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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책으로 김남준 목사님의 '영적 그리스도인 대 육적 그리스도인' 을 5회에 걸쳐 요약하여 올립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인 상태에 있지 못하고 육적인 상태에 있다면 주님을 위한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지금 나의 영적인 상태가 어떤가를 진단하고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자리에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육적 그리스도인 VS 영적 그리스도인
- 오늘날 조국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신자들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도 만나고도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지 않은 사람의 꾸준한 교회생활은 마치 몸도 가누지 못하고 지적인 성장도 없이 몸만 자라는 사람과 같다.
- 하나님과의 참된 만남은 그로 하여금 거룩하신 그분의 성품을 따라 살려는 성화의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은 바로 그러한 거룩의 추구가 가져온 결과이다.
- 진정한 의미의 교회의 성장은 변화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복음의 영향력의 성장이다.
1. 그대는 어린아이입니까? - 육적인 그리스도인과 영혼의 병적인 유아 상태 -
1. 영정 성장에 있어서 정상적으로 유아기를 거치는 것과 병적인 유아 상태에 오래도록 머무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2.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늘 결심해도 그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신령한 신앙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만 그 안에 살기를 사모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왜 우리는 구름처럼 허다한 증인들이 경험했던 영적 생활의 진수, 곧 하나님과의 탁월한 친교 속에서 그 분만 사랑하고 그 분께 사랑받는 감격 속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은 신앙이 병적인 유아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흑암과 같은 영혼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의 빛이 없을 것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전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가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끊임없는 방해가 될 것이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이루고자 하셨던 계획을 거스르는 삶을 살 것이다.
4. 우리 앞에 놓여진 삶의 상황이 어떻게 변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건강함이다.
5. 우리는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영적으로 어떤 지점에 와 있는지를 바로 깨달아 참된 영적 변화에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6.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하신다. 그래서 날마다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 되기를 기대하신다.
7. 구원의 이르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회심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경험의 성격과 깊이는 획일적이지 않다. 좁은 의미에서 회심은 원래 구원에 이르는 단회적인 사건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것은 회개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회심은 또한 이미 이루어진 회심의 경험이 새롭게 반복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어느 경우에든 회심의 깊이와 양식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거듭나는 바로 그 순간에 생애에 잊혀지지 않는 뚜렷한 회심을 경험한다. 거듭남, 곧 중생은 회심과는 달리, 인간의 감지할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역사이기 때문에 인간에 의하여 중생하는 순간이 감지될 수 없다.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중생하는 것을 감지하였다면, 그것은 중생을 감지한 것이 아니라, 회심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그는 중생과 회심을 거의 같은 시간에 경험하였기 때문에, 의식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경험인 회심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회심을 경험하면서 동시에 중생하는 것은 아니다.
8. 여기서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된 양극단을 경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강력한 회심의 경험 없이는 구원도 없다고 주장하는 견해와, 또 한편으로는 회심의 필요성을 실제로 부인하는 견해다. 그렇다면 뚜렷한 회심의 경험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구원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강력한 회심이 없다 할지라도 그에게 성화의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즉,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결정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거룩해져가는 성화의 작용을 통하여 그가 구원받은 사람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9.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1)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징후는 신앙적인 유아기가 비정상적으로 길다는 것이다.
-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유아 상태의 원인이 정상적인 성장 과정이 아니라 질병 때문이기에 그 시기가 비정상적으로 길다.
- 하나님은 신령한 그리스도인들, 잘 성숙한 교인들만 사랑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질병 상태를 고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자로 살아갈 수 없다. 하나님이 그들을 아무리 사랑하실지라도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이런 저런 섬김에 종사하며 보람을 느끼려 할지라도 그들의 신앙은 결코 견고하지 않을 것이다.
-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교리는 이것이다. “진실한 회심 없이 견고한 신자 없다.”
- 이런 치명적인 질병 상태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고백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려고만 드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 우리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우리의 영적 생활에 진정한 성장이 있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과거에 받은 은혜를 회상만 할 뿐이다. 그래도 예전의 신앙이 더 건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혼의 병적인 유아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병적인 유아기가 오래되면 마치 사람들이 오래 밟고 다닐수록 단단하게 굳어지는 땅처럼, 그들의 마음은 단단하게 굳어져서 점점 더 변화를 거부하게 된다.
