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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의사(구원론)

존 머레이 <중생> (1)

존 머레이 <중생> (1)


존 머레이 <중생> (1)

목차 
       차례
 
                  추천의 말······신복윤
                  역자의 말······하문호
 
제1부 구속성취······9
    제1장 속죄의 필요성······11
    제2장 속죄의 본질······25
        1) 희생犧牲······31
        2) 유화宥和······37
        3) 화목和睦······42
        4) 구속······54
    제3장 속죄의 완전성······65
        1) 역사적 객관성······66
        2) 종결성······68
        3) 독특성······70
        4) 내재적 효능성······73
    제4장 속죄의 범위······75
    제5장 결론 ······99
 
제2부 구속적용······103
    제1장 구속적용의 순서······105
    제2장 유효적 소명······115
        1) 소명자······116
        2) 소명의 성질······118
        3) 소명의 기준······120
        4)소명의 선행성······122
    제3장 중생······125
    제4장 신앙과 회개······139
        1) 신앙······139
        2) 회개······149
    제5장 칭의······155
    제6장 양자······175
    제7장 성화······187
        1) 전제 사실들······187
        2)성화에 대한 고찰······190
        3) 성화의 동작자······194
        4)성화의 수단······196
    제8장 견인堅忍······199
    제9장 그리스도와 연합······213
    제10장 영화······231
 
        *주······241
        *성구 색인······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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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머레이 [구속론]
<제2부 구속적용>
 
제3장 重生ㅡRegenerationㅡ
  
    우리는 구속 적용이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을 聖子와 교제케 하시려고 안내하는 유효적 소명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유효적 소명은 부름받은 인간 편에서 나오는 합당한 응답이 뒤따라야 한다. 부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다. 즉 그 소명을 받는 자는 인간이다. 그리고 이 응답은 인간의 마음과 뜻과 의지에서 비롯된 실제 행동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받게 된다. 즉 죄와 허물로 죽고 하나님과 원수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그리스도와 교제케 하려는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겠는가? 교제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상호적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교제란 믿음과 사랑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심령이 부패하고 또 하나님과 원수 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영광의 최고 표현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 부르심이 요구하는 믿음과 사랑의 응답이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 편에서는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도 이 불가능성을 명백히 말씀하셨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느니라.”(요 6:44, 65) 이런 사실은 죄인이 부르심을 받은 바 그 영광과 성결의 상태와, 그 부르심을 받은 자의 현재 도덕적 영적 상태 사이에서 전혀 조화될 수 없음을 말해 준다.
    어떻게 이 부조화는 해결될 수 있으며 이 불가능은 극복될 수 있겠는가? 바로 이 불일치를 위해 마련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영화로운 복음이다. 하나님의 소명은 그것이 유효적임으로 부름 받은 자가 그 소명에 응답할 수 있고 또 복음의 순수한 요청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게 하는 유효적인 은혜를 수반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요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미치고 부패와 무능 속에 태어나 도덕적 영적으로 소명에 응종應從하기가 불가능해진 인간에게 요구되는 모든 필요를 채워 준다. 그런데 이 은혜는 바로 중생의 은혜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부름 받은 자의 죄된 상태 사이에 있는 모순을 풀어주는 하나님의 재창조적인 능력과 은혜를 생각할 때 그렇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겔 36:26) 하나님은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한 변화를 일으키신다. 그것은 인간적 요소를 첨가하거나 쌓아 올린다는 말로 설명될 수 없는 변화다. 그리고 인간 속에 전혀 없던 것이 소명자에 의해 새로 창조된 것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는 변화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고 또 이루셨다. 소명하셨고 또 그것을 확고하게 하셨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중생이다.
   
    우리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보다 더 적절한 성경 구절이 없다. 이 성구는 잘 알려진 말씀이지만, 그 명백한 뜻이 얼마나 자주 오해를 받는지 모른다. 중생의 양식은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다. 다음 성경 구절에서 주님께서는 이 사실을 지적하셨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 그러나 중생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가운데는 그 필요성과 특성에 관한 분명한 설명이 있다.
    우리 주님께서 초자연적 출생을 가리켜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가는데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여기서 분명히 “보는 것”(seeing)이란 말로 바울이 고전 2장 14절에서 말한 영적 분별을 뜻하셨다. 그리고 “들어가는 것”(entering)이라는 말로는 하나님 나라의 실제 회원이 되며, 따라서 회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의 참여자가 될 것을 의미하셨다.
    우리는 요한복음 3장 5절 말씀을 주목할 것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주님께서 이 성구에서 말씀하신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을 둘러 싸고 많은 견해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주님께서는 여기서 중생의 도구가 되는 기독교의 세례를 가리켰다고 한다. 그리고 이처럼 세례적 중생을 믿는 사람들은 그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이 성구에 호소한다.
    그러나 아예 처음부터 알아 둬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물”은 세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님께서 “물”이란 단어를 사용하셨을 때 그것이 세례의 물을 말씀하신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달리 생각할 특별한 까닭이 없는 한, 주님께서 세례를 의미하셨다고 보는 주장을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 성구에 있는 “물”이란 단어를 세례식에 관련해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나아가 여기서 다른 중요한 의미를 찾아야 할 좋은 까닭이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어떤 관점에서 이 말씀을 하셨는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지금 심각한 종교적 질문에 대해 니고데모와 대화를 나누고 계신 것이다. 이 대화 속에서 주님께서는 관심의 주제를 꿰뚫는 종교의 핵심적 개념을 니고데모에게 전달하시기를 바라셨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가장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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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존 머레이 [구속론] 하문호 역 (서울:성광문화사, 1983)에서
    http://cafe.daum.net/jesuname/BsLS/60)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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