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멘탈리티의 핵심 키워드 : 신성한 내면아이, 구상화, 의미와 통일성, 도약~
목록
영혼의의사(구원론)

연속적중생관1

연속적 중생관(토탈님의 글)
자료출처: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1NyO/82 
 
이글은 예전에 지초라는 분이 올린 글입니다. 어느 카페에서  어떤 목사님과 논의한 내용의 글입니다.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아 올립니다.
진행되어지는 글들을 자세히 읽어보지 못해 지금 올리는 글이 벌써 다 이해되어진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리플에 계속해서 후크마의 요점을 말씀드리면
중생에 관한 설교자의 의무는.....
설교자는 청중들에게 중생하라고 요구할 수 없는 노릇이므로 설교자가 해야 할 일은
청중들에게 복음을 믿고 죄로부터 회개하라고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시고 중생시킨사람을 복음에 반응하도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사님도 동의하시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설교자가 좁은 의미의 중생(초기의 중생)을 시킬수 없고 - 성령님의 역사로 되어지니까 -
설교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넓은 의미의 중생(새출생-믿고 회개하여)을 의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일 겁니다.이것이 리플의 요점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후크마나 벌코프나 목사님이 존경하시는 워필드가 이것을 말하였습니다.(차후에 증명하겠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런 결과로 후크마나 개혁주의자들은 넓은 의미의 중생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넓은 의미의 중생이 마스터스가 말한 연속적인 중생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차후에 두개가 똑같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오히려 청교들이나 칼빈이나 초기의 개혁자들에게서 구분되지 못한
광범위한 중생을 마스터스는 잘 구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초기중생과 새로운출생(넓은의미의 중생)으로(현대개혁주의자들이 구분해야한다고 한것을 잘따르고 있음)
지금 목사님께서는 좁은의미의 중생과 넓은 의미의 중생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오해하시고 있습니다.
이것도 차후에 설명하겠습니다,
왜 제가 그것을 말씀드리는 것이냐면 밑의 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목사님의 글: 저는 설교 중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중생시키지 않으시면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설교합니다.
저의 글: 이글은 목사님께서 좁은 의미의 중생을 의미한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의 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설교자가 중생을 말할 땐 새롭게 출생하는 넓은 의미의 중생을 말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좁은 의미의 중생(초기의 중생)을 보고 이 사람이 거듭났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의식할 수 없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초기의 중생을 했다고 합시다.
그래서 아직 완전히 쇄신이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초기의 중생은 되었지만 아직 의식적이고 가시적인 자신이 알 수 있는
 회개와 믿음(회심)의 요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에서는 거듭난 (중생)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이 초기중생의 결과인 새로운출생으로 말미암은 넓은 의미의 중생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중생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넓은의미)
마스터스는 초기중생(좁은의미)에 인간이 의식적으로 반응하고 협력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초기중생을 하고 설교자나 성경말씀을 통해 죄의 각성과 확신을 하고 믿음과 회개라는 회심을 하고 새롭게 태어날 때를 가리켜 새로운 출생을 하였다고 말하고 그것을 넓은의미의 중생이라고 본것입니다. 이것이 마스터스가 말한 연속적인 중생관입니다.
초기중생의 결과로 새로운 출생을 하게 된다. 즉 초기수태로부터 아기가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이 모든 과정을 연속적중생관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사님께서 위에서 말씀하신
저는 설교중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중생시키지 않으시면 아무런 소망이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설교합니다.
