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Calvinism)와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에 대한 이해
칼빈주의(Calvinism)와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에 대한 이해
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11
김병혁 목사(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라는 이름이 갖는 역사적 성격
역사적으로 칼빈주의라고 알려진 신학체계가 왜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떻게 그 체계가 형성되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17세기 전반기에 네델란드에서 일어났던 신학논쟁을 이해해야만 한다. 1610년 네달란드에서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야코부스 알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1609)가 세상을 떠난지 정확히 1년 후에 그의 가르침을 근거로 해서 그의 추종자들이 5개의 신조조항을 작성하였다. 공개적으로 알미니우스의 신학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 즉 알미니안주의자(Arminian-알미니우스의 추종자를 일컬음)들은 그들이 작성한 신앙에 대한 5개조의 교리를 항론의 형식(Remonstrance, 이런 의미에서 알미니안주의를 ‘항론파’라고 부르기도 함)으로 네델란드 정부에 제출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들의 항의문에서 이미 네델란드 교회가 공식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벨직 신앙고백(The Belgic Confession of Faith, 1561)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 1563)이 그들의 주장하는 내용으로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신앙고백과 신조 및 요리문답들 속에 포함된 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전적 무능, 무조건적 선택 혹은 예정, 특별한 구속, 불가항력적인 은총, 성도의 견인에 관한 교리들에 대해서 반대했다. 즉 그들은 위와 같은 내용들에 대한 네델란드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변경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미니안주의의 주장에 동조하는 목사들이 나타나면서 네델란드 교회는 일대 혼란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알미니안주의의 입장을 성경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 네델란드 의회는 1618년에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도르트에서 국제적인 교회회의를 소집하였다. 이 회의에는 논의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하여 네델란드 정부에서 파견된 18명의 위원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있는 개혁교회들로부터 파견된 칼빈주의파 대표들 105인이 참여하였다. 이 회의는 1618년 11월 13일부터 1619년 5월 29일까지 무려 6개월동안 모두 154회의 공식 회의를 가졌으며, 네델란드 대표들은 교회문제와 관련해서 추가로 22회의 회합을 가졌다. 회의 진행은 철저하게 공개적으로 진행되어 방청객들이 많았다. 회의의 의장과 서기는 모두 철저한 칼빈주의자로 선출되었다. 워버튼(Warbuton)은 다음과 같이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총회는 항론파가 발전시킨 5대 교리에 대해서 세밀하게 검토하면서 그들의 가르침을 성경의 증언과 상호 비교하였다. 그곳에 참석한 회원들은 항론파가 믿음의 법칙으로 유일하게 수용한다고 명확하게 밝히면서 선포했던 가르침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되지 않음을 보고, 그것을 만장일치로 거부하였다. 그러나 그 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단순한 기각은 충분하지 못한 것이라고 보고, 논의되었던 문제들에 대한 칼빈주의적인 참다운 가르침을 밝히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칼빈주의적 입장을 5개의 장으로 구체화시켜 밝혔는데, 이것을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부른다.”
