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 부패(Total Depravity)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김병혁 목사(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
자료출처: 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62
왜 전적 부패 교리가 먼저인가?
전적부패 교리는 칼빈주의 5대 교리(The Five Points of Calvinism)를 기억하기 쉽게 나타내주는 TULIP 중에서 첫 번째 글자에 해당하는 T(Total Depravity)의 내용이다. 원래 도르트 총회의에서 결정한 신조(the Cannon of Dordt)에는 TULIP중 U자에 해당하는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이 첫 번째 내용으로 제시되어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무조건적 선택 교리는 다른 교리들에 비해 신랄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이 교리에 대한 충분한 성경적 설명과 확신을 갖기도 전에 부정하거나 매도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먼저 전적 부패의 교리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이 교리는 인간의 죄된 성질과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해 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에 대해 잘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구원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이 구원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처한 영적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하는 일이다. 여타의 4가지 교리들(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 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 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the Saints)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처방전(the remedy)과 같다. 처방전을 통해 약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먼저 정밀한 진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적 부패 교리는 다른 4가지 교리들보다 먼저 설명되어질 필요가 있다.
인간 부패와 타락(Depravity)에 관한 부패한 주장들
‘Depravity'라는 말은 우리말로 ‘부패’ 혹은 ‘타락’이라는 말로 번역되어진다. 인간의 ‘부패’와 ‘타락’과 관련된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던 시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사회적 관심사인 동시에 가장 해결하기 힘든 난제중 하나로 남아 있다. 아무리 자신의 부패와 타락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라해도 자신의 삶 전반에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악의 세력과 죄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할 것이다. 세상에 악과 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종교와 인종과 학식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가 갖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다.
하지만 인간의 부패와 타락을 바라보는 관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異見)들이 있다. 오늘날 세속 사회에서도 인간의 부패와 타락으로 인해 야기되는 심각한 사회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수많은 병폐들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근원적 부패의 속성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부패되어가는 세상에 대해서는 염려하지면서도 이미 부패되어있는 양심에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한편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마찬가지로 이 중대한 사안에 대해 많은 주장들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펠라기안주의자들과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인간의 부패와 타락에 관한 어거스틴주의와 칼빈주의로 이어지는 정통 교회의 입장을 처절하게 반대했거나 교묘하게 왜곡하였다. 과거 진리의 은혜가 풍성하게 드러났던 시대에 이단적 사상으로 정죄되었던 주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교회의 보편적 사고인양 득세하고 있으니 더욱 주의가 요망된다.
펠라기우스는 어거스틴과 달리 인간의 부패와 타락의 문제를 개별적인 의지의 선택 문제로 보았다. 이 말은 아담의 죄의 결과는 아담 개인의 자의적 선택에 국한됨으로 아담 이후의 인간들은 아담의 원죄의 죄책과 오염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은 날 때부터 죄를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문제에 있어서 완전히 중립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럼에도 세상에 죄가 보편적이게 나타나는 것은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죄를 모방하고자 하는 습관 때문이라고 하였다.
엄격히 말한다면, 펠라기우스에게는 원초적인 죄인이란 없으며, 설사 누군가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죄인으로서 정죄받는 것이 아니라 죄의 행위만을 판단받게 된다. 이러한 펠라기우스의 입장이 세미 펠라기안주의자들에 의해 수정, 보완되었다. 세미 펠라기안주의자들은 아담의 원죄와 원죄의 전이(轉移)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펠라기우스의 입장을 수정하여 아담과 그 이후의 모든 사람들의 타락을 인정함과 동시에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세미 펠라기안주의자들은 타락과 은혜의 균형감을 하나님과 죄인사이에서 벌어지는 구원의 거래로 변질시켰다. 타락한 사람이라도 예수를 믿게 되면 구원에 합당한 선을 행할 수 있게 되므로, 하나님과 더불어 구원을 이루는 책임 있는 존재로서 서게 된다고 하였다. 17세기 이후 개신교회의 주류로 행세하고 있는 알미니안주의는 이러한 펠라기안주의와 세미 펠라기안주의의 주장을 좀 더 복잡하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체계화한 이론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거스틴의 입장을 견지하는 정통 개혁주의자들은 토르트 회의를 통해 성경적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설정함으로써 이들의 반성경적 주장을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근원적인 면에서 볼 때, 펠라기안에서 세미 세미펠라기안 그리고 알미니안에 이르는 일련의 공통적인 사상은 인간의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력에 대해 의심하고 부정하는 일반 자연 종교의 주장과 맥이 닿아 있음을 보게 된다. 그뿐 아니라 인간의 부패성을 정욕이라는 애매한 낱말로 표현하여 공로주의 구원관을 정당화한 가톨릭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다는 점에서 이들에게서 공통된 목적으로서의 잘못된 성경 이해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부패에 관한 성경적 개념
인간의 부패성에 대해 근원적인 고찰을 위해서는 인간이 어떤 상태와 조건에서 태어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두 개의 성경구절을 살펴보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롬 5:12-14)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이 말씀들은 아담의 부패와 타락은 아담 개인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자의 성격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나타난다. 즉 아담이 범했던 죄와 그 결과는 그 자신의 삶과 인격에만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전 인류 안에서 똑 같은 방식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아담을 포함한 전 인류는 그 전체에 있어서나 그 개개 일원에 있어서나 동일하게 범죄한 상태에 있고, 또한 범죄한 조건아래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이렇게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이 죄악된 상태와 조건 안에서 태어나는 것을 가리켜, 신학적으로 ‘원죄’(original sin)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가리켜, 시편 기자는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라고 고백하는가 하면, 바울은 에베소서 2:1에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람은 날 때부터 원죄의 영향아래 있다. 한마디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음’가운데 있었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진술이다.
