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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의사(구원론)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김병혁 목사(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
http://cafe.naver.com/calgaryreformed/72
 
속죄의 필요성과 의미
칼빈주의의 5가지 교리(The Five Point of Calvinism)중 세 번째(TULIP 중 L자(字)에 해당하는 제한속죄 교리는 ‘복음의 정수’라고 불린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타락했으며 부패되었다. 구원을 이루는데 있어서 철저하게 무지하고 무능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죄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이신 하나님과 원수지간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의 의와 거룩함으로 인해 죄를 묵과하실 수도 없거니와 죄를 반드시 처벌하셔야만 했다. 죄인된 사람은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를 만족케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절대적 의를 만족시킬 분은 절대적인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쁘신 뜻가운데 하나님의 절대 요구를 완성하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나실때부터 인간의 본성을 취하심으로 자신을 죄인들과 동등하게 하셨고, 그들의 법적인 대표자, 혹은 대리인으로서 대속적인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적 요구를 완벽하게 성취하셨다. 그 결과 사람들은 모든 죄와 정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구원을 얻게 되었다. 이처럼 구원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속죄교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이다.
‘속죄’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히브리어로는 ‘키페르’라는 말로 ‘죄나 죄인을 가림’(covering)을 의미하고 헬라어로는 ‘힐라스모스’라는 말로 ‘진정시키는 수단이나 도구’를 뜻한다. 즉 ‘속죄’라는 말은 두 가지 중요한 성경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첫째는 인간의 ‘죄’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만족’이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지만, 의에 대하여는 만족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죄와 의에 대한 절대적인 요구를 만족하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속죄’라는 말의 영어식 표현으로 ‘atonement'라는 단어지만 동일한 의미를 지닌 다양한 표현들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random’(속죄), ‘reconciliation’(화해), ‘propitiation’(속죄), ‘satisfaction'(만족), 'redemption'(구속)이다. 이러한 영어식 표현들은 ‘속죄’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전달하며, 무엇보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가능해졌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해준다.
누구를 위하여 죽으셨나?
아마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치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대해서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는 성경적인 구원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말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진 특별한 의미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스도는 누구를 위해 죽으셨는가?”, “그리스도의 죽음은 누구의 죄에 대한 속전을 지불한 것인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된 자는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이 질문들을 한마디로 종합한다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모든 사람(all man)을 위한 일이었는가 아니면 일부 사람(some people)을 위한 것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물음들이 지닌 성경적 함의의 중요성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케케묵은 신학적 논쟁처럼 들리겠지만 이러한 물음들은 교회가 세워진 이후 한 번 도 중단된 적이 없으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정통 교회(참된 교회)와 비정통 교회(거짓된 교회)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되어 왔다.
대개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상이한 답변이 있어 왔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의 입장차이다. 알미니안주의자는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는 한편 칼빈주의자는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택한 일부의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해 왔다. 두 진영 모두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필요성(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해서는 공감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속죄가 미치는 범위와 대상에 대해서는 현격한 이해차를 드러내고 있다. 알미니안주의자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모든 사람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는 보편 속죄를 강조하는 반면 칼빈주의자는 오직 믿음으로 거듭난 택자들을 위한 것으로서 제한 속죄를 주장한다.