칼빈주의(Calvinism)라는 명칭은 알미니안과의 신학 논쟁을 통해서 구체화된 이름이다. 물론 이 이름은 위대한 종교개혁자 존 칼빈(J. Calvin, 1509-1564)에서 따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칼빈이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신학 사상을 따르는 협소한 개념이라기 보다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신학적 이해와 달리 역사상 가장 개혁되고 완성된 성경적인 신학 사상 체계를 가리킨다. 결과적으로 도르트 총회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한 5가지 항론파 교리는 성경적으로 용납되어질 수 없는 이단적인 사상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판단의 최종적인 권위는 칼빈주의라는 신학 사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의 빛(조명)’에 있었다. 다만 칼빈주의는 성경의 정신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데 사용된 도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알미니안주의의 주장은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교회들 사이에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으며, 도르트 총회를 통해 재확인된 성경적인 ‘예정론’은 현대 교회에서 가장 배척받는 교리가 되었다. 종교개혁의 우산 아래 머물고 있다고 자부하는 개신교 목회자들조차 더 이상 ‘칼빈주의’와 ‘개혁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꺼려하고 있다. 진리가 판명하게 드러난 시대속에 성경의 빛으로 이단으로 규정되었던 사상이 작금에 와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교회의 보편적인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일은 참담하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가지 신학적 전통과 그 양상들
존 칼빈이나 야코부스 알미니우스의 이름이 붙은 두 체계는, 그들 스스로 그 기본적 개념을 만든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오래 전에 이미 만들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두 체계의 기본적인 신학 입장 혹은 성경적 견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전인 수세기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들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역사적 인물과 사실들과 만나야 한다. 예를 들어 칼빈이 지닌 기본적인 교리들의 입장은 이미 주후 5세기에 펠라기우스(Pelagius, 360-420)와 논쟁한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이 옹호한 것들이다. 커닝햄(Cunningham)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칼빈의 칼빈주의 속에 그 본질상 아무런 새로운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미니우스의 알미니안주의 속에도 새로운 것이 없다. 알미니우스의 교리들은 클레멘스 알렉산드리누스(Clemems Alexandrinus) 시대 정도로 되돌아 가서 3-4세기에 있었던 교부들의 수많은 논쟁들 속에서 이미 주장되어졌으며, 당시의 부패한 세속철학의 영향을 받은 교회 속에 널리 유포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5세기의 펠라기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알미니우스보다 건전한 교리로부터 더 이탈한 것은 사실이지만, 명확한 것은 알미니우스처럼 칼빈주의를 반대했다는 점이다.”
펠라기안(Pelagian)은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가르친다. 펠라기우스는 어려서부터 수도원주의 운동에 깊이 관여한 영국 출신의 평신도(layman)로서 400년경에는 로마에서 금욕주의를 설파하는 교사로서 명성을 얻었다. 평소 인간의 의지의 자유(the freedom of the will)에 관해 관심이 많았던 펠라기우스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의지와 책임이 절대적이라고 확신했다.
펠라기우스에 의해 체계화된 신학 사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아담의 죄의 영향은 그 자신에게만 적용된다. (2) 아담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아담의 원죄의 죄책과 오염으로부터 자유롭다. (3) 아담 이후의 모든 어린아이는 아담이 타락 전에 가졌던 것과 똑같은 상태로 태어난다. (4) 아담이 범죄한 결과로 생긴 악한 영향은 그의 자손에게 나쁜 선례를 남긴 것에 불과하다. (5) 인간의 의지는 절대적으로 자유하다. (6) 모든 사람은 자신 안에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지키고 복음을 믿을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가진다. (7) 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는 죄를 짓든 안 짓든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이 없다.
이러한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정통 신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어거스틴에 의해 정죄당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본성이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부패했기 때문에 누구도 자기 스스로 율법이나 복음을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적인 은총은 죄인들이 믿고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 은총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영생할 수 있도록 예정하신 사람에게만 국한되게 미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믿음의 행위는 죄인이 가지는 자유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택함받은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자유은총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였다.
어거스틴이 펠라기안주의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하게 되자, 펠라기안주의의 주장은 신빙성을 잃어 붕괴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얼마 후에 펠라기안주의의 부활을 자처하는 또다른 새로운 신학 사상이 출현하였다. 이들은 펠라기안주의의 입장에서 어거스틴적 견해를 중도적으로 혼합한 것으로, 중간적 입장에서 양쪽의 요소를 모두 취했다고 해서 세미 펠라기안주의(Semi-Pelagianism)라고 불린다. 이들은 어거스틴에게 정죄당한 펠라기우스의 극단적인 주장을 배격하는 한편, 어거스틴의 입장을 적절하게 보충함으로써 자신들의 신학적 차별성과 정당성을 입증하려 하였다.
