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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의사(구원론)

성화의 은혜(9) - 은혜의 힘

성화의 은혜(9) - 은혜의 힘
자료출처: http://www.ansanluther.co.kr

제8장 은혜의 힘

1. 많은 기독교인들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무미하고 단조롭게 변해 버린다.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몸과 마음은 그런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인다. 하나님을 섬기고 마귀에 맞서 싸우려고 하지만, 결심에 그칠 뿐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후회만 일삼게 된다. 단지 의무감에서 그렇게 할 뿐, 하나님은 멀게만 느껴지고 그분에 대한 사랑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2. 바울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로 우리를 격려하고자 했다. 이는 하나님의 자비보다 우리에게 더 큰 격려가 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3. 율법이 단지 명령일 뿐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기쁘게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늘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 필요한 것을 행한다고 생각할지라도 마음의 동기가 없으면 의무를 행하더라도 그 안에서 기쁨을 찾기는 어렵다. (사무엘 볼턴) 기쁨이 없는 복종은 오히려 거룩한 삶을 무력하게 만든다.

4. 바울은 죄책감에서 하나님을 섬길 경우 기쁨도 없고, 강력한 힘도 발휘할 수 없으며, 오래 지속되지도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17세기 개혁자들은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 ‘노예처럼 행하는 것’ 또는 ‘노예와 같은 두려움’ 이라고 표현했다.

5. 하나님은 “내가 두려워서, 혹은 너희가 부끄럽게 될까봐 염려하는 마음으로 섬기지 말고, 내 자비에 힘입어 나를 섬겨라”고 말씀하신다.

6. 우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심령 속에 그렇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겨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회를 제공해 주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풍성하고 놀라운 것이어서 단지 눈을 열어 보기만 하면 언제라도 즉시 발견할 수 있다.

7.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할 때, 우리 마음은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소원으로 가득해진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그분을 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8.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 없이 단지 의무만을 이행하려 한다면 그것은 억지로 하는 일이 될 뿐이며, 하나님을 엄격한 주인으로 아는 노예적 행위일 따름이다.

9.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그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린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아닌 다른 여러 가지 동기에서 하나님을 섬기려는 마음이 생겨난다. 하지만 사랑의 동기가 아닌 다른 동기로 하나님을 섬길 경우에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 올 뿐이다.

10.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려면 항상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을 마음에 깊이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11. 대개의 경우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고 그들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 모든 부모들이 이와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또한 설교자, 교사, 고용주를 비롯해 심지어 친구들끼리도 이런 식의 방법을 통해 사람들을 움직이려고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12. 나 역시 목사로서 그와같은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그렇게 하면 교인들은 잠시 동안은 행위를 고치곤 했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들의 신앙이 성숙한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야 그들이 행위를 고친 것은 단순히 내가 그들에게 창피한 마음을 갖게 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 교인들의 경우, 비록 외적인 행위는 시정되었을지라도 신앙에 있어서는 전혀 성장이 없었고, 건강한 영적생활도 하지 못했다.
    
13. 왜 그런 결과가 생기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나는 마침내 내가 그동안 사람들에게 죄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행위를 고치는 길이라고 가르쳐 왔음을 알게 된 것이다. 행위를 고침으로써 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게 만든 것이나 같았다.

14.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십자가가 아니라 자신을 의지함으로써 죄의 문제를 처리하게 만들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없애주실 수 있는데 말이다. 결국 사람들에게 스스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은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인간의 행위라는 쐐기를 박아 넣은 것이나 같았다.

15. 하나님의 자비를 보지 못하면 은혜는 사라지고 행위로 인해 의를 얻으려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사람들에게 주입했다.결국 나는 선한 공덕을 충분히 쌓으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었던 셈이다.

16. 나는 사람들에게 행위만 바르게 하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모른다. 성경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 뒤에도 여전히 ‘무익한 종’일 뿐이며(눅17:10), 우리가 행한 가장 훌륭한 행위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과 같을 뿐이라고 말씀한다(사64:6). 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더러운 옷을 하나님께 더 많이 바칠수록 더 많은 은혜와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결국 나는 교인들에게 기괴하고 잔인한 하나님을 전했던 셈이다.

