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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의사(구원론)

아브라함 카이퍼의 중생에 관한 이해_이주태선교사

아브라함 카이퍼의 중생에 관한 이해_이주태선교사


아브라함 카이퍼의 중생에 관한 이해_이주태선교사




요3:6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셨다.

중생은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신적인 사역이다.

성령님이 죄와 사망에 있는 사람에게 영적 원리를 주입시킴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고로 중생은 죄로 사망에 거하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는 것이며 완전히 변화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감동을 받고 회개하고 구주를 영접하는 것이 중생이다.


믿음은 회개를 낳는다.

믿음의 첫 행위는 회개이다.

회개는 주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근본적인 회개와 매일매일 잘못을 고쳐가는 점진적인 회개가 있다.

회개도 신적인 사역으로 성화를 이루는 과정이다.

성화는 사망의 시간에 완전한 구속으로 완성된다.

육과 영이 분리되는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성화를 완성한다.


영화는 영혼이 영광스러운 몸과 결합하는 것이다.

고로 영화의 은총은 사망과 더불어 시작됨으로 사망은 가장 큰 복인 것이다.


중생의 체험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성령에 의하여 우리 안에 주입될 때 우리는 새 생명 안에 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의롭게 되어진 것을 깨닫는 것이다.

고로 의롭게 된 사람은 회개하며 성화의 과정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고로 구원은 중생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세례받기 전에 중생한 것이다.

그리고 중생은 사람은 마지막 회개 때까지 지상에 남겨진다.

선택받은 사람은 어릴 때부터 중생하였으며 점진적으로 회개에 이른다.

고로 중생이 먼저고 회개가 그 다음이다.


영적 생명은 성령님의 영적 원리와 연합되는 것이다.

성령님의 원리는 사망의 원인인 죄를 전멸시키신다.

고로 죄의 결과인 사망도 전멸된 것이다.


잠20:12에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의 지으신 것이라고 하였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귀머거리이며 소경이다.

그러나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중생의 신비이다.

모든 이단은 사람 속에 선이 남아 있다는 주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후5:17의 말씀처럼 거듭난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다.

중생은 성령님에 의한 불가항력적인 사역이다.

성령께서 죽었던 양심을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중생으로 인하여 새로운 자아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사람으로서의 존재는 수정되지 아니한다.

중생 후에도 동일한 자아이고 동일한 사람이다.

본질과 존재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중생은 존재의 변화가 아니고 본질의 변화이다.

부패한 본질이 갱신되는 것이다.

이 중생의 씨앗은 만져볼 수 없고 인지하기 어려운 영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씨앗은 자라고 성장한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만 중생된다.

성령님이 은밀한 사역으로 역사하사 우리의 마음 속에 올바른 믿음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게 하신다.

성령님이 우리로 하여금 이 위대한 신비한 지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신자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속성이 가득차게 된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충만히 주입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이 중생의 사역이 시작되고 진행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우리의 무의식 가운데 행하시는 일이 중생이고 의식 가운데 행하는 일이 회개이다.

고로 회개와 중생은 동시에 있는 것이다.

죽은 심령에 그리스도의 새 생명이 주입되면서 사람들은 놀라 회개한다.

그리고 회개의 영은 성화로 몰입되아 간다.

이것이 중생이다.

즉 이 세 가지 신비한 일은 거의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생은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가장 분명하고 가장 실제적인 사역이다.

즉 중생한 즉시 우리의 감정과 의지와 이지가 전적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게 하는 의지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하는 의지를 발생시킨다.



중생은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연합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중생의 신비적 연합은 성령의 불로 끊임없이 임하시는 것이다.

고로 주님과 연합하지 아니한 것은 중생이 아니다.

주님은 당신과 연합되지 아니한 영혼을 천국으로 받아드리지 아니하신다.

주님과 연합한 영혼은 주님의 모든 은총과 보화를 누리기 때문에 세상에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중생한 영혼의 유일한 관심은 천국의 영광과 영화이다.