그들이 주장한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은 원죄로 인해 타락했으며 아담의 죄가 그의 후손들에게 미친다. (2)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임한다. (3)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구원받기를 요청하시고 또한 똑같이 도우신다. (4) 각 사람은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구원에 응하거나 거절할 수 있다. (5) 기꺼이 믿고자 하는 것은 사람에게 속한 부분이고, 하나님은 은총은 다만 그를 도울 뿐이다. (6)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족하게 할 만한 선을 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세미 펠라기안주의 주장 역시 정통 교회 회의를 통해 정죄되었다(2차 오렌지 종교회의, A.D. 529).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세미 펠라기안주의의 주장들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들이 정한 종교적 예식들과 행위들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근거로 삼았다.
16세기 후반 들어, 이러한 잘못된 성경 이해의 망령은 개신교 교회(the Protestant Churches) 안에서 좀 더 세련되고도 체계적인 또 다른 하나의 신학 분파처럼 위장하여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알미니우스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주창된 내용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알미니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주장한 내용들은 펠라기안주의자들이나 세미 펠라기안주의자들에 의해 설파된 내용들의 반복과 변형에 불과하다. 내용적으로 이전 것들에 비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으나, 불행하게도 이들에 의해 주창된 내용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경 이해처럼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도르트 총회를 통해 알미니안들의 견해가 이단으로 정죄된 지 불과 한 세기 반도 지나가기 전에, 죤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펠라기안적 알미니안주의 전통은 정통 신학이 맞이한 위기를 틈타 '복음적 알미니안주의'(Evangelical Arminianism)라는 이름으로 교회 역사의 중심권 안으로 들어왔다. 웨슬리안주의라고 불리는 ‘복음적 알미니안주의’는 ‘항론파’의 5가지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들은 원죄를 긍정하고 믿음에 의한 칭의를 가르치지만 구원의 책임을 인간의 행위에 두고 있다.
다만 앞서 있었던 세미 펠라기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와 차이가 있다면, 웨슬리안들은 이전의 주장에다 성령의 능력과 뜨거움을 통한 개인적인 확신과 성화의 가치 뿐만 아니라 믿음의 윤리적인 의미와 전도의 사명을 매우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웨슬리안주의는 결과적으로 볼 때, 인간의 자력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신인협력적 만인구원설의 세계화에 공헌함으로써 사도들과 어거스틴과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이어지는 정통 교회의 성경 해석을 가장 왜곡하고 파손한 결정적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
우리는 그동안 칼빈주의 체계가 5대 교리로 어떻게 공식화 되었으며, 왜 칼빈주의 5대 교리 혹은 TULIP 교리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고찰은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칼빈주의 체계가 과연 성경적으로 확실하고도 변함없는 지지를 받을 만한가 하는 점이다. 만약 칼빈주의가 성경의 확실한 지지와 증거를 가지지 못한다면 굳이 칼빈주의를 따를 이유도 없거니와 개혁교회를 지향해야 할 의미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 역사상 칼빈주의보다 더 성경의 정신을 잘 드러내고, 성경의 의미를 바르게 증거하는 신학 체계가 없다면 당연히 칼빈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정당한 이해를 갖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신학적, 신앙적 주관주의와 상대주의의 덫에 걸릴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 요소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방식으로 칼빈주의의 핵심 교리들을 파악할 것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다시 말해, 칼빈주의가 성경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할 만한 객관적인 절대적 기준이 필요하다. 칼빈주의를 말하는 사람마다 진리의 최종적인 표준이 되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아무리 듣기 좋은 설교나 감명깊은 신학 사상이라도 해도 성경으로부터 정당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사람의 말과 생각일 따름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한가지 유념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있다. 비록 이해의 선명성을 돕고자 본 강의에서 각각의 독립된 제목하에 취급할 예정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각각의 교리들의 독자적 성격만 강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의 5가지 주장에 대한 각각의 반론적 성격 때문에 구별해서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5가지 주제들은 놀라우리만큼 정교한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이 교리들은 마치 건강한 사람의 몸속에 있는 신경조직처럼 섬세하고 조직적인 체계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말은 하나의 교리를 살펴보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나머지 네 개의 교리와의 연속적인 상호 관련성안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칼빈주의의 5대 교리가 성경적인 진술의 정당성을 확보한 내용이라면 한 가지 교리를 강조하면서 다른 교리들에는 무관심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사람이 죄로 인해 전적으로 타락하고 무능력해진 것을 인정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직 택한 백성만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고백되어져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 전체를 받는다고 하면서도 부분적으로 믿고 있으며, 부분적인 확신을 자랑하고 있는가. 전체 복음을 부분 복음으로 만드는 일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여러 가지 생각가운데 분열된 하나님으로 만드는 일과 다를바 없다. 우리는 간혹 세상의 일과 자신의 무지를 핑계 삼아 잊고 지내려 하지만 두렵고 떨림으로 생각해야 할 내용이다.