이처럼 원죄는 모든 인류가 죄악 중에 날 수 밖에 없음을 증거하는 죄의 내적 뿌리요, 근원적으로 모든 사람이 ‘죽음’의 상태에 처해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따라서 모든 인류는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원죄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원시적 죄책(original guilt)과 원시적 오염(original pollution)이다. 전자가 아담이 범한 죄에 대한 책임이 그의 모든 후손에게 전가되었다는 의미라면, 후자는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이 죄에 대해 갖는 자세 혹은 성질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아담의 죄성을 그대로 전가 받은 인류는 죄에 대해 의도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날 때부터 타락한 인류가 죄에 대해 보인 반응은 어떠하며, 그 결과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가? 우리는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전적 부패’ 교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적’이란 말의 의미와 정통 신앙고백서의 입장
우리는 앞서 부패에 관한 성경적인 개념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도르트 신조의 작성자들뿐 아니라 모든 종교개혁자들은 늘 ‘부패’라는 용어 앞에 ‘전적’(total)이라는 형용사를 붙여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때때로 ‘타락’이라는 낱말 앞에 붙어 있는 ‘전적’이라는 단어는 인간을 악행만을 일삼는 악의 화신(化身)이나 심지어 마귀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는 ‘전적’(total)이라는 낱말을 ‘절대적’(absolute)이라는 말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즉 언어적 뉘앙스의 혼동인데, 성경은 인간의 타락을 ‘전적’이라고 표현하지만, ‘절대적’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아담이 타락을 했다고 해서 마귀나 동물로 존재 자체가 변한 것이 아니다. 아담은 타락했지만 여전히 다른 피조물과 근원적으로 다른 존재로서 인간의 특질을 유지하였다. 즉 전적 부패라는 것이 모든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내적인 지식이나 선과 악을 분별하는 양심이 없어졌거나 다른 피조물과 차별되는 인간으로서의 독특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아담의 원죄아래 있는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온갖 유형의 죄악에 빠진다는 의미역시 아니다.
성경은 거듭나지 않은 자도 선을 행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심지어 율법없는 이방인도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롬 2:14). 그러나 이방인과 같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행하는 선은 본질적으로 상대적 개념에서의 선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이것으로 정치와 윤리, 복지와 문화, 과학과 예술의 증진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상대적 선을 통해서는 결코 인간의 내적 본성을 새롭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원과 관련된 그 어떠한 선을 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상대적 선은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유지하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근거는 될 수 있을지언정 하나님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절대적 선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구원에 관하여 전적으로 부패하며 전적으로 무능력하다. 우리는 이 부분을 정통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하여 이 가르침과 모순되는 것을 배격하는 바인데, 왜냐하면 인간은 죄의 노예일 뿐이며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요3:27)없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결코 있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요6:44)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 누가 자기 자신의 의지를 자랑할 수 있으며,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임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그 누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성경은 육신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요약한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조차도 감히 우리 것으로 내놓을 수 없는데, 이는 성경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후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따라서 우리는 사도가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한 바를 확실하게 붙잡고 나가야 할 것이다. 주께서 (요15:5)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외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도 없는 것이다.“
(벨직 신앙고백서 14장, 인간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참된 선을 행함에 있어서 인간의 무능력 중에서)
“왜 선행을 통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와질 수 없으며, 왜 선행은 의로와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답 :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수 있는 의는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은 불완전하며 여전히 죄로 더럽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62문과 답변)
“그러나 인간에게는 타락한 후에도 희미한 자연의 빛이 남아 있어서 하나님에 관하여, 자연의 사물에 관하여 그리고 선과 악을 구별하는 문제에 과하여 약간의 지식이 있음으로 외부적인 행위를 통하여 도덕과 선에 관한 행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연의 빛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상태에서 하나님에 관한 구원의 지식에로, 또한 참 회심에로 이끌어가게는 하지만, 이 자연의 사물 속에서 올바르게 사용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인간은 갖가지 면에서 이 빛을 전적으로 오염시키고 하나님 앞에서 결코 변명할 수 없는 행위를 통하여 불의하게 사용했던 것이다.”
