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사랑의 징계
1. 하나님이 거져 은혜를 주신다고 해서 그분의 계명과 우리의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2. 하나님은 “내가 너를 홀로 놔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저버렸을 때 우리를 엄중히 문책하시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3. 인간은 죄를 지으려는 뿌리 깊은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 때로는 혹독한 징계를 받아야만 비로소 그와같은 성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4. 하나님의 징계는 항상 사랑의 동기에서 이루어진다. 징계는 사랑으로 주어지는 은총이다.
5.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고난을 주신다. 이 점을 기억할 때 우리는 고난이 우리를 징벌하기 위함도 아니고, 아무런 뜻 없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6. 징계는 자녀의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일 뿐 아니라, 앞으로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올바른 성품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7.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죄값을 치르게 할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를 꾸짖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지은 죄를 뉘우치게 함으로써 같은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징계는 신자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약과 같은 것이며 결코 징벌이 아니다. 징계는 심판이 아니라 교정을 위한 것이며, 정죄가 아니라 치유를 위한 것이다. (사무엘 볼턴)
8. 하나님이 징계를 위해 고통스러운 수단을 사용하실 수 있다. 하지만 그분의 동기는 죄값을 치르라고 강요하거나 자녀를 징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9. 하나님의 정의가 완전히 충족되었기 때문에, 이제 징계의 남은 목적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그분의 은혜를 온전히 깨달아 그분을 닮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10. 징계는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앞날을 대비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크게 사용하시기 위해, 혹은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시려고, 아니면 이 두가지 목적을 모두 이루시려고 시련을 주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 것인지를 아신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사랑에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온유하고 굳센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신다.
11. 우리는 우리의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고난을 통해 우리 자신만을 돌보는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게 된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희생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12.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한 것같이 우리도 고난을 당하게 되면, 그분의 사랑을 알게 되어 우리도 그분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우리가 고난을 통해 자아를 죽이는 법을 배우게 될 때, 자신의 유익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불이익이나 불편을 생각하지 않고 고통을 당하는 이들을 동정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다.
13. 우리는 고난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장래 세상의 약속을 바라보며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14. 기독교인이 겪는 고난은 맹목적인 징계가 아니다. 고난에는 목적이 있다. 이런 사실을 살게 되면 고난을 겪더라도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도 않게 되고’,‘낙심하지도 않게 된다.’
15. 악과 대항해 싸우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또한 영적 싸움으로 인한 고통에 대비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로 아픔을 허락하신다.
16. 징계의 목적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시련을 감내하고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충실한 신자이든 그렇지 않는 신자이든 누구나 시련을 겪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궁극적인 유익을 위하신다.
17. 일시적인 상황과 목전의 어려움만을 바라볼 경우에는 우리의 눈이 가려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상황보다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의 눈이 열린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는 분이시다.
18.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거룩하게 하시려는 강한 소원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 외에 다른 것을 위안으로 삼거나 추구하거나 사랑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항상 징계를 통해 그분의 뜻에 따르도록 만드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축복들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길들이시며 사랑의 마음을 갖게 하신다.
19.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시련을 통해 우리를 징계하시는가? 그것은 우리가 내려 주신 축복과 위로에만 몰두한 탓에 그분 안에서 궁극적이고 영원한 만족을 얻을 생각을 더 이상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20. 하나님은 때로 시련도 주시고 때로 번영도 주신다. 또한 하나님은 슬픔과 기쁨을 통해 우리를 훈련하신다. 그런 훈련을 통해 우리는 헛된 욕망을 버리게 된다.
21. 진정 그리스도를 알고자 한다면 고난은 필수적이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다고 말씀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리스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고난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동료 신자들과 교제를 나누는 영적 훈련을 쌓아 가야 할 뿐 아니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해야만 한다.
22. 그리스도의 고난은 타자를 위한 고난이었다.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이 지은 죄값을 스스로 짊어지시고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당하는 고난 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해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23.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따르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신 그리스도를 가장 깊이 알 수 있는 길은 바로 세상의 불행과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자신의 십자가로 삼아 그것을 짊어지는 것이다.
24. 우리 자신의 상황에 의한 고통이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죄악으로 인한 고통이든지, 우리는 고통을 통해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난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고난은 연구나 명상과 같은 다른 수단을 통해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정도까지 그리스도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25.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고 책을 쓰는 데만 몰두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할 때가 많다. 분주하고 사소한 일상에서 벗어나면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바람이 가끔씩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사실상 모두 어리석은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살면서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고, 무사 태평한 나날을 보내는 목사가 만들어낸 설교에 귀를 기울일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26. 인생의 시련을 겪지 않고 주님께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질 수 없다.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는 우리를 더욱 성숙하고 온전하게 만든다.
27.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부르시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그분의 은총이 우리 안에 좀더 깊게 흐르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자신을 알리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는 삶을 살게 된다. 즉 별로 이익이 없는 일도 즐거이 할 수 있고,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역에도 열심을 낼 수 있으며,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고,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전혀 개의치 않고 묵묵히 어려움을 감내할 수 있게 된다.
28. 우리는 고난을 통해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먼저 복종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29.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는 수단, 곧 우리 자신과 하나님에 관해 특별한 사실을 알게 해주는 수단이다.
30. 만일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신다면, 그것은 우리가 거듭나지 못했다는 증거다.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해 그분의 뜻대로 살게 하신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라는 증거다.
31.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가 그분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는 증거이다. 시련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즐거움을 끊게 만드실 뿐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저버리고 오직 우리 자신에게만 관심을 기울이는 삶을 버리게 하신다.
32. 만일 십자가를 지고 사람들의 손에 고통과 버림을 받고자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아무 관계가 없는 자일 뿐 아니라, 그분을 따르는 길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명을 잃더라도 그분을 섬기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교제를 나눔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다시 찾게 된다….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스도도 십자가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도 당연히 십자가를 짊어지게 되어있다. (디트리히 본훼퍼)
33.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분의 징계를 받는다. 하지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때문에 또한 정해진 한도 내에서만 징계를 받는다.
34.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가지를 치는 일을 하신다. 하지만 그분은 결코 가지를 치는 목적을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또한 가지를 치는 일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때로 성장에 필요한 물과 양분을 풍부하게 공급하신다. 가지치기, 즉 고난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이 이루어졌을 경우 곧 중단된다.
35. 주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삶을 누릴 것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고난을 받는다 해도 지극히 짧게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36. 징계를 통해 거룩한 삶을 살게 될 때,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을 분명히 알게 된다.
37. 우리는 성공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한 삶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우리는 일시적인 쾌락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결과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38. 하나님이 사랑으로 나를 징계하신다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징계를 견딜 수 있으며, 우리의 질못을 깨닫고 ‘잘못을 고치면 나를 다시 받아 주시겠지’ 라는 마음으로 죄를 고백할 수 있다.
39.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실 때 고통을 느끼신다. 하나님은 결코 자녀를 때리면서 이상한 희열을 느끼는 그런 부모가 아니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아들 예수를 징벌하면서도 하나님은 커다란 고통을 느끼셨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징계하시면서 고통을 느끼셨듯이, 우리를 징계하실 때도 동일한 고통을 느끼신다.
40.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으로 가득한 그분의 마음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그분의 손길을 또한 보여준다.
41. 마귀와 죄는 우리의 마음을 속여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징계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우리와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고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분이 우리의 상황을 돌아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열심을 내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위로와 용기가 생긴다.
42. 징계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영적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구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하면 징계는 곧 은혜나 다름없다. 징계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우리는 징계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그분의 사랑을 좀더 깊이 깨닫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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