얼핏 보면 칼빈주의보다 알미니안주의의 견해가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심각하게 여겨야 할 문제는 성경 진술과 알미니안의 견해가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만약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다면 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개인의 죄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의 구원을 이루고자 행하셨던 십자가 사건이 개별적인 사람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었던 말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시고 예외없이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다면 죄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란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럼에도 누군가 구원을 받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자체에 결정적인 한계가 있거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보다 못한(less than) 하나님이거나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닐 확률이 높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이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알미니안의 주장은 귀에는 솔깃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논리면에서도 일관성이 없으며, 결정적으로 성경의 진술과도 배치된다. 그러나 한 가지 염두해 두어야 하는 사실은 알미니안의 보편 속죄 교리 역시 그들 나름대로의 성경 해석에서 비롯되어졌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들은 성경에 나타난 ‘세상’(요 1:9,29; 3:16; 4:42; 고후 5:19; 요일 2:1,2; 4:14등)이나 ‘모든’(롬 5:18; 고후 5:14,15; 딤전 2:4-6; 히 2:9; 벧후 3:9등)이라는 용어를 근거로 자신들의 보편 속죄 교리를 옹호한다. 혹자들 가운데는 이 점 때문에 당혹스러워할 수도 있다. 어떻게 같은 성경을 기반으로 전혀 다른 이질적인 주장이 가능한 것인가를 되묻곤 한다. 하지만 교회 역사는 같은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이해를 가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성경 이해의 핵심은 누가 성경을 소유하고 있는가 혹은 성경을 읽고 있는가라는 것보다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있는가, 성경을 하나님의 뜻으로 제대로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이 말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바른 지식과 이해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본의(本意)를 드러내는 바른 해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며 순종하고자 하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알미니안과 칼빈주의의 성경 해석의 차이점을 살펴보고, 둘 중 어느 편이 정말 성경적인 해석인지를 확인해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제한(Limited)이라는 말의 의미
‘그리스도께서 누구를 위하여 죽으셨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칼빈주의자들은 ‘속죄’라는 말 앞에 ‘제한(된)’이라는 용어를 덧붙였다. 이 말은 칼빈주의자들이 창안한 단어가 아니다. 다만 보편 속죄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알미니안, 카톨릭등)의 주장을 엄밀하게 구별하고 차단해야 할 필요성에 의해 첨가된 단어이다. 하지만 혹자는 이 단어를 부담스러워한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속죄가 그 구원하는 능력에서 한정되었음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칼빈주의자들이 이 단어를 사용할 때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능력이라는 초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속죄하시는 대상과 범위에 관하여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은 그 무엇으로도 제한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구원의 능력을 발휘하심에 후회나 부족함이 없으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악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다. 이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적 은혜가 무제한적인 사랑과 긍휼과 자비로서 드러난 표상이다.
그러나 성경(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조차도)은 그리스도의 무제한적 속죄의 능력이 제한된 사람에게만 적용되어진다고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세전에 택정함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무제한적으로 적용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무제한적 속죄의 능력이 제한된 특정인들 즉 선택함을 받은 신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제한 속죄’라는 용어는 ‘특별 속죄’(Particular Atonement) 혹은 ‘한정 속죄’(Definite Atonement)라고 불릴 수 있다. 이 의미만 명심하고 있다면 ‘제한(된)’(limited)이든 ‘특별(특정한)’(particular)이든 ‘한정(된)’(definite)이라는 말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경적 의미를 정확하게 명시해준다.
옮음과 그름을 위한 변증과 해명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보편 속죄’ 교리와 ‘제한 속죄’ 교리는 내용적으로 상반된 주장이다. 성경은 이질적인 두 가지 교리를 동시에 말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성경은 자체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며, 성도들은 혼동에 빠질 것이다. 보편 속죄‘와 ’제한 속죄‘는 양보나 이해의 선에서 적절하게 타협할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으로서 분별해야 할 사안이다. 이 일에 대한 변증과 해명을 목적으로 먼저는 성경에 광범위하면서도 일관되게 언급되고 있는 제한 속죄 근거 구절들중 대표적인 내용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 후에 반(反) 혹은 비(非)칼빈주의자들이 내세우고 있는 보편 속죄 교리에 관한 근거 구절들의 타당성을 검토하면서 바른 성경 해석을 기초로 한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제한 속죄 교리를 지지하는 성경 구절
•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 눅 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 눅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사 53: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 암 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 요 6:37-39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 요 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요 10:26-28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 요 15:13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 요 17:24-26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 롬 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엡 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엡 5:25-27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어려운 구절들 그러나 확실한 구절들
•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딤전 2:4-6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딛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 히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 요일 4: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 고후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 딤후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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