앞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일이지만, 입으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인정한다고 하고, 주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과 감각과 욕심에 따라 성경을 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가진 사람일수록 역사적인 신앙고백과 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을 향해서는 ‘신앙고백(교리)보다 성경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 ‘교리를 공부하느니 성경을 한 장이라도 더 읽으라’고 면박을 준다. 앞서 말했듯이 칼빈주의 교리가 성경 내용과 다르거나 성경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 있다면 이들의 지적은 백번 옳은 일이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신앙고백과 교리라는 틀을 통해 그 참된 내용과 해석이 유지되어 왔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조금이라도 인식한다면, 성경과 교리에 관한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의 위험성이 얼마나 참된 신학과 신앙 정신을 훼손시켜 왔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교리를 가지고서 교리를 강조하자는 것이 아니라, 교리를 가지고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함으로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는”(엡 4:13) 수준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혜에 관해 장성한 사람이 되는 일(고전 14:20)이야말로 이 세상을 사는 성도가 추구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본분이며 사명이다. 본 강의를 통해 다가가고자 하는 숭고하면서도 소박한 목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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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혁 목사(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라는 이름이 갖는 역사적 성격
역사적으로 칼빈주의라고 알려진 신학체계가 왜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떻게 그 체계가 형성되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17세기 전반기에 네델란드에서 일어났던 신학논쟁을 이해해야만 한다. 1610년 네달란드에서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야코부스 알미니우스(Jacobus Arminius, 1560-1609)가 세상을 떠난지 정확히 1년 후에 그의 가르침을 근거로 해서 그의 추종자들이 5개의 신조조항을 작성하였다. 공개적으로 알미니우스의 신학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 즉 알미니안주의자(Arminian-알미니우스의 추종자를 일컬음)들은 그들이 작성한 신앙에 대한 5개조의 교리를 항론의 형식(Remonstrance, 이런 의미에서 알미니안주의를 ‘항론파’라고 부르기도 함)으로 네델란드 정부에 제출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들의 항의문에서 이미 네델란드 교회가 공식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벨직 신앙고백(The Belgic Confession of Faith, 1561)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 1563)이 그들의 주장하는 내용으로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신앙고백과 신조 및 요리문답들 속에 포함된 하나님의 주권, 인간의 전적 무능, 무조건적 선택 혹은 예정, 특별한 구속, 불가항력적인 은총, 성도의 견인에 관한 교리들에 대해서 반대했다. 즉 그들은 위와 같은 내용들에 대한 네델란드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변경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미니안주의의 주장에 동조하는 목사들이 나타나면서 네델란드 교회는 일대 혼란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알미니안주의의 입장을 성경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 네델란드 의회는 1618년에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도르트에서 국제적인 교회회의를 소집하였다. 이 회의에는 논의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하여 네델란드 정부에서 파견된 18명의 위원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있는 개혁교회들로부터 파견된 칼빈주의파 대표들 105인이 참여하였다. 이 회의는 1618년 11월 13일부터 1619년 5월 29일까지 무려 6개월동안 모두 154회의 공식 회의를 가졌으며, 네델란드 대표들은 교회문제와 관련해서 추가로 22회의 회합을 가졌다. 회의 진행은 철저하게 공개적으로 진행되어 방청객들이 많았다. 회의의 의장과 서기는 모두 철저한 칼빈주의자로 선출되었다. 워버튼(Warbuton)은 다음과 같이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총회는 항론파가 발전시킨 5대 교리에 대해서 세밀하게 검토하면서 그들의 가르침을 성경의 증언과 상호 비교하였다. 그곳에 참석한 회원들은 항론파가 믿음의 법칙으로 유일하게 수용한다고 명확하게 밝히면서 선포했던 가르침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되지 않음을 보고, 그것을 만장일치로 거부하였다. 그러나 그 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단순한 기각은 충분하지 못한 것이라고 보고, 논의되었던 문제들에 대한 칼빈주의적인 참다운 가르침을 밝히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칼빈주의적 입장을 5개의 장으로 구체화시켜 밝혔는데, 이것을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부른다.”
