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이란 말이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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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냥 일반적인 기독교의 용어로 구속, 대속, 죄사함이라고 아주 쉽게 말한다. 그러나 그 단어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는가?
구속이라는 말은 구약에서는 <속량> 혹은 <속죄>라는 두가지의 개념으로 구별된다.
그 하나는 <속량>을 의미하는 법률적 용어인 히브리어 [파다, padah]와 [가알, gaal]이고, 두 번째는 <속죄>를 의미하는 제사적 용어인 [카파르, kaphar]이다.
먼저 속량을 의미하는 단어에 대해서 설펴보자.
“파다”와 “가알”은 같은 뜻으로 히브리어 동사인데, 모두 재산, 동물, 혹은 인간의 법적 자유 등이 금전의 지불에 의해 본래의 소유자에게 반환되는 하나의 물림의 과정을 말한다.
원래, 적이나 죄의 속박 하에 있는 포로 또는 노예를 속전(댓가)을 주고 되사서 자유롭게 하는 일을 의미하였다.
구체적으로 구별하자면, “파다”는 인간 및 생물의 속량에 관해서 사용되어지고, 특히 성별되어 하나님의 것으로 된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다.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파다)하셨나니(신7:8)
예를 들면, 여자노예가 그 주인의 마음에 들지 않게된 경우에, 그 여노예는 속량(파다)될 수가 있다(출 21:8).
그리고 “가알”이라는 용어는 주로 생물이 아닌, 집이라든가 밭 등의 재산과 물질을 금전에 의해 무르는 경우에 사용되어졌다(레 27:15,19-).
“그 사람이 자기 집을 무르려면(가알) 정가한 돈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자기 소유가 되리라“(레27:15)
또한 “가알”은 가족법에 있어서 근친자(근족)의 기업을 무르는 일, 혹은 만약 그 근족이 노예로 되어 있었다면 그의 자유를 되사는 근친자의 행위를 가리키는 전문용어가 되어진다.(레25:25-28,47-55)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가알)“(레25:25)
이러한 “가알” 혹은 “파다”의 속량적인(무름) 행위의 목적은 인간이나 물건을 그 속박, 또는 잃어진 상태에서 해방하는 일이며, 이들 용어는 이스라엘 또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적인 역사를 표현하는, 비유적이며 상징적인 표현 형식으로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여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속량으로 바쳐진 것임을 우리는 이해하여야만 한다.
즉 구속사란 단어는 “예수 외의 구원” 혹은 “믿음 외의 구원”을 말하지 않는다.
만일 그러하다면, 예수님의 구속은 불완전한 사역이 아니라, 온전한 사역이 된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구속사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우리를 속량하기 위하여 댓가를 지불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 외의 무엇인가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예수의 속량적인 “구속”의 개념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만다.
예수가 그 목숨을 댓가로 지불하였는데, 구원에 필요한 다른 것을 지켜야만 한다고 하면, 예수는 헛된 죽음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구약의 제사는 흠도 점도 없는 짐승으로 자신의 죄를 속량시켰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는 약점을 가진 제사장을 세운 것이었고,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것이었지만, 예수님의 속량은 완전하며 영원한 효력을 가진 것이 된다.
구약의 제사가 실제로 인류의 죄를 속량할 수는 없었던 것이며, 그것이 바로 예수가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된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9:25-26)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히7:28)
다시 말하여 예수 외에 구원, 타종교의 구원을 말하는 자체가 바로 구속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의 피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 된다.
특별히 “속죄”라고 하는 용어는 히브리어에서는 "키퍼"(kipper)라는 동사이고, 그 동사의 명사형은 “카파르”(Koper: 배상금)가 된다.
키퍼의 의미는 원래 "덮다. 가리우다"는 뜻이다.
헬라어에서는 “카탈라게” 혹은 “힐라스코마이”등의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히브리어 “키퍼”와 같은 동의어이며, 역시 “덮다. 제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황소나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한다”(히10:4)라고 말하였으며, “더 좋은 제물을 필요로 한다”(히9:23)고 하였는데, 즉 “대속”이란 우리의 죄가 덮어지며 가리워지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구약을 인용하여, 우리의 불법이 사하심을 받고, 그 죄가 가리우심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4:6-8)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삼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심이니라“(롬3:25-26)
이 구절에서 “화목제물”은 헬라어 "힐라스테리온"으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는 "희생제물"을 가르킨다.
히브리서9:5에서 법궤 윗부분의 "속죄소"라는 단어에 이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사도요한은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요일2:2. 4:10)이라고 말하였으며, 히브리서 기자도 그리스도가 "백성의 죄를 구속하기 위하여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셨다"(히2:17)고 말하였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예수 외의 구원의 조건이 더 필요함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찔림은 헛된 것이었으며, 그가 상함은 무엇때문이었으며, 그가 채찍에 맞음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사53:4-5)
하나님의 구속사가 어떤 한 사람의 개인적인 견해와 주장에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만 한다.
누구를 만나야만 하고, 무엇을 지키거나, 무엇을 행하여야만 하고, 무엇을 깨달아야만 한다는 주장들은 예수의 대속을 헛되게 하는 가증할 사이비 유사종교들의 주장이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지켜야만 하고, 또 다른 행함이 필요하다고 하면 이단적인 주장이 되어진다.
왜 예수가 오셨고, 왜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야만 했으며, 어떻게 우리가 속량과 속죄를 받을 수 있었는지..... 우리는 그것을 먼저 알아야만 한다.
예수를 믿음으로서 받는 속량과 속죄를 전혀 모르고, 또 무엇인가를 지키고 행하여야만 죄사함을 받으며 영생이 있다는 주장은 명백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예수 외에 다른 길이 있으며, 또 다른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믿음 외에 무엇인가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하나님의 구속사라고 불릴 수 없음부터 먼저 깨달아야만 한다.
그러한 주장은 구원의 길이 아니라, 파멸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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