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날마다 십자가 앞에 서라 - 그리스도에 대한 현재적 경험의 중요성 -
1. 성도가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 회개하게 된다. 단 한번의 은혜 체험으로 인생을 성자처럼 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날마다 부패한 자신과 싸우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분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십자가 사건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2. 그것이 어떤 이유로 말미암았든지 병적인 유아 상태에 머물러 있는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신령한 그리스도인들로 변화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체험, 곧 그 분의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구속 사건과 부활 사건을 경험함으로써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3. 중생을 통해 얻게 되는 구원은 반복될 수 없는 일회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십자가와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은 반복되어야 한다.
4. 구원받았을지라도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병적인 유아 상태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신령한 신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그리스도를 새롭게 경험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나 병적인 유아 상태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풍부한 증언이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진실한 경험을 발견할 수 없다.
5. 경험은 신앙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인데, 그것이 잘못된 체험이기에 더욱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릇된 체험이 사람들 속에 잘못된 신앙의 변견을 만들어서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6. 십자가 사건에 대한 경험이 사도들을 놀라울 정도로 신령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물론 그러한 변화는 성령 체험을 통해서 나타났지만, 그러한 성령 체험의 핵심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한 경험이었다.
7.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에게 훌륭한 삶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진정한 이유는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함이다.
8.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치 체계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9. ‘크리스찬’이라는 단어의 희랍어 ‘크리스티아노스’는 ‘크리스토스’ 곧 ‘그리스도에 속한 자’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에 종속된 자’,‘그리스도를 전심으로 추종하는 사람’,‘그리스도에게 예속된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10. 우리가 이런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이다.
11. 신자가 구원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의 정도가 모든 사람이 동일하지 않다. 즉 구원은 복음적인 사실과 거기서 비롯된 전체적인 사상의 체계를 들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주 단순한 복음의 진술일지라도 그것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믿음으로 반응함으로 구원은 가능하다.
12. 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반드시 동일한 깊이의 영적인 경험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가 구원을 받을 때 경험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의 깊이가 모두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복음에 대한 깨달음이 깊고 성령의 역사하심이 강력하면 그만큼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도 강력하고 깊다.
13.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그 체험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영적 원리가 그 안에 심겨진다. 즉시 성령님이 그 안에 오셔서 죄에 대하여 능히 싸우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신다. 하나님은 중생을 통해서 죄를 본성적으로 미워하는 경향성을 신자들 안에 심으시며 당신을 사랑하게 하신다. 따라서 구원은 단지 죄의 용서가 아니라 죄를 이기고, 순종하며 살 수 있는 성령의 능력도 함께 주시는 것이다.
14. 이러한 새생명의 원리는 잘 간직하기만 하면 능히 죄와 유혹을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도구들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 자체가 혁명적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영혼이 죄에 의하여 온전히 지배받던 상황에서 지배 세력이 파괴되었고(비록 죄의 영향력은 남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새로운 질서가 구축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모든 죄의 지배가 파괴되고 거기에 새생명의 질서가 세워지기는 했지만 죄의 영향력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15. 우리가 흔히 ‘하나님 앞에 형벌받을 죄’라고 할 때에 그 죄는 두가지인데, 바로 죄책과 오염이다. 죄책은 원죄를 가리키는 것이고, 오염은 타락으로 말미암은 부패한 경향성이다. 죄책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믿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라고 인정해 주시는 이른바 칭의로서 완전히 해결되지만, 죄에 대한 부패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구원의 또 다른 측면인 성화를 요구한다.
16. 신자가 성령이 충만하여 은혜 안에 살면 이 부패한 성품을 완전히 멸절할 수는 없어도 신자의 영적 생활에 미치는 악한 영향을 현저하게 줄어들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 죄와 부패한 유혹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신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17. 성령의 충만함은 신자가 어떤 삶을 사는지에 따라서 수시로 변한다. 예배, 기도, 성경읽기, 성경공부, 말씀묵상 등에 부지런히 참여하며 하나님을 구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충만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그같은 의무를 등한시하면 개인의 경건이 거의 파괴되어 성령의 충만함을 고갈되고 부패한 경향성들이 득세하게 된다.
