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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의사(구원론)

성화의 은혜(6) - 자유의 법

성화의 은혜(6) - 자유의 법
자료출처: http://www.ansanluther.co.kr

제5장 자유의 법

1. 하나님이 죄인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신다는 가르침이 혹시나 하나님이 죄를 용인하신다는 식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복종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하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이 복종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식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2. 성경의 의도를 충분히 알지 못하고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가르칠 경우 죄를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은 죄를 변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이용하려는 자연적인 성향을 타고났다.

3. 어떻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성화의 삶의 행위를 조화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은혜가 결코 복종의 삶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4. 은혜와 복종은 서로 완벽하게 일치한다. 은혜와 거룩한 삶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은혜는 거룩한 삶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거룩한 삶은 은혜의 샘에서 솟아난다.

5. 인간은 본성적으로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신이 되려 하거나, 좀더 나은 상태에 이르고자 하는 성향을 가진다. 우리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무엇을 얻으려고 하거나,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려고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세운 업적과 공로를 잣대로 삼아 각자의 가치와 지위를 측정하려고 한다. 이 모든 일이 사회, 경제, 교육 등과 같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은혜의 율법이 아닌 공로의 율법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하나님과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공로의 율법에 따라 행동하려는 습성에 젖어 있다. (마크 베이커)

6.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그 분 자신의 행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은혜의 교리는 근본적인 것이다. 이 교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첫째, 은혜는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율법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한다.(자의적 율법주의) 둘째, 은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새로운 규범들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한다.(신율법주의)

7. 우리 안에 있는 그 무엇이나 우리가 행하는 그 어떤 행위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은 항상 그리스도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우리는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 이 진리는 우리가 믿음을 처음 가졌을 때나 믿음을 가진 후에나 결코 변함이 없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한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피와 의를 의지해야만 한다. 우리의 본성이나 행위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대신하거나, 그리스도와 나란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항상 부족할 뿐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B.B워필드)

8. 우리가 아닌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한계로부터 자유롭게 될 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법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된다.    

9. 성경의 원리에 근거해 영적 조언을 하거나 신중한 선택을 하는 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행해야 할 의무다. 하지만 성경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을 기초로 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나 우리 자신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다.

10.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권위의 한계 내에서 조언과 상담과 판단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11.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귀찮게 여기지 않으며, 그분의 계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키게 된다는 것이 바울의 지론이다.

12.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사함의 은총을 받기 이전에 율법의 구체적인 조항들은 우리를 단죄해 죽음의 형벌을 받게 하는 궁극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죽음의 대가를 치르신 후에는 그와 같은 율법의 역할이 달라졌다. 다시 말해 율법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신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알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다른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는 축복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13. 우리(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는 복종한다. 하지만 우리의 복종은 이전과는 다른 원리와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전에는 율법적인 관점에서 노예적인 복종을 했지만, 지금은 아들이라는 관점에서 복음적인 복종을 한다…. 다시 말해 거듭난 심령은 믿음과 사랑과 기쁨의 원리를 통해 하나님께 복종한다…. 복종하는 마음 또한 다르다. 지금까지는 두려움으로 복종했지만, 이제는 사랑으로 복종한다. 전에는 우리의 힘으로 복종했지만, 지금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복종한다…. 복종의 목적도 달라졌다. 전에는 의롭다 함을 받고 생명을 얻기 위해 복종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복음의 진리를 받들고, 믿음의 진실성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 복종한다. 전에는 양심의 강박에 따라 복종했지만, 지금은 새로운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동기에 따라 복종한다. 즉 돌이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불꽃은 위로 올라가는 것만큼 지극히 자연스럽게 복종한다.
(사무엘 볼턴)

14.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다가 마침내 그분의 계명에 의해 인도함을 받을 때 우리는 무한한 자유를 느끼게 된다.