칼빈주의(Calvinism)라는 명칭은 알미니안과의 신학 논쟁을 통해서 구체화된 이름이다. 물론 이 이름은 위대한 종교개혁자 존 칼빈(J. Calvin, 1509-1564)에서 따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칼빈이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신학 사상을 따르는 협소한 개념이라기 보다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신학적 이해와 달리 역사상 가장 개혁되고 완성된 성경적인 신학 사상 체계를 가리킨다. 결과적으로 도르트 총회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한 5가지 항론파 교리는 성경적으로 용납되어질 수 없는 이단적인 사상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판단의 최종적인 권위는 칼빈주의라는 신학 사상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의 빛(조명)’에 있었다. 다만 칼빈주의는 성경의 정신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데 사용된 도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알미니안주의의 주장은 ‘복음주의'(Evangelicalism)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교회들 사이에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으며, 도르트 총회를 통해 재확인된 성경적인 ‘예정론’은 현대 교회에서 가장 배척받는 교리가 되었다. 종교개혁의 우산 아래 머물고 있다고 자부하는 개신교 목회자들조차 더 이상 ‘칼빈주의’와 ‘개혁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꺼려하고 있다. 진리가 판명하게 드러난 시대속에 성경의 빛으로 이단으로 규정되었던 사상이 작금에 와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교회의 보편적인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일은 참담하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가지 신학적 전통과 그 양상들
존 칼빈이나 야코부스 알미니우스의 이름이 붙은 두 체계는, 그들 스스로 그 기본적 개념을 만든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오래 전에 이미 만들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두 체계의 기본적인 신학 입장 혹은 성경적 견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전인 수세기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들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역사적 인물과 사실들과 만나야 한다. 예를 들어 칼빈이 지닌 기본적인 교리들의 입장은 이미 주후 5세기에 펠라기우스(Pelagius, 360-420)와 논쟁한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이 옹호한 것들이다. 커닝햄(Cunningham)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칼빈의 칼빈주의 속에 그 본질상 아무런 새로운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미니우스의 알미니안주의 속에도 새로운 것이 없다. 알미니우스의 교리들은 클레멘스 알렉산드리누스(Clemems Alexandrinus) 시대 정도로 되돌아 가서 3-4세기에 있었던 교부들의 수많은 논쟁들 속에서 이미 주장되어졌으며, 당시의 부패한 세속철학의 영향을 받은 교회 속에 널리 유포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5세기의 펠라기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알미니우스보다 건전한 교리로부터 더 이탈한 것은 사실이지만, 명확한 것은 알미니우스처럼 칼빈주의를 반대했다는 점이다.”
펠라기안(Pelagian)은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가르친다. 펠라기우스는 어려서부터 수도원주의 운동에 깊이 관여한 영국 출신의 평신도(layman)로서 400년경에는 로마에서 금욕주의를 설파하는 교사로서 명성을 얻었다. 평소 인간의 의지의 자유(the freedom of the will)에 관해 관심이 많았던 펠라기우스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의지와 책임이 절대적이라고 확신했다.
