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벌코프 책 p 718 / 과거 지초님글|♡―··연속적 중생론 비판
grace|조회 29|추천 0|2012.08.14. 19:43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D4ux/31
중생은 가장 제한된 의미로 이해한다면, 잠재의식에서 나타나는 변화이다. 이는 인간에 의해 직접적으로는 인식될 수 없는, 하나님의 은밀하고 불가사의한 사역이다. 변화는 중생과 회심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인간이 이를 즉시 인식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일어난다. 이후에 있어서도 인간은 ‘단지 그 결과로서만’ 이를 인식할 수 있다. 이는 기독교인이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회의와 불확실성과 투쟁해야 하며, 한편으로는 점진적으로 이것들을 극복할 수 있고 확신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위의 말은 연속적 중생관으로 설명하면 하나님의 전적인 행위로 순간적으로 새생명의 원소가 심기워지고 동시적으로 회심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빈번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회심(믿고 회개-칭의) 할때 까지 불확실성과 투쟁이 있다가 새로운 출생(회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시간적 간격을 두고 말합니다.
불확실성과 투쟁을 0.0001초로 보십니까
불확실성과 투쟁을 죄의각성으로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다음으로 p720 부르심과 중생의 관련순서에서 p721까지 카이로스님이 적극 주장하는 본문을
살펴봅시다.
벌코프는 일반적으로 옛날 효과적부르심안에 있는 중생을 세분화하여 설명하기 시작하죠
1. 이것이 엄격한 의미에서의 중생이다.
이때 창조적 말씀으로 하나님은 새 생명을 생성시키시고, 영혼의 내적 성향을 변화시키시며, 마음을 조명하고, 감정을 고양시키시며, 의지를 새롭게 한다. 하나님의 이러한 행위 안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영혼을 구원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심어지게 된다. 이것이 엄격한 의미에서의 중생이다. 여기서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2. 이것이 설교말씀의 도구를 통해 하나님의 영에 의해 효과적으로 적용되는 효과적 부르심이다.
영적인 귀를 가진 후 죄인은 이제 복음안에서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되며, 효과적으로 이를 마음에
받아들이게 된다. 저항하고 싶은 열망이 순종하고 싶은 열망으로 변화되고 죄인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설득력에 감화된다. 이것이 설교말씀의 도구를 통해 하나님의 영에 의해 효과적으로
적용되는 효과적 부르심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벌코프는 설명하기를
3 마지막으로 이러한 효과적 부르심은 진리를 통해 영혼안에 탄생된 새로운 성향이 최초로 거룩하게
발현되도록 한다. 새 생명이 발현되기 시작하고, 심겨진(주입된) 생명은 새로운 출생을 일으킨다.
이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중생의 사역의 완성이요, 회심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위의 글은 누누히 말씀드렸듯이 앞의 벌코프의 글에서 중생을 "재발생" 과 "새출생"을 구분하듯이
상당히 좁은 중생이(새로운 성향이) 효과적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새생명이 발현되기 시작하고 심겨진
생명(이것이 상당히 좁은 중생)은 새로운 출생을 일으킨다 (이것이 효과적인 부르심) 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벌코프는 옛날 효과적 부르심안에 있는 중생의 개념을 두가지로 확실히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p718 에 있는 또다른 표현으로 재발생(상당히 좁은의미 중생)과 새출생 (효과적부르심
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출생)
위글에서 벌코프는 아직 완전한 출생인 회심은 이야기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위 벌코프의 새로운출생
또는 새출생은 상당히 좁은 의미의 중생이 효과적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열매로
새로운 출생(새출생)이라는 용어를 씀니다.