15. 성경은 은혜의 복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선한 행위를 해야 할 의무에 관해 말씀한다.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를 어둠에서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율법은 다만 우리의 삶을 이끄는 안내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16. 프란세스 터레틴은 그만의 특별한 방법을 통해 ‘조건’ 이라는 용어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구별했다. 그에 따르면, 조건을 공로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은혜의 언약은 결코 조건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혜의 언약은 전혀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존한다. 하지만 조건을 언약의 약속을 수용하는 도구적인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은혜의 언약이 조건화되어진다고 말하더라도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존 머레이)

17. 의무를 가르치는 것이 은혜로운 이유는?
1)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때 삶의 공허함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때 경건치 못한 삶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때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때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18.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 은혜롭지 못한 일이 되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
1) 복종이 공로라고 가르치는 것은 은혜롭지 못하다.
2) 하나님이 불의한 자를 받아 주지 않으신다고 가르치는 것은 은혜롭지 못하다.
3) 하나님이 거룩한 삶을 요구하지 않으신다고 가르치는 것은 은혜롭지 못하다.
4) 은혜없이 율법만 가르치는 것은 은혜롭지 못하다.

19. 이런 점에서 골로새서3:3이하의 말씀은 특별히 중요하다. 그곳에 보면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고 말씀한 뒤에 바로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라는 말씀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고 해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일이 필요치 않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기 때문에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먼저 언급한 뒤, “죽이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 순서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헤르만 리델보스)

20. 리델보스는 바울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실을 언급한 뒤에 바로 신자의 의무를 명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이 그분의 계명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행해야 할 강력한 이유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21. 그는 “의무를 이행하라는 명령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고 했다.

22. 행위에 대한 의무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 순서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복음의 진리를 가정에 적용하고자 할 때,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가 그들의 행위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 자식이라는 근본적인 사실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을 확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23. 우리는 항상 성경이 요구하는 행위를 완벽히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절망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는 용기를 내야하며,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명령을 다 수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24. 하나님의 은혜는 개인을 구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 새로운 공동체는 모두가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거만하거나 교만한 태도가 없어야 한다. 신자는 모두 이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그 안에 거함으로써 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 없는 자유를 얻게 된다.

25. 악한 현세대는 자율과 독립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언약 공동체에게 자유를 제공한다. 복음은 하나님과의 소외를 극복 하게 해줄 뿐 아니라, 또한 자기 소외를 극복하게 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감추려고 숨을 필요도 없고 유한한 인간성을 뛰어 넘는 무엇이 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복음은 악한 이 세상의 권세, 즉 물질주의, 인종차별, 성차별, 개인주의와 같이 우리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시키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로서 좀더 자유롭게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참 자아를 이룰 수 있다. (베이커)

26. 사랑의 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걸어가야 할 안전한 길이다. 신자로서의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근거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와 연합은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한다.

27. 하나님이 사랑의 법을 지키라고 하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로 하여금 파멸의 길에서 떠나 안전하고 축복된 길을 걷도록 하기 위함이다.

28. 성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는 길은 거룩한 삶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때 우리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하늘의 축복을 미리 맛볼 수 있다.

29.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했다는 특권에만 사로 잡혀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지 못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영혼은 메마를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삶, 곧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기울여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삶을 산다면, 결국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을 통해 깊이 깨달을 수 없다. 우리 자신이 비록 희생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목사, 부모, 상담가, 친구로서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그러한 삶의 의미와 축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알기 어렵다.

30.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1)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전에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지혜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지 못할 경우 영적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3)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특권을 희생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의 신비를 좀더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31.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그분이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게 된다. 따라서 나 자신의 삶의 길을 결정할 때는 나와 관련된 사람들의 필요와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32.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안전을 보장받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이 제공하신 안전한 길에서 벗어날 경우, 우리는 사탄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탄의 공격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율법주의에 대한 반발이 지나쳐 행위와 의무를 전혀 고려함 없이 은혜만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공로를 내세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잘못이지만, 사랑의 법을 무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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