17.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행위에 의존한다는 나의 가르침은 은혜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교인들을 성숙하지 못한 신자들에게 너그럽지 못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바로 나였다. 내게 가르침을 받았던 교인들은 행위라는 잣대로 거룩한 삶을 측정하려 했다. 사실 본인이 거룩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면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교인들이 그토록 관용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18. 가정 생활의 경험을 통해 보더라도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자녀를 복종시키려는 것이 별로 효과가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단지 부모에게 혼이 날까봐 복종하는 자녀, 다시 말해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고 착한 행위를 하고자 하는 자녀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런 자녀는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고 복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자란 아이는 일생동안 불건전한 심리 상태를 갖게 된다. 바꾸어 말해, 착한 행위를 하지 않으면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 속에서 자란 자녀는 자신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늘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그는 자라면서 냉정한 마음을 갖게 되거나, 아니면 자신감이 부족한 유약한 사람이 된다. 한마디로 부모를 증오하게 될 뿐 아니라 자신을 의심하는 심리상태를 갖게 된다.

19. 성경은 우리가 자책하는 마음을 갖거나 스스로를 정죄한다고 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자신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낙심에 빠져 머리 숙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머리를 드시는 분이시다.

20. 죄를 지은 순간에는 죄책감이 물밀 듯이 밀려들기 마련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러한 죄책감에 몸부림을 치며 자신을 증오하게 된다. 이런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교회에 출석해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자 더욱 열심을 내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환심을 사려는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스스로 절망하여 그분을 점점 덜 사랑하는 길로 나아간다. 우리의 모든 노력이 소용없다는 좌절감은 우리를 더욱 완고하고, 냉소적이며, 심판자처럼 행동하게 만든다.

21.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없애 주실 수 있는 죄책을 우리 스스로 없애려고 애쓴다면,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22.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위에 그분의 왕국을 건설하기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분의 사랑 위에 그분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신다.

23. 신자는 당연히 죄를 탄식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죄에 대한 탄식에 매몰되는 것은 옳지 않다. 죄에 대한 탄식은 우리를 십자가로 인도하는 역할로 끝나야 한다. 그 이상의 감정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24.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죄책감으로부터 해방한다. 죄책감은 그리스도를 구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사죄의 은총을 받은 이후부터는 더 이상 죄책감에 시달려서는 안되며, 은혜에 대한 감사를 통해 그분을 기뻐하며 섬기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죄책감은 죄를 고백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지만, 그 뒤부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종의 삶을 살아가야만 진정한 회개에 이르게 된다.

25.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책을 용서하셨다. 이러한 사랑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기 어렵다.

26. 이러한 관점에서 루터는 죄인을 십자가로 이끄는 죄책감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참 회개를 한 뒤에 죄책감을 갖는 것은 사탄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수 마귀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가 고백한 죄를 깨끗하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믿게 만들고자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버린 십자가의 능력을 의심할 경우, 우리는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기 쉽다. 그럴 경우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삶을 살기 시작한다.

27. 하나님의 사랑은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는 다함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 우리가 영원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이런 확신은 우리로 하여금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가능케 한다.

28.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할 때 그분을 지속적으로 섬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미 우리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할 때, 우리는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29. 사죄의 은총을 확신하는 신자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지만, 하나님의 환심을 사기 원하는 사람은 공로를 세우려고 애쓰는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어떤 동기에서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30. 신자들 가운데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과 천국에 가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마음 없이 단순히 개인적인 유익을 얻고자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마귀가 주는 생각이다. 성숙한 기독교인을 분별할 수 있는 척도는 개인적인 유익을 얻으려는 헛된 시도를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느냐에 달려 있다.

31.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동기를 변화시킨다. 의무는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행하는 마음의 동기는 변할 수 있다.

32. 하나님의 은혜를 남용하려는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은 두가지를 경고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징계가 주어진다는 것이며, 둘째는 은혜를 남용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비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33. 하나님은 복음 아래 있는 신자의 연약함을 악으로 보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신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이와는 달리 율법 아래있는 자들은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 신자의 죄는 오히려 하나님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마치 두꺼비가 독을 품고 있으면 증오의 대상이 되나, 사람이 독에 중독되어 있으면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과 같다. 두꺼비는 독을 지니는 것이 본성이지만, 사람에게 있는 독은 질병이다. 사악한 사람에게 존재하는 죄는 인간에게 있는 독과 같다. 하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신다. 하나님은 성도의 죄와 연약함은 가엽게 여기시지만, 사악한 자는 미워하신다. 죄는 사악한 자에게 있어서는 본성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는 질병이다. (사무엘 볼턴)

34. 하나님은 죄를 저지른 신자를 경멸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설사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잔인함과 경멸함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하신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이유는 그분 자신이 불쾌해서가 아니라 죄의 결과로 인해 우리가 해를 당하게 될 것을 염려하시기 때문이다.