벌코프가 새로운 출생의 단어를 쓴 것가지고 완전한 출생인 회심으로 보면 안되죠
그리고 벌코프는 이렇게 말하죠
이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중생의 사역의 완성이요, 회심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 지금 벌코프가 쓰고 있는 단어 '넓은 의미에서의 중생'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정의 하십니까
이 단어는 지금 벌코프가 상당히 좁은 중생에서 효과적 부르심의 단계까지 나아가 열매를 맺는 것
을 두고 넓은 의미에서의 중생사역의 완성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벌코프가 말하고 있는 넓은 의미에서의 중생은 완전한 출생인 회심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 아닙
니다. 즉, 효과적 부르심이 완성되고(넓은의미에서의 중생) 회심으로 전환되려는 시점을 말하고 있죠
계속해서 위의 부르심과 중생의 관련순서에서 시간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적겠습니다.
다음으로 p721에서 벌코프는
이제 우리는 이러한 논리적 순서를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시간적 순서로 이해하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한다
- 카이로스님은 이부분의 문장을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저는 위의 의미가 시간적 순서가 있는데 모든 경우에서 적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때는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동시적 사건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저는 훨씬 많은 경우가 시간적 순서로 볼수 있는데 어떤 때는 동시적 사건 으로 보라는
것이라고 보이는데요
계속해서 벌코프는 설명하기를 중생-효과적부르심-회심 이 동시적 발생이 아닌 경우를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복음 집행하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들이 분별력을 갖추기 오래전, 즉 효과적 부르심이
의식에 침투하기 오래 전에 중생의 씨앗을 가질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중생된 자로서 이들이 수년
동안 심지어 성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죄 가운데 생활하며 그들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의 증거를
전혀 보여 주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위 벌코프의 글을 유의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분별력을 갖추기 오래전, 즉 효과적 부르심이
의식에 침투하기 오래 전에 중생의 씨앗을 가질 가능성도 많다
지금 위의 글은 중생과 효과적부르심 사이에 시간적 간격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 단어가 "오래전에 중생의 씨앗을 가질 가능성"이라는 말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중생의 씨앗은 심겼는데 의식적인 효과적 부르심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
하지만 중생된 자로서 이들이 수년 동안 심지어 성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죄 가운데 생활하며 그들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의 증거를 보여 주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결국 중생한 자가 효과적 부르심에 반응하고 회심으로 전환하기 까지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위의 벌코프의 글을 가지고 오면
1. 이것이 엄격한 의미에서의 중생이다.
이때 창조적 말씀으로 하나님은 새 생명을 생성시키시고, 영혼의 내적 성향을 변화시키시며, 마음을 조명하고, 감정을 고양시키시며, 의지를 새롭게 한다. 하나님의 이러한 행위 안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영혼을 구원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심어지게 된다. 이것이 엄격한 의미에서의 중생이다. 여기서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2. 이것이 설교말씀의 도구를 통해 하나님의 영에 의해 효과적으로 적용되는 효과적 부르심이다.
영적인 귀를 가진 후 죄인은 이제 복음안에서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되며, 효과적으로 이를 마음에
받아들이게 된다. 저항하고 싶은 열망이 순종하고 싶은 열망으로 변화되고 죄인은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설득력에 감화된다. 이것이 설교말씀의 도구를 통해 하나님의 영에 의해 효과적으로
적용되는 효과적 부르심이다.
자 1과 2 사이에 시간적 간격을 상정할 수 없을까요 벌코프의 글을 유심히 살펴보면 있다고 추정합니다.
1과 2 사이에서 1의 엄격한 의미에서 중생한자가 주기적으로 설득적인 설교말씀이라는 전도수단을
듣고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 반응이 2 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벌코프는 말하기를
그들이 분별력을 갖추기 오래전, 즉 효과적 부르심이
의식에 침투하기 오래 전에 중생의 씨앗을 가질 가능성도 많다
이런 시간적 상정 속에서 1과 2사이에서 설득적 설교말씀을 듣고 변화하지 않는 경우는 아예 중생
자체, 즉 새생명의 원소가 심겨지지도 않은 상태이겠죠
이것을 벌코프는 말하기를
하지만 중생된 자로서 이들이 수년 동안 심지어 성장한 이후에도 여전히 죄 가운데 생활하며 그들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의 증거를 보여 주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벌코프는
반면 언약의 집행하에 생활하지 않았던 자들은 중생과 효과적부르심 사이에 시간적 간격을 상정할
필요가 없다. 효과적인 부르심에서 이들은 자신의 갱신을 인식하게 되고, 즉시 중생의 씨앗이 새로운
생명으로 발육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중생, 효과적부르심, 회심이 모두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이런 사람들, 언약의 집행하에 생활하지 않았던 자들은 복음을 거의, 잘 접해 보지 못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처음듣고 급진적으로 회심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 댓글들 --------
로빈슨크로소 12.08.03. 10:23
뻘콥은 회심을 새출생으로 표현한 반면, 존머레이는 좁은의미의중생을 새출생으로 표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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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rymkk 12.08.04. 07:30
로빈슨크루소님,
'Berkhof 이 회심을 새출생으로 표현했다' 하셨는데
위의 글을 보면 회심 바로 前 을 새출생이라고 하는것 같습니다.