18. 성경은 신자 안에 있는 부패한 성품에 대하여 절망하지도 않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신자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생명을 분여받았다고 할지라도 그의 영적 생활이 오래도록 침체 속에 있으면, 구원받을 때 가졌던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이 희미해지면서 실제적으로 그경험의 영향 아래 살아가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병적인 유아 상태가 계속될 수 있다.
19. 병적인 유아 상태에서 오래 있을 때 그 상태를 청산하고 신령한 세계로 옮겨가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이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그 경험은 구원받을 때 겪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대한 경험의 반복일 수 있다.
20. 자신이 구원받은 것은 확실한데 십자가 사건에 대한 경험이 워낙 부분적이고 또 오랜 침체 상태를 지나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이 희박해졌기 때문에 그 분을 새롭게 경험함으로써 신령한 세계로 옮겨가야 할 필요에 놓인 사람들이 바로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신자들이다.
21.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의 빛 아래서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오로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22. 사울이 자기 시대의 사상적 편견을 뿌리치고 복음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해박한 이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메시아를 증언하고 있는 구약성경에 대한 지식과, 둘째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이었다.
23. 참된 그리스도인은 단지 회개를 경험한 사람이 아니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사상과 가치 체계를 받아들인 사람이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자신과 교회와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24.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와 다름없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회심할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이후로 이어지는 신앙생활 가운데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영적 생활이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25. 오늘날 조국교회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이는 좋은 선교적인 환경 때문만이 아니라, 올곧은 신앙생활을 위한 원칙을 지킴에 있어서 이 세상이나 불신자들과 호양의 정신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26. 신령한 변화의 열매
1) 영적 성숙과 진보
- 의이신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면, 눈에 띄는 성장과 진보가 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 생활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하나님 앞에서 자ㅓ기 깨어짐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은혜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일에 놀라운 진보를 보게 된다.
-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을 위하여 봉사하는 일에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싶어 하게 된다. 그리고 섬기는 동기도 세속적인 자랑 때문일 때가 많았으나,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고 나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 때문에 헌신하고 싶어진다.
- 신령한 변화가 영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의 놀라운 회복 때문이고, 둘째는 신령한 그리스도인 안에 내재하는 영적인 욕구 때문이다.
- 신령한 변화의 경험은 반드시 회심의 경험과 함께 온다.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았던 날들에 대한 깊은 후회와 각성을 통하지 않고 새로운 영적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 무엇보다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깊은 목마름을 느끼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한 장만 읽어도 졸리던 성경이 이제는 밤을 새워서 읽어도 달콤하도록 기쁘게 해준다. 하나님과 기도하는 시간을 사모하게 된다. 하나님과 은혜로운 만남을 갖고자하는 내면의 목마름이 그로 하여금 부지런히 기도하도록 만들어 준다.
- 신령한 변화를 경험한 그리스도인이 풍부한 경건의 정서 속에서 사는 것도 바로 이렇게 새롭게 심겨진 영혼의 욕구 때문이다. 이러한 거룩한 욕구들을 통해서 영적으로 놀랍도록 빨리 자라간다.
2) 죄에 대한 빈번한 승리
- 물론 신령한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싸움에서 질 때도 있지만, 그것은 전반적으로 승리하는 생활 가운데 이따금 경험하는 실패이다.
-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들을 단지 이상적인 기대치 정도로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교회에서 보여야 할 삶과 세상에서 보여줄 수 있는 삶에 차이가 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가증한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참으로 진실해진다면, 제일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형식적인 교인일 뿐임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 교회 안의 형식적인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참된 변화를 통해 진실한 신자가 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죄와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 자기들의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3) 은혜 안에 살게 됨
-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은혜 안에 사는 것은 그러한 은혜의 경험을 유지하는 영적 생활의 연속이다.