(도르트 신조, 3장 & 4장, 4절)
‘전적 부패’ 교리 관한 5가지 의미와 성경적 진술
아담이 범죄한 결과 인간은 죄 가운데 출생하게 되었고 자연히 영적으로 죽게 되었다. 따라서 만약 그들이 하 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 롬 5:12
• 엡 2:1-3
• 시 51:5
• 요 3:5-7
타락의 결과 인간은 영적 진리에 관하여 눈이 어두워졌고 귀가 멀어졌다. 그리고 그들의 지성은 죄로 말미암 아 어두워졌고 그들의 마음은 부패했고 악하게 되었다.
• 창 8:21
• 렘 4:22; 17:9,10
• 요 3:19
• 엡 4:17-19
• 딛 1:15
죄인이 성령의 중생하시는 능력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새롭게 나아가기 전까지 그들은 마귀의 자녀들이고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죄의 종이다.
• 요 8:34,44
• 딤후 2:25,26
• 요일 3:10
• 딛 3:3
죄의 통치는 보편적이다. 즉 모든 인간은 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다. 결국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
• 대하 6:36
• 욥 15:14-16
• 전 7:20
• 롬 3:9-12
• 요일 1:8,10
죽도록 내버려진 인간은 스스로 회개하거나 복음을 믿거나 혹은 그리스도께 나아오기가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 속에 자신의 성품을 변화시키거나 구원을 얻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을 전혀 가지 고 있지 못하다.
• 욥 14:4
• 렙 13:23
• 마 7:16-18
• 요 6:44, 65
• 고전 3:5
김병혁 목사(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
자료출처: 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62
왜 전적 부패 교리가 먼저인가?
전적부패 교리는 칼빈주의 5대 교리(The Five Points of Calvinism)를 기억하기 쉽게 나타내주는 TULIP 중에서 첫 번째 글자에 해당하는 T(Total Depravity)의 내용이다. 원래 도르트 총회의에서 결정한 신조(the Cannon of Dordt)에는 TULIP중 U자에 해당하는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이 첫 번째 내용으로 제시되어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무조건적 선택 교리는 다른 교리들에 비해 신랄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이 교리에 대한 충분한 성경적 설명과 확신을 갖기도 전에 부정하거나 매도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먼저 전적 부패의 교리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이 교리는 인간의 죄된 성질과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해 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에 대해 잘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구원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이 구원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처한 영적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하는 일이다. 여타의 4가지 교리들(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 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 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the Saints)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처방전(the remedy)과 같다. 처방전을 통해 약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먼저 정밀한 진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적 부패 교리는 다른 4가지 교리들보다 먼저 설명되어질 필요가 있다.
인간 부패와 타락(Depravity)에 관한 부패한 주장들
‘Depravity'라는 말은 우리말로 ‘부패’ 혹은 ‘타락’이라는 말로 번역되어진다. 인간의 ‘부패’와 ‘타락’과 관련된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던 시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사회적 관심사인 동시에 가장 해결하기 힘든 난제중 하나로 남아 있다. 아무리 자신의 부패와 타락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라해도 자신의 삶 전반에 드리워져 있는 어두운 악의 세력과 죄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할 것이다. 세상에 악과 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종교와 인종과 학식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가 갖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다.
하지만 인간의 부패와 타락을 바라보는 관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異見)들이 있다. 오늘날 세속 사회에서도 인간의 부패와 타락으로 인해 야기되는 심각한 사회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수많은 병폐들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근원적 부패의 속성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부패되어가는 세상에 대해서는 염려하지면서도 이미 부패되어있는 양심에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한편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마찬가지로 이 중대한 사안에 대해 많은 주장들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펠라기안주의자들과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인간의 부패와 타락에 관한 어거스틴주의와 칼빈주의로 이어지는 정통 교회의 입장을 처절하게 반대했거나 교묘하게 왜곡하였다. 과거 진리의 은혜가 풍성하게 드러났던 시대에 이단적 사상으로 정죄되었던 주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교회의 보편적 사고인양 득세하고 있으니 더욱 주의가 요망된다.