위의 글에도 "벌코프가 새로운 출생의 단어를 쓴것 가지고 완전한 출생인 회심으로 보면 안되죠"
라고 되어 있는데
회심을 새출생으로 표현 했다는 말씀은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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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12.08.03. 10:25
벌콥의 설명이 피터마스터즈의 연중론하고는 좀 다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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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크로소 12.08.03. 16:50
뻘콥의 위 비슷한 페이지에 대해서 이미 블랙님께서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OgJY/161 여기에 글을 쓰셨는데... 두 글을 비교해 보시면 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어느 부분에 있어서 좀 다르다 생각되시는지요? 물론 100% 완벽하게 같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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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계표 12.08.03. 11:30
연중론은 넓은 의미의 중생과 회심을 동일시 하지 않나요?
그러나 벌코프는 넓은 의미의 중생의 완성이 곧 회심으로의 전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부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넓은 의미의 중생을 회심과 동일시하는 것이 연중론의 오해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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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12.08.03. 12:02
제가 보는 논점은 좁은 의미의 중생은 말할 것도 없고 넓은 의미의 중생마저도 잠재의식(무의식)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며 넓은 의미의 중생의 필연적 결과로서 회심이 온다는 주장과(갈릭 님 주장), 좁은 의미의 중생과 넓은 의미의 중생 사이에는 인간이 무지무지 노력하는 의식활동으로의 회개와 믿음이 위치해서 참된 회개와 믿음이 되어 회심할 때 동시에 중생완료(새출생)된다는 주장(연중론자)이 토론하고 있습니다.
연중론자들은 회심을 중생의 과정에 넣어서 회심이 끝날 때 중생이 된다는, 즉 중생->믿음과 회개(회심)->중생완료의 순서로 설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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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수 12.08.03. 12:02
제가 보기에 벌코프는 (넓은 의미의) 중생의 사역이 완료되는 시점이 곧 회심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라고 말하는데, (넓은 의미의) 중생->회심의 순서로 구별하는 것 같습니다. 넓은 의미의 중생이 완성될때 회심이 의식세계에 나타나는데, 순서는 넓은 의미의 중생완성->회심이라는 말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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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은총 12.08.03. 11:45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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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joy 12.08.03. 15:14
벌콥의 중생과 효과적인 부르심의 상대적인 순서를 정리하고 있는 문장의 제일 마지막 문장이 이렇습니다: This is the completion of the work of regeneration in the broader sense of the word, and the point at which it turns into conversion. 이 문장에 의하면, 벌콥의 중생개념은 피터 마스터스의 것과 정확하게 일치됩니다. 곧 중생(넓은 의미의)때에 회심이 일어나는 'point'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한 편으로는 넓은 의미의 중생으로 중생이 completion이 되고, 그 point 에서 회심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 point 에서 넓은 의미의 중생과 회심이 일치하고, 그 일치점을 지나게 되면 중생과 회심이 일치하지 않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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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lyjoy 12.08.03. 15:05
그래서, 한편으로는 중생과 회심이 일치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중생과 회심이 다른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정확하게 피터 마스터스가 연중론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토론을 위해서 올려진 자료들을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중생과 회심은 용어 자체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모든 면에 있어서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두 개의 구분되어지는 개념입니다. 그 사건의 일치되는 싯점에 있어서 동일하냐 아니냐 하는 것을 따져야지 개념상 동일하냐 아니냐 하는 것은, 기본적인 질문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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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joy 12.08.03. 15:06
그리고 지초님의 글 자체는 벌콥의 글을 나름대로 해석했습니다만, 영문으로 보면, 미흡한 바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번역된 책으로 사고에 자극을 받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아드 폰페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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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lyjoy 12.08.03. 15:16
벌콥의 영어문장이 이해안되면 제가 줄여서 다시 올려둡니다. This is the completion ......and the point at which it turns into conversion......영어해독이 조금만 가능한 사람이라면 이것을 보고 중생과 회심의 관계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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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꾼 12.08.03. 17:33
벌콥의 글을 인용해서 주장하시는 분들이 원서를 참고했으면 좋겠습니다. 홀리죠이님이 몇번이고 전부터 영어 원문을 통해 더 명확하게 주장하시는데도 자꾸만 한글번역본을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고집하게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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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lyjoy 12.08.03. 18:35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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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계표 12.08.04. 01:17
홀리님이 원어로 올리신 문장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보셨습니까?