- 예전에 단지 일시적인 은사를 경험하였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에 대한 놀라움으로 살았지만,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은혜 안에서 살게 되면 하나님 자신의 성품에 대한 체험이 늘 있다.
-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결정적 특징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친교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탁월한 친교 이면에는 하나님 자신의 성품에 대한 경험이 있다.
- 가장 높은 경지에 다다른 기도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기도 제목조차 잊고 고요히 그 분의 임재로부터 말미암아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러한 교제를 통해서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경험을 쌓아가고 그 경험을 통하여 삶이 거룩해져 가는 것이 신령한 삶이다.
- 그의 소유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이, 그것을 확인하고 누릴 것이라는 기대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그를 만나는 것이 좋고 꿈과 사랑과 살아가고 싶은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격을 느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서 서로를 알아간다. 그들의 모든 기쁨은 서로의 존재에 있다.
- 신앙의 핵심부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있다. 인격적이고 진실한 사랑,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핵심이다. 그리고 신앙은 그러한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감으로써 성장하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신령한 은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내적 생활의 특징은 풍성한 은혜이다. 특별히 건강한 영적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은혜는 더욱 풍성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 경험의 심장부에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다.
- 은혜는 객관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호의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영적 생활과 관련되어 언급될 때는 하나님과의 교제로 말미암는 인격적인 경험을 가리킨다.
-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진실한 사랑은 모든 거룩한 삶의 원동력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자기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곤궁한 영적 상황에 대하여 아파하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들도 자신처럼 하나님께 사랑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갈망이 있다. 그러한 은혜의 경험이 영혼을 위한 섬김의 동기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구원의 실재를 맛보며 살아가지만,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잘해야 차갑고 형식적인 교회 생활밖에는 남은 것이 없다.
4) 말씀에 대한 갈망
- 한 신자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은 그 사람의 영적인 요구와 비례한다.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에 대하여 눈뜨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거룩한 삶에 대한 추구와 실천이 있다.
- 성경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착을 갖게 되는 것도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욕구를 느끼게 되면서부터이다.
27. 그리스도를 경험하려면
1) 분명한 진리가 필요하다.
-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과 복음의 분명한 교리가 제시되어야만 영혼들이 진정한 변화에 이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구속의 도리에 대한 분명한 이해없이 그 분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사건과 부활에 관한 교리를 중심으로 그분의 인격과 성품에 관한 분명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다 순수한 영적인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가지면 가질수록 보다 순전한 복음의 진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 지속적으로 신령한 영적 생활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자라가야 한다.
-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안 후에도 이러한 복음에 대한 깊은 지식들을 계속 습득하여야 한다. 거룩한 삶을 위한 갈망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 사역에 대한 교리들을 계속 섭취함으로써 신령한 생활의 진보를 도모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렇게 풍부한 복음 진리의 세계를 접함으로써 그는 계속적으로 영혼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2) 율법과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교리들을 이해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 오늘날 조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자체를 아는 지식이 매우 희박한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복음에 대한 경험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복음의 내용에 대한 진지한 탐구의 부족 때문이다.
- 복음은 단순히 탐구됨으로써 깊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그 실재를 경험함으로써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경험되지 않은 복음을 단지 지성으로 알고 있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는 것이 아니다.
- 복음에 대한 체험없는 설교자는 실제로 복음을 설교할 수 없으며, 복음의 실재에 대한 경험이 없는 신자들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산다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교회적 상황에서 설교는 형식화되고 성도들의 삶은 교회에서의 삶과 세상에서의 삶이 이원화될 수밖에 없다.
- 오늘날 가장 기본적인 복음 교리를 설교해도 특별한 충격을 받는 사람들이 불신자가 아니라 오히려 오랫동안 신앙 생활해 온 사람들임을 확인할 때마다 비통한 마음이 든다. 이러한 현상은 체험이 없는 복음주의가 순수한 복음을 간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 복음 자체의 내용뿐 아니라 그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그리스도인들의 진지한 탐구의 자세를 요구한다.
3)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이다.