2)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두 번째 징후는 죄에 대한 반복되는 실패이다.
- 육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은 종종 회개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뉘우침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곧바로 죄에 대하여 실패하곤 한다. 그들은 죄에 대하여 이기는 경험이 거의 없다. 따라서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와 싸워 이겨야겠다는 결의도 거의 없거나 현저히 부족하다.
- 그들도 때때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주님의 뜻대로 잘살겠다고 결심도 한다. 그러나 실제 삶에 있어서는 이상하게도 그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반복적으로 실패한다.
- 하나님의 은혜를 간헐적으로 경험하기는 하지만 죄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에게는 결국, 주님의 은혜로도 자신의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불신앙적인 패배 의식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상실로 이어진다.
-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이따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곧 영적 생활의 건강한 성장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신령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 병적인 유아 상태에 있는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유혹에 대하여 빈번히 실패한다. 물론 신령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이 세상에서 실패하지 않고 늘 승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실패의 빈도뿐 아니라, 그 실패 속에서 경험되는 영적 성장이다.
-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나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이나 모두 죄에 의하여 은혜 생활이 방해를 받는다. 그러나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에 대한 실패가 간헐적이지만,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은혜 안에 있는 경험이 간헐적이다.
- 죄에 대한 실패가 신자의 영적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은혜 안에 거하고 있는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죄는 마치 건강한 사람들의 몸에 입은 상처와 같다. 건강한 사람들은 상처가 나도 피가 흐르고 아플 뿐, 곧 치유된다.
- 이처럼 은혜 안에 있는 신자들은 하나님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작은 죄와 일상적인 불순종에 의하여 영적 생활이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회개와 돌이킴의 순발력이 있다. 이것은 모두 그의 심령 안에 있는, 죄에 대한 은혜의 면역력 때문이다.
- 그러나 병적인 유아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면역력이 거의 없다. 그러한 죄의 상처들은 머잖아 심각한 질병으로 옮아간다.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죄에 대한 실패가 그들의 영적 생활을 절망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은사와 은혜의 차이점이다. 은사는 그 사람의 영적인 성숙과 관계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신앙성장에 있어서 유아기에 있는 사람이라도 은사를 받을 수 있으며, 회심과 함께 거듭나면서 그런 은사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영적인 현상들을 경험한다고 해서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심지어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에게도 영적인 역사가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성령의 사역적 사역이라고 부른다. 이는 단지 그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기 위한 은사 주심이며 이는 구속적 사역, 곧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성령의 사역과 대조를 이룬다. 즉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의 시키심을 경험하면서도 자신은 구원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 은사는 내면세계의 신령한 변화보다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적합하도록 만들어 주는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은혜는 신자의 내면세계에 깊이 들어와 성품의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한다.
- 은사는 그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켜 거룩에 이르게 하는 성화의 작용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일에 적합하도록 준비되는 수단이다.
- 병적인 유아 상태에 있는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을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 바꾸는 놀라운 일은 은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의 영혼과 인격 속에 깊이 파고들어 역사함으로 그를 변화된 새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 육적인 그리스도인은 주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들었지만 그 분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 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독교 신앙의 개념, 기독교적인 문화, 교회 생활의 습관들에는 익숙해져 가지만, 그 모든 증언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참된 인격적 만남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3)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신령한 것을 받지 못한다.
- 왜냐하면 그는 신령한 은혜의 세계에 대하여 거의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 신앙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신령한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에 의하여 이해될 수 있는 세계이다. 물론 그들도 그 세계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육적인 신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보지 못한 그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사실일까요? 어두움 가운데 있는 불쌍한 죄인을 찾아오셔서 어루만지시는 그 분의 손길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는 고백이 얼마나 사실일까요?
- 신앙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영적인 세계이다. 오늘날처럼 기독교신앙의 영적인 특성이 합리주의의 사고방식에 의하여 무시되는 때에는 이 점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4)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복음에 대한 감격이 없다.
-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의 네 번째 특징은 십자가와 복음에 대한 감격이 없거나 있어도 매우 빈약하다.
- 그들은 아직 복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이따금 희미한 은혜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복음과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솟아오르는 감격은 없다.