이렇게 번역되었습니다.
"이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중생의 사역의 완성이요, 회심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이 해석이 오역이 되었습니까?
님도 말씀하셨지만 이 부분은 그렇게 어려운 문장이 아닌데요??
저는 이 문장이 어떻게 오역이 된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부분이 오역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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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lyjoy 12.08.04. 05:10
지계표님은, 그 문장을 두고, "저는 개인적으로 넓은 의미의 중생을 회심과 동일시하는 것이 연중론의 오해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영어로 보면, 넓은 의미의 중생과 회심이 어떤 부분에서는 "동일시"되고, 어떤 부분에서는 동일시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늘꾼님의 안타까움이 바로 영어원본을 들이대고 설명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번역된 글만 보고 자기식의 해석만 하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영어를 오해할까 싶어서 저가 단순화시켜서까지 올려주었는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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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삶(사계) 12.08.04. 07:03
헤르만 바빙크 [개혁 교의학]은 영어로 번역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화란어 원서 ㅡ> 우리말 = [개혁 교의학]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홀리조이 님께서는 [개혁 교의학] 번역 문제를 언급하시면서, 화란어 원서가 아닌 영어 번역본을 사용하십니다. 이것을 도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화란어 원서 ㅡ> 영어 ㅡ> 우리말.
이 도식이 뜻하는 것은 '번역의 오류'를 낳을 수 있는 화살표가 두 개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첫 사람이 "코끼리"라고 말하고 그 다음 사람은 "꽃기리"라고 말했는데, 첫 사람 말을 듣지 않은 세번째 사람이 "코끼리"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꽃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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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lyjoy 12.08.04. 07:12
지금 저의 글에서 인용한 것은 바빙크의 글이 아니고 벌콥의 글입니다. 바빙크의 책은 화란어일지라도 벌콥의 책은 원본이 영어입니다. 새삶(사계)님은 화란어를 아시는 모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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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꾼 12.08.04. 07:42
홀리죠이님이 영어원서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은 <벌콥>의 글이고 그것은 화란어가 아닌 영어가 원본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빙크의 글이 아닙니다... 제가 영어를 잘은 모르지만 한글과 영어의 늬앙스로인해 오해할수있는 경우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럴때 원서의 도움을 받아서 깔끔하게 해결될수 있는데요, 그것까지 거부한다면 사실은 토론이 아닌 '자기주장 내세우기'밖에는 되지 않을것 같아요... 다른분들도 원서를 통한 반박을 하셔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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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삶(사계) 12.08.04. 08:36
홀리조이 님 <연속적 중생론과 순간적 중생론의 결정적인 구분(1부완결)>을 두고 쓴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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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lyjoy 12.08.04. 08:50
그 글에서 바빙크를 몇군데 인용하면서 영어로 인용한 것은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한글번역보다는 영어가 더욱 잘된 번역이기 때문입니다. 한글번역은 번역자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오역도 많고 급하게 출간하느라고 잘못된 부분들도 있다는 말을 역자를 통해서 직접 들었습니다. 결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역자에게 직접 화란어를 검토해달라고 할 수도 있고, 또한 저 홀리죠이도 화란어기초는 조금 해두었습니다. 염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개혁교의학개요>의 화란어판을 가지고 있으니, 필요하다면 인용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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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삶(사계) 12.08.04. 09:14
예. [개혁 교의학] 번역 문제에서 홀리조이 님이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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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삶(사계) 12.08.04. 08:52