이 신비한 연합은 인간의 감각으로 측량할 수 없으며 상세하게 표현될 수 없으며 오직 확실한 실제적 연합인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의 범신론적인 개념을 물리쳐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사람이 중생하였다고 주장한다.

범신론의 물은 향기가 있고 그 향기는 강력해서 사람들을 취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것에 취하면 영혼을 멸망시키는 것이다.

중보자에 의한 유한성과 무한성의 결합이니 창조주와 유한자의 화목이니 하는 것은 이단설이다.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은 중보자 없이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


성경의 그리스도는 신성의 영원한 참여자이시고 이 신성 위에 인성이 적응되었으며 이 두 본질이 연합하여 한 인격체가 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본질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혼합되지 않으며 전자나 후자의 속성이 서로 교통하지도 아니한다.

두 본질이 가장 친밀히 연합되어 죽음에까지 계속되며 하늘나라까지 보존된다.

예수님은 육체를 입은 신적인 인간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인성을 취하신 것이다.

본체의 혼합이 아니라 인격의 통일이시다.

인자는 두 인격이 아니요 한 사람 안에 두 본질이 하나가 된 것이다.

또 두 본질은 자신의 독특성을 유지한다.

신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창조된 것이 아니며 인성은 그의 특성을 잃지 않았으나 피조자, 유한자, 참된 육신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부활 후에는 이 인성이 영화롭게 되셨다.


슐라이허마허는 성육신은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어도 시행될 것이었다 예수는 무한성과 유한성을 초워한 중보자이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혼합되어 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고 또한 완전한 사람이었다 즉 신인성을 소유하였다 이 신인성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중생을 영적인 연합이라고 한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연합이 많이 된 것이고 안 믿는 사람은 연합이 적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신인성의 차이가 중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본질을 우리에게 쏟아 넣은 것이다.

고로 중생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새 본질을 소유하는 것이다.

인성이 없어질 때 신성이 나타나고 신성이 없어질 때 인성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식물이 태양빛을 믾이 받을 수록 더욱 발전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중생의 의미는 오로지 인간이 죄인이라는 전제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죄도 없었을 것이고 중생도 필요없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라고 말한 것은 지위를 말한 것이 아니고 신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는 양자된 자녀 곧 다른 자손인 것이다.

고로 그리스도는 영원한 신성을 소유하였어도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연합하시기 위하여 먼저 전화되고 성화되기를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는 죄인들의 구세주이시다.

우리와 연합하시기 위하여 혈과 육을 취하셨다.

그는 우리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신자들과 연합하신다.

고로 그리스도는 부요하시고 성결하신 신랑이시고 우리는 가난하고 추악한 신부이다.

그리스도는 의롭고 광채나는 옷을 입고 오셔서 우리에게 입혀 주신다.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부분적을 밎는 말이다.

왜냐 하면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고 하시기 때문이다.

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에 우리는 이미 승천하여 보좌에 앉았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엡2:4-7).

성부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독생자에게 속한 것이다.

우리는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와 근원적이고 철저한 관계가 맺어진 것이다.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선재하셨다.

그로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자녀들이 되는 것이다.

마치 전 인류가 아담의 자손임과 같은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실제로 동참한 것이다.

이런 우리가 중생의 체험을 통해서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자녀로 잉태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로 여겨졌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중생이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은 성령께서 중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고로 중생한 사람은 참다운 감각과 자유로움을 갖는다.

마치 태어난 아이가 날마다 어머니와 더 깊은 친밀함을 갖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곧 중생한 순간부터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갈 수록 발전하고 성숙하는 것이다.


중생은 결혼처럼 놀랍고 새로운 연합이다.

육체와 영혼의 놀라운 연합이다.

거룩한 세례와 성례전적인 연합니다.

어머니와 그 자녀의 피와 같은 생명적 연합이다.

성령의 임재로써 맺어지는 불가견적 연합이다.

귀로 들을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주님께서 영향을 미치고 조정하시는 연합이다.

마치 출생되지 아니한 태아가 어머니의 심장으로 생존하는 것처럼 중생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나 천국에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자료출처 http://blog.daum.net/siervodecristo/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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