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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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의사(구원론)

보편적 속죄설과 제한적 속죄설에 대해서...

보편적 속죄설과 제한적 속죄설 어느 것이 옳으냐의 문제는 옳지 않고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로 따져야 합니다.
 
 
<보편적 속죄>
 
속죄의 한계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누구를 위해 주었는가?
누구의 죄값을 지불하셨는가? 하는 것이 논쟁의 촛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전 인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이 보편적 속죄설입니다.
택하신 자들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주장이 제한적 속죄설입니다.
 
보편적 속죄설을 주장하는 자들의 대다수가 모든 사람이 다 실제적으로
구원 얻는다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었지만
인류 가운데 일부분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다는 주장을 합니다.(알미니우스주의)
주의할 점은 <보편적 속죄설>은 <보편적 구원설(펠라기우스계열>로
빠져들기 쉬운 단점이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보편적 속죄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그 주장의 근거로
<모든 사람>(고후 5:14; 히2:9; 롬8:32),
<우리는 다>(사53:6)
<세상> 또는 <온 세상>(요3:16; 요일2:2)
그러나 이런 말들이 성경에 사용되는 모든 경우에서 전 인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전 인류를 의미할 때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롬 5:18, 1:12; 눅2:1)
 
<제한적 속죄>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속죄의 능력과 가치는 무한하지만 그 무한한 속죄는 택하신 자들만의
구원을 위해 이루셨다는 것이 제한적 속죄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그의 다시 사신것도 모든 사람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 새 생명에 참여하는 자들은 제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택 교리와 제한적 속죄 교리는
나누어질 수 없이 연결됩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이 보편적 속죄설의 근거로 제시한 성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제한적 속죄 교리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전5:15은 모든 사람이란 모든 개개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계층의 사람을 말하고 있음을
성경을 성경으로 풀때 알게 됩니다. 또한 세상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 역시
유대인 뿐 아니라 모든 족속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위해 죽었다는 뜻입니다.
구원 받을 자가 각 세상에 퍼져 있기에 세상이라고 한 것입니다.  
 
<제한적 속죄 교리의 중요한 이유>
그리스도의 죽음은 "위하여 죽으심" 입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누구를 위하여 죽었느냐"라는 것이
꼭 수식어처럼 뒤따라 추론되는 것입니다. 그의 죽음의 혜택을 입게 될 자들의 범위를
생각지 않고 "위하여 죽었다"라고만 말하는 것은 금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러한 생각이
나오는 문장으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위하여 죽으심>에 대한 구절은 곧바로 <누구를 위하여>로 사고하게끔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하셨는데.. 주님의 죽으심의 범위를 생각하는 것을 금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경 기록과 배치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제한적 속죄는 제한적 범위를 정하는데 이는 속죄 자체의 구속적 효과가 완전무결함을 강조해줍니다.
만약 특정 집단이 아닌 모든 인류를 위해서라면 구속의 효과가 약화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 얻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이시며 전능자시라면 그의 계획은 결코 변하거나 미완성되지 않는데,
만약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모든 사람을 위해 아들을 보내신 계획은 좌절되는 셈이 되어 버리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사고를 하게 됩니다.
 
즉 제한 속죄는 결국 제한적 구원과 연결되듯이..
무한 속죄는 결국 무한 구원과 연결되는데...
문제는 무한 구원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하나의 이론일 뿐이기 때문에
이러한 무한 속죄의 논리는 결국 보편주의(모든 사람이 구원 받는다는 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보편속죄의 위험성은 보편구원으로 빠지기 쉽기 때문에 제한적 속죄에 대해서
교회의 역사는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
펠라기우스
펠라기우스는 인간에게 원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각 사람은 아담과 같이 자유롭고 중립적인
상태로 태어나며, 선과 악을 둘다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무죄한 삶을
사는 것이가능하다고 합니다. 아담의 죄는 자신에게만 미쳤지 후손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즉 사람은 왜곡된 의지나 악에 대한 원죄적 성향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펠라기우스는 세상에 있는 죄의 문제를 "잘못된 교육"과 "나쁜 모본"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설명...
하나님의 은총은 생활 속의 죄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구원을 얻는데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 합니다.
 
 

 비교내용

펠라기우스

어거스틴 

 타락 결과

아담에게만 한정

온 인류에게 미침 

 원죄

 없음

 있음

 유전죄

 없음

있음 

 탄생시 인간

 중립적 존재

 타락된 본성 지님

 인간의지

 자유

죄의 노예 

 죄가 편만한 이유

 나쁜 모본 때문

 인간의 선천적 죄악성 때문

 구원얻기 위해 하나님께 돌이킴

 하나님의 은총 없이도 가능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 


 
 
반펠라기우스
일반적으로 인간의 의지는 타락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는 주장.
인간은 하나님과 협력하여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
 
작용적 은혜와 협동적 은혜를 구분해야하는데..
작용적 은혜란, 인간으로 하여금 믿음으로 주님께 돌아오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전인적 행위를 가리킴
협동적 은혜란, 인간이 하나님과 동역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은혜(하나님: 복음 주심, 인간: 복음을 믿는 행위)
 
 
알미니안의 선행적 은혜
반펠라기우스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 알미니안은 보편적 속죄를 통해 구원을 얻기 위한
방편 중의 하나로 "선행적 은혜"를 주장했는데... 선행적 은혜란 복음의 초청에 응답할 수 있도록
영혼을 구원하기 전에 구원을 준비하기 위해 주어지는 은혜를 말한다.
이는 죄 가운데 어찌할 바 모르는 인간에게 베풀어진느 성령의 예비적 은혜로
범죄자에게 주어지는 이는 자비라 부르고, 무력한 자에게 주시면
능력이라 불린다. 그러므로 선행적 은혜란 온전히 거듭난 생활에 앞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향력을 말한다. 결국 이는 동역설로 추론할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선행적 은혜는 자유의자와 너무 뚜렷한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알미니우스는 인간의 타락이 선택의 능력을 파괴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선행적 은혜는 사람을 감동시켜 그의 영적 궁핍을 깨닫게 하여 구원을 선택하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자료출처: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RkzJ/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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