- 신앙이라는 것은 자기를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자기는 아무 쓸모없는 죄인이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기를 구속하셔서 그 분의 것이 되었다는 고백이 신앙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뚜렷한 표지 중 하나는 십자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은혜의 경험을 유지하는 것이다.
- 실제로 우리를 거룩한 삶에 이르게 하는 모든 원동력은 십자가에 대한 감격과 감화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자로 하여금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근원적인 동기는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뿐인데, 그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가장 잘 나타났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 가득 찬 교회에서는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리신 주님의 희생과 고난에 대한 애통함이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십자가의 사랑을 알았다면 결코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서는 안 된다.
- 그러한 삶은 거의 하나님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승복이 있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므로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나아가서 사는 동안에는 주님이 생각나서 마음 놓고 세상 사람처럼 즐겁게 살 수도 없고, 교회에 돌아와서는 세상에 대한 사랑을 끊을 수가 없어서 마음껏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완전한 순종의 삶을 통해서만 온전히 성취될 수 있다.
10.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제대로 변화된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불신자보다도 더 우울하고 어두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11. 영혼의 축복스러운 변화가 있기 전에 먼저 마음의 놀라운 변화가 있다. 마음의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오래 계속된 병적 유아 상태로부터 벗어나 신령한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영혼의 변화의 필수적인 조짐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인격적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신자의 마음을 통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12. 변화되지 않은 영혼들의 곤고한 상태를 생각해 보자. 주님을 버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주님만 사랑하기에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집요하고, 세상만을 사랑하기에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서도 평안을 누릴 수 없고 교회로 돌아와서도 평안을 누릴 수 없다.
13.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돌아보고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결연히 병적인 유아 상태와 결별하고 신령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건강한 영적 생활을 이어가는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기를 사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껏 우리들이 경험해 온 가난한 영적 생활과 우울한 인생의 모습은, 성실한 교회출석과는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14. 신령한 변화에 이르는 길
1) 신령한 세계가 있음을 알라
- 비록 자신이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일단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 우리가 신령한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설교자가 신령한 은혜의 세계에 대하여 증거할 때, 혹은 자기보다 먼저 그러한 세계에 들어간 사람들의 성경적인 경험을 통하여 그러한 진리들이 전달될 때, 그러한 세계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이 세상에서 가련한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신앙세계가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만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 자기의 신앙 부재와는 관계없이 신령한 은혜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눈을 떠서 주위를 돌아보면,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함께 교회에 다니는데도 자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신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 불신 세계를 향한 가장 강력한 도구는 그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을 보여주는 것이다. 형식적인 신자들을 위한 가장 강력한 도전은 병적 유아 상태에서 벗어난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 아무리 교회를 홍보한다고 하더라도 신자들의 대부분이 병적인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는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는 것과 신령한 세계가 존재하나다는 사실을 가르쳐 줄 수 없다.
- 그가 신령한 은혜의 세계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강력한 욕망 하나에 사로잡혀도 그 눈빛이 변하는데 하물며 영적인 변화가 한 사람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는데 어떻게 새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 변화받기를 싫어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런 변화를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필수적인 신앙의 경험을 상대화하려는 경향성이 있다.
2)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눈을 뜨라
- 신령한 은혜의 세계를 알고 난 다음에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혼의 진실한 상태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장한 유창한 기도보다는 믿고자 하지만 아직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라도 진실하게 자기의 마음 상태를 아뢰며 신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의 간구를 기뻐하신다.
-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기도는 판에 박힌 듯한 기도, 마음에도 없는 미사여구가 아니라 마음의 진실을 토로하며 은혜를 구하는 기도이다.
- 불신과 회의는 다르다. 불신은 믿지 않겠다는 고집이고, 회의는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의심이다. 맥그라스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로 회의는 회의주의, 즉 원리의 문제로서 모든 것을 고의적으로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로 회의는 불신앙, 즉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다. 불신앙은 이해의 부족에서 온 것이라기보다는 의지적인 행동이다. 회의란 믿음을 가진 상태에서 일부 불확실한 것들을 묻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3)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라
- 사람을 변화시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지만, 통상적으로 그러한 변화는 그것을 사모하는 자에게 일어난다.
- 우리 안에는 우리 자신의 이런 병적인 유아 상태로부터 탈출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런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거기로 들어가기를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 자신의 영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기도해야 한다.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힘겹고 의미 없는 일인지를 깨닫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간절히 간구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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