펠라기우스는 어거스틴과 달리 인간의 부패와 타락의 문제를 개별적인 의지의 선택 문제로 보았다. 이 말은 아담의 죄의 결과는 아담 개인의 자의적 선택에 국한됨으로 아담 이후의 인간들은 아담의 원죄의 죄책과 오염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은 날 때부터 죄를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문제에 있어서 완전히 중립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럼에도 세상에 죄가 보편적이게 나타나는 것은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죄를 모방하고자 하는 습관 때문이라고 하였다.
엄격히 말한다면, 펠라기우스에게는 원초적인 죄인이란 없으며, 설사 누군가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죄인으로서 정죄받는 것이 아니라 죄의 행위만을 판단받게 된다. 이러한 펠라기우스의 입장이 세미 펠라기안주의자들에 의해 수정, 보완되었다. 세미 펠라기안주의자들은 아담의 원죄와 원죄의 전이(轉移)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펠라기우스의 입장을 수정하여 아담과 그 이후의 모든 사람들의 타락을 인정함과 동시에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세미 펠라기안주의자들은 타락과 은혜의 균형감을 하나님과 죄인사이에서 벌어지는 구원의 거래로 변질시켰다. 타락한 사람이라도 예수를 믿게 되면 구원에 합당한 선을 행할 수 있게 되므로, 하나님과 더불어 구원을 이루는 책임 있는 존재로서 서게 된다고 하였다. 17세기 이후 개신교회의 주류로 행세하고 있는 알미니안주의는 이러한 펠라기안주의와 세미 펠라기안주의의 주장을 좀 더 복잡하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체계화한 이론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거스틴의 입장을 견지하는 정통 개혁주의자들은 토르트 회의를 통해 성경적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설정함으로써 이들의 반성경적 주장을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근원적인 면에서 볼 때, 펠라기안에서 세미 세미펠라기안 그리고 알미니안에 이르는 일련의 공통적인 사상은 인간의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력에 대해 의심하고 부정하는 일반 자연 종교의 주장과 맥이 닿아 있음을 보게 된다. 그뿐 아니라 인간의 부패성을 정욕이라는 애매한 낱말로 표현하여 공로주의 구원관을 정당화한 가톨릭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다는 점에서 이들에게서 공통된 목적으로서의 잘못된 성경 이해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부패에 관한 성경적 개념
인간의 부패성에 대해 근원적인 고찰을 위해서는 인간이 어떤 상태와 조건에서 태어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두 개의 성경구절을 살펴보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롬 5:12-14)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이 말씀들은 아담의 부패와 타락은 아담 개인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자의 성격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나타난다. 즉 아담이 범했던 죄와 그 결과는 그 자신의 삶과 인격에만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전 인류 안에서 똑 같은 방식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아담을 포함한 전 인류는 그 전체에 있어서나 그 개개 일원에 있어서나 동일하게 범죄한 상태에 있고, 또한 범죄한 조건아래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이렇게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이 죄악된 상태와 조건 안에서 태어나는 것을 가리켜, 신학적으로 ‘원죄’(original sin)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가리켜, 시편 기자는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라고 고백하는가 하면, 바울은 에베소서 2:1에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람은 날 때부터 원죄의 영향아래 있다. 한마디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음’가운데 있었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진술이다.
이처럼 원죄는 모든 인류가 죄악 중에 날 수 밖에 없음을 증거하는 죄의 내적 뿌리요, 근원적으로 모든 사람이 ‘죽음’의 상태에 처해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따라서 모든 인류는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러한 원죄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원시적 죄책(original guilt)과 원시적 오염(original pollution)이다. 전자가 아담이 범한 죄에 대한 책임이 그의 모든 후손에게 전가되었다는 의미라면, 후자는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이 죄에 대해 갖는 자세 혹은 성질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아담의 죄성을 그대로 전가 받은 인류는 죄에 대해 의도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날 때부터 타락한 인류가 죄에 대해 보인 반응은 어떠하며, 그 결과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가? 우리는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전적 부패’ 교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적’이란 말의 의미와 정통 신앙고백서의 입장
우리는 앞서 부패에 관한 성경적인 개념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도르트 신조의 작성자들뿐 아니라 모든 종교개혁자들은 늘 ‘부패’라는 용어 앞에 ‘전적’(total)이라는 형용사를 붙여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때때로 ‘타락’이라는 낱말 앞에 붙어 있는 ‘전적’이라는 단어는 인간을 악행만을 일삼는 악의 화신(化身)이나 심지어 마귀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는 ‘전적’(total)이라는 낱말을 ‘절대적’(absolute)이라는 말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즉 언어적 뉘앙스의 혼동인데, 성경은 인간의 타락을 ‘전적’이라고 표현하지만, ‘절대적’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아담이 타락을 했다고 해서 마귀나 동물로 존재 자체가 변한 것이 아니다. 아담은 타락했지만 여전히 다른 피조물과 근원적으로 다른 존재로서 인간의 특질을 유지하였다. 즉 전적 부패라는 것이 모든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내적인 지식이나 선과 악을 분별하는 양심이 없어졌거나 다른 피조물과 차별되는 인간으로서의 독특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아담의 원죄아래 있는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온갖 유형의 죄악에 빠진다는 의미역시 아니다.
