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의 성경적 상담 연구소 RBD COUNSELIN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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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의사(구원론)

어린 아이의 중생_존 머레이

어린 아이의 중생_존 머레이


어린 아이의 중생_존 머레이




‘중생의 선행성’과 ‘중생이 믿음과 분리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중생한 어린 아이들 경우에도 기억돼야 한다. 본질상 어린 아이는 우리가 ‘믿음과 회개’라고 규정하는 회심, 그런 의식적이고 지적인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린 아이의 경우 중생이 일어나는 곳에는 ‘어두움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즉각 이전되며, 비록 지적인 믿음이 작용하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믿음의 싹’은 존재한다. 중생이 어린 아이의 초보적 의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우리가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죄와 마찬가지로 중생은 어린 아이의 초보 의식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침에 틀림없다. 어린 아이들이 타락돼 있다면 그들은 또한 거룩해질 수 있다. 중생한 어린 아이는 이 점에서 근본적으로 중생하지 못한 어린 아이와 다르다. 중생한 어린 아이는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고, 진노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 나라의 성원이다. 그는 이 용어의 가장 고귀한 의미로서 주님의 양육으로 성장한다. 물론 당해 어린 아이가 자신의 중생과 그것이 수반하는 구원의 의미들을 명확히 의식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 어린 아이 의식의 발전과 전개에 근본적인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생한 어린 아이를 ‘유아 단계에서 중생하고 이후 그가 이해력과 분별력을 갖는 나이가 될 때 회심하는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결코 아니다! 어린 아이가 중생할 때 어린 아이 마음속에 초보적 영역에서 회심과 일치하는 어떤 것이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그 어린 아이는 회심한다. 말하자면, 비록 초보적이고 싹에 지나지 않지만 그 마음과 뜻이 향해 있는 방향은 하나님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순종이다. 그 어린 아이가 내주하시는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힘 아래 자라감에 따라 그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합당한 방식으로 확장된 경험과 증가된 지식으로 응답한다. ‘끊임없이 지도하고 통제하는 분으로서 성령’의 내주에 합치하는 방식으로 그는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도록 성장한다. 우리가 중생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에 대해 “그들은 모태로부터 거짓을 말하며 어그러진 길로 간다.”고 말한다면, 중생한 어린 아이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중생의 시점부터 원칙적으로 진리를 말하며 거룩한 길로 행한다.”고 말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다른 이들이 거룩하지 못한 것처럼 그들은 거룩하다.


물론, 유아 단계에서 중생한 사람들은 그들이 커 갈 때 ‘회심 체험’과 아주 유사한 체험을 겪고, 스스로 ‘그 사건 이전에는 그들이 죄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그러한 체험

은 단지 이전에 일어났던 중생이 그들 의식 속에 명확히 표출되면서 그들 지적 체험에 초점이 모아지는 고비(crisis)이다. 하지만 다른 많은 경우 특정한 시기에 그러한 결정적이고 격한 체험이 없어서 “그때 하나님 없이, 하나님께 대한 소망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지적인 기독교인들이 많다. 그들은 어린 아이 때 중생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인 교훈 속에서 양육됐음으로 예수님에 대한 단순한 믿음은 기억이 미칠 수 있는 한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존 머레이 {조직신학 제2권} 박문재 옮김 (고양: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008) 211쪽~21쪽.

http://blog.daum.net/7gnak/15721143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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