이 말씀에서 중생은 어떤것을 말씀하시는 지요.
좁은 의미의 중생(잠재의식, 순간적인 새생명의 부여)을 말씀하십니까
아니면 믿고회개하여(회심) 새롭게 출생된 넓은 의미의 중생을 말씀하시는 지요 궁금합니다.
벌코프나 후크마나 현대개혁주의자들은 중생을 2가지로 구분하여사용하고 있습니다.
1. 좁은의미의중생(새생명의 주입)-이것은 인간과 절대 협력하고 반응한다고 하지 않습니다.-마스터스도 동일합니다.
2. 넓은 의미의 중생(새로운 출생)-이것은 인간이 협력하고 반응한다고 말하지 않고 믿고 회개하여 새롭게 거듭나는 것,
새롭게 출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이것이 마스터스가 말하는 연속적인 중생관입니다.)
연속적중생관은 중생이 여러단계에서 막 반복적으로 생기는 그런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기중생을 해서 새로운 출생을 하기까지의 그 모든과정을 말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이 두 가지 중생을 구분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오는 오해이십니다.
절대 초기중생은 개혁자나 저나 마스터스나 로이드존스이나 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행위이십니다. 인간이 절대 협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중생은 조금 뒤에 올리겠습니다.
댓글 8 인쇄 | 스크랩(3)▼
카이로스 벌코프가 중생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사용한 것이 아니라 벌코프는 순간적 중생관을 지지하며 칼빈이나 초기 개혁자들이 중생관을 명확히 하지 못하였다고 말하였을 뿐입니다. 따라서 현대에 들어와서 중생관은 명확해지고 중생-회개-신앙이 명확히 구분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07.08.12 17:49
답글
┗ 바로미 카이로스님도 벌콥의 책이 있으니.. 그 책에서 순간적 중생관을 지지한 벌콥의 본문 내용을 올리심이 어떠하신지요? 저와 토론할때 올리신 링크는 뻘콥의 책 본문이 아닌 뻘콥의 책을 인용한 어떤 분이 쓴 자신의 글이었습니다. 07.08.12 20:31
  카이로스 연속적중생관의 문제점이 초기중생을 순간적중생관이 주장하는 중생을 말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됩니다. 만약 중생2가 순간적중생관에서 말하는 중생이라면 별로 태클 걸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후에 또다른 중생을 말함에 있어서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이지요. 07.08.12 17:51
답글
  카이로스 부르심과 중생이 순간적이냐? (루디아,고넬료,바울처럼).. 아니면 부르심과 중생간의 간격이 길어졌을 뿐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으로 중생이 이뤄진 것이냐? 이 차이를 순간적 중생관에서는 말하고 있을 뿐인데, 연속적 중생관은 마치 인간과 하나님의 협력에 의한 중생2가 다시 일어남을 말하는데 문제가 있는 거죠 07.08.12 17:52
답글
  카이로스 중생1이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냐? 라고 말했을 때, 홀리조이님이나 바로미님은 거부를 합니다. 중생1이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순간적 중생관에서 말하는 '중생' 그 자체인데, 그 자체로 칭의를 받지 못하고 다시 중생2로 가서 칭의를 받는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설령 모태신앙자가 거듭나지 못하고 20년 후에 거듭났다한들 그것은 부르심 이후에 중생까지의 기간이 길어질 뿐이지 어떻게 중생1에서 중생2가 된것인지는 억지춘향격인 것 같습니다. 07.08.12 17:55
답글
  카이로스 중생2는 마치 칼빈이 중생에 대해서 성화를 포함한 개념으로 생각하였듯이.. 차라리 성화라는 용어로 바꾸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성화가 인간과 하나님의 협력적 인 것과 같이 중생2도 그러한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생2에 의한 칭의는 값없는 은혜와는 멀어지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지요 07.08.13 13:56
답글
  진리 카이로스님 의견에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07.08.13 02:57
답글
  바로미 /초기의 중생은 되었지만 아직 의식적이고 가시적인 자신이 알 수 있는 회개와 믿음(회심)의 요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에서는 거듭난 (중생)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이 초기중생의 결과인 새로운 출생으로 말미암은 넓은 의미의 중생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중생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넓은의미) 마스터스는 초기중생(좁은의미)에 인간이 의식적으로 반응하고 협력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위의 글. 07.08.13 09:35

이 글 공유하기

독자 의견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