성경은 거듭나지 않은 자도 선을 행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심지어 율법없는 이방인도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롬 2:14). 그러나 이방인과 같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행하는 선은 본질적으로 상대적 개념에서의 선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이것으로 정치와 윤리, 복지와 문화, 과학과 예술의 증진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상대적 선을 통해서는 결코 인간의 내적 본성을 새롭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원과 관련된 그 어떠한 선을 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상대적 선은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유지하는 하나님의 일반 은총의 근거는 될 수 있을지언정 하나님의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절대적 선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구원에 관하여 전적으로 부패하며 전적으로 무능력하다. 우리는 이 부분을 정통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하여 이 가르침과 모순되는 것을 배격하는 바인데, 왜냐하면 인간은 죄의 노예일 뿐이며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요3:27)없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결코 있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요6:44)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 누가 자기 자신의 의지를 자랑할 수 있으며,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임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그 누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성경은 육신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요약한다면, 우리는 어떤 생각조차도 감히 우리 것으로 내놓을 수 없는데, 이는 성경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후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따라서 우리는 사도가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한 바를 확실하게 붙잡고 나가야 할 것이다. 주께서 (요15:5)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외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도 없는 것이다.“
(벨직 신앙고백서 14장, 인간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참된 선을 행함에 있어서 인간의 무능력 중에서)
“왜 선행을 통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와질 수 없으며, 왜 선행은 의로와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답 :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수 있는 의는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은 불완전하며 여전히 죄로 더럽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62문과 답변)
“그러나 인간에게는 타락한 후에도 희미한 자연의 빛이 남아 있어서 하나님에 관하여, 자연의 사물에 관하여 그리고 선과 악을 구별하는 문제에 과하여 약간의 지식이 있음으로 외부적인 행위를 통하여 도덕과 선에 관한 행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연의 빛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상태에서 하나님에 관한 구원의 지식에로, 또한 참 회심에로 이끌어가게는 하지만, 이 자연의 사물 속에서 올바르게 사용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인간은 갖가지 면에서 이 빛을 전적으로 오염시키고 하나님 앞에서 결코 변명할 수 없는 행위를 통하여 불의하게 사용했던 것이다.”
(도르트 신조, 3장 & 4장, 4절)
‘전적 부패’ 교리 관한 5가지 의미와 성경적 진술
아담이 범죄한 결과 인간은 죄 가운데 출생하게 되었고 자연히 영적으로 죽게 되었다. 따라서 만약 그들이 하 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 롬 5:12
• 엡 2:1-3
• 시 51:5
• 요 3:5-7
타락의 결과 인간은 영적 진리에 관하여 눈이 어두워졌고 귀가 멀어졌다. 그리고 그들의 지성은 죄로 말미암 아 어두워졌고 그들의 마음은 부패했고 악하게 되었다.
• 창 8:21
• 렘 4:22; 17:9,10
• 요 3:19
• 엡 4:17-19
• 딛 1:15
죄인이 성령의 중생하시는 능력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새롭게 나아가기 전까지 그들은 마귀의 자녀들이고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죄의 종이다.
• 요 8:34,44
• 딤후 2:25,26
• 요일 3:10
• 딛 3:3
죄의 통치는 보편적이다. 즉 모든 인간은 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다. 결국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
• 대하 6:36
• 욥 15:14-16
• 전 7:20
• 롬 3:9-12
• 요일 1:8,10
죽도록 내버려진 인간은 스스로 회개하거나 복음을 믿거나 혹은 그리스도께 나아오기가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 속에 자신의 성품을 변화시키거나 구원을 얻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을 전혀 가지 고 있지 못하다.
• 욥 14:4
• 렙 13:23
• 마 7:16-18
• 요 6:44, 65
• 고전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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