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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의사(구원론)

성화의 은혜(11) - 불공평한 은혜(?)

성화의 은혜(11) - 불공평한 은혜(?)
자료출처: http://www.ansanluther.co.kr

제10장 불공평한 은혜?

1. 우리가 가진 의는 우리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행위로 주어진 결과일 뿐이다. 자신의 노력을 근거로 하나님께 보상을 바라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얼마나 필요로 하고 있는 존재인지를 미처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정의가 아니라 은혜에 호소해야 한다.

2. 예수님은 집주인이 맨 마지막에 온 사람들에게 똑같은 액수의 품삯을 지불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뜻과 그분의 백성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올바르게 보게 하신다.

3. 한가지 확실한 것은 집주인에게는 나중에 시작한 일꾼도 일찍 시작한 일꾼만큼이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중요한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 의견에도 불구하고, 일찍 시작한 일꾼이나 늦게 시작한 일꾼이나 그들 각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고, 그들 모두가 그분에게 귀중한 존재라는 점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포도원 품꾼의 비유’ 의 교훈이다.  

4. 하나님의 목적은 일찍 시작한 수고나 늦게 시작한 수고에 의해 똑같이 성취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일찍 시작한 사역을 귀하게 보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또한 늦게 시작한 사역에 대해서도 그것이 그분의 뜻을 위해 헌신된 것이라면 그것을 귀하게 사용하신다.

5. 주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는 아무리 늦어도 결코 늦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비록 일생 동안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아 왔다고 하더라도 너무 늦어서 돌이키지 못할 때는 없다.

6. 하나님이 그분의 사역을 위해 우리를 부르시는 때와 방법에 관해 우리는 충분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오래 된 사역만을 귀하게 보신다는 생각을 당연히 갖기 쉽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는 그러한 생각이 편견임을 드러낸다. 그러한 편견을 가질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지니는 가치를 우리 나름대로의 중요성 판단 척도에 따라 잘못 생각할 수 있다.

7. 자타가 공인할 만큼 명백한 가치를 지닌 일을 하는 사람들만 귀하게 본다면, 우리는 특정한 시간에 특별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일하는 사람들을 잘못 평가할 수 있는 우를 범하게 된다.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님이 모든 일꾼을 귀하게 보신다는 사실을 가르칠 뿐 아니라, 모든 사역이 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확증해 준다.  

8. 하나님은 일의 정도나 양과는 상관없이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가 행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시 않으신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는 단지 하나님이 우리가 행하는 일에 근거해 우리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9. 하나님은 인간의 가치 기준에 상관없이 우리를 소중히 여기신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일을 모두 귀하게 여길 수 있다.

10. 적은 일을 한 사람도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위로를 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찮게 보지 않도록 해 준다.

11. 은혜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한, 우리보다 못하고, 우리보다 비정통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고, 우리만큼 선하지도 않으며, 우리만큼 오랫동안 봉사를 하지도 않고, 우리만큼 많은 수고를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처럼 보일 때 시기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12. 우리만큼 재능이 있지도 않고, 그럴만한 자격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높은 지위를 갖거나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를 기억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공로나 재능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의해 주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13. 성화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공급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이 자랑이나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으며, 하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부여하지 못한다.

14. 우리의 의지와 사역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와 행위를 사용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인간은 자신이 행하는 선행이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동기를 부여하심으로써 모든 선행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15. “성화를 위하여 노력하면 할수록 그러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안소니 후크마)

16.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것도 다 그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17. 감사함에서 우러나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선행을 통해 선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이미 내게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행위를 공로로 내세울 수 없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잘 말한 것과 같이, 우리가 세운 공로는 단지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이루어진 일’일 뿐이다. 기독교인의 선행은 공로로 내세울 수 있는 업적이 아니라, 말씀이 지닌 창조적인 능력, 다시 말해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연합을 통해 자란 열매일 따름이다. 감사함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하려는 자는 자신의 공로를 내세워 스스로를 주장하려 들지 않는다. 감사하는 자는 겸손하다. 왜냐하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돌프 쾨벨레)

18. 복종의 책임은 우리의 것이지만, 의의 공로는 하나님의 것이다. 죄는 우리가 짓고, 형벌은 그리스도가 담당했다.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이 이 책임을 이행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과정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19. 이 세상에서는 성화에 있어서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개입을 충분히 논리적으로 조화시켜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가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20. 인간의 생각은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하나님이 하늘의 일을 인간에게 모두 밝히지 못하시는 이유도 인간의 이해력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21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되면 성경이 우리의 문제에 대해 대답해 줄 뿐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물어야 할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2. 성경은 “경건한 삶을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그분께 복종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이 물음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그렇다” 이다. 성경은 또 “복종하려는 소원과 복종할 수 있는 능력과 신앙은 어디에서 얻는가?” 라고 묻는다. 성경은 그러한 것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얻는다고 대답한다. 성경은 또한 이 두가지 질문을 염두에 두고 매우 어려운 질문 하나를 제기한다. 즉 성경은 “만일 내가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책임인가?” 라고 묻는다. 이 물음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아니오” 이다.

23. 만물이 주님에게서 나오고 주오 말미암고 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복종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24.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관련해 그분의 도움을 받는 방법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답을 제공한다. 우리가 잘하면 하나님의 은덕이고, 우리가 못하면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불공평한 것처럼 들릴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가 지은 죄를 산술적으로 따져 공평하게 대하셨다면, 우리는 벌써 단죄되어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절대적인 공평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사실상 죽어야 한다.  

25.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영적으로 살아 있게 하고, 그분의 말씀에 복종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영적 생명을 통해 우리는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우리의 의지로 자유롭게 그 분을 섬길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도움 없이는 주어진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없다. 결국 복종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며, 의로운 행위를 하려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26. 구원과 성화의 문제와 관련해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것은 인간이 내세우는 민주주의적인 가치관과 정의의 원칙에는 잘 부합하는 생각일지 몰라도, 인간이 타락한 본성을 지닌 유한한 존재일 뿐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 있는 존재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믿는 한 양심상 받아들이기 곤란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27. 칭의든 성화든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다고 분명히 대답하지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에 관한 문제는 신비로 남겨 둔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에 관한 모든 것을 다 밝히지는 않는다.

28. 성경은 우리의 성화에 관해 방향을 제시한다. 즉 성경은 우리가 성결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물음을 던질 때 그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내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해야 하는가?”,“내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알고 고백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성경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대답한다. 다시 말해 믿고 복종하는 것이 인간의 책임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어디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는 마음의 동기와 힘을 얻는가?” 라고 묻는다면, 성경은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다고 대답한다.

29. 이렇듯 두 경우 모두 성경의 대답은 분명하지만, 그 두가지 대답이 서로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비로 남는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측량할 수 없는 신비 앞에서 침묵하는 것을 말한다.

30. 하나님의 신비에 관한 궁극적인 대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마음, 곧 그분의 자비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룬 업적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만을 기꺼이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31.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그분의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분을 신뢰하며 옳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분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어린아이처럼 울부짖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32. 우리는 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면 비록 신비에 가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도 흔들림 없이 그분을 의지할 수 있다.

33. 은혜의 원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행한 수고에 준하여 우리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행위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시지 않는다.

34. 우리는 행위를 내세워 주님께 공평한 처사를 요구한 적이 많다. 하지만 그러한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친구여, 내가 관대하다고 해서 불평했었지. 하지만 네게도 나의 관대한 은총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35.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자비 때문에 그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분을 섬길 수 있는 마음의 동기와 능력을 얻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님은 공평의 원칙을 뛰어넘어 은혜로 우리를 대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는은혜를 내여 주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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