holyjoy 님// 새삶(사계)님은 화란어를 아시는 모양이군요.------>제가 광주신학교 대학부 신학과 2 년을 그만두고 방위생활을 하면서 영어 실력기초부터 공부하기 시작해 대입시를 준비하면서 목표로 삼았던 과는 외국어대 화란어과였습니다.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을 회복한다."는 가르침과 함께 "채동이 형제 큰 약점인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 외대 화란어과에 입학했으면 한다. 만약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일반대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면 한다."는 제 제2 신앙의 아버지 조언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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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삶(사계) 12.08.04. 08:59
"일반대를 졸업한 뒤에 합동신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웨신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화란 자유대학보다는) 화란 아펠도른 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면 한다."는 조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어는 제 발목을 잡는 사탄의 가시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탄의 가시는 제 비평문 [캐서린 맨스필드 '마지막' 단편소설 <카나리아> 소고]를 낳게 만든 가시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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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삶(사계) 12.08.04. 09:09
"채동이 니가 신학을 그만둔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커다란 손실이다." 농담조의 이 말씀은 제 제2 모교회 한 해 선배이신, 합신을 졸업하신 목사님께서 1994년에 "목회 소명을 접었다."는 저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바보새 목사님께서 잘 아시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리고 몇 해 전에 이 목사님께서는 저에게 "신학을 다시 공부할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닥트 일도 하나님 나라의 일로서 귀한 일입니다.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씀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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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ymkk 12.08.04. 10:05
‘This is’ 바로 앞에 effectual calling과 새출생(effectual calling으로 인한)이 있읍니다
그리고 “This is the completion of the work of regeneration in the broader sense of the word, and the point
at which it turns into conversion. 이라고 Berkhof 은 말합니다.
곧 Berkhof 은 새출생 으로 중생의 일(넒은 의미) 이 completion 되었다고 하며,
바로 이 시점이 회심으로 변화 하는 시점, 곧 회심이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저도 이렇게 이해가 됩니다.
강요된 은총님
번역 좀 해주세요.
==철수님께서 이 밑에 올려주신 글을 본 후 정정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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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수 12.08.04. 09:28
(4) This effectual calling, finally, secures, through the truth as a means, the first holy exercises' of the new disposition that is born in the soul. The new life begins to manifest itself; the implanted life issues in the new birth. This is the completion of the work of regeneration in the broader sense of the word, and the point at which it turns into con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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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rymkk 12.08.04. 09:34
철수 님
감사합니다.
---------몸 글에 대한 댓글 ---------
하나로 13.07.28. 18:46
로빈슨크로소 ; 뻘콥은 회심을 새출생으로 표현한 반면, 존머레이는 좁은의미의중생을 새출생으로 표현했다.
홀리조이 ; 벌콥, 피터마스터가 동일하다.
즉, 중생(넓은 의미의)때에 회심이 일어나는 'point'가 시작된다.
영어로 보면, 넓은 의미의 중생과 회심이 어떤 부분에서는 "동일시"되고, 어떤 부분에서는 동일시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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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13.07.28. 18:46
지계표 :벌코프는 넓은 의미의 중생의 완성이 곧 회심으로의 전환이다.
새삶(사계)등 ;
Harrymkk ; 곧 Berkhof 은 새출생 으로 중생의 일(넒은 의미) 이 completion 되었다고 하며, 바로 이 시점이 회심으로 변화 하는 시점, 곧 회심이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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