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유효한 부르심] 정리
(자료출처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D4ux/347)한국교회 연중론 우장 노승수(바보새) 목사님 <회심의 성격>, 이 글에 적힌 “잠재태”와 “현실태”라는 용어는 노승수 목사님 <회심의 성격>에 따르면 스콜라 철학 용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세 스콜라 신학자들이 고민했던 문제 하나가 ‘바늘 위에 천사가 몇 명이 올라갈 수 있는가?’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고민은 신학이 아니라 사변입니다. 어울림 님 ‘위트’를 빌리자면 “괴벨스 식 궤변”입니다. “에라이!” 소리를 들어야만 하고 들을 수밖에 없는······.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은 ‘중생(위로부터 태어남)’을 “살리셨다.”는 ‘현실태’로 증거하고 있음에도,‘태어남’인 중생에 스콜라 철학 ‘잠재태’라는 말을 동원하는 연중론은 사변, 궤변의 중생론입니다. 사변의 중생론이기 때문에 ‘수태된 아이를 언제부터 사람으로 봐야 하는가?’ 고민하는 현대 의학, 현대 의학의 고민을 중생에까지 이어서, 한국교회 연중론 좌장 윤영상 목사님은 쓸데없는 고민을 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좁은 중생으로 수태돼 임신 기간에 있는 사람을 언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봐야 하는가?’ 하는 그 고민은 스콜라 신학자들 사변과 같은 고민입니다. {페북}에서 그 고민을 ‘사변에서 나온 고민’인지조차도 모른 채 ‘좋아요’를 누르며 댓글까지 다시는 목사님들이나 형제분들을 보며 안타깝기도 했지만 한심하기도 했습니다.
중생은 ‘잠재태’나 ‘수태’가 아닌 ‘살리신 일’이기 때문에 산 사람에게는 살아있는 생명을 드러내는 활동이 즉각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연중론은 스콜라 신학 사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론이기 때문에 {양무리 마을} 갭투유 님은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정하신 방법으로 부르시는 것이고요. 그 부르심에 사람이 응답하길 원하시고 기다리십니다.”는 사변을 계속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궤변인 줄조차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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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유효한 부르심]
(1)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이르도록 예정하신 그 모든 사람들만을 자신이 정하시고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는 때에 효과 있게 부르시되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하신다. 그래서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처해 있는 죄와 사망의 상태에서 불러내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구원에로 인도하신다. 또한 그들 마음을 영적으로, 그리고 구원에 관해 깨우쳐서 하나님의 일들을 이해하게 하시며 그들의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이 선한 것을 결심하게 하시며 그리고 효력 있게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끄신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기꺼이 나오게 돼 있으므로 그들은 가장 자유롭게 나오는 것이다.
(2) 이 유효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값없고 특별한 은혜로만 되는 것이며, 결코 사람 안에 있는 어떤 것을 미리 하나님께서 보시고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점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소생하고 새롭게 된 연후에는 이 부르심에 응답할 수가 있게 되며 또한 이 부르심 가운데서 제공되며 전달된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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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도자들은 구도자들에게 있는, 전도의 말씀과 종교성을 통해 생기는 각성, 후회, 돌이킴 등, 이런 것들을 부지런히 사용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는 전도의 말씀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신뢰하고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는 노력들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을 먼저 받은 자들에게 주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복음 전도자가 선포하는 말씀을 통해 사람들이 새 생명의 씨를 주입받기에 합당하도록 준비하십니다.
...(중략)...
그러나 일반 소명에서 나타나는 각성, 후회, 돌이킴 등이 시행착오로 반복돼 영 단 번 회심을 이뤄내는 것은 아닙니다. 회심은 중생과 함께, 중생으로부터 단 번에 발생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마찬가지로 중생과 회심은 그것의 충족성에서 영 단 번입니다.
일반 소명에서 나타나는 그런 인간의 애씀은 중생의 원인들이 전혀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중생은 중생 이외에 어떤 원인들을 전혀 가지지 않는 하나님의 단독 역사입니다. 중생은 창조와 마찬가지로 원인 없는, 하나님의 자기 결정에만 의존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강릉예명 <중생과 회심의 통합적 요약 -2012.08.23. 21:23->에서
하나님의 전능(무한)을 깨닫고, 인간의 유한을 깨닫고, 인간의 죄인 됨를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고, 인간의 무능을 깨닫는 구도자의 길……. 죄의 각성과 함께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있는 구도자의 길……. 하나님의 준비 은혜로서 하나님의 일반 부르심에 속하는 이 구도자의 길을 좁은 의미의 중생과 넓은 의미의 중생 사이에 넣어 버린 바람에,
좁은 의미의 중생 후 믿음과 회개. 믿음과 회개 후 넓은 의미의 중생.
이라는 {양무리 마을} <연중론 도식>을 낳아 버린 것입니다. 믿음이 곧 넓은 의미의 중생을 뜻하건만“(넓은 의미의) 중생 앞에 믿음이 있다.”, “믿음이 중생에 선행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낳아 버린 것입니다.
거북선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2] -2012.08.23. 22:22->에서
우리가 실제 회심의 시점에 이르게 될 때, 회심에 포함된 믿음과 회개는 복음 진리에 대한 지식과 동떨어져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과, 믿음의 재료가 되는 내용을 전달해 주는 복음의 진리 내용이, 믿고 회개해 그의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사람의 마음에 전달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구원하는 믿음과 회개의 작용 이전에 최소한 어느 정도는 율법과 복음이 지닌 의미에 대한 인지와인식이 있음에 틀림없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중략)...
그러나 준비 은혜로 중생하는 것은 아니다.
존 머레이 {조직신학}에서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들은 성령께서 율법을 통해 죄인들로 하여금 죄인됐다고 확신하게 해 주는 예비 작업을 하셔서 그 영혼들의 토양이 믿음과 회개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신다는 것을 가르칩니다.그럼에도 이렇게 갈아엎어진 토양조차도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초자연적인 씨앗을 심겨 주시기 전까지는 믿음과 회개를 생산해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조엘 비키 {Prepared by Grace, for Grac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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