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ne Grudem의 중생론_이주태 선교사
wayne Grudem의 중생론_이주태 선교사
중생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영적 생명을 부여하시는 신비로운 행위이다(요3:3-8).
중생에 있어서 인간이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요1:13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라고 하였다.
중생은 수동적이어서 태어는 것이며 거듭나는 것이다(약1:18, 벧전1:13, 요3:3-8).
육신적인 탄생도 전혀 수동적이다.
중생은 겔36:26-27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새로운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중생은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일이다(요3:8, 엡2:5, 골2:13, 약1:17-18).
중생과 소명은 동시에 일어난다(벧전1:23-25, 약1:18, 행10:44).
참된 믿음은 중생 후에 주어지는 것이다.
중생의 본질은 신비이다.
중생이 신비의 영역 즉 이해와 감각을 초월하여 우리 안에서 발생하면 그때서야 우리는 거듭났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요3:8).
죄로 인하여 우리의 영혼만 죽은 것이 아니라 전인격이 무능하게 되었었다.
그런데 중생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소생하고 전 인격이 변화하였다(고후5:17).
중생은 순간적이고 단 한 번이다.
어느 순간에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순간이 중생인 것이다.
고로 중생은 믿음 이전에 일어난다.
그러나 믿음과 중생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물과 성령이라는 말씀에서 물은 죄로부터의 영적 정결을 의미한다(겔36:25-26).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요6:44-45).
루디아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열어주셨을 때 바울의 교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행16:14).
바울은 성령이 없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아드리지 않는다고 하였다(고전2:14).
중생하지 아니한 사람은 전혀 진리를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롬3:11).
중생 이후에야 하나님과 교제가 시작되는 것이다(엡2:4-5, 골2:13).
곧 믿음은 중생의 증거인 것이다.
성경은 거듭나라 중생하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믿으라고 하신다.
믿음은 중생의 첫 번째 결과이기 때문이다.
요일5:1에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유는 거듭났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요일3:9에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말은 죄를 의도적으로 좋아서 즐긴다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중생한 자는 의를 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요일2:29).
죄를 습관적으로 짓지 않는다는 말이다.
곧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중생한 것이다(갈5:22-23).
교회활동이나 기적이 중생의 증거는 아니다(마7:15-20).
중생의 증거는 변화된 삶이다.
기적은 성령이 아니어도 일어날 수 있지만 인격과 삶의 변화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낭한 것이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siervodecristo/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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