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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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의사(구원론)

***목사의 구원론은 펠라기우스의 행위구원론이다

***목사의 구원론은 펠라기우스의 행위구원론이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heretical/Knyb/248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런데 변승우목사는 거듭남이 사람의 도덕적 개선과 의지적 결단이라고 주장한다. 또 성경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변승우목사는 사람에게 의가 있어야만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주장을 한다.
과연 정말 그러한 주장을 하였는지 살펴 보자.
먼저 중생에 대하여 펠라기우스의 견해를 살펴보자
중생에 대한 다양한 견해 - 펠라기우스의 견해 : 펠라기우스에 의하면 사람의 자유와 개인적 책임은 그가 언제든지 죄를 짓는 것처럼 죄를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고 한다. 단지 의식적인 의지의 행동만이 죄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중생은 단순히 도덕적 개선으로 구성된다. 그것은 전에 율법을 범하는 것을 선택한 사람은 지금도 그것에 순종하여 살기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이스벌콥, 벌콥조직신학 하권, 기독교문사, 230쪽)
초대교회에 펠라기우스라는 행위구원론자가 있어서 어거스틴과 토론을 하다가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는 인간이 자기 죄를 스스로 끊을 수 있다고 했으며, 그러한 인간의 의식적인 결단과 의지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가장 중요한 사상은 바로 중생을 도덕적인 개선으로 본 것이다.
펠라기우스가 있던 당시에는 영지주의가 성행하여, 이원론을 주장하면서 육체를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인간의 삶과 행동에 대한 무책임이 난무하였다. 이와 같은 영지주의적인 이원론의 영향이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을 때 펠라기우스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과 행동에 대해서 무책임하게 행하는 것을 고민하던 중에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지나치게 되어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도 행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지" 혹은 “스스로 죄로부터의 결단”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펠라기우스는 성경에서 제시하는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이단으로 정죄되었던 것이다.
펠라기우스는 하나님의 은총을 완전히 파괴하고 인간의 책임과 행동만을 강조하는 인본중심적인 신학적 사고로 모든 신앙적 체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이런 신학적 체계는 급기야 정통적인 교회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드는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위험성을 워필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해 주고 있다.  
"펠라기우스주의와의 투쟁은 사실에 있어서 기독교의 근본 그 자체를 위한 투쟁이며, 앞 세대에 있었던 신학적이며 기독론적인 논쟁보다도 훨씬 더 위험스러웠으며, 여기에서는 기독교의 실제적인 본질이 손상될 위험을 맞이했다"
변승우목사는 펠라기우스적인 행위구원론자이다.
그는 중생을 도덕적인 개선으로 본다. 또 그는 한가지라도 죄를 끊을 수 없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변승우목사는 펠라기우스와 동일하게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죄를 단절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여 변목사는 인간이 스스로 죄에서 끊을 수가 있음으로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 왜냐하면 예수님은 여기서 손, 발, 눈 즉 여러 가지 죄를 지어야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라도 끊지 못한 죄가 있다면 그 죄와 함께 지옥에 던져진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27)
- 그러므로 천국에 가려면 이 말씀 그대로 회개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단 한가지라도 회개할 죄가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모든 죄를 다 회개했어야만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참으로 회개한 사람이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변승우, 지옥에 가는 크리스쳔, 28p).
즉 변목사는 펠라기우스와 동일한 행위구원론자이며,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의 대속이 없이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끊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변승우목사는 중생, 거듭남을 인간의 의지적인 결단, 도덕적 개선으로 봄으로서 펠라기우스와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다.
- 그리고 T.L. 오스본 역시 거듭남의 비밀이란 책에서 거듭남에는 의지의 결단에 의해서 죄에서 돌이키는 내면의 변화와 목적의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능동적인 의지를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면 능동적인 의지만 가지면 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은혜의 수단(믿음이나 거듭남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인 성경을 읽거나 말씀을 듣는 것, 자백, 기도등의 노력을 의미하는 것)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변승우, 지옥에 가는, 151쪽)
- 에이든 토저는 ‘개혁없는 중생은 없다’라는 제목의 탁월한 글에서 지극히 중요한 지적을 하였습니다. “도덕적 개혁이 있을 때까지 영적 중생이 있을 수 없다.... 죄인이 자기 생활방식을 기꺼이 개혁하려고 하지 않는 한 그는 중생의 내적 체험을 결코 아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인기있는 복음주의 신학의 나무 밑에서 잃어진
지극히 중요한 진리이다”(지옥에 가는, 150쪽)     
- 성경은 도덕적인 변화 즉 인격과 생활의 변화를 거듭남의 매우 중요한 표증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성경의 이러한 가르침에서 벗어나서 성경구절로부터 이끌어낼 논리적인 결론들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지옥에 가는, 156쪽)
성경은 인간은 의인이 없으며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반하여, 변승우목사의 주장을 볼 때에 놀라운 사실은 중생, 거듭남 뿐이 아니라, 변목사는 우리 안에 의가 있어야만 하나님의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므로서, 완전한 행위구원론자의 주장을 하고 있다. 
- 하지만 우리 안에 의가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안에 의로움이라고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며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만큼이나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거룩하심에 비추어볼 때 완전히 모순되는 일이기 때문이다(지옥에 가는, 166쪽)
롬 5:17-19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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