펠라기우스에 의해 체계화된 신학 사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아담의 죄의 영향은 그 자신에게만 적용된다. (2) 아담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아담의 원죄의 죄책과 오염으로부터 자유롭다. (3) 아담 이후의 모든 어린아이는 아담이 타락 전에 가졌던 것과 똑같은 상태로 태어난다. (4) 아담이 범죄한 결과로 생긴 악한 영향은 그의 자손에게 나쁜 선례를 남긴 것에 불과하다. (5) 인간의 의지는 절대적으로 자유하다. (6) 모든 사람은 자신 안에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지키고 복음을 믿을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가진다. (7) 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는 죄를 짓든 안 짓든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이 없다.
이러한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정통 신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어거스틴에 의해 정죄당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본성이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부패했기 때문에 누구도 자기 스스로 율법이나 복음을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적인 은총은 죄인들이 믿고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 은총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영생할 수 있도록 예정하신 사람에게만 국한되게 미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믿음의 행위는 죄인이 가지는 자유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택함받은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자유은총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였다.
어거스틴이 펠라기안주의들과의 논쟁에서 승리하게 되자, 펠라기안주의의 주장은 신빙성을 잃어 붕괴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얼마 후에 펠라기안주의의 부활을 자처하는 또다른 새로운 신학 사상이 출현하였다. 이들은 펠라기안주의의 입장에서 어거스틴적 견해를 중도적으로 혼합한 것으로, 중간적 입장에서 양쪽의 요소를 모두 취했다고 해서 세미 펠라기안주의(Semi-Pelagianism)라고 불린다. 이들은 어거스틴에게 정죄당한 펠라기우스의 극단적인 주장을 배격하는 한편, 어거스틴의 입장을 적절하게 보충함으로써 자신들의 신학적 차별성과 정당성을 입증하려 하였다.
그들이 주장한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은 원죄로 인해 타락했으며 아담의 죄가 그의 후손들에게 미친다. (2)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임한다. (3)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구원받기를 요청하시고 또한 똑같이 도우신다. (4) 각 사람은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구원에 응하거나 거절할 수 있다. (5) 기꺼이 믿고자 하는 것은 사람에게 속한 부분이고, 하나님은 은총은 다만 그를 도울 뿐이다. (6)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족하게 할 만한 선을 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협력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세미 펠라기안주의 주장 역시 정통 교회 회의를 통해 정죄되었다(2차 오렌지 종교회의, A.D. 529).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세미 펠라기안주의의 주장들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들이 정한 종교적 예식들과 행위들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근거로 삼았다.
16세기 후반 들어, 이러한 잘못된 성경 이해의 망령은 개신교 교회(the Protestant Churches) 안에서 좀 더 세련되고도 체계적인 또 다른 하나의 신학 분파처럼 위장하여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알미니우스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주창된 내용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알미니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주장한 내용들은 펠라기안주의자들이나 세미 펠라기안주의자들에 의해 설파된 내용들의 반복과 변형에 불과하다. 내용적으로 이전 것들에 비해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으나, 불행하게도 이들에 의해 주창된 내용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경 이해처럼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도르트 총회를 통해 알미니안들의 견해가 이단으로 정죄된 지 불과 한 세기 반도 지나가기 전에, 죤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펠라기안적 알미니안주의 전통은 정통 신학이 맞이한 위기를 틈타 '복음적 알미니안주의'(Evangelical Arminianism)라는 이름으로 교회 역사의 중심권 안으로 들어왔다. 웨슬리안주의라고 불리는 ‘복음적 알미니안주의’는 ‘항론파’의 5가지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들은 원죄를 긍정하고 믿음에 의한 칭의를 가르치지만 구원의 책임을 인간의 행위에 두고 있다.