- 아무리 정식한 율법과 복음의 진리가 제시되고, 듣는 이가 그것을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성령님이 듣는 자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시지 않으면 믿음도, 신령한 변화도 없다. 거기에는 단지 차가운 지적 동의만 있을 뿐이다.
- 평범해 보이는 복음의 진리를 차가운 죄인의 마음에 스며들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 우리는 순수하고 정직한 율법과 복음의 진리를 좌우에 날 선 검으로 삼아 사용하되, 그것을 휘두를 때마다 성령님께서 죄인들의 마음에 역사하여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28. 성경에서 말하는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단지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신약성경에서 제시하는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
29. 오직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이 고통하는 세상에 대한 유일한 대답이다. 변천하는 세상 속에서 불변하는 복음으로 승부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거스르며 고통하는 이 세상에는 어떤 소망도 없다.
30.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경험하고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맛본 사람들이라도, 지속적으로 그 십자가의 체험을 붙들고 그것을 자신의 신앙과 섬김의 중심원리로 삼고 살아가야 한다.
31.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 안에서 계속 경험되어야 할 사건이다. 영적인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방식이 설교이든지 서적이든지, 십자가의 교리를 이해하고 믿어야한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구하여야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반드시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32. 신령한 은혜의 세계에 들어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지속적인 영적 성장이 필요하다. 신자의 영혼 안에 내재하는 부패한 성품을 죽이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
33. 악한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으로 고갈시키고, 죄 아래 살아가게 하고 싶어한다. 그에게 신자를 배교하게 할 수는 없지만, 육신의 정욕과 죄악된 생활로 배교와 방불한 삶을 살아가게 할 수는 있다.
34.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사탄의 궤계를 파하는 가장 훌륭한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것이다.
35. 이러한 십자가의 현재적인 경험을 통하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하여 구원받은 죄인일 뿐임을 확인하고 자신의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다시 가슴에 새기게 된다. 나아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게 한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36.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라면 누구도 복음의 내용이 다시 설교하기에는 너무 진부한 내용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이 복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37.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대한 분명한 체험 없이는 누구도 그분의 증인이 될 수 없다. 십자가 사건에 대한 경험만이 한 사람을 복음을 위한 사명에 숙명적으로 매이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38.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도 이 십자가 사건의 현재적인 경험을 통하여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두 가지, 곧 회개와 신앙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39 회개는 그것을 움직인 동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율법적인 회개와 복음적인 회개가 그것이다. 율법적인 회개는 율법을 깨달음으로써 거기서 선고되는 죄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동기가 되어 죄를 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을 말하고, 복음적인 회개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말한다.
40. 회개를 통하여 불결로부터의 정결함과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회복한다. 신앙을 통하여 오직 모든 은총이 하나님께로서만 비롯된다는 고백을 유지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죄악된 세상에 살면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신령한 삶을 유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의 핵심이다.
41.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영적 생활에는 항상 회개의 눈물과 하나님과의 평화로 말미암는 기쁨이 있다. 거기에 그리스도와의 친교가 있고 그의 삶과 인격을 바꾸는 신령한 힘이 있다.
42.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내면 세계는 잠자는 것과 같은 어둡고 무거운 침묵이 없다. 그들의 영혼은 예민하다. 죄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예민하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과 더불어 교제하는 진실한 친교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쉽게 감동받으며 죄와 유혹에 대하여 쉽게 상처를 받는다. 그리스도의 성품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그 분의 마음을 쉽게 전수받고,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쉽게 전달한다.
43.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죄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명민한 마음이다. 그들은 작은 죄에 대하여도 회개로 반응하고, 작은 은혜에 대하여도 신앙으로 응답한다.
44. 참으로 신령한 것은 보이는 기적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영혼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죄인들이 거듭나고, 거듭난 사람들이 거룩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45. 만약 아직도 신령한 변화에 이르지 못하고 육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들이게 결핍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가? 강력한 성령의 역사인가? 믿음인가? 하나님께서 그것을 여러분들에게 주시도록 열렬히 기도하시기 바란다. 기도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진지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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