35.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괜챦아”라는 생각으로 악한 죄를 계속 짓는 사람은 과연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36. 참 신자의 경우에도 구원의 확신이 때로 흔들릴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으며, 중단될 수도 있다. 구원의 확신을 보존하는 일을 무시하거나, 양심을 해치고 성령을 근심케 할 수 있는 특별한 죄에 빠지거나, 갑작스럽게 격렬한 유혹에 넘어가거나, 하나님이 그 얼굴의 광채를 돌리실 일이 있거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빛이 없는 어둠 속을 다니며 고통을 받거나 할 때 그와 같은 일이 생긴다. 하지만 참 신자는 하나님이 뿌리신 믿음의 씨앗, 신앙심, 그리스도와 형제에 대한 사랑, 신실한 마음, 의무에 대한 양심을 잃지는 않는다. 시간이 되면 성령에 의해 이와같은 것들이 다시 회복되어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고, 비록 죄로 인해 방황하는 동안에도 완전한 절망에 이르지는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7.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의 축복을 느끼는 정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행위로 인한 즐거움, 하나님의 징계, 죄책감 등이며,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우리의 행복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애정,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의 운명, 우리의 안전 등이다.

38.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함께 협력해 거룩한 삶을 만들어 간다. 두려움에서 참 복종이 나올 수 없다. 공포심을 갖는 한 거룩한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치 못하고 침울한 마음을 갖게 되면 욕망을 정복할 수 없고, 왜곡된 의지를 바르게 할 수도 없다. 십자가의 용서가 죄의 뿌리를 근절해 그 모든 가지가 다 시들어 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때, 즉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만 그렇게 할 수 있다. (호라티우스 보나르)

39. 하나님의 자비는 단지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에게 실제적인 능력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주어지는 은혜는 우리 앞에 놓여져있는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동기와 능력을 제공한다.

40.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로 그분이 요구하시는 일을 완수한다. 우리는 자비를 기억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도구처럼 사용해야 한다.

4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이 곧 자비다. 하나님은 우리편이시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응원하시고 지지해 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야말로 우리의 힘이다. 우리는 비록 연약하고 결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무한한 힘이 되는 일이다.

42. 하나님은 우리가 죄로 인해 쓰러질 때 우리를 격려해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힘껏 싸울 수 있는 전사로 만드신다.

43. 신자는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때 영적 능력을 얻는다. 하나님을 잘못만 책망하는 존재로 알고 두려워하게 되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삶을 살게 되고, 결국 마음으로부터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만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척하게 될 뿐이다.

44. 우리가 아무리 많은 희생을 감수한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다고 자랑할 수 없다.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의 기준은 하늘만큼 높다. 아무리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우리는 거룩하게 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거룩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제공하신 수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45. 롬12:1,2에서 ‘거룩한’,‘기쁘시게’ 등과 같은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옳다 인정함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가리키지 않는다. 거룩한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하나님의 자비에서 결과된 열매일 뿐이다. 결국, ‘거룩한’이란 말은 우리가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거룩하게 된 우리의 상태를 선언하는 뜻을 갖는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존재가 되었다.

46.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제공해 주신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마음을 새롭게 한다면 우리는 변화될 수 있다. 먼저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함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만일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이 요구하신 거룩한 삶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인간의 힘으로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우리의 힘으로 거룩함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선한 행위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제공하신 의를 믿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해 두려움 속에서 노력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자유로이 섬길 수 있게 된다.

47. 하나님은 “내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이제 열심히 힘을 내어 내 왕국을 건설하라. 내가 베푼 자비를 통해 이미 너희에게 필요한 무한한 힘과 능력이 공급되었다. 믿음이 약한 이들처럼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거나 의심에 빠지지 말라. 나는 이미 네가 거룩하다고 선언했노라. 내 왕국을 건설하는 일에 힘써라. ‘나는 모세도 아니고, 올바른 환경에서 자라지도 못했고, 다른 일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이며, 실수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인간일 뿐이다. 나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너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48. 하나님은 자비로 우리를 주장하시고, 자비로 우리의 용기를 북돋우시며, 자비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을 은혜로 기쁘게 받아주시고, 우리의 심령을 강하게 해주신다. 이와같은 은총이 우리의 심령에 충만할 때, 복음의 능력을 깨닫게 되고, 믿음이 새롭게 되며 새로운 열정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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