다만 앞서 있었던 세미 펠라기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와 차이가 있다면, 웨슬리안들은 이전의 주장에다 성령의 능력과 뜨거움을 통한 개인적인 확신과 성화의 가치 뿐만 아니라 믿음의 윤리적인 의미와 전도의 사명을 매우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웨슬리안주의는 결과적으로 볼 때, 인간의 자력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신인협력적 만인구원설의 세계화에 공헌함으로써 사도들과 어거스틴과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이어지는 정통 교회의 성경 해석을 가장 왜곡하고 파손한 결정적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
우리는 그동안 칼빈주의 체계가 5대 교리로 어떻게 공식화 되었으며, 왜 칼빈주의 5대 교리 혹은 TULIP 교리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고찰은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칼빈주의 체계가 과연 성경적으로 확실하고도 변함없는 지지를 받을 만한가 하는 점이다. 만약 칼빈주의가 성경의 확실한 지지와 증거를 가지지 못한다면 굳이 칼빈주의를 따를 이유도 없거니와 개혁교회를 지향해야 할 의미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 역사상 칼빈주의보다 더 성경의 정신을 잘 드러내고, 성경의 의미를 바르게 증거하는 신학 체계가 없다면 당연히 칼빈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정당한 이해를 갖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신학적, 신앙적 주관주의와 상대주의의 덫에 걸릴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 요소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방식으로 칼빈주의의 핵심 교리들을 파악할 것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다시 말해, 칼빈주의가 성경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할 만한 객관적인 절대적 기준이 필요하다. 칼빈주의를 말하는 사람마다 진리의 최종적인 표준이 되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아무리 듣기 좋은 설교나 감명깊은 신학 사상이라도 해도 성경으로부터 정당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사람의 말과 생각일 따름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한가지 유념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있다. 비록 이해의 선명성을 돕고자 본 강의에서 각각의 독립된 제목하에 취급할 예정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각각의 교리들의 독자적 성격만 강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의 5가지 주장에 대한 각각의 반론적 성격 때문에 구별해서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5가지 주제들은 놀라우리만큼 정교한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이 교리들은 마치 건강한 사람의 몸속에 있는 신경조직처럼 섬세하고 조직적인 체계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말은 하나의 교리를 살펴보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나머지 네 개의 교리와의 연속적인 상호 관련성안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칼빈주의의 5대 교리가 성경적인 진술의 정당성을 확보한 내용이라면 한 가지 교리를 강조하면서 다른 교리들에는 무관심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사람이 죄로 인해 전적으로 타락하고 무능력해진 것을 인정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직 택한 백성만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고백되어져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 전체를 받는다고 하면서도 부분적으로 믿고 있으며, 부분적인 확신을 자랑하고 있는가. 전체 복음을 부분 복음으로 만드는 일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여러 가지 생각가운데 분열된 하나님으로 만드는 일과 다를바 없다. 우리는 간혹 세상의 일과 자신의 무지를 핑계 삼아 잊고 지내려 하지만 두렵고 떨림으로 생각해야 할 내용이다.
앞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일이지만, 입으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인정한다고 하고, 주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과 감각과 욕심에 따라 성경을 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가진 사람일수록 역사적인 신앙고백과 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을 향해서는 ‘신앙고백(교리)보다 성경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 ‘교리를 공부하느니 성경을 한 장이라도 더 읽으라’고 면박을 준다. 앞서 말했듯이 칼빈주의 교리가 성경 내용과 다르거나 성경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 있다면 이들의 지적은 백번 옳은 일이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신앙고백과 교리라는 틀을 통해 그 참된 내용과 해석이 유지되어 왔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조금이라도 인식한다면, 성경과 교리에 관한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의 위험성이 얼마나 참된 신학과 신앙 정신을 훼손시켜 왔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교리를 가지고서 교리를 강조하자는 것이 아니라, 교리를 가지고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함으로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는”(엡 4:13) 수준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혜에 관해 장성한 사람이 되는 일(고전 14:20)이야말로 이 세상을 사는 성도가 추구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본분이며 사명이다. 본 강의를 통해 다가가고자 하는 숭고하면서도 소박한 목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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