대한 <바른믿음>의 입장